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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104화 (104/170)

# 104

[104화] 너희는 법(法)이 우습냐? (1)

자의 반 타의 반 지검장은 나를 공판팀에 재합류시켰지만, 지원은 없었다. 아니, 철저히 재판을 방해했다. 그리하여 베테랑 검사인 이 부장이 공판 팀에서 떠나버렸다. 표면적인 사유는 해외 출장이었지만 분명, 지검장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 틀림없었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 가시밭길을 헤쳐나가야 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2차 공판 날이 다가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대법정, 417호>.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은 교도소입니다! 김현석! 반드시 평생을 감옥에서 썩게 해줄게!

나는 심호흡을 한 후,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법정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층 수척해진 모습의 김현석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가까스로 공판 팀에 합류한 나는 2차 공판을 진행하기 위해 검사석에 앉아 자료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150석의 방청석은 전부 만원이었고 기자들 역시, 1차 공판 때와 마찬가지로 긴장한 표정으로 재판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부터 2012 176호, 피고 박정호와 김현석의 특정범죄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2차 공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잠시 후, 재판장의 입장해 칼칼한 목소리로 재판 시작을 알렸다.

뭐…… 야? 바뀌었잖아?

주심이 바뀌었다. 1차 공판에서 주심을 맡았던 진보 성향 김주성 판사 대신 극보수 성향 박상태 판사가 이번 공판의 주심을 맡은 것이다. 재판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부장님! 판사가 바뀌었네요? 연락받으셨나요?”

“어. 나도 어제 연락을 받았어. 김 판사님이 갑자기 몸이 안 좋으셔서 급히 박 판사로 바뀌었나 봐.”

“그…… 래요?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러게. 나도 이해할 수 없지만 이미 결정된 거 어쩔 수 없잖아.”

치졸한 인간들!

분명, 지검장과 이 의원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다. 박상태 판사는 이 의원과 친분이 있는 인사로 곧, 판사 복을 벋고 정계 진출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한 인물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검사, 피고 심문 시작하세요.”

간단한 인정 신문을 마친 후, 본격적인 재판에 들어갔다.

“네.”

나는 천천히 피고석 쪽으로 걸어 나갔다.

“김현석 씨, 피고는 언제부터 검사 생활을 시작하셨습니까?”

“…….”

김현석이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입을 굳게 다물었다.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질문엔 답하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다시 묻겠습니다. 피고는 검사 생활을 언제부터 시작하셨습니까?”

나는 목소리 톤을 높이며 다그쳤다.

“흐음, 한 25년쯤 된 거 같군요.”

그때야 김현석이 마지못해 입술을 뗐다.

“그렇군요. 비록 25년이 지났지만, 검사 선서 내용은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

김현석이 눈썹을 치켜뜨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검사 선서를 낭독해 주시겠습니까?”

“…….”

김현석 미간을 좁히며 양 볼이 불끈거릴 정도로 이를 악다물었다.

“검사! 피고의 인격을 모독하는 발언은 삼가세요.”

그 순간, 박상태 판사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뭐야? 변호인이 이의 신청을 하지도 않았는데 판사가 먼저 나선다! 누구를 위한 재판을 하겠다는 건가? 정말 쉽지 않은 재판이 되겠군.

“흠…… 세월이 많이 지나서 기억나지 않나요?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검사의 선서를 잊을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제가 대신 낭독해드리죠.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검사! 그만 하세요.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본 사건과 관련이 없는 발언은 자제해주세요!”

박상태 판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짜증 섞인 투로 말을 내던졌다.

후후후.

그 순간, 변호인석에 앉아있던 장진웅 변호사의 한쪽 입꼬리가 슬그머니 위쪽을 향했다.

“이거 오늘은 법정 분위기가 쎄한데?”

“그러게 1차 공판 때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

“박상태 판사, 저 사람 곧 여당 공천받을 거라던 소문이 자자하던데?”

“그래? 음, 이거 뭔가 냄새가 진동하는군!”

기자들이 귓속말을 나누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피고는 언제부터 박정호 씨와 친분이 있는 사이가 되셨습니까?”

“흠, 꽤 오래됐습니다.”

그가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정확히 말씀해주십시오.”

“오래돼서 기억나지 않습니다.”

김현석이 내 시선을 외면하며 불퉁거렸다.

“흠, 좋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죠. 피고와 박정호 씨가 처음 만나게 된 건 1996년 10월인 것으로 확인이 되는데 맞습니까?”

“으음, 그러고 보니, 대충 그쯤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군요.”

“그렇다면 다시 묻겠습니다. 당시 피고는 서울남부지검 형사 3부에 재직 중이셨는데 맞나요?”

“네. 그렇습니다.”

“그것참 이상하군요. 당시 피고의 신분은 검사였고 박정호는 영등포 지역에서 활동하던 조폭 ‘정복파’의 최말단 조직원이었는데, 두 사람이 친분이 있었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는군요. 영등포는 남부지검의 관할 구역이지 않습니까? 음, 기록을 보니 두 사람이 검사와 피고인 신분으로 만났던 적이 있던데 그렇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는데요?”

“무엇이 부적절하다는 겁니까? 당시, 박정호는 건실한 청년이었습니다. 한때 잘못된 판단으로 조폭에 가담했지만, 본성은 선한 사람이었어요. 제가 볼 때는 충분히 갱생 가능한 사람이라고 판단되었습니다. 그래서 올바르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준 건데, 뭐가 잘못됐다는 말씀입니까?”

김현석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그래요? 피고 말에 의하면 박정호는 피고를 만난 이후에 정상적인 삶을 살았어야 하는 게 지극히 당연한 것 아닙니까? 일반적인 직장에서 일하거나 합법적인 장사를 하든지 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직원 말단이었던 박정호는 1997년 5월 상당한 규모의 룸살롱을 거의 헐값에 매입합니다. 그리고, 1998년에 추가로 두 개의 룸살롱과 단란주점을 인수하면서 급성장하게 되죠. 급기야 2000년에는 주류 유통업에 손을 대 상당한 재산을 축적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상당한 유혈 충돌이 있었고 억울하게 업체를 강탈당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이 피고가 말한 정상적인 갱생의 길입니까?”

“조사해보셨으니 잘 아시겠지만 전부 합법적인 절차였습니다.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보는데요. 법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었습니다.”

김현석이 고개를 빳빳이 세우며 나를 노려봤다.

당신이 뒤에서 뒤치다꺼리를 해주었으니 그랬겠지!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공교롭게도 박정호의 급작스러운 성장은 1997년 2월 박윤석 기자의 사망 후와 일치하는데, 피고는 박정호를 사주해 박윤석 기자를 살해하도록 교사하고 그 대가로 박정호가 각종 인권을 챙길 수 있도록 도와준 것 아닙니까?”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지금 검사는 확정되지도 않은 사실을 기정사실로 하며 피고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장진웅 변호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인정합니다. 서기! 검사의 발언은 기록에서 삭제하세요. 피고! 검사의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리고 검사! 계속 재판장의 지시를 무시하는데, 심히 유감입니다. 앞으로 주의하십시오!”

흠흠흠, 박상태 판사가 안경을 벗고는 눈을 꾹꾹 눌렀다.

이건 뭐. 자유당, 유신정권 시절에 법정에 나온 기분이군!

후유, 나는 양 볼을 부풀리며 입술을 잘근거렸다.

“검사! 계속 심문하시겠습니까?”

뭐야? 심문을 그만하라는 말보다 무섭군!

“아닙니다. 이상 심문을 마치겠습니다.”

나는 일단, 한발 물러서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럼, 변호인, 피고 심문하세요.”

“네.”

장진웅 변호사가 한결 자신 넘치는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피고, 묻겠습니다. 피고는 박윤석 기자와 어떤 관계입니까?”

“음, 전혀 연관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기자고 저는 검사인데 우리가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피고는 박윤석 기자 때문에 괴로워하셨던 겁니까?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없었을 텐데요.”

장진웅 변호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박윤석 기자는 집요하면서도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군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치욕스러워 더 입에 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말씀드리지요. 박윤석 기자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제 주변을 맴돌며 저를 감시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정신적 충격이 컸죠. 한 번은 동료 검사들과 술을 한잔하고 나오는데 박 기자가 기다리고 있다가 저를 부르더군요.”

흐음, 김현석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김 검사님, 요즘 주머니가 두둑한가 봐요? 혈색이 아주 좋아 보이네요. 게다가, 그 비싼 양주도 마시고….”

박 기자가 내 옷에 코를 대며 킁킁거렸습니다.

“그… 게, 사실 오늘 제 생일이라 제가 술을 한잔 사야 해서요. 예전에 동료들과 약속한 게 있어서 오늘은 제가 샀습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다고 술값도 안 내고 나오면 되나요?”

박 기자가 빈정거리며 넘겨짚었습니다.

“아니에요. 절대 공짜로 마시고 나온 것 아닙니다. 제대로 결제하고 나온 겁니다. 못 믿으시겠으면 가게로 가셔서 확인해보시면 되잖습니까?”

“에이, 다 아는데 뭘 그래요? 이미 가게 주인이랑 짜웅하고 나오신 것 아닙니까? 게다가 이쪽 지역이 검사님 관할이니까 알아서 기었겠지요. 아무튼, 기사는 나갑니다. 어디 보자! 무슨 제목이 좋을까? 검사들의 외유! 낮에는 공무원 밤에는 진시황제? 이게 좋을까?”

박 기자가 나를 힐끗거리며 다이어리를 꺼내 들었습니다.

“기자님! 이거 너무하시는 것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말도 안 되는 추측기사를 내보내시면 어떡합니까?"

진짜 억울했습니다. 저는 그날 분명히 제값을 치르고 술을 마셨거든요.

“어허! 이 팔 놓으세요. 지금 언론 탄압하시는 겁니까?”

그가 내뱉은 말도 안 되는 소설은 여기까지였다.

“박윤석 기자는 매사가 이런 식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어떡하겠습니까? 어떡하든 상납을 해야 했습니다. 박봉의 검사 월급 가지고는 엄두가 안 나서 대출을 받아다가 박 기자한테 상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정말 죽을 만큼 괴로웠었죠. 그 심정을 정호에게 토로한 겁니다. 그것뿐이었어요.”

김현석이 코끝을 찡그리며 진저리를 쳤다.

뭐야? 지금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판사님, 이의 있습니다. 피고는 작고하신 고인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습니다. 시정하여 주십시오!"

“흐음, 피고, 지금 피고가 한 발언에 관해서 책임질 수 있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100% 사실이니까요.”

김현석이 뻔뻔하게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

“흠, 변호인. 계속 심문하세요.”

“네. 재판장님!”

미친 것들! 100% 책임져? 증명할 수 없다 이건가?

시X! 쾅!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검사!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박상태 재판장이 벌떡 일어나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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