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102화] 아군이냐? 적군이냐? (2)
<김정환 검사실>.
1차 공판을 성공적으로 마친 나는 2차 공판을 위한 자료를 준비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검 한 검사가 내 방을 찾아왔다.
“김정환 부장님! 한중원 검사입니다.”
똑똑똑, 한 검사가 문을 두드렸다.
“네. 들어와요.”
“이번 재판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부장님!”
그가 방에 들어와 의자에 앉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
“…….”
내가 별다른 반응이 없자 한 검사가 어색한 듯 차를 홀짝거렸다. 그렇게 차를 마시며 잠시 어색한 시간을 보낸 지 30분, 한 검사가 드디어 이곳에 온 이유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부장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공판 자료 넘겨받으러 왔습니다.”
한 검사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이렇게 빨리 발목을 잡겠다는 건가?
“무슨 공판 자료?”
나는 대수롭지 않은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무슨 공판 자료라뇨? 아직, 연락 못 받으신 겁니까? 이번 재판, 앞으로 제가 진행하기로 했는데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난 아무 연락도 못 받았어.”
“그래요? 이상하네. 전 이미 연락을 받았는데…….”
한 검사가 손톱으로 이마를 긁적거리며 난감해 했다.
띠리리링.
때마침 울리는 전화벨 소리. 지검장에게서 온 전화였다.
“한 검사, 지금 지검장님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어떻게 계속 기다릴 건가?”
한 손으로 수화기를 막으며 물었다.
“아뇨, 아뇨. 아무래도 직접 말씀하시려나 보네요. 일단, 전 제방으로 돌아가 있겠습니다.”
“그래. 그럼.”
한 검사가 내 눈치를 보며 천천히 문을 열고 나갔다.
“김정환 부장, 바쁘지 않으면 내 방으로 잠깐 오세요.”
“네. 지검장님!”
결국, 올 것이 온 건가?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지검장실로 발길을 옮겼다.
<서울중앙지검, 지검장실>.
“어서 와. 김정환 부장. 앉지!”
지검장이 몸소 문을 열어주며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네.”
“보이차 한잔하겠나?”
“네. 주시면 마시겠습니다.”
“원, 사람도 뭔 표정이 그렇게 비장해? 전쟁에 나가나? 얼굴 좀 풀게나.”
지검장이 차를 타서 내오며 나를 쳐다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지검장님, 이번 재판…….”
“어허, 김 부장아! 우리 숨 좀 돌리고 시작하자. 일단, 마셔. 중국에서 직접 가져온 거라 향이 참 좋아!”
지검장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 말을 가로막았다.
“네. 알겠습니다.”
“자네 아직 미혼이지?”
“네…….”
“뚜쟁이들은 뭐하나 몰라? 김 부장 같은 1등 신랑감을 왜 가만두는 거야. 내가 중신이라도 좀 설까?”
허허허, 지검장이 내 눈치를 보며 너털거렸다.
“아닙니다. 아직, 결혼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 아무튼, 좋은 혼처가 나오면 내가 앞장서서 중신을 서도록 하지.”
그렇게 10여 분, 지검장은 시시콜콜한 사적인 질문에 쏟아내며 내 눈치를 살폈다.
“음…… 그게 말이야. 흠흠.”
지검장이 더듬더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지검장님,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그래그래. 나도 답답해서 못 살겠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김 부장, 아니 정환아! 우리 이쯤 했으면 할 만큼 했으니까 여기까지만 하자.”
지검장이 의자를 바짝 당겨 앉으며 이마에 주름을 만들었다.
“네? 뭘 했다는 말씀이신지…… 그리고 뭘 그만하자고 하시는 겁니까?”
“정환아, 뭘 그렇게 모른척해. 솔직히 말이야. 우리 식구를 우리가 쳐내는 게 말이 되나? 미우나 고우나 우리 식구 아니냐? 그렇게까지 궁지로 몰아야겠니?”
지검장이 손바닥을 비비적거렸다.
“지검장님!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르는 것이 궁지로 내모는 겁니까?”
“어허! 그래그래. 당연히 벌을 받아야지. 누가 그냥 넘어가자는 거야? 김현석 부장도 이번에 느낀 바가 많을 거야. 이미, 검찰로 돌아오지도 못한 사람을 그렇게 매몰차게 몰아붙여서 뭐 하겠니?”
“지검장님! 전 이해할 수가 없군요. 김현석 씨는 살인교사에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중죄인입니다. 당연히, 그에 합당한 벌을 받는 것이 상식 아닙니까?”
“정환아! 넌 검사 아냐? 왜 같은 식구끼리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누가 그냥 넘어가자고 했나? 적당한 선에서…….”
“지검장님,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식구란 말씀이 몹시 유감입니다. 지검장님 말씀대로라면 같은 검찰 식구면 벌을 안 받아도 된다는 말씀입니까? 그러면, 일반인들도 똑같이 적용되는 건가요? 그건 아니잖습니까?”
“어허, 이 친구가 말을 그렇게 못 알아들어서 어떻게 검사를 해? 내가 그냥 넘어가자고 했나? 그게 아니라 적당히 하자는 거지!”
흠흠, 지검장이 헛기침하며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지검장님. 도대체 어느 선이 적당한 겁니까? 기소 포기라도 하시겠다는 건가요? 결국, 그렇게 되면 악순환의 반복입니다. 이젠 우리 스스로 굴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검찰은 점점 국민에게서 멀어지게 됩니다.”
“어허, 이 사람, 진짜 고집불통이구먼. 김현석 부장이 지금은 이래도 우리 검찰을 위해서 해온 게 얼만데 너무 가혹하게는 하지 말자는 거지. 누가 처벌하지 말자고 하던가?”
“그건, 지검장님이나 제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법리를 따져 합당한 만큼의 벌을 받으면 되는 거죠. 우리는 법에 따라 범죄자를 처벌하는 사람들이지 법 위에 군림하는 조직이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지검장님 말씀은 법을 무시하자는 것과 뭐가 다른가요? 그렇다면 우리가 조폭과 뭐가 다릅니까? 우리가 먼저 변하지 않으면 ‘사자 붙은 도둑’. ‘낮에는 공직자, 밤에는 양상군자.’라는 국민의 비아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나는 목이 터져라 열변을 토해냈다.
“너…… 지금 조폭이라고 그랬냐? 뭐? ‘사자 붙은 도둑’? 네가 언론을 등에 업고 인기 좀 얻으니까 눈에 보이는 게 없나 보다. 너도 전차장 따라서 제주로 가고 싶어? 건방진 놈, 지검장이 이렇게 부탁을 하는데…….”
이제 더 이상의 타협과 부탁은 없었다. 지검장이 협박하며 위에서 찍어 누르려 했다.
“지검장님! 다시 한번만 생각해주십시오. 이번 재판 제대로 진행해야 합니다. ‘물 특검’, ‘그들만의 왕국’이란 오명을 이번 기회에 씻어내야 할 것 아닙니까?”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워! 꼴도 보기 싫으니까 나가!”
“지검장님!”
“시끄럽고 일단, 지금까지 진행해온 공판 자료는 모두 한 검사한테 넘기고, 너는 지검으로 원대 복귀해. 지금, 일이 산더미처럼 밀려있어. 이번 재판만 중요해? 민생을 생각해야 할 것 아냐? 가뜩이나 일손도 부족한 마당에 재판에 부장이 몇이나 매달려 있는 거야?”
에이, 지검장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지검…….”
“시끄럽다고! 아무튼, 김 검사는 이번 재판에 손 떼는 거야. 쓸데없이 괜한 짓 하지 마. 이건 부탁이 아니라 경고야! 명령이라고!”
지검장이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말허리를 잘랐다.
<김정환 검사실>.
제길…… 이렇게 되면 안 되는데!
탁, 내 방으로 돌아온 나는 결재서류를 책상 위에 내던지며 거칠게 넥타이를 풀어헤쳤다.
어떻게 해야 한다. 어떡하든 지검장의 마음을 돌려놔야 할 텐데… 휴,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다!
똑똑똑!
“선배님, 안에 계세요?”
그 순간, 장 검이 노크하며 빼꼼히 방문을 열었다. 장 검은 이번 특검 수사에 관한 공을 인정받아 순천지청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인사발령이 확정된 상태였다.
“어, 장 검! 들어와.”
“짜잔!”
장 검이 두툼한 비닐봉지를 들어 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그게, 뭐야?”
“내가,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또 햄버거로 때우려는 거죠? 맨날 인스턴트 음식만 먹으니까 얼굴이 그렇게 누렇게 뜨죠!”
장검이 책상 위에 놓인 먹다 남은 햄버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가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내 얼굴이 그런가?”
“네네. 거울도 안 보세요?”
장검이 가방에서 손거울을 꺼내 비춰주었다.
“도대체, 이래서 재판 때 목소리나 나오시겠어요?”
장 검이 푸짐해 보이는 도시락 케이스를 올려놓았다. XX 초밥, 이 근처에서는 꽤 유명한 음식점, 초밥 세트였다.
“…….”
“좀, 드시고 인상 좀 펴세요. 다리미 갖다 드려요?”
장 검이 입을 삐죽거리며 도시락을 펼쳐 놓았다.
“그래. 알았어.”
잠시 후,
“그나저나, 장 검! 나 어쩌면 이번 재판에서 빠질지도 모르겠는데?”
초밥을 하나 들어 입안에 넣으며 말했다.
“알아요. 이젠 빠져…… 네? 뭐라고요? 뭘 빠져요?”
우물우물, 불룩해진 장검의 입에서 초밥 밥알이 사방팔방 튀어나왔다.
“…….”
그녀가 민망해할까 봐 말없이 옷에 묻은 밥알을 털어냈다.
“죄… 죄송해요. 너무 깜짝 놀라서요.”
장 검이 미안해 어쩔 줄 몰랐다.
“괜찮아. 괜찮아!”
“선배님! 근데, 그건 무슨 어이없는 소리래요? 선배님이 재판에서 왜 빠져요.”
장 검이 벌게진 얼굴로 손수건을 꺼내 내 옷을 닦아주었다.
“음, 지금 지검장님 만나고 왔는데, 이쯤에서 빠지라고 하더군.”
“괜찮아. 괜찮아.”
“정말요? 진짜 괜찮으세요?”
장 검이 미안했는지 손수건을 놓지 않자 내가 그녀의 손수건을 슬쩍 뺏어 들었다.
“어머! 말도 안 돼. 선배님을 재판에서 뺀다는 것은 이 사건 은근슬쩍 덮겠다는 건데. 그건 말도 안 돼요. 정말!”
장검이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지검장님이 선배님한테 그러셨어요? 진짜예요?”
“…….”
“어쩐지, 요즘 지검에 선배님이 재판에 빠진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더니 그게 레알, 뜬소문이 아니었군요.”
장 검이 입술을 잘근거리며 난감해 했다.
“…….”
“그래서,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설마, 순순히 그렇겠다고 하신 건 아니죠.”
장 검이 옷소매를 걷어붙이며 당장이라도 지검장실로 뛰어 들어갈 기세로 나를 다그쳤다.
“흠, 일단, 내 뜻은 분명히 밝히고 나왔는데,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어. 이 일이 그렇게 간단히 처리될 일은 아니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뭐예요? 진짜…….”
흠흠흠, 콜록콜록, 그 순간, 장검이 얼굴이 벌게지도록 마른기침을 하며 괴로워했다.
“장 검, 감기 걸렸어?”
“네네. 콜록콜록, 이놈의 감기 지독하네요. 잘 안 나아요.”
쿨럭쿨럭, 장 검이 목이 찢어질 듯한 기침을 토해냈다.
“병원엔 가본 거야? 좀 심한 거 같은데.”
나는 컵에 물을 따라 그녀에게 건네줬다.
“당연히 병원엔 갔죠. 근데 워낙 독한 감기라서 그런지 잘 안 나아요. 그나저나, 우리 집 식구들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한 게 독감 좀 걸렸다고 나를 슬슬 피하는 거 있죠? 선배님도 몸 관리 잘하세요. 아프니까 다 필요 없더라고요. 자기들 옮을까 봐. 저를 피한다니깐요.”
또르르, 장 검이 볼멘소리하며 물을 마셨다.
감기? 슬슬 피한다? 그렇지, 전염병!!
순간, 머리를 스치며 무언가 떠올랐다.
결국, 성안에 숨어든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적에 대한 공포도 얼마 남지 않은 식량도 아니다! 바로 전염병이야. 그것도 치명적인 전염병! 돌림병에 걸린 사람을 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스스로 내치게 해야 해! 모든 사람이 병에 걸려 죽을 순 없는 것 아닌가?
“바로 그거야!”
“네? 뭔 소리예요? 바로 그거라니?”
장 검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