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101화] 아군이냐? 적군이냐? (1)
“증인은 직업이 무엇인가요?”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정진표에게 물었다. 흥분된 그를 진정시켜야 했다.
“의사입니다.”
“뭐? 저 사람이 의사라고?”
“뭐야. IQ가 78이라면서? 어떻게 의사를 할 수 있지?”
방청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전공은 무엇인가요?”
“해부학과 병리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조금은 진정되는지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군요. 조사를 해보니 정진표 군은 의대 성적도 줄곧 최상위권이었는데 그러면 전망이 밝은 과를 선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필, 수많은 전공과목 중에 해부학을 전공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네. 저…… 는 법의학자가 돼서 국과수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정진표가 말했다.
“그래요. 법의학자가 꿈이셨군요. 언제부터 그런 꿈을 가지게 되셨습니까?”
“아… 네. 저… 저 아저씨 때문에요.”
정진표가 고개를 숙인 채, 박정호를 가리켰다.
“네? 저 사람 때문이라뇨?”
“저… 아저씨는 사람을 아프게 해놓고 그냥 갔어요. 그건 나쁜 행동이에요. 벌을 받아야 하거든요. 그런데 저…… 저 아저씬 지금도 벌을 받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게 할 수 있는 경찰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경찰대학에 떨어져서….”
어눌한 말투였지만 논리는 단순명료했다.
“아! 그래서 법의학자가 되려는 거였군요!”
“네. 맞습니다.”
정진표가 나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렇습니다. 정진표 군은 ‘잘못하면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라는 이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이런 그에게 과연 사회생활 부적격이란 굴레를 씌워야 할까요? 재판장님! 이 자료는 정진표 군이 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하는 동안, 그가 돌봤던 환자들과 동료 그리고 담당 교수의 평가 자료입니다. 확인하여 주십시오!”
나는 버튼을 눌러 PPT 화면을 띄웠다.
정말, 친절한 의사 선생님이셨습니다. 우리 아이가 아파서 잠을 못 이룰 때도 옆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밤을 지새우신 분이에요.
정말 놀라운 능력을 지닌 친구입니다. 성적도 뛰어났지만, 동료들을 항상 웃게 만드는 마성을 가진 친구입니다.
정진표 군은 앞으로 국내 최고의 법의학자가 될 만한 자질을 갖추었습니다. 날카로운 분석력과 명석한 두뇌, 뛰어난 학습능력을 고루 갖춘 인재입니다.
정진표의 동료, 환자, 담당 교수의 멘트가 화면에 나타났다.
“뭐야? 엘리트 중 엘리트잖아?”
“어떻게 저 사람이 정신지체아야!”
방청석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180도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제, 쐐기를 박아주마! 똑똑히 지켜보시오. 장진웅 변호사!
“본 영상은 뇌과학의 권위자이신 조태권 박사님이 보내주신 자료입니다. 박사님은 현재 해외 컨퍼런스에 참여차 미국에 계시기 때문에 그의 증언을 영상으로 대체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지금부터 보시죠.”
“박사님, 정진표 군의 증세에 관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음, 진표 군은 매우 예외적입니다. 일반적으로 자폐 증세를 보이는 사람 중, 대략 1% 내외로 극히 일부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의사소통, 언어, 지능적 측면에서는 일반인과 비교했을 때, 전혀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서는 볼 수 없는 천재성을 동시에 가지기도 하는데 진표 군이 그래요. 거의 모든 것을 사진 찍듯이 기억하고 저장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요.”
“그게 실제로 가능합니까?”
“진표 군은 오른쪽 측두엽이 유난히 발달했는데 이를 통해 진표 군은 놀라운 능력을 지니게 됐어요.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기억하려 하는 것을 단기기억 장소에 저장했다가 그것이 장기기억으로 넘겨 기억하게 되는데 진표 군 같은 경우는 기억들이 필터링 없이 바로 장기기억으로 넘겨 버립니다. 그러니 기억의 왜곡이나 손실이 전혀 없는 거예요. 물론, 반영구적으로 기억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렇군요. 그럼, 컴퓨터에 입력한 정보를 하드디스크에 저장하는 것과 같은 원리군요. 그렇다면, 그 기억의 신뢰도는 어떻게 됩니까?”
“음. 제가 진표 군을 대상으로 많은 실험을 해봤는데 거의 오차율이 제로에 가까웠습니다. 그의 기억력은 말 그대로 슈퍼컴퓨터와도 같습니다.”
“그렇군요. 근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는데, 진표 군의 IQ가 겨우 78이라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놀랍군요. 일반적인 상식 이론 이해가 되지 않아요. 어떻게 IQ가 78인 사람이 그런 완전 기억능력을 가질 수 있죠?”
“음, 혹시 검사님은 영화 레인맨의 실존 모델인 킴 픽을 아십니까?. 그는 선천적으로 좌뇌와 우뇌가 서로 연결되지 못해서 혼자 옷을 입는 것도 힘겨워하고 계단을 스스로 혼자서 올라갈 수 있었던 건 16살 때였다고 하죠? 그의 IQ는 65~75로 지적장애 수준이었는데 그의 지식지수는 얼마였는지 아십니까?”
“아뇨. 잘 모르겠는데요?”
“그의 지식지수는 184였죠. 이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나 이오시프 스탈린보다도 높은 수치입니다. 그런데, 진표 군의 지식지수가 182예요. 이 정도면 진표 군이 어느 정도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감이 오십니까?”
“정말 놀라운 일이군요. 정말 대단합니다.”
“그러니, 진표 군을 IQ가 낮다는 이유로 지적장애이니 뭐니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그는 인간 사진기에 기억 재생 능력은 슈퍼컴퓨터 이상입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고 저장하고 재생하죠.”
“뭐야? 영화에서나 보던 그 천재를 실제로 보다니?”
“이러면, 게임 셋 아냐?”
방청석이 술렁거렸다.
“보시는 바와 같이, 정진표 군은 보통 사람, 아니 그 이상의 능력을 지닌 천재입니다. 또한, 병원에서의 생활을 미루어 볼 때, 사회 적응력 또한 문제가 전혀 없는 청년입니다. 아니, 너무도 훌륭히 사회생활을 잘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정진표 군에게 군은 그리고 경찰은 단체생활 부적격자, 정신지체자란 오명을 씌웠습니다. 과연, 그들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요? 자신들과 조금 다르다고 해서, 자신의 기준에 조금 맞지 않는다고 해서 과연 그들이 정진표 군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걸까요?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 맞는 옷이 있습니다. 덩치가 큰 사람의 옷을 작은 사람이 입는다면 당연히 맞지 않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덩치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은 루저일까요?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방청석을 가득 메운 방청객님, 그리고 기자님! 과연 정진표 군이 피고 측 변호인의 주장대로 정신장애를 가진 사회 부적격자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짝…… 짝짝…… 짝짝짝!
그 순간, 법정은 숙연해졌고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하나둘씩 퍼져 나왔다.
어…… 머니!
맨 앞에 앉아 있던, 어머니의 눈에도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머니, 지켜봐 주세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제가, 모든 것을 다 바꿔 놓을 거예요. 두고 보세요.
이젠, 당신 차례입니다.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일 테니 기대하십시오. 김현석 씨!
휙,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날카롭게 응시했다.
“모두 조용히 해주십시오. 피고 측 변호인! 추가 심문하시겠습니까?”
소란해진 법정을 진정시킨 재판장이 장진웅 변호사에게 물었다.
“아니요. 추가 심문하지 않겠습니다.”
장진웅 변호사가 침통한 표정으로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네. 그럼, 1차 공판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공판은 한 달 후, 이곳에서 다시 속개토록 하겠습니다.”
잠시 후,
“선배님! 마지막 멘트 정말 감동이었어요."
재판장이 공판 종료를 알리자 장검이 달려와 엄지를 내밀며 말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진짜, 선배님은 정체가 뭐예요? 까도 까도 새로운 게 나오니…….”
“내가 그랬나?”
“암튼, 정말, 선배님은 못 말리겠어요. 진짜!”
그녀가 꽃 같은 보조개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 * *
<김정환의 오피스텔>.
그렇게 1차 공판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고 2차 공판을 준비하던 어느 날, 전중호 차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정환아! 나 지금 지검 근처 포장마차에 와 있는데, 나올 수 있겠냐?”
“네? 그럼요.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그래? 역시, 그럴 줄 알았다. 어묵국 식으니깐 빨리 튀어와라!”
“네. 곧 가겠습니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황급히 집을 나섰다.
<서울중앙지검 인근, 선술집>.
“정환아! 나 승진했다.”
쭈욱, 전중호 차장이 소주를 단숨에 털어 넣었다. 벌게진 얼굴이 이미 얼큰하게 취한 듯 보였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목소리 톤을 높였다.
“캬아, 술맛 좋다!”
전중호 차장이 손등으로 입술을 훔쳐냈다.
“정말이세요? 차장님 축하드립니다. 그럼 이제 지검장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하는 겁니까?”
“지검장? 흠, 그렇지! 맞지 지검장, 암, 지검장님이라고 불러야지.”
“음, 그런데 이러게 좋은 날에 차장님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왠지 쓸쓸해 보이는 그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흠, 뭐 하루 정도 먼저 말했다고 문제 될 거야 없겠지. 어차피 내일이면 알게 된 텐데. 난 제주지검으로 발령났다.”
또르르, 전중호 차장이 소주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네? 제주지검이오?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립니까? 차장님이 왜 제주지검을 갑니까? 아직 특검 재판도 끝나지 않았는데?”
“그러니까 가야지!”
“네?”
점점 이해하기 힘든 말만 하는 그가 답답했다.
“흠, 넌 아직 검찰의 생리를 잘 몰라. 이곳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보면 이상한 신념 같은 것이 생기거든?”
전중호 차장이 내 잔에도 소주를 채웠다.
“…….”
꿀꺽, 나 역시, 단숨에 소주잔을 비워버렸다.
“신념이라고요?”
“그래. 신념! 어떤 단어가 있더라…… 음, 그래 의리! 그래, 좋게 말해서 의리라고 해두지.”
“그게 무슨 말입니까?”
“흠, 지금부터 간단한 역사 공부를 해볼까? 너도 알다시피 옛날부터 우리나라는 적의 공격을 수도 없이 받아왔지. 북방 오랑캐에 섬나라 왜구들, 아무튼, 시도 때도 없이 쳐들어 왔잖은가. 그럴 때마다 우리는 전부 성안으로 들어갔어. 왜인지 아나?”
“물론, 방어하기 위해서 들어간 거겠죠.”
“그렇지! 방어, 그것도 그렇지만 버티려고 들어간 거야. 그러니까 마을을 싹 다 불태우고 성안으로 들어가는 거야. 원래, 공성이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거든. 그래서 안에 들어가 겨울이 오기를 기다리는 거지. 전쟁은 결국, 보급 싸움이거든! 군사를 움직이려면 식량이 필요한데 겨울이 오면 조달할 식량이 동이 나는 거지. 그때를 기다리는 거야.”
“…….”
“우리는 겨울이 오면 살 수 있어! 우리는 이곳에서 꿋꿋이 버텨야 해.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신념이 생기는 거야. 확신에 찬, 신념! 그런데, 그중에 어떤 놈 한두 놈이 나서는 거지. 이건 비겁하다! 나가서 싸우자! 우리가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자! 이렇게 말일세. 게다가, 우리 중에 나쁜 놈이 있으니 그놈마저 끌고 나가겠다면 어떻겠냐?”
“심기가 불편해지겠군요.”
“심기가 불편해지는 정도가 아니지, 더 그놈들은 자신들의 편이 아닌 거지. 하지만, 어떻겠나? 그들을 잡아둘 명분이 없는걸? 그럼, 결국 어떻게 해야 하지?”
“음, 모르겠습니다.”
또르르,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나갈 테면 나가라야. 대신, 맨손으로 나가라지. 창도 칼도 우리 거니까 안돼! 그리고 우리는 네가 나가서 싸워 죽든 말든 도와주지도 않을 거야. 그래도 나갈 테면 나가 싸워 죽어라! 하는 거지. 아니면, 가만히 겨울이 오길 기다리든지. 이게, 지금까지 그들이 살아온 방식이고 신념인 거야. 항상 통해 왔거든.”
“흠,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군요. 그래서, 차장님을 제주로 발령 낸 겁니까?”
“뭐. 공기 좋고 바다 구경도 실컷 할 수 있는데 나쁠 거야 있겠는가?”
또르르, 전중호 차장이 씁쓸한 표정으로 잔에 술을 따랐다.
“흠, 결국 이번 재판도 적당한 선에서 끝내자는 뜻인가요?”
“아무리 못난 놈이라도 자기 새끼를 쳐낼 수는 없다는 뜻 아니겠나?”
“아뇨. 전 반드시 쳐낼 겁니다. 한일 물산을 통해 비자금이 김현석 중수부장을 통해 검찰총장으로 흘러 들어간 정황이 명확합니다. 게다가, 이준구 사장 죽음 역시…….”
“알아. 안다고! 그거 모르는 사람 어디 있겠나? 다 아는 거잖아. 근데, 근데 안되는 거야. 절대!”
전중호 차장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뇨. 전 반드시 이 두 사람, 교도소에 집어처넣을 겁니다.”
“흐음…… 정환아! 포기해. 다음 공판부터 한 검사가 자네 대신 공판을 진행할 거야.”
“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흥분하지 말고 앉아. 이미, 모든 게 결정됐어!”
“제가 지검장님을 만나보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고 했잖아? 이미 결정된 거라고!"
"이런, 씨X!"
쨍그랑, 나는 들고 있던 잔을 벽에 던져버렸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