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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100화 (100/170)

# 100

[100화] 심판(審判) (4)

“다음 화면을 보시죠!”

틱, 나는 리모컨 버튼을 눌러 다음 PPT 화면을 열었다.

화면에 나타난 사진은 좀 전에 띄웠던 사진과 같은 속도위반 범칙금 고지서였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운전자의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앞 유리를 뿌옇게 처리한 것을 걷어낸 사진이었다. 모자를 눌러쓴 운전자의 모습이 선명했다.

“뭐… 뭐야? 저걸 어떻게?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지금까지 그토록 당당했던 장진웅 변호사의 얼굴에 핏기가 걷히는 순간이었다.

“음, 대한민국은 역시, 최고의 IT 국가였더군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나라의 IT 기술의 눈부신 성장을 확인할 수 있던 기회였죠. 좀 전에 보셨던 화면에 덧칠해진 뿌연 처리를 국가 포렌식센터에서 말끔하게 제거해주더군요. 게다가 사진의 화질까지 복원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제 눈엔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 피고로 보이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획, 나는 몸을 돌려 방청석을 응시했다.

“음, 거의 비슷하긴 한데, 그래도 모자 때문에 조금 애매해!”

“저자가 박정호가 맞는다면 알리바이는 깨지는 것 아냐?”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는 듯했다.

“난, 난 아니라고, 저 사람이 왜 나야? 난 그 시간에 술을 마시고 있었다고! 그리고 이걸 봐! 그날 나는 문신을 지져서 없애버리고 있었다고 했잖아! 이걸 보라고!”

박정호가 오른팔을 들어 올리며 허둥댔다.

이제 마지막까지 붙어있는 숨통을 끊어주마!

틱, 나는 또 다른 PPT 화면을 띄웠다.

운전대를 잡은 운전자의 오른팔이 클로즈업된 사진! 박정호의 오른팔에 그려진 그림은 100% 선명하진 않지만, 분명히 문신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나타난 날개 달린 전갈 문신! 김진철의 왼팔에 그려진 문신이었다. 두 문신은 정확히 일치했다.

“피고! 제가 보기엔 피고의 절친이었던 김진철 씨의 왼팔에 새겨진 문신과 사진 속의 운전자인 피고의 오른팔에 새겨진 문신이 동일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어디 변명할 수 있다면 해봐! 내가 뭐든 깨부숴 줄 테니까!

나는 경멸의 눈초리로 그를 응시했다.

“그, 그게…… 지금!”

박정호가 고개를 돌려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장진웅 변호사를 쳐다봤다. 비 오듯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재판장님! 잠시 휴정을 요청합니다. 피고의 건강 상태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잠시 응급조치를 취한 후에 재판을 계속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장진웅 변호사가 눈을 꾹꾹 누리며 당황해 했다.

* * *

“박정호 씨, 지금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왜 저에게 말씀을 안 하셨습니까?”

장진웅 변호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글쎄요. 저, 저도 몰랐던 부분이라 저도 지금 당황스럽습니다.”

박정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음, 조금 있으면 검사 측에서 정진표를 증인석에 앉힐 겁니다. 혹시라도 제가 모르는 게 있으면 지금이라도 모두 말씀해주세요. 지금 박정호 씨의 알리바이가 깨진 상황이라 잘못하면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음, 전에 말씀드렸던 것이 전부입니다.”

“알겠습니다. 아무튼, 지금부터는 불필요한 진술은 삼가세요. 그리고 자꾸 흥분하지 마십시오.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할수록 우리가 불리해집니다.”

장진웅 변호사의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우리가 이 재판에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박정호가 침통한 표정으로 물었다.

“글쎄요. 지금으로서는 장담할 수 없겠네요. 아무튼, 우리는 이 재판을 최대한 장기전으로 끌고 가야 합니다. 그러니 제발, 자중하세요. 발끈하지 마시고요.”

“네.”

30분 후,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던 박정호의 응급조치를 마친 후 재판이 속개되었다.

“그럼 다시 재판을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증인 신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검사! 검사 측에서 신청한 증인, 출두했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증인 정진표 씨 증인석으로 나와주십시오!”

“네에.”

재판장의 호명과 함께 정진표가 상기된 표정으로 증인석에 앉았다. 그 순간, 박정호가 그를 죽일 듯이 노려봤고 겁에 질린 정진표가 몸을 살짝 돌려 그의 시선을 피했다.

“정진표 씨 증인선서서 낭독하세요.”

“네에. 재판장님!”

정진표가 잰걸음을 걸으며 증언대로 걸어 나왔다.

“나 정진표는 양…… 심에 따라 숨,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 그대로 말하고 말 거, 거짓말이 있으면 위… 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정진표가 증언대에 서서 어눌한 말투로 더듬더듬 증인선서서를 낭독했다.

“저 사람은 뭐야? 머리가 좀 아픈 거야?”

“그러게, 저런 사람이 무슨 증언을 하겠다는 거야?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

그 순간, 방청석엔 회의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증인, 지금부터 심문을 시작하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나는 그의 눈을 부드럽게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겁에 질린 그를 심적으로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네에. 검사님!”

정진표가 바른 자세를 취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

하하하.

하하하.

“뭐야? 초등학생이냐?”

“어디서 저런 증인을 데리고 온 거야!”

“정숙, 정숙하세요!”

방청석에서 조소가 퍼져 나오자 재판장이 목소리 톤을 높였다.

“검사, 심문 시작하세요.”

“네. 재판장님!”

“증인은 저기 있는 피고가 박윤석 기자를 살해하던 장면을 목격하셨다고 하셨죠?”

“네에.”

정진표가 검지를 마주 대며 박정호의 눈치를 봤다.

괜찮아요. 진표 씨!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진표 씨는 내가 지켜줍니다. 걱정하지 말아요!

나는 정진표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럼, 그 당시, 증인이 본 것을 이 법정에서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네에.”

“좋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시죠.”

“1997년 2월 21일 새벽 1시, 트럭 한 대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와 한 아저씨를 치었어요. 아저씨는 쓰러졌고…….”

비록 어눌한 말투였지만 정진표가 차분하게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사건 정황을 자세하게 설명한 그의 진술은 분명 설득력이 있었다.

“저게 말이 돼? 8살 때 기억이라고? 저렇게 정확히 기억할 수 있나?”

“근데, 모든 진술이 상당히 디테일한데?”

방청객들 역시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증인의 진술과 정황증거를 조합하면 1007년 2월 21일 당시, 피고 박정호는 목동 박윤석 기자의 집 인근 골목에 잠복한 뒤 귀가하던 그를 트럭으로 치었고 차에서 내려 그의 생사를 확인한 뒤, 아직 죽지 않은 박윤석 기자를 목 졸라 잔인하게 살해했습니다. 그런 다음 트럭을 몰고 양화대교를 이용해 과속으로 도주하다 속도제한 카메라에 찍힌 것입니다. 그 시간이 새벽 1시 40분이었습니다. 이상입니다.”

“음, 이 정도면 얼추 반박하기 쉽지 않겠는데? 김정환 검사! 수고했어.”

내가 자리로 돌아오자 동료 검사가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피고 측, 반대 심문하겠습니까?”

“네.”

장진웅 변호사가 천천히 증인석으로 다가갔다.

“증인 성함이 정진표라고 했나요?”

“네. 맞습니다.”

정진표가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힘없이 대답했다.

“실례지만,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네. 23살입니다.”

“그렇군요. 자료를 찾아보니 경찰대학에 지원했던 적이 있더군요. 맞습니까?”

장진웅 변호사가 먹잇감을 노려보듯 정진표를 쏘아봤다.

“네. 그… 그렇습니다.”

정진표가 큰 눈망울을 껌벅이며 말했다.

“결과는 어떻게 됐죠?”

“떠… 떨어졌습니다.”

“불합격한 사유는 무엇입니까?”

“그… 게….”

정진표가 검지를 마주치며 말을 더듬거렸다.

“말씀하시기 곤란하시면 제가…….”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지금 피고 측 변호인은 증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증인! 지금 변호인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변호인! 사적인 질문은 삼가세요.”

“흠, 증인! 증인은 15년 전 기억은 정확히 기억하면서 7년 전 일은 기억을 못 하시는군요! 그렇다면 제가 기억을 찾아드리죠! 이것이 피고가 경찰대학에 떨어진 사유입니다.”

[불합격 사유 : 단체생활 및 의사소통 지체로 인한 수업 불가.]

장진웅 변호사가 재판장의 말을 무시하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방청석 쪽을 향해 확대 복사된 문서를 들어 올렸다.

“재판장님! 지금 변호인의 행위는 엄연히 위법입니다. 증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변호인 당장 그 문서 파기해주세요!”

재판장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네네. 본 변호인도 위법적 요소가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후에 합당한 조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본 사건에 증인이 진술한 증언에 관한 객관적인 신뢰성을 검증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심문을 허락해 주십시오. 재판장님!”

장진웅 변호사가 작정한 듯 어금니를 깨물었다.

“흠, 좋습니다. 계속하시죠.”

재판장이 장진웅 변호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법조계 대부이기도 했지만 일단, 변호인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하니 좀 더 진술을 들어보겠다는 의도였다.

“감사합니다. 재판장님!”

“증인, 묻겠습니다. 증인의 현재 나이가 만 22세인데, 그렇다면 입대 신체검사는 받으셨겠군요?”

“네… 에….”

정진표가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군요. 대한민국의 남자로서 건강한 신체와 건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반드시 군대에 가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 맞죠?”

“네… 에. 맞습니다.”

당황한 정진표가 새빨개진 얼굴을 숙인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렇다면, 증인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셨습니까?”

“아니요.”

“왜죠? 겉으로 보기엔 신체 건장한 청년이신 증인인데 무슨 사유로 군대에 가지 않으신 겁니까?”

야비한 인간!

“재판장님! 지금 변호인은…….”

“검사! 그 부분에 관해선 제가 책임을 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장진웅 변호사가 날카로운 시선을 네게 흩뿌렸다.

“검사! 흥분하지 마시고 앉으세요. 변호인, 계속하세요. 다만, 지금 증인에 대한 심문이 본 사건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고 판단될 때는 그에 대한 책임은 지셔야 합니다. 그래도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

재판장이 손을 들어 올려 나를 만류했다.

“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궁지에 몰린 그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좋습니다. 계속하세요.”

재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재판장님! 감사합니다. 그러면 제가 증인이 군대에 입대하지 못한 이유를 말씀드리죠.”

[단체생활 부적격 및 지적 미성숙으로 인한 의사소통 불가.]

장진웅 변호사가 또 다른 문서를 들어 올렸다.

더러운 인간!

정진표의 약점을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물고 늘어지고 있다!

나는 그의 비열함에 치가 떨렸다.

“보시는 바와 같이, 증인은 일반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정신지체자입니다. 또한, IQ 역시 78로 6~7세 수준이고요. 이런 사람의 증언을 우리가 신뢰할 수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그 또래의 아이들은 실제와 자신의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지금 증인은 자신이 상상한 것들을 법정에서 나열하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본 변호인은 증인 정진표의 모든 진술은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여기서 본 변호인은 또 한 번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특검은 본 사건을 조작해 정신병 환자인 증인을 꼬드겨 증인석에 앉혔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시종일관 궤변을 늘어놓던 장진웅 변호사가 씩씩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불쌍한 인간!

기껏 준비했다는 것이 겨우 인신공격인 건가? 국내 최고 변호사의 위엄이란 것이 이런 거야? 그렇다면, 이게 당신의 최선이라면 지금부터 내가 당신의 논리를 하나하나 깨부숴 주지!

“검사! 추가 심문하시겠습니까?”

“네. 재판장님!”

나는 천천히 증인석 쪽으로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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