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
[96화] 독전(毒銭) (2)
다음 날.
띠리리링.
아침부터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전화 벨, 김삼수의 전화였다.
“검사님, 아무래도 박정호가 미끼를 문 것 같습니다. 검찰 쪽에서 비자금의 출처에 대해 냄새를 맡은 것 같다고 했더니 바로 반응이 오더군요.”
“그래요? 그거 다행이군요.”
“말씀하신 데로 아직 검찰이 아직 조상진의 정체는 파악하지 못했으니 빨리 조치하시는 것이 좋겠다고 했더니 조직을 움직일 듯 보입니다. 검사님도 좀 서두르셔야겠어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아마도 오늘 밤, 애들이 오늘 움직일 듯싶습니다.”
“흠,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도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겠군요. 수고하셨습니다.”
“그나저나,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조상진이 마늘밭에 돈을 숨겨 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글쎄요. 마늘밭에서 지독한 구린내가 올라와 퇴비인 줄 알았는데, 그게 박정호가 숨겨둔 독전이었더군요.”
“네? 그게 무슨 소리신지?”
“농담입니다. 그냥 우연찮게 알게 됐습니다. 그건 그렇고 놈들이 이곳에 내려오는 시간을 정확히 좀 알 수 있을까요?”
“아마도, 오늘 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자금을 수거하러 갈 듯싶습니다. 작지 않은 규모일 테니 검사님도 각별하게 주의하시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참!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김삼수 씨의 정체도 드러나게 될 테니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제가 조치를 해두긴 하겠지만 각별하게 주의하셔야 할 겁니다.”
“네. 감사님!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몸은 제가 알아서 챙기겠습니다. 아무튼,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검사님! 예전부터 드리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요.”
“네? 그게 무슨 소린지?”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김정환 검사님! 이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아…… 네에. 감사합니다. 어, 죄송한데 지금 전화를 끊어야겠습니다!”
“네. 그럼 수고하십시오. 몸조심하시고요.”
“네.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선배님, 벌써 일어나셨어요? 아직은 아침엔 좀 춥네요.”
그 순간, 장 검이 칫솔을 입에 문 채, 민박 마당으로 나왔다.
“어? 그러게. 아직 쌀쌀하긴 하네. 그나저나 좀 더 자두지 왜 벌써 일어났어?”
전화를 끊으며 말했다.
“그냥. 뭐. 저도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서요. 통 깊게 잠을 못 자겠더라고요.”
장 검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흠, 그렇군. 장 검! 아무래도 오늘 밤에 놈들이 제 발로 지옥문을 열고 들어올 듯싶어.”
“네? 확실한가요? 박정호가 미끼를 문건 가요?”
“…….”
나는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우리도 준비해야겠네요.”
“그래야겠지? 내가 특검에 조치는 취해 둘 테니까 장 검은 의성 경찰서에 가서 병력을 좀 확보해줘.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가능하면 무장할 수 있도록 좀 해주고. 내가 연락을 할 테니 대기하고 있다가 이쪽으로 출동하면 돼. 차질 없이 한 방에 가자고!”
“오케이!”
장 검이 검지와 엄지를 붙여 원을 만들며 환하게 웃었다.
* * *
<조상진의 자택>.
박정호의 부하들이 의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조상진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나는 그를 설득하기 위해 서둘러 그의 집을 찾았다.
“안에 계십니까?”
“…….”
“아무도 안 계십니까?”
조금 더 목소리 톤을 높였다.
“누… 구슈?"
드르륵, 그때야 한 남자가 방문을 열었다. 밤새 도박을 했는지 벌겋게 충혈된 눈이 틀림없이 조상진이었다.
“네. 서울중앙지검의 김정환 검사입니다.”
나는 그에게 신분증을 내밀었다.
“네? 거… 검사님이요?”
신분증을 확인하던 그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좀,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에.”
그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검사님, 저… 정말, 놈들한테 당한 겁니다. 어디서 타짜를 데리고 와서….”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했던가? 조상진이 반찬을 집어 먹은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했다. 불법 도박 때문에 내가 이곳에 온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조상진 씨! 그런 것 아니니 일단 앉으시죠.”
“네? 그… 그럼?”
나는 조상진을 진정시킨 후, 나와 장 검이 이곳에 내려온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저… 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입니다. 무슨 마늘밭에 돈이 있다는 겁니까? 어떤 미친놈이 그런 데다 돈을 숨겨둡니까? 그런 거 없습니다.”
벌컥벌컥, 긴장했는지 조상진이 냉수를 들이켰다.
“그럼, 어디서 돈이 생겨 그렇게 흥청망청 도박하고 다니셨던 겁니까?”
“그… 거야. 뭐… 제가 좀 모아둔 돈이 있었습니다. 아! 맞다. 곗돈 그… 걸 타서 그… 걸로 재미 삼아 했습니다.”
재미 삼아? 재미 삼아 수억 원을 날린단 말인가?
그가 벌게진 얼굴로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럼, 뒷마당에 있는 굴착기의 용도는 뭐죠?”
“그거야. 밭에 기름기가 떨어질 때마다 한 번씩 뒤집어 줘야 하는데, 그… 그러려고 구입한 겁니다.”
“아뇨. 보통은 그럴 경우, 굴착기 기사를 불러다 하지 않습니까?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렇던데요?”
“그… 게. 아무튼,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조상진이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가요? 할 수 없군요. 그럼, 직접 저 마늘밭을 파보면 답이 나오겠네요. 같이 가시죠! 그 안에 돈이 자라는지 마늘이 자라는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상진을 날카롭게 응시했다.
“아… 안 되는데, 그… 게….”
조상진이 연신 손톱을 깨물며 당황했다.
“조상진 씨! 잘 선택해야 할 겁니다. 오늘 박정호가 그의 수하들을 이쪽으로 보낼 겁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드러날 텐데 그때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 게 흐음….”
그가 말을 더듬으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심적 동요가 심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그가 연신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침을 삼켜 넘겼다.
“어차피, 조상진 씨가 비자금에 손을 댄 것을 알게 된다면 당신은 절대로 무사할 수 없을 겁니다. 박정호가 얼마나 잔인한 인간인지는 조상진 씨가 더 자세히 알 것 아닙니까? 그가 누나도 죽고 없는 상황에서 조상진 씨를 매형이라고 가만둘 것 같습니까?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그건, 당신이 더 잘 알잖아요!”
나는 그의 공포심을 휘저어 더욱더 큰 파문이 일게 했다.
“검사님!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세요. 그냥, 어쩌다 야바위꾼들의 꾐에 빠져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습니다. 제가, 열… 심히 일해 채워 넣겠습니다. 제발, 저 좀 살려주십시오.”
조상진이 더는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방바닥에 바짝 엎드려 읍소하기 시작했다.
“조상진 씨,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해주신다면 저희가 조상진 씨를 안전하게 보호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법적 처벌은 어쩔 수 없으나 최대한 정상참작이 가능하도록 제가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저희를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쥐도 도망갈 길은 열어주고 쫓으라고 했다! 나는 그의 숨통을 틔워줘야 했다.
“저… 정말입니까?”
“네. 약속드리죠. 제가 반드시 지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네. 그럼, 저는 그럼 검사님만 믿겠습니다.”
그가 반복해 고개를 숙여 애원했다. 자신의 목숨이 달려 있는 상황!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조상진 씨가 특별히 할 건 없습니다. 박정호의 부하들이 찾아오면 아무 일 없듯이 돈이 숨겨진 곳을 안내해주시면 됩니다. 그게 다예요. 노파심에 당부드리지만, 저를 만났다는 말씀은 하면 절대 안 됩니다.”
나는 그에게 단단히 주의를 시켰다.
“네네. 제가 아무리 땅이나 파먹고 사는 무식한 놈이지만 그 정도 사리 분별은 하는 놈입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그가 손바닥을 내보이며 나지막이 말했다.
“네. 그럼, 그렇게 알고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검사님!”
조상진이 집을 나서려는 나를 불러 세웠다.
“네?”
“제… 진짜 저를 보호해 주시는 겁니까?”
떨리는 눈동자가 적잖이 불안한 모양이었다.
“물론입니다. 저는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지 않아요. 반드시, 조상진 씨를 지켜드리죠.”
“아… 알겠습니다.”
* * *
그날 자정.
예상대로 어둠을 틈타 박정호의 부하들을 태운 봉고차 서너 대가 마늘밭 주변에 정차했고 곧이어 눈에 띄지 않도록 검은 옷을 입은 비곗덩어리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여기가 확실합니까?”
조직원 중간 보스, 장산이 조상진을 집어삼킬 듯이 노려봤다.
“네네. 맞습니다. 맞고 말고요. 제가 비닐로 싸서 이곳에 잘 모셔뒀습니다.”
“혹시, 여기에 돈이 있다는 말을 다른 사람한테 한 건 아니죠?”
“그럼요. 당연하죠. 제가 언감생심, 목숨이 두 개가 아닌 이상 그런 말을 누구한테 합니까? 제가 쥐도 새도 모르게 숨겨놓고 관리했으니 아무도 모를 겁니다. 암요!”
조상진이 연신 손을 흔들며 고개를 흔들었다.
“흠, 얘들아! 빨리빨리 작업해야 한다. 다들 서둘러!”
장산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네. 형님!”
“네.”
일부는 봉고차에서 연장을 꺼내 들어 나왔고, 한 놈은 굴착기를 운전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30분 남짓!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고 드디어 하얀 김장 비닐에 싸인 현금 꾸러미가 마늘 딸려 올라오듯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여기 있습니다. 형님!”
“여기도요!”
마늘밭 사방팔방에서 돈 꾸러미가 딸려 올라왔다.
“서둘러!”
“네!”
“야! 넌 뭐 해! 빨리 차에 실어야 할 것 아냐?”
부하들을 지휘하던 장산이 눈썹을 치켜뜨며 독려했다.
팟! 파팟! 파파팟!
그 순간, 어둠을 뚫고 사방에서 헤드라이트 켜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 뭐야? 어떤 새끼가 지금 헤드라이트를 켜는 거야? 미친 거 아냐? 당장 안 꺼!”
장산이 팔로 눈을 가리며 소리쳤다.
“음… 어떤 쥐새끼 같은 놈들이 야음을 틈타 마늘 도둑질을 하나 했더니 이건, 뭐 돈다발을 캐고 있었군!”
“뭐, 뭐야?”
장산의 눈빛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 아! 경찰입니다. 다들 힘들게 연장들 들고 서 있지 말고, 그 자리에 무릎 꿇고 앉아 머리 위에 손들 올려주십시오!”
경찰이 확성기에 입을 대고 말했다.
“뭐… 뭐야! 시X! 야, 다들 연장 챙겨! 이 돈은 무슨 수를 쓰든 사수해야 한다. 정신 바짝들 차려!”
“네… 근데, 형님, 저… 길 보시죠! 아무래도 뭔… 가 잘못된 듯합니다.”
지금까지 정신없이 삽질하던 한 놈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주변을 가리켰다. 수십 명이 넘는 경찰과 백여 명의 전경들이 그들을 에워싸며 총을 겨누고 있었다. 더 이상의 저항은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무기 내려놓고 투항하라! 경고한다! 반항하면 발포할 수 있다!”
“이런 씨X”
더는 반항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는지 장산이 품에서 꺼낸 사시미 칼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모든 것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이거 엄청나구먼!"
“와. 파도, 파도 나오네.”
이후, 전경들을 동원해 마늘밭을 파냈고 그곳에서 엄청난 규모의 돈다발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 모든 비자금을 수거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선배님!”
그때. 경찰차에 타고 있던 장 검이 내려 내게로 달려왔다.
“장 검, 수고했어!”
“저야 뭐. 선배님이 지시 내린 데로 했을 뿐인데요. 뭐! 그나저나 비자금도 백일하에 드러났는데 대충 마무리된 건가요?”
“아니!”
“아니라뇨?”
“흠… 바짝 긴장해야 해. 이제부터 시작이야. 이 돈이 어디로 흘러 들어가 어떻게 쓰인 건지 낱낱이 밝혀야 해. 그리고 이번 사건과 연관된 모든 인간! 법정에 세워 정의가 살이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야지! 절대로 몸통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꼬리만 자르는 특검은 되지 않게 할 거야.”
“…….”
“내가 있는 한, 절대로,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해! 그 대상자가 누구더라도!”
나는 양 주먹에 힘을 주었다.
“네! 선배님 말이 맞아요! 이번 재판이야말로 법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줄 때예요. 저도 이번 재판 너무 기대되네요.”
장 검 역시, 입술을 다물며 굳은 의지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