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93화 (93/170)

# 93

[93화] 응징(膺懲) (1)

<한일 물산, 대표이사실>.

한일 물산에 압수수색 영장과 박정호의 체포영장이 발부됨에 따라 특검 요원들과 경찰들이 한일 물산에 들이닥쳤다. 갑작스러운 결정이었기에 박정호도 미처 대처를 못 한 모양이었다.

“지…… 금 뭐 하는 겁니까? 무슨 일로 이러시는 거예요?”

박정호가 입을 벌리며 당황해 했다. 적잖이 놀란 모습이었다.

“박정호 씨, 당신을 15년 전 한민족일보 박윤석 기자 살해 혐의 및 정우랜드 이준구 사장의 살인교사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당신들 미쳤어? 뭐? 누구? 내가 누굴 죽여? 생판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들 이름을 왜 들먹여? 선량한 기업인을 이렇게 대해도 되는 거야? 너희들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박정호가 한 형사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가 흰자위를 희번덕거리며 악다구니를 부렸다.

“흠, 그건 난, 잘 모르겠고 소란 피우지 말고 일단 갑시다! 영장 보여드릴까?”

한 형사가 둘둘 말린 영장을 펼쳐 들었다.

“야! 김 비서! 대검, 중수부에 전화 넣어봐!”

“예예, 사장님!”

김 비서가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아아! 얼어 죽을 중수부장은 왜 찾아요? 굳이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그분 지금 전화 안 될 거예요!”

박 형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야 이 새꺄! 뭘, 그렇게 꾸물거리고 지랄이야? 당장 형님한테 전화 안 넣어? 내 말이 말 같지 않냐?”

김 비서가 우물쭈물하자 박정호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네에….”

김 비서가 한 형사와 박정호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쩔 줄 몰랐다.

“아니, 아니, 이 분, 진짜 말귀를 못 알아먹네. 지금 구치소에 있는 양반한테 무슨 전화를 걸어? 이 답답한 양반아!”

한 형사가 한심하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뭐? 그… 게, 뭔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누가 구치소에 있어? 너덜 미친 거 아냐?”

“햐, 진짜 말귀 못 알아먹네. 김현석 씨! 지금 구치소에 있으니까 곧 만나게 된다고 이 양반아! 박 형사, 연행해!”

“뭐…… 뭐야? 그럴 리가 없는데, 아냐! 이건 뭐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됐어!”

박정호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당황했다.

* * *

<특검 취조실>.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하루 전, 극적으로 박정호는 구속 및 기소되었다.

아버지의 원수!

나는 드디어 박정호와 마주하게 되었다. 취조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불안했는지 그가 연신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양쪽 위로 찢어진 눈에 얇디얇은 입술이 간교한 인상이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뚝배기를 박살 내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후, 침착하자!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심호흡하며 꾹꾹 눌러 담았다.

“성함을 말씀해주시죠!”

“박정호이올시다.”

“주소는요?”

“서울시 성동구 옥수동…….”

간단한 인정 신문과 함께 본격적인 심문이 시작되었다.

흠, 죽여 버릴 테다!

나는 이를 악다물었다.

“박정호 씨, 당신이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알고 있습니까?”

“아뇨? 모르겠수다.”

박정호가 몸을 틀어 앉았다. 그의 시선은 천장으로 향했다.

“그럼, 제가 다시 한번 설명해드리지요. 박정호 씨, 당신은 1997년 2월…….”

“거참! 검사님, 전 그 사람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올시다. 저 같은 사람이 정치부 기자를 어떻게 알아요? 저는 모르는 사람이라고요. 왜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이곳에 데리고 온 겁니까?”

당황하고 있는구나! 박정호!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말허리를 잘랐다. 분명,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박정호 씨! 당신은 1997년 2월 목동 인근에서 귀가하던 박윤석 씨를 트럭으로 치어 사망케 한 혐의와 최근 정우랜드 이준구 사장의 살인교사 혐의를 받고 있음을 공지합니다.”

나는 그의 행동을 무시한 채, 또박또박 말을 꾹꾹 눌러 공소사실을 통보했다. 이것이 그를 향한 마지막 나의 배려 아닌 배려였다.

“어휴, 진짜, 미치겠네!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고요! 내가 그 사람을 왜 죽입니까? 내가 주먹 생활을 수십 년 동안 해왔지만, 기자를 죽일 만큼 그렇게 멍청하진 않다고요! 그리고, 무슨 살인교사입니까? 이준구 사장, 그 사람과 저는 형제지간이나 다름없어요! 내가 왜 그 사람을 죽이라고 합니까? 이건, 전부 우리를 죽이려는 모함입니다!”

우리? 지금 우리라고 했나?

“지금 우리라고 했습니까? 우리라면 박정호 씨 혼자가 아니라는 말로 들리는데, 박정호 씨 외에 누구를 지칭하는 말일까요?”

“그거야 뭐, 우리 한일 물산의 식구가 300명이 넘습니다. 그 가족까지 합하면 천 명이 넘는 식구라고요! 그 식구들이 지금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는데, 그래서 우리! 우리라고 한 거죠!”

그가 벌게진 얼굴로 얼버무렸다.

“아, 그러셨군요. 직원들을 가족들같이 생각하시나 봅니다. 대단하시군요. 난, 또, 박정호 씨와 범행을 모의한 공동정범이 있나 싶어서 여쭤본 겁니다.”

“네? 뭐라고요?”

그가 눈썹을 추켜세웠다.

“아아, 아니면 된 거지 뭘 그렇게 발끈하십니까? 그나저나, 얼마 전, 한민족신문에서 다룬 기사를 보셨습니까? 워낙 파장이 컸던 기사라 못 보셨을 리는 없을 텐데 말입니다.”

“네? 무슨 기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가 모르는 체, 시치미를 뗐다.

간교한 인간!

박정호가 기사를 못 봤을 리가 없었다. 나는 박철훈 기자와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네? 그럼, 목격자가 있었단 말입니까?”

“네. 당시에 8살짜리 아이가 살해 현장을 목격했어요.”

“확실합니까? 그런데 왜 당시에 범인을 잡지 못했던 겁니까?”

“아이가 자폐증을 앓고 있기도 했고 그쪽에서 미리 손을 써둔 모양입니다.”

“흠, 그런 일이 있었군요.”

박철훈 기자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 아이는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네. 착실한 청년으로 성장해 의대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최근에 찾게 돼서 그 친구가 증언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그거 잘 됐군요!”

그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기자님! 그래서 말입니다. 제가 기자님께 부탁을 하나 하려고요. 이번 기사 말미에 이렇게 좀 써주시기 바랍니다.”

[사건 당시, 목격자인 8세 남자아이와 그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증거를 절실히 기다립니다. 시민들의 제보를 기다리겠습니다.]

내가 박철훈 기자에게 부탁한 기사 내용이었다.

기사를 읽은 박정호는 정진표를 찾으려고 혈안이 됐고 결국, 정진표의 집과 학교를 찾아가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당연히 나는 정진표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을 시켜두었기에 그들의 노력은 헛수고일 뿐이었다. 또한, 사전에 그들의 이동 경로를 파악한 우리 수사팀은 정진표의 집과 사무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두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은 영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한 셈이었다.

“음, 그러시군요. 그럼, 혹시 김정동, 최장수란 사람을 아십니까?”

나는 그에게 사진 두 장을 내밀었다. 그들은 박정호의 심복이었다.

“흠, 네. 우리 회사에 다니고 있는 직원들입니다.”

그가 사진을 힐끗 보더니 무심히 말했다.

“직원이 확실한가요?”

“네네! 우리 직원들이 맞습니다. 몇 번을 더 말해야 합니까?”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요…… 그럼, 이 동영상을 좀 보시죠.”

틱, 나는 노트북에 USB를 꽂고 동영상을 재생했다.

“야! 샅샅이 뒤져! 뭐든 찾아내야 한다.”

김정동이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형님, 아무것도 없는데요?”

“그럴 리가 없어. 뭐가 나와도 나올 테니까 더 뒤져봐!”

“네. 형님!”

“그나저나, 형님, 이 쥐새끼 같은 놈을 일찌감치 봐버렸어야 했는데, 우리가 너무 방심했어요! 이 미친놈이 화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최장수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하루빨리 찾아야 해. 검찰 쪽에서 먼저 손에 넘어가면 우린 다 죽는다. 반드시 찾아야 해!”

김정동이 입술을 잘근거렸다.

틱, 나는 pause 버튼을 클릭했다. 내가 그에게 보여준 동영상은 여기까지였다.

“흠, 아무리 봐도 동영상 속에 등장하는 이 두 사람은 박정호 씨가 말씀하신 데로 한일 물산의 직원이 맞는 것 같은데. 어떤가요?”

나는 사진을 살펴보며 그를 응시했다.

“이게, 뭐…… 뭡니까?”

당황한 그가 허리를 곧추세웠다.

“근데 저 사람들은 왜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해 저러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저 사람이 말한 쥐새끼 같은 놈은 누굴 지칭하는 말인가요?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 애타게 누굴 찾는 건지 너무 궁금하군요.”

“네? 그…… 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이걸 왜 저에게 보여주는 겁니까?”

박정호가 고개를 내저으며 부인했다.

“저 사람들을 진짜로 모르십니까? 직원이라면서요.”

“네. 저희 직원은 맞습니다만, 왜 저기서 저러고 있는지는 모… 르겠습니다. 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어느새, 번들거리는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있었다.

“아, 그렇습니까? 그나저나, 무슨 땀을 그렇게 흘리세요? 이 안이 더운가요? 아직은 날씨가 쌀쌀한데 말입니다. 뭐, 선풍기라도 가져다드릴까요?”

“아… 아닙니다.”

꿀꺽, 그가 마른침을 삼켜 넘기며 손을 내저었다.

“흠, 그래요? 괜찮으시다면, 보시던 동영상 마저 감상하시죠!”

“사장님, 아무래도 이 쥐새끼 같은 놈이 냄새를 맡고 튄 것 같습니다.”

김정동이 휴대전화를 꺼내 박정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야? 아무튼, 시간이 없다. 서울 바닥을 쥐잡듯 뒤져서라도 잡아 와. 안 그러면 너희들 다 죽는 줄 알아! 반드시 잡아서 내 앞으로 데리고 와라.”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중수부장한테 연락해서 도움을 좀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시끄러!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당장, 그놈이나 잡아 와! 음, 내가 경솔했어!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었어야 했는데…….”

“네. 사장님!”

틱, 나는 마우스를 움직여 정지 버튼을 클릭했다.

“저기 저 사람이 언급한 사장님은 박정호 씨를 뜻하는 것 아닙니까?”

“이… 게, 어… 떻게?”

그 순간, 박정호의 얼굴은 잿빛으로 바뀌었고 그의 눈동자는 마구 진동하기 시작했다.

“박정호 씨, 저 사람들은 대체. 누굴 찾으려는 걸까요?”

나는 그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 게, 그… 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의 온몸에서 비지땀이 흘러내렸다.

“제가 가르쳐 드릴까요?”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뭘 가르쳐 준다는 거예요? 난,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그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뭐,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확인 차원에서 제가 알려드리죠. 박정호 씨의 부하들이 무단 침입해 난동을 부린 저 집의 주인은 정진표 군의 집입니다. 정진표 군, 잘 아시죠?”

“뭐… 야, 뭐야!”

“왜요? 너무 당황스럽습니까? 하긴, 진표 군이 사라져서 당황스럽긴 하셨겠군요. 그런데 어떡하죠? 우리가 이렇게 안전하게 데리고 있는데?”

드르륵,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쪽으로 다가가 블라인드를 올렸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박정호가 유리창 밖에 서 있는 사람을 보자 몸을 마구 떨었다. 그가 수갑을 찬 양손을 올려 마른 얼굴을 문질렀다. 유리창 밖에 서 있는 사람은 바로 정진표였다.

“당신 부하들은 왜, 저 친구를 찾기 위해 난동을 피운 건가요?”

나는 손가락으로 정진표를 가리켰다.

“뭐… 뭐야? 저 정신병 걸린 새끼가 뭘 안다고? 당신들 저 새끼 잡아다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저 자폐증에 걸린 미친 새끼, 말을 믿는 거야? 그게 말이 돼?”

박정호가 연신 입술을 침을 묻히며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후, 이러면 좀 곤란해지는데, 박정호 씨! 아무것도 모른다면서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정진표 씨가 자폐증을 앓고 있다는 것은 또, 어떻게 안 겁니까?”

나는 그를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

“그… 건, 아무튼, 난 몰라! 아무것도 모른다고? 변호사! 변호사 연락해. 이제부터 나는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안 한다고!”

박정호는 패닉에 빠진 듯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 절대 못 빠져나가. 내가 반드시 집어 쳐넣을 거야. 그럴 리야 없겠지만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 해도 내가 널 반드시 죽여버릴 거야.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봐! 네가 동원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라고! 솔직히, 난 네가 법망을 피해 빠져나갔으면 좋겠어! 그래야 내가 널 찢어 죽일 수 있으니 말이야!”

저벅저벅,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가 옷깃을 움켜쥐며 귀에 대고 경고했다.

“어… 이, 이 눈빛… 당신….”

박정호가 힐끗 나를 쳐다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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