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90화 (90/170)

# 90

[90화] 폭로(暴露) (1)

사물 힌트권?

한 장의 카드가 강렬한 골드빛을 띤 채 반짝거렸다.

툭, 홀로그램 상태창을 클릭하자 기계음과 함께 동영상이 재생되었다.

저…… 저건?

충격적이게도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던 사건일의 동영상이었다. 지난번에 킹 메이킹 시스템이 내게 보여주었던 동영상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 하나!

이번에 킹 메이킹시스템이 재생한 동영상은 사건 발생 후, 2시간이 지난 시점의 영상이었다.

화면 속에 표시된 시간은 새벽 3시!

아버지의 생사를 확인한 범인이 트럭을 몰고 어둠 속으로 유유히 사라진 후였다.

저벅저벅!

한 남자가 아버지가 쓰러진 사고 현장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몸을 좌우로 흔들며 걷는 걸음걸이가 어색해 보였다. 화면이 어두워 형체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드디어, 어둠을 뚫고 다가오는 남자!

화면이 밝아지며 드디어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 이?

충격적이게도 그 남자는 대략 7~8세 정도 돼 보이는 어린아이였다.

혹… 시? 저 아이가?

‘네. 있었죠. 그 목격자는 꼬마 남자 아이였습니다. 이미 15년 전에 일이니까 이젠 청년이 되었겠군요.’

그 순간, 조금 전에 김진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한 후, 더욱더 화면에 집중했다.

저 아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지… 금, 설마, 생사 여부를 확인하는 거야?

어리숙해 보이는 아이가 총총걸음으로 사건 현장으로 다가와 쓰러져 있던 아버지에게로 나가갔다. 그러더니 아이는 아버지의 심장에 귀를 대어보기도 하고 코밑에 손가락을 대보기도 했다.

뭘, 하려는 거지?

그 후, 아이는 불안한 듯 양손 검지 끝을 서로 마주 대보기도 하고 고개를 약간 기울인 채 흔들어보기도 했다. 그러더니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 지?

그 순간, 아이가 갑자기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 장소는 놈의 차가 멈춰 섰던 위치였다. 그곳에 우두커니 서서 무언가를 찾던 아이가 바닥에서 하얀 종이 같은 것을 주워들었다. 그는 한참을 들여다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고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무언가를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진표야! 진표야!”

그때, 멀리서 아이의 엄마인 듯 보이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고 아이는 황급히 주머니에 그 종이를 집어넣었다.

킹 메이킹 시스템이 재생한 화면은 여기까지였다.

진표? 정진표? 설마, 저 아이가 서번트 증후군에 걸렸다던 목격자란 건가…….

그 아이는 김진철이 말한 목격자가 틀림없었다. 그 순간, 전율이 온몸을 휘감아 돌았다.

“킹 메이킹 시스템! 영상을 좀 더 자세히 클로즈업해 줘!”

다급한 마음에 나는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가능하지 않은 명령입니다. 힌트권에 의해 제공되는 화면은 여기까지입니다.]

“뭐… 야? 제길…….”

나는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흐트려버렸다.

잠시 후, 흥분을 가라앉힌 나는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저 아이가 주워든 것이 무엇일까? 뭔가를 읽던 것 같았는데…….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아이가 무언가를 읽은 것으로 볼 때, 글자가 적혀 있던 것은 틀림없었다.

정진표! 당시 8살, 지금은 23살의 청년으로 성장했을 아이!

이 아이는 유일한 목격자이자 결정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만약에 이 아이가 사건 현장에서 일어난 일을 증언해 줄 수만 있다면 놈을 잡아넣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15년이 지난 현재, 당시 8살이던 아이가 정확한 증언을 해줄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반드시, 이 아이를 찾아야 한다. 반드시…….

나는 양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음 날, 전중호 팀장실>.

나는 지금까지 파악한 자료를 정리해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아버지 죽음의 비밀, 박정호와 중수부장 김현석과의 관계, 한일 물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자금 세탁 정황, 그리고 이준구의 죽음에 김현석과 박정호가 연루될 가능성까지 모든 것을 그에게 낱낱이 브리핑했다.

“흠, 그러니까 자네 말 대로라면 15년 전, 고 박윤석 기자의 죽음이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는 건데……게다가 그 사건이 15년이 지난 지금, 이준구의 죽음과도 궤를 같이 한다! 음, 지금 내가 이해한 것이 맞나?”

전중호 팀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술을 모아 앞으로 내밀었다.

“네. 맞습니다!”

“흠…… 박 기자님은 나도 익히 알고 있던 분이야. 정치부 기자셨고 굉장히 의롭고 청렴한 분이셨던 거로 기억하네.”

맞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유일한 사람! 아버지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

“암튼, 당시에 그분이 우리쪽 비리를 집요하게 파헤치셔서 윗선에서도 상당히 눈엣가시였을 거야. 내가 알기론 회유도 하고 협박도 했었던 것 같은데 소용이 없었어.”

전중호 팀장이 마른 입술에 침을 둘렀다.

“…….”

“음…… 그러고 보니, 맞아! 당시 인천지검에서 검사로 있었던 김현석 중수부장도 박 기자님한테 곤욕을 겪었지 아마?”

“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래. 잘은 기억이 안 나는데, 룸살롱에서 향응을 접대 받다 박기자님한테 걸려 된통 당한 적이 있었어!”

김현석! 당신은 더 이상, 공직자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내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해드리겠습니다. 기대해도 좋습니다!

“그래서, 사후처리는 어떻게 됐습니까?”

“음… 감찰부쪽에서 조사가 나오긴 했는데, 유야무야됐어. 김현석 그 사람, 보통 인맥이 아니었거든. 흠…… 하긴 당시, 박 기자님한테 안 걸린 검찰 수뇌부가 어디 있었겠나? 아무튼 집요한 취재로 유명하셨지! 당시 박 기자님 빈소에서 조문을 마친 검찰 수뇌부들이 돌아가던 길에 모 룸살롱에 들러 밤새도록 질펀하게 술을 퍼마셨다는 소문이 자자했어. 사실, 난 그게 소문이 아니라고 확신하지만 말일세.”

전중호 팀장이 씁쓸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언론계의 별이 떨어졌습니다. 정말 애석하고 황망하군요. 이렇게 허무하게 가시다뇨!’

아버지 장례식 날 당시 중수부장, 지금의 검찰총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반드시, 반드시 너희들이 저지른 죗값을 치르게 해주겠다!

그 순간, 온몸에서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지금 인천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김진철도 증언을 약속했고 유일한 목격자인 진표 군을 찾아 진술을 확보하면 박정호 바로 구속하겠습니다. 박정호는 박 기자님을 살해 용의자일 뿐만 아니라, 이번 정우그룹 비자금 사건에 깊숙이 관여된 인물입니다. 따라서, 이준구 사망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을 겁니다. 반드시 구속하여 수사해야 합니다.”

“음…… 좋아! 일단 정진표라는 그 사람을 만나서 반드시 진술 받아 와. 구속시키는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전중호 팀장이 콧바람을 내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참, 그나저나 자네, 박 기자님하곤 어떤 관계인가? 좀처럼 흥분하지 않던 자네가 이렇게 발끈하는 걸 보면 보통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음, 한때, 큰 신세를 졌던 분이십니다.”

“흠…… 그랬군. 뭐,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는 싶지만, 자네 성격에 말할 리는 없고, 알았네. 그럼 나가봐!”

전중호 팀장이 미련이 남는 듯 나를 힐끗거렸다.

“네. 죄송합니다. 팀장님!”

* * *

<특검 사무실 로비>.

정진표! 이 사람을 반드시 만나야 한다.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 우두커니 서서 상념에 빠져있었다.

“선배님! 뭐 해요!”

나의 상념을 깨운 건, 장 검의 싱그러운 목소리였다. 장 검이 뒤에서 내 어깨를 건드렸다.

“장 검!”

“안 타요?”

“어어, 타야지!”

“4층 가는 거죠?”

툭, 장 검이 버튼을 누르며 환하게 웃었다.

“어. 그래.”

“사람이 왤캐 넋을 놓고 다녀요? 혹시, 저 몰래, 데이트라도 하세요? 요새, 외근도 잦던데….”

장 검이 입을 삐죽거렸다.

“아냐, 아냐. 데이트는 무슨? 좀 알아볼 것이 있어서 그래.”

“흠…… 그래요? 그래도 너무 수상한데….”

장 검이 매의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그런 거 아니래두!”

나는 양손을 들어 손바닥을 내보였다.

“음. 알았어요. 알았어! 아니면 된 거지 뭘 그렇게 발끈해요? 더 수상하게?”

띵, 그 사이 엘리베이터는 4층에 도착해 있었다.

“진짜, 아니야. 정말 아니라고!”

“흠… 알겠어요. 그 거짓말 믿어주죠! 그나저나 요즘 특검 분위기 너무 쎄하네요. 보수단체들은 연일 태극기를 흔들어 대지. 그리고 한민당 사람들은 왜 그런대요? 진짜…… 이 사람들은 수사를 하라는 건지 말란 건지. 그 속을 알 수가 없어요!”

장 검이 팔짱을 낀 채, 미간을 좁혔다.

이준구가 죽은 이후로 보수 단체와 여당은 기다렸다는 듯 총공세를 펼쳤다. 보수 단체 회원들은 연일 대규모 집회를 열었고 보수 언론들 역시, 특검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그 대열에 동참했다. 또한, 여당 일부 의원들은 국회 앞에서 단식 투쟁을 벌이며 부화뇌동하고 나선 상황이었다.

“흠… 그러게 말이야. 기간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 큰일이야.”

“수사기간 연장도 힘들겠죠?”

“당연히 그렇다고 보는 게 맞을 거야.”

“음, 그건 그렇고, 점심 사준다면서 언제 사줄 거예요?”

장 검이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가리켰다.

“아! 맞다! 점심! 음… 어차피 점심시간도 다 돼가는데 지금 먹을까?”

나는 시계를 쳐다보며 말했다.

“진짜?”

“그럼, 진짜지. 나 사무실에 가서 뭐 하나만 처리하고 나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네.”

장 검이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좋아했다.

띠리리링.

그 순간, 이 수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직감적으로 내가 애타게 기다리던 소식을 담고 있는 전화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장 검, 잠깐만!”

“네에….”

나는 자리를 피해 장소를 옮겼다.

“여보세요. 김정환입니다.”

“네. 부장님! 드디어 찾았습니다. 정진표!”

“그래요? 확실합니까?”

“네. 맞습니다. 부장님이 찾으시는 사람!”

“지… 금 그 사람 어디 있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제가 지금 특검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5분 후에 도착할 것 같으니까 특검 건너편 편의점 앞으로 나오시죠. 제가 픽업 하겠습니다. 자세한 건 가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알았습니다. 그럼, 바로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사관님! 장 검, 미안한데, 나 지금 나가봐야 할 것 같아! 점… 심 어쩌지?”

나는 장 검이 있는 쪽으로 돌아와 머리를 긁적거렸다.

“흐음, 진짜, 여자가 생겼나 보네. 아무래도 너무 수상해!”

장 검이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렸다.

“아… 진짜, 그건 아니래두! 정말 아니야. 아무튼, 나중에, 나중에 진짜 맛있는 거 사줄게. 한 번만 봐줘!”

나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읍소했다.

“뭐, 그렇다면 할 수 없죠. 다녀오세요. 나 좋다는… 이 검사님이랑 먹어야겠다!”

“아… 진짜!”

“농담이에요. 농담! 선배님 같은 워커홀릭이 무슨 시간이 나서 데이트를 하겠어요. 중요한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얼른 가보세요.”

“미안해! 담에 꼭 근사한 데서 밥 살게!”

“알았대두요! 얼른 가보세요.”

장 검이 내 등을 떠밀었다.

<사무실 건너편>.

빵빵빵!

“부장님, 얼른 타시죠.”

길을 건너자마자 이 수사관이 경적을 울리며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수사관님!”

나는 황급히 그에게 달려갔다.

“벨트 하시죠!”

“정진표 씨를 찾았다고요!"

마음이 급했다. 나는 안전벨트를 매는 둥 마는 둥, 그에게 물었다.

“네. 드디어, 찾았습니다.”

“그 사람,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흠… 학교에 있습니다.”

“그렇군요. 학생인가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이 수사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정확히 말하면 XX의대, 연구소에 있습니다.”

“연구소요? 왜, 그 사람이 거기에?”

“흠, 놀랍더군요. 어린 나이에 벌써 해부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더라고요.”

“네? 해부학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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