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89화 (89/170)

# 89

[89화] 음모(陰謀) (2)

“지… 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기… 자라고 하셨습니까?”

나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더 이상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음… 이거 아무래도 뭔가 심오한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군. 자세히 말씀드릴 테니 일단 진정하시고 앉으시죠!”

김진철이 양손을 들어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검사님과 제가 같은 놈을 타깃으로 하고 있는 것 같군요. 어쩌면, 우리가 한 편을 먹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김진철이 좀 전과는 다르게 자세를 바르게 하고 앉았다. 그가 입술을 굳게 다물며 미간을 좁혔다.

“같은 사람을 타깃으로 한다고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세히 설명해보세요.”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기분이었다.

“검사님!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은 무덤까지 가져가 주신다고 약속하실 수 있습니까?”

김진철의 표정이 순식간에 진지해졌다.

분명히 이 자는 그날,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유를 알고 있다!

“말씀하시죠. 약속하겠습니다.”

“흠, 하긴 약속을 못 지킨다고 하셔도 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검사님의 그 눈빛이 맘에 드는군요.”

김진철이 짧게 자른 머리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전, 내 입으로 뱉은 말을 주워 담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흠, 좋습니다. 한번 믿어보죠.”

김진철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눈을 깜빡거렸다.

“시작하시죠.”

“사실, 제가 검사님을 뵙자고 한 이유는 말입니다. 제가 무식해서 유식한 말은 모르지만 깨복장구시절 우정을 깨뜨린 대가는 치러줘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

“정호와 저는 어릴 적부터 둘도 없는 친구였죠. 우린 둘 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외톨박이라 서로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김진철이 침통한 표정으로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김진철과 박정호는 고아원 동기 출신으로 의형제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둘은 상경해 영등포에서 조폭 생활을 시작했던 모양이었다. 그 시절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변함없는 우정을 간직하기 위해 박정호는 오른팔에 김진철은 왼팔에 전갈 모양의 문신을 새겼넣었다. 이 후, 김 검사라는 자가 그의 하수인을 물색했고 처음엔 김진철에게 접근했으나 그가 외면하자 박정호를 선택한 것이었다.

깊은 회한이 묻어있는 그의 눈빛으로 볼 때, 허튼소리는 아닌 듯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조심스럽게 15년 전을 회상했다.

“진철아! 우리도 언제까지 이렇게 개망나니, 똘마니 생활만 할 수는 없잖아! 한 번만 작업하자! 그러면 우리도 확실한 스폰 하나 잡을 수 있어!”

어느 날, 정호가 불쑥 자취방을 찾아왔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작업은 뭐고 스폰은 뭐야?”

“음… 기자 하나만 담그면 돼! 그러면 끝이라고! 그러면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다.”

“뭐? 그… 게 무슨 소리야? 기… 자를 담그다니! 너 미쳤어?”

“박 기자라고 한민족일보 정치부 기잔데, 요즘 좀 설치고 다닌다고 하더라. 높은 사람들 눈엣가신가봐! 김 검사가 그 사람만 하나 손봐버리면 우리가 이 영등포를 접수할 수 있도록 뒤를 봐준다고 했어!”

“뭐? 정치부 기자? 너 미쳤어? 기자를 건드렸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그래? 그리고, 그 김 검사란 인간 믿을 사람이 못돼! 대갈빡에 먹물 박인 인간들 난 절대 안 믿는다.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조까, 새끼야! 하늘이 우리에게 주신 기회야. 난 이 줄을 반드시 잡을 거야!”

정호는 눈이 반쯤은 돌아간 채,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어요.

“야 이 새꺄! 정신차려. 그러다 나중에 헌신짝처럼 버려지면 어쩌려고 그래? 그리고 난 그런 더러운 짓은 못 한다! 아니 안 해!”

물론, 정확히 말씀드린다면 전, 기자를 건드린다는 것이 영 께름칙했습니다.

“야! 너 진짜 이… 럴 거야?”

“정호야. 제발 좀, 정신 차려! 이건 너무 위험한 짓이라고!”

“까라 새꺄! 지금 우리가 돼지비계에 개 사료를 처먹는 이유가 뭐야? 칼침에 맞아도 죽지 않으려고 바둥거리는 것 아냐? 그건 안 위험해? 우린 언제 죽을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라고. 네가 아무리 반대해도 난 한다. 이 지긋지긋한 똘마니 생활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지옥 불구덩이라도 들어갈 거야!”

“정호야! 안 돼, 하지 마!”

나는 그의 팔을 붙잡았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녀석의 눈은 이미 탐욕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놔… 나약한 새끼! 하나 경고한다!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은 절대 입 밖에 내지 마라. 괜한 입 놀렸다가는 너 역시 무사하지 못할 거야. 김 검사, 그 사람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무서운 사람이야. 친구로서 마지막 충고야!”

쾅, 정호가 내 팔을 뿌리치고 뛰쳐나갔습니다.

“그 이후로 우린 더는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피땀 흘려 세운 조직은 박정호에 의해 무너졌죠. 물론, 그 뒤에는 김 검사가 있었습니다. 김 검사의 말을 듣지 않는 대가로 저는 지금 이 신세가 된 거죠. 이쯤 되면 제가 검사님을 만나려고 했던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

“정호의 스폰이었던 검사가 바로 검사님이 수사 중이신 중수부장, 김현석입니다.”

바… 박정호란 자가 아버지를 죽인 범인! 그리고 그 뒤를 봐준 사람이 김현석 중수부장!

주… 죽여버릴거야. 반드시, 둘 다, 갈기갈기 찢어 죽일거야!

그 순간,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결국, 아버지와 이준구의 죽음의 공통분모는 중수부장 김현석! 그렇다면 그의 하수인인 박정호가 이 두 사건에 연루가 돼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결론이다. 결국, 박정호! 이 놈을 잡아야 한다.

나는 양 주먹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은 최대 일주일! 그 안에 박정호를 꼭 검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자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좋습니다. 김진철 씨의 말대로 우리는 같은 배를 탈 수도 있겠군요.”

“음…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제가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지금까지 이렇게 거지처럼 버티고 있던 것도 그놈을 향한 원수을 갚기 위해서입니다. 정호에 관해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토해내겠습니다. 다만, 검사님도 약속 하나만 해주셔야겠어요. 그러실 수 있습니까?”

김진철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말씀을 해보십시오!”

“먼저 약속해 주십시오. 제가 가방끈 긴 사람들은 웬만하면 믿지 않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검사님은 제 부탁을 들어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좋습니다. 약속하죠! 말씀해보십시오!”

“전, 마누라 저세상으로 보내고 아끼던 부하들 뿔뿔이 흩어져버린 반거챙이라 목숨에 대한 미련은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다만, 제게 중학교에 다니는 딸내미가 있습니다. 애미 없이 할머니 손에 자란 제 유일한 핏줄이죠. 그 녀석의 안전을 책임져 주십시오! 그것만 약속해 주신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검사님이 목숨을 내놓으라고 한다 해도 들어 드리겠습니다.”

진심 어린 눈빛, 흔들리는 동공! 김진철은 지금 절실하다!

그 순간, 김진철이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와 그 옆에서 그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귀여운 아이군요!”

“그나마 지 애미를 닮아 다행이죠!”

사진을 쳐다보며 그가 해맑게 웃었다. 그 순간만큼은 여느 아빠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흠… 약속하겠습니다. 제가 반드시 따님을 지켜드리죠!”

“흠…… 좋습니다. 검사님만 믿겠습니다. 이제, 제가 놈을 잡을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검사님!”

잠시 후, 김진철은 박정호와 중수부장 김현석에 관한 모든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박정호는 아버지를 살해한 후 승승장구했고 이후, 김현석의 권력을 등에 업고 김진철뿐만 아니라 다른 정적들도 전부 제거하는 데 성공해 현재는 ‘한일 물산’이라는 겉보기에는 건실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업가로 둔갑해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한일 물산은 중수부장, 검찰총장과 정우그룹의 검은 커넥션의 연결책이자 자금 세탁처였고 박정호 역시, 평소에도 그 일로 죽은 이준구와 자주 만남을 가졌다. 이준구의 죽음 또한, 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두 사건 모두 중요했지만, 나는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아버지 사건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했다.

“사건이 너무 오래되기도 했고 당시 수사가 너무 부실했기 때문에 증거도 증인도 현재로선 전무한 상황입니다. 지금으로썬 속수무책인 상황이에요.”

“아뇨! 검사님이 잘못 알고 계시는 것이 하나 있는 것 같은데요?”

“네? 그게 무슨 소리죠?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있다는 겁니까?”

심장이 점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당시에 사건 현장을 목격한 한 사람이 있었죠!”

김진철이 양 볼을 부풀렸다.

“네? 목격자가 있었다고요?”

다리가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네. 있었죠. 그 목격자는 꼬마 남자 아이였습니다. 이미 15년 전에 일이니까 이젠 청년이 되었겠군요.”

김진철이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어린 아이가 살해 현장을 목격했단 말인가요?”

“네. 맞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음, 그 아이가 당시 8살이었는데, 거 있잖습니까? 뭐더라? 맞다. 영화, ‘레인맨’ 보면 말도 잘 못하고 어리바리한 인간인데 뭐,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그런 병 같은 거 말입니다.”

김진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번트 증후군을 말씀하신 겁니까?”

“네. 맞아요. 맞습니다. 그 아이가 그 병에 걸린 아인데, 그날 정호가 그 기자를 손봐버리는 장면을 목격했다더군요. 근데, 그 녀석이 묘사한 장면이 소름 끼치도록 정확했던 모양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정호도 식겁했죠!”

“그…… 그래서 그 아이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 새끼가 가만뒀겠어요?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리려고 했는데 어느 날 보니 마음을 바꿨더라고요. 나중에 알아보니 그냥 돈 몇 푼 줘서 입막음했답디다. 그 이후에, 경찰에서도 그 꼬마가 아직 미성년자고 서번트 증후군인가 자폐증인가를 앓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 아이의 진술은 유야무야가 돼버렸어요.”

흠, 김현석의 조언을 받은 것이 틀림없어! 섣불리 그 아이를 건드렸다가는 사건이 커질 수 있으니 조심했겠지!

“지금, 그 친구는 어디에 있습니까?”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벌써 15년이나 지난 일인데, 아무튼, 이름은 뭐더라. 진표! 맞아요. 정진표라고 했던 것 같네요.”

정진표!

반드시, 이 사람을 찾아아야 한다. 반드시!

“흠, 김진철 씨! 지금까지 제가 했던 진술을 법정에서도 증언해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이죠. 검사님이 약속만 지켜 주신다면 제가 뭘 못 하겠습니까? 이젠, 아무 미련도 없습니다.”

그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따님은 지켜들겠습니다.”

“네. 그렇다면 저도 검사님을 돕겠습니다!”

“흠,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시 연락드리죠!”

“네. 참! 이놈한테 연락을 한번 해보십시오. 제 부하였던 놈인데, 제가 보냈다고 하면 검사님을 도와줄 겁니다.”

김삼수?

슥슥슥, 김진철이 종이에 적어준 이름이었다.

“알겠습니다.”

나는 김진철이 적어준 메모를 들어 주머니 속에 넣었다.

“검사님! 조심하십시오. 정호 그놈, 결코 만만한 놈 아닙니다.”

김진철이 일어서려는 내 팔을 잡았다.

“…….”

나는 말 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 * *

<인천 교도소 밖>.

띠리리링.

나는 급히 휴대전화를 꺼내 이 수사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사관님! 1997년 당시 8살, 이름은 정진표라는 사람을 좀 수배해 주십시오. 정확한 주소는 모르겠지만 박 기자님이 당하신 사고 현장에서 가까운 아파트에 살았고, 당시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고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박정호라고 한일 물산 대표이사에 관해서도 좀 알아봐 주십시오. 상세하면 상세할수록 좋습니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시간이 별로 없어요!”

“넵! 최대한 빨리 자료 취합해서 올리겠습니다.”

“킹 메이킹시스템 가동!”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킹 메이킹 시스템을 호출했다.

[킹 메이킹시스템을 가동합니다!]

역시나, 장중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힌트권 사용!”

촤르르르,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눈앞에 수많은 카드가 펼쳐졌다.

[카드를 선택하십시오.]

[사물 힌트권]

카드 중, 하나를 선택하자 나타난 문구였다.

[사물 힌트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N]

“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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