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
[88화] 음모(陰謀) (1)
<대치동, 특검 사무실 로비>.
“부장님, 저 이 수사관입니다!”
약간 흥분한 이 수사관의 목소리였다.
“네. 수사관님! 무슨 일이십니까?”
“부장님, 드디어 실마리가 풀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 특검 사무실로 가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빨리 오시죠!”
그날 저녁, 이 수사관이 나를 찾아 특검 사무실을 방문했다.
“부장님, 드디어 김진철이 입을 열 것 같습니다. 부장님을 뵙고 싶다고 하는데요?”
“그래요?”
“네. 제가 운을 떼 놨더니 드디어 뭔가 터뜨릴 분위기입니다. 아무래도 그 자가 뭔가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합니다.”
이 수사관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내 옆으로 다가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속삭였다.
“음, 그렇군요.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꿀꺽, 나도 모르게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내일 인천 교도소로 가시면 김진철을 만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준비는 다 해뒀습니다. 부장님은 가시기만 하면 될 것 같아요.”
김진철이 입을 연다? 드디어….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 수사관님!”
음, 아직 공소시효가 일주일 남아있다. 아버지! 제가 반드시 그놈을 잡겠습니다!
이튿날, 나는 김진철을 만나기 위해 인천 교도소로 향했다.
<인천 교도소 접견실>.
“검사님, 오셨습니까?”
접견실에 들어가자마자 주임 교도관이 나를 알아보고는 인사했다. 이 수사관이 미리 조치를 해뒀던 모양이었다.
“네. 수고하십니다. 김진철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후, 나는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네. 이 수사관님이 집안 형님이시라 이미 알고 있습니다. 형님이 특별히 부탁을 하더라구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교도관이 데리고 올 겁니다. 한 10분 정도만 앉아서 기다리시죠.”
그가 내게 자리를 안내했다.
“네. 감사합니다.”
잠시 후, 그의 말대로 또 다른 교도관이 김진철을 데리고 접견실로 들어왔다.
날카로운 눈매, 뚜렷한 입술 윤곽, 목 주변까지 올라온 문신, 여전히 살아있는 눈매가 분명 시정잡배의 그것은 아니었다. 그가 수갑을 찬 채, 접견실로 들어왔다.
뚜벅뚜벅.
묵직한 발걸음! 역시, 예사롭지는 않았다.
“3245! 서울중앙지검 김정환 검사님이시다. 인사해!”
“…….”
교도관의 말에 김진철이 시선을 내게 고정한 채, 고개만 까딱거렸다. 검사라는 타이틀에 전혀 위축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안녕하십니까? 김정환입니다.”
내가 먼저 그에게 인사했다.
“흠, 김진철이올시다.”
그가 비스듬한 자세로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내가 먼저 인사하자 마지못해 그도 입을 열었다.
“교도관님! 죄송하지만, 잠시만 자리 좀 비워주시겠습니까?”
나는 접견실을 지키던 주임 교도관에게 부탁했다. 김진철과 단둘이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었다.
“그건 좀…….”
주임 교도관이 난색을 표하며 머뭇거렸다.
“음… 걱정 마십시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1시간 정도만 자리를 비워주십시오.”
“흐음, 넵! 좋습니다. 3245! 절대 사고 치지 마라. 만약에 이번에 사고 치면 오늘이 네 제삿날이 되는 줄 알아!”
주임 교도관이 눈을 부릅뜨며 김진철에게 경고했다.
“이왕이면… 이것도 좀….”
그 순간, 김진철이 수갑에 묶인 양손을 들어 올리며 비릿한 미소를 띠었다.
“뭐야? 이… 게 미쳤나? 지금 네가 여기 소풍 나온 줄 알아? 어디서 수작이야!”
김진철을 데리고 왔던 교도관이 버럭거렸다.
“…….”
그 순간, 김진철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려 삐딱하게 교도관을 응시했다. 여전히 펄떡거리는 살기가 예사 눈빛은 아니었다.
“뭐…… 뭐야? 누… 눈 안 깔아…… 요.”
흠흠, 교도관이 뻘쭘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으며 움찔거렸다.
“교도관님, 김진철 씨 수갑 좀 풀어주시죠. 제가 책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검사님, 그래도…….”
“괜찮습니다. 풀어주세요!”
“이 교도관, 풀어줘!”
주임 교도관이 이 교도관을 향해 턱짓을 했다.
“네…… 에. 알겠습니다.”
“3245! 너… 지, 진짜 사고 치지 마라. 너도 알지? 이분이 누구신지?”
딸각, 교도관이 김진철의 수갑을 풀어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뭔 걱정이 그렇게 많으슈? 내가 뭐, 이 양반 잡아먹기라도 한답디까?”
“뭐야? 너 말조심 안 해?”
데스크에 앉아 있던 주임 교도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괜찮습니다.”
주임 교도관이 달려와 곤봉을 들어올리려 하자 내가 손을 들어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하아, 이제야 좀 살 것 같구먼!”
우두둑, 교도관이 수갑을 풀어주자 김진철이 손으로 팔목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돌려 소리를 냈다.
* * *
“짭새들 사라지니 조용해졌군. 검사님, 강생이 하나 태워도 되겠습니까?”
잠시 후, 교도관들이 나가자 김진철이 주머니에서 휴지에 말린 담배 하나를 꺼내 들었다. 당당한 모습이 검사 앞에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는 모습이었다.
“흐음,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검사님도 한 대 피우시겠습니까?”
김진철이 담배를 꺼내 권했다.
“아뇨. 전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아아! 그렇습니까? 역시, 대갈빡에 먹물 박힌 분들은 이 좋은 것도 안 하시고 무슨 재미로 사시나 몰라? 그럼, 실례를 무릅쓰고 한 대 빨겠습니다.”
“…….”
“그나저나, 공사가 다망하신 검사님께서 무슨 일로 저 같은 놈을 보자고 아셨습니까?”
후우, 김진철이 양 볼이 홀쭉해질 정도로 한번 빨고, 한숨을 뱉어내듯 담배연기를 흩뿌렸다.
“흠,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습니다.”
“질문이라…… 그놈의 질문은 하도 받아서 신물이 난다만, 유명한 검사님이시니 뭐 일단 들어나 봅시다. 내가 뭔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혹시, 이 문양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나는 최대한 기억을 떠올려 그렸던 전갈 문양을 그에게 내보였다.
“어디 보자… 이건 뭐야? 무슨 전갈에 날개가 달렸어! 에이 이런 엉터리 그림이 어딨습니까 검사님!”
푸하하하, 김진철이 그림을 보더니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웃지 마시고 잘 한번 살펴보시죠.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나는 눈에 힘을 줘 그를 응시했다.
“그게 말입니다…….”
그가 턱을 문지르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뭐야? 이 수사관님 말로는 뭔가를 털어놓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자의 반응이 이럴 리가 없는데….
“웃지 마시고 잘 한번 살펴보시죠.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흠흠흠, 죄송합니다. 아무튼… 검사님 초등학교 때, 그림 공부 열심히 하셨나 보네요?”
내가 날카롭게 그를 응시하자 김진철이 움찔거렸다.
“저, 지금 농담하고 있는 것 아닙니다. 본 적 있습니까? 없습니까?”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음, 웬만큼 비스름하게 잘도 그리셔서…… 그나저나, 그렇게 야시를 주시면 무섭습니다. 살 떨려 농담도 못하겠군요. 알겠습니다. 보여드리죠. 그 문신!"
스윽, 김진철이 천천히 왼소매를 걷어 올렸다.
헉, 전갈 모양의 문신!
얼마 전, 킹 메이킹 시스템이 재생한 화면 속에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했던 그 문신과 똑같은 문신이었다.
꼬리를 치켜세운 모습에 양쪽에 날개가 달린 것까지 일치했다.
툭 튀어나온 김진철의 핏줄을 따라 전갈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단 하나 다른 점은 문신의 위치였다. 아버지를 죽인 범인은 오른팔에 문신을 하고 있는 반면, 김진철은 왼팔에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적어도 이 자는 아버지를 죽인 범인은 결코 아니었다. 아무튼, 동일한 문신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범인에 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 문신은?”
김진철의 문신을 가리키는 내 손가락이 허공에서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 이 문신을 찾으셨던 거구나? 진작에 말씀을 하시지. 왜요? 어디서 이걸 보기라도 했답디까?”
“그 문신을 한 사람이 김진철 씨 말고 또 있습니까?”
목소리 역시 끝부분이 미세하게 갈라져 나왔다.
“이거 보기 힘든 건데, 검사님이 어디서 봤을까나?”
김진철이 옷소매를 내리며 딴청을 피웠다.
“다시 묻겠습니다. 그 문신을 한 사람이 김진철 씨 말고 또 있습니까?”
“글쎄요. 아마도 지금은 대한민국에 저 말고는 하고 다니는 사람이 없을걸요?”
김진철이 자신의 코를 잡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없다고? 그럴 리가 없잖은가? 내가 분명히 봤다고!
“없다고요? 확실히 없습니까?”
“후, 우리 검사님이 의심이 너무 많으시네. 제가 구라를 친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알기로는 그 문신을 했던 누군가가 또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대로 말씀해주십시오!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부탁합니다. 김진철 씨!”
“제가 지금은 없다고 그랬지 예전에도 없다고는 안 했을텐데요?”
김진철이 코끝을 찡그렸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15년 전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죠. 그때까지만 해도 그 새끼랑 내가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는데 말입니다. 이것도 영원한 우정을 상징하기 위해 같이 판 문신인데, 그 새끼가 그 이후에 문신을 지웠더라고요. 의리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나쁜 새끼!”
후, 김진철이 휴지에 말려 있던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15년 전? 그때면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신 시기와 일치한다! 이자는 분명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알고 있어!
“친… 구요? 지금 친구라고 하셨습니까? 그 사람, 지금 어디 있습니까?”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허, 우리 검사님이 유난히 성격이 급하시네. 이 수사관인가 뭔가 하는 양반이 찾아왔을 때도 궁금했긴했는데, 이 문신을 한 사람을 찾는 이유가 뭔지를 먼저 설명해 주셔야 하는 것이 순서 아닙니까?”
“…….”
“그래야 저도 검사님한테 입을 열지 말지를 결정할 것이 아닙니까? 제가 검사님을 뭘 믿고 이빨을 털겠습니까?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랬다고 검사님이 제가 믿음을 주셔야 저도 검사님을 믿지 않겠습니까?”
“음… 그 문양을 한 사람이 15년 전에 무고한 사람을 죽였습니다. 저는 그 범인을 쫓고 있는 중이고요. 그 사람을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도와주십시오. 김진철 씨!”
나는 너무도 간절했다.
“우리 같은 건달이 사람을 한두 명 젖혔답디까…… 게다가 15년 전이면 공소시효도 다 끝난 일을 뭐 하러…… 가만! 가만 있자. 지금 15년 전이라고 했소?”
치지지직, 김진철이 피던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는 발로 비벼 껐다.
“아뇨! 아직 공소시효는 일주일이 남아있습니다. 15년 전, 1997년 2월 20일 새벽 1시, 한 남자가 그 문신을 한 사람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했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무고한 사람이 그로 인해 운명을 달리하셨습니다!”
“15년 전이라, 15년 전, 호…… 혹시, 그, 그 사람이 기…… 자? 기자 맞소?”
김진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지…… 금 기자라고 했습니까?”
그 순간,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