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86화] 변수(變數) (1)
“이 수사관님, 뭘 찾았다는 겁니까?”
내가 부탁해둔 것이 있기에 가슴이 철렁했다.
“네! 그게, 사실 아무리 뒤져봐도 부장님이 말씀하신 사람은 찾을 수가 없었는데 어쩌면 그 자를 알 수 있는 사람은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래요? 그게 누굽니까?”
점점 심장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지금, 교소도에 수감된 김진철이라고 예전에 이름 꽤 날리던 조폭입니다. 한때 영등포 쪽에선 세력이 상당했던 도끼파 보스였어요. 물론, 지금은 완전히 수술 당해 김진철은 수감되고 부하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말입니다.”
김진철? 조폭? 그래 맞아! 조폭이라면 대충 퍼즐이 맞혀질 것도 같아!
“그래요? 음… 제가 특검 일로 지금 당장은 힘드니 이 수사관님이 그 자에 관해서 상세히 좀 알아봐 주십시오. 부탁합니다!”
“네. 그렇지 않아도 수일 내로 인천 교도소에 찾아가 보려고 했습니다. 가능한 자료는 죄다 뽑아서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이민 갔다던 담당 형사도 좀 알아봐 주십시오! 이민이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고, 그렇게 빨리 나갔다면 분명히 뒤에서 누군가 힘을 쓴 것이 틀림없을 겁니다. 뒤져보면 뭐가 나와도 나올 거예요!”
“네. 부장님!”
“그리고, 제가 정 검사에게 부탁을 해뒀으니 필요하면 정 검사 도움을 받으면 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부장님.”
<김정환의 오피스텔>.
아버지! 제가 반드시 놈의 정체를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드르륵, 서랍에서 아버지 유품인 만년필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쏴아아아.
샤워를 마친 나는 그간의 피로가 누적됐는지 침대에 눕자마자 어느새, 깊은 잠에 빠졌다.
띠리리링!
빠바바밤!
새벽 4시를 알리던 알람시계 소리와 전화벨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장 검의 전화였다.
장 검이 이 새벽에 무슨 일이지?
“장 검? 이 새벽에 무슨 일이야?”
“선배님! 어이없는 사건이 터졌어요. 빨리, 특검으로 나오셔야 할 것 같아요. 최대한 빨리요!”
장 검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무슨 일인데 목소리가 그래? 무슨 사건인데?”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휴대전화를 오른손으로 바꿔 들었다.
“그게, 정우랜드 대표이사, 이준구가 죽었어요!”
“뭐라고? 죽어? 혹…… 시 타살이야?”
나는 화들짝 놀라 정신 없이 셔츠를 챙겨 입었다.
“아냐, 아뇨. 타살은 아닌 것 같고 자신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져 투신자살을 한 것 같아요! 아무튼, 지금 비상 걸렸으니까 빨리 특검으로 나오세요!”
“알았어. 지금 바로 나갈게.”
뭐야? 특검 조사를 받자마자 투신자살? 이거 골치 아프게 됐군!
나는 대충 차려입고 황급히 현관문을 나섰다.
<전중호 수사팀장실>.
“뭐야? 이준구가 자살했다는데?”
“후우, 이거 진짜 골치 아프게 됐네!”
대치동 특검 사무실, 로비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팀장님, 저 왔습니다.”
이미, 한상도 검사와 장 검은 출근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착잡한 분위기는 마찬가지였다.
“김 부장, 왔나?”
“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일단, 앉지!”
팀원들이 전중호 팀장을 중심으로 원탁에 둘러앉았다.
“흠, 이미 알고 있겠지만, 오늘 새벽에 이준구 사장이 투신자살을 했어. 공교롭게도 우리 쪽 조사를 받자마자 벌어진 일이야.”
전중호 팀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자살이 확실한 겁니까?”
“일단, 국과수 부검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자필 유서도 발견됐고 타살의 흔적은 없는 것 같아. 물론, 타살로 볼 수 있는 증거도 없고 말이야.”
한상도 부장이 마른 입술을 매만졌다.
“지금, 특검님과 대책 회의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당분간 자중하면서 사태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 같아!”
“돌아가신 고인에겐 죄송한 말이긴 한데, 아무래도 여론이 급속히 나빠질 듯한데요? 게다가 밤샘 조사를 받고 돌아가자마자 벌어진 일이라 우리 쪽 부담이 너무 클 것 같습니다. 어휴, 왜 이런 일이…….”
장 검이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띠었다.
“아무튼, 다들 너무 신경 쓰지는 말고 사태 추이를 지켜보면서 하던 일은 그대로 진행하자고!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잖아!”
“네.”
“네.”
“음…… 이준구, 이 사람, 이렇게 쉽게 자살할만큼 나약해 보이진 않았는데 말이야! 자살이 웬 말이야!”
전중호 팀장이 거칠게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 * *
<광화문 광장>.
“폭압적 수사 자행한 특검은 물러가라.”
“살인 특검, 자폭하라!”
“사람 잡는 이병호 특검 사퇴하라!”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보수단체 회원들이 앞다퉈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병호 특검의 강압적 수사는 즉시 중단되어야 합니다.”
“아무런 증거 없이 폭력적인 수단으로 자백을 강요한 특검을 더 좌시할 수 없습니다!”
한민당 역시, 연이어 자극적인 성명을 내놓았다. 일련의 모든 것들이 마치 사전에 써놓은 시나리오처럼 맞아 들어갔다.
<전중호 수사팀장실>.
“김정환 부장, 내 방으로 잠시 와!”
전중호 팀장이 인터폰을 했다.
“네. 팀장님!”
“김 부장! 아무래도 여론이 심상치가 않아. 일단, 검찰총장 자택 수색 영장은 좀 미뤄야 할 것 같아.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아!”
전중호 팀장이 양볼을 부풀리며 미간을 좁혔다.
“흠, 그건 절대 미룰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증거인멸할 시간만 벌어주게 됩니다. 지금은 시간 싸움입니다. 일분일초가 급하다고요. 수색영장 발부하고 하루라도 빨리 소환 조사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걸 누가 모르나? 근데, 지금 상황을 보게. 지금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설 상황이 못 돼! 어제도 특검님이 퇴근길에 자택에서 달걀 세례를 받으셨어. 솔직히 망자에겐 미안하지만, 이준구가 자살하고 난 후부터 상황이 완전히 꼬여버렸어. 보수쪽 사람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이곳저곳에서 들고일어나니 말이야. 우리도 지금은 한 템포 죽이고 숨을 좀 고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아.”
전중호 팀장이 지긋이 눈을 감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팀장님, 만약 이준구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면 얘기는 달라지는 것 아닙니까?”
나는 그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 그래, 자살이 아니라면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자살이 아니라니….”
전중호 팀장이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지금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 톱니바퀴 맞물려 돌아가듯 너무 들어맞지 않습니까? 이준구의 사망 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들고일어난 보수단체의 집회, 게다가 한민당 의원들의 과격한 성명 발표! 우연 치고는 너무 맞아들어가지 않나요?”
“그래 그래, 김부장 맘은 충분히 이해해. 그런데 그건 너무 비약이 심한 거 아냐?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만약에 작정하고 만든 시나리오라면 우리도 대책이 없지 않나? 아마 내일 국과수 발표도 우리 생각과 다르지 않을 거야. 흠…… 이게 정치라는 거야.”
“…….”
“기득권이란 것이 잡기도 어렵지만 일단 손아귀에 들어간 그 요술봉을 내려 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 그들도 지금 마지막 발악을 하는 거야.”
흐음, 전중호 팀장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팀장님, 그러니까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준구의 죽음은 누가 봐도 석연치가 않아요. 이준구, 그 사람은 쉽게 자살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취조할 때도 저희 쪽에 굉장히 협조적인 사람이었어요.”
“…….”
“팀장님도 아시다시피 자신이 파악하던 비자금 내역도 내놓았지 않습니까? 게다가,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끔찍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죽다뇨? 이건 말이 안 됩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래, 그건 나도 아는데…….”
전중호 팀장이 이빨로 입술을 잘근거렸다.
“팀장님, 이제 그런 악랄한 구태는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매번 이런 식으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저질 정치는 이젠 끝내야 합니다.”
“…….”
“부장님!”
전중호 팀장이 눈을 감고 망설이자 더욱더 목소리 톤을 높였다.
“흠…… 자네 입증할 자신 있나?”
전중호 팀장이 천천히 눈을 뜨며 나지막이 물었다.
“네.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저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반드시 범인 잡아오겠습니다.”
“좋아. 이번에도 한번 믿어보지. 하지만 시간을 그렇게 많이 줄 수는 없어.”
푸르르르, 전중호 팀장이 입술을 맞부딪쳐 소리를 냈다.
“네. 일주일만 주십시오!”
“절대, 쉽지 않을 거야. 이렇게 들쑤셔 놓고 가시적인 결과가 없으면 오히려 우리가 역공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
“네. 알겠습니다.”
“좋아! 한번 해보자고!”
전중호 팀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정환의 오피스텔>.
나는 이준구의 사망과 연관된 수사 자료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준구가 자살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화이트보드에 이준구의 주변 인물 관계도를 그려 놓고는 한참 응시했다.
분명히, 타살이다!
결국, 내가 내린 이준구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었다.
이준구가 타살이라는 정황은 차고 넘쳤다.
첫째, ‘오늘 검진이 있는 날입니다! 제가 워낙 간이 좋지 않아서요!’
이준구가 특검 사무실을 나서면서 밝은 표정을 지으며 했던 말이다.
확인해 본 바에 따르면, 이준구는 특검 조사를 받자마자 병원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간 수치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과연,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 자신의 검진 결과를 확인할 필요가 있는가?
둘째, 거실에 널브러진 술병! 이준구는 몇 년 전부터 술을 끊었다.
그는 간경화 진단을 받은 이후로는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만큼, 자신의 건강을 챙겼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자살을?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셋째, 휜 베란다 난간!
이준구가 죽기 직전 완강하게 반항한 흔적이다. 이준구의 아파트 거실 베란다 난간이 휘어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베란다 난간이 이렇게 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준구의 유서!
[이 모든 일은 저에 의해서 비롯된 일입니다. 저로 인해 많은 무고한 분들이 고통받는 것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이 모든 것을 제가 짊어지고 떠나겠습니다. 더는 이 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아 엄마 그리고 진아야! 나 먼저 갈게. 미안해!]
이상은 이준구가 남긴 유서였다.
누가 보더라도 이상할 것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이 평범한 유서가 결정적인 타살의 증거다.
“이 유서는 절대, 애 아빠의 유서가 아닙니다.”
이준구 아내의 의외의 발언이었다.
“유서가 아니라니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감식 결과 동일 필체로 밝혀졌는데요?”
“유정 아빠는 지금까지 우리 딸을 저렇게 진아라고 부른 적이 없어요.”
유정 아빠?
“이진아가 따님의 본명이 아닙니까?”
“아뇨, 본명이 맞아요. 진아가 본명이긴 하지만, 우리 집에선 우리 딸을 유정이라고 부릅니다. 애 아빠는 단 한 번도 딸애를 진아라고 부른 적이 없었어요. 물론, 저를 부를 때도, 진아 엄마란 호칭을 사용해 본 적이 없습니다.”
흑흑흑, 이준구의 아내가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꼈다. 이준구 아내의 결정적인 증언이었다.
이준구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 확실하다!
이것이 내가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띠리리링.
나는 지체없이 공 수사관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공 수사관님, 접니다.”
“헐, 김정환 검사님?”
깜짝 놀란 공 수사관이 목소리 톤을 높였다.
“잘 지내시죠?”
“저야 뭐…… 항상 똑같죠! 검사님이 요즘 신문에 하도 많이 등장하셔서 멀리 떨어져 계신데도 옆에 계신 것 같습니다. 헤헤헤.”
“음… 수사관님, 제가 부탁을 하나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부탁이오? 네네, 뭐든 말씀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