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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85화 (85/170)

# 85

[85화] 연운정 게이트 (3)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눈빛이라뇨? 무슨 눈빛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김 검사! 혹… 시 전에 우리가 만났던 적이 있었나?”

김현석이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코끝을 찡그렸다.

“아뇨. 사적으로 김현석 씨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오늘이 초면입니다.”

아닌데… 분명, 저 눈빛! 어디서 봤더라? 분명, 나를 만난 적이 있을 텐데…….

김현석이 안경을 벗고는 관자놀이를 검지 끝으로 두드렸다.

지금 무슨 수작을 벌이려는 거야?

“저는 김현석 씨를 본 적이 없습니다. 가능한 사적인 말씀은 삼가 주십시오. 그럼, 지금부터 심문 시작하겠습니다!”

틱, 나는 노트북 전원을 켜고 수사 자료를 펼쳐들었다.

“흠, 정우그룹 계열사인 정우랜드 주식을 다량 보유하셨는데….”

“아냐아냐, 분명 어디서 봤는데…….”

김현석이 내 질문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고개를 갸웃거리며 딴청을 피웠다.

“김현석 씨!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계속 이러시면….”

“잠시만, 잠시만 기다리게나!”

박 기자! 박 기자가 맞아. 한민족신문 박윤석 기자! 맞아! 그 사람 눈빛과 똑같아!

김현석이 손톱으로 입가를 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지금 당신은 취조받기 위해 이 곳에 온겁니다.”

흠… 그래, 그래. 저 눈빛, 예전에 박 기자가 나를 쳐다보는 눈도 저랬어! 마치 나를 조롱하는 듯한 기분 나쁜 눈빛! 내가 잊을 수가 없지. 지금 저놈 눈빛을 보니 그때가 떠오르는군! 음, 그렇다고 여기서 내가 굳이 그 사람 얘기를 꺼낼 필요는 없겠지!

김현석의 얼굴 근육이 잔뜩 일그러졌다.

“음, 아냐, 내가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군.”

김현석이 입술을 잘근거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사건과 관련 없는 사안은 말씀하지 마시고 수사에 협조해 주십시오!”

그럼, 김 검사가 그 박 기자 아들? 가만있자. 아… 아니지 그럴리가 없잖아! 박 기자 아들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들었어. 게다가 성도 다르잖아. 김 검사가 박기자 아들일리가 없지 않은가?

김현석이 나를 응시하며 뭔가 생각에 잠겼다.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저러는 거야?

“김현석 씨! 조사에 집중해 주십시오!”

나는 목소리 톤을 높이며 다그쳤다.

내가 너무 예민했나? 하여간 지금도 나를 노려보던 그 눈빛이 생생해! 박기자와 닮아도 너무 닮았어!

김현석이 나를 힐끗보더니 인상을 쓰며 진저리를 쳤다.

“미안허이. 알았네. 시작하지!”

“네. 그럼 지금부터 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그럼, 묻겠습니다. 정우랜드의 주식 취득 경위를 말씀해 주시죠!”

나는 천천히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어허, 김 검사! 그건, 이미 무죄판결이 난 사건 아닌가? 왜 여기서 그 얘길 꺼내지?”

김현석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떴다.

정우랜드 사장, 이준구가 김현석에게 10억 상당의 주식을 무상 제공했고 김현석이 시세 차익을 통해 100억 이상의 수익을 올린 정황이 포착된 사건이었으나, 법원은 불확실한 미래 수익을 보고 보험성으로 준 주식을 뇌물로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진정한 우정의 발로라는 어이없는 판결을 내린 역사에 남을 판결이었다.

또한 두 사람은 정황상 절친일 수 없는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학교 동문이라는 이유만으로 변호인단이 만들어낸 지음관계를 법원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김현석을 구해내기 위해 이준구까지 무죄로 만들어버린 사건! 자기 식구 챙기기에 급급한 검찰과 그에 부화뇌동한 법원의 합작품이었다. 이 사건은 분명 지금의 비자금 사건의 연장 선상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기에 나는 이 부분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했다.

“김 검사! 대가가 없는 것이 과연 뇌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음, 내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할까?”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가?

“…….”

“만약에 자네 친구가 어느 날 로또 복권을 사더니만, 혹시 모르니 가지라고 줬다면 그것을 뇌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나? 흔히, 일반인들이 로또 복권을 사서 나눠갖지 않나?”

“…….”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친한 친구가 건네준 복권이 운 좋게 1등에 당첨돼서 큰돈을 만졌다고 치자고! 그럼 내가 그 친구한데 뇌물을 받은 건가? 그렇게 생긴 로또 당첨 상금은 부당한 건가 말일세!”

김현석다운 궤변이었다. 그가 가소롭다는 듯이 내 몸을 훑어보았다.

결국,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주식을 받긴 했으나 우정에 의한 선의였지 불법적인 대가성이 없었다는 게 그의 궤변이었다. 그의 뻔뻔한 태도에 구역질이 나는 것 같았다.

“팀장님! 역시 만만치가 않은데요? 김 부장이 이미 법원 판결이 난 사건을 괜히 꺼낸 건 아닐까요?”

한상도 부장이 손가락으로 코끝을 문질렀다.

“괜찮아! 김부장도 생각이 있겠지. 어차피 저자 입에서 뭔가가 나오길 바랐던 건 아니잖아! 좀 더 두고 보자고!”

전중호 차장이 팔짱 낀 채, 긴장된 표정으로 유리창 너머를 응시했다.

“그렇군요! 그럼 제가 하나만 묻겠습니다!”

“좋으실 대로 하시게!”

피식, 김현석이 삐딱한 자세로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렸다.

“음… 최근 신문을 보니 재밌는 사건이 있었더군요. 강남의 모 고등학교 교사가 중간고사 시험지를 몰래 빼돌려 한 학생에게 전달한 어이없는 사건이 있었더군요. 혹시, 이 사건을 아십니까?”

탁탁, 나는 인터넷에 검색해 그에게 기사를 내보였다.

“그런데?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건가? 이걸 왜 나한테 보여주는 거야?”

김현석이 고개를 돌려 화면을 힐끗거렸다.

“그런데, 제가 그 내막을 좀 들여다 보니 코미디도 그런 코미디가 없더군요!”

“…….”

김현석이 삐딱하게 앉아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담임선생한테 몰래 시험 문제를 건네받은 학생이 그마저도 공부를 제대로 안 해 시험을 망쳤더라고요! 정말 어이없지 않습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의 표정을 살폈다.

“자네! 지금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야? 말을 빙빙 돌리지 말고 직접 말하라고!”

김현석이 손가락질하며 언성을 높였다.

“그럴까요? 그러면, 제가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을 너무도 어여삐 여겼는지, 이 번에는 그 학교 교감이 나섰더군요! 어이없게도 성적 자체를 조작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학생과 내신 등급이 바뀌게 되었죠. 김현석 씨! 이 학교의 담임선생과 교감은 죄가 됩니까? 안 됩니까?”

나는 그를 노려보며 쏘아붙였다.

“뭐…… 야? 너, 지금 나랑 말장난하자는 거야? 그……게 나와 뭔 상관이야?”

김현석이 벌게진 얼굴로 양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당연히, 그 교사와 교감 그리고 그의 부모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죄로 기소되었지요!”

나는 힘을 실어 꾹꾹 눌러 말했다.

“야 이 새꺄! 지금 나랑 말장난해!”

쾅쾅, 김현석이 더 이상 참지 못했던지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말장난은 김현석씨가 먼저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제 말 계속 들으시죠! 다시 묻겠습니다! 담임선생과 교감은 그 학생이 그냥 예뻐서 아니,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실력 발휘를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준 걸까요? 김종수 아버님!”

나는 더욱더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김종수 아버님? 뭐… 뭐 하자는 거야?”

김현석의 눈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종수의 이력서와 학교 성적, 영어 성적 기타 등등이 여기 있습니다! 와! 진짜 깨끗하군요! 어쩜 이렇게 스펙이 깨끗할 수 있을까요? 이런 이력서가 국내 최고의 기업인 정우에 가당키나 합니까?”

툭, 나는 그 앞에 서류뭉치를 내던졌다.

“뭐…… 뭐 이 새꺄!”

김현석이 흰자위를 희번덕거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이건 당시 김종수와 함께 면접을 치른 수험생들의 육성 녹음 파일입니다!”

‘김종수 씨는 면접관에 질문의 요지를 잘 파악하지 못한 듯 동문서답했어요. 그래서 어떤 면접관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죠!’

‘게다가, 그 사람은 말까지 더듬었습니다.’

‘면접이 끝나고 밖으로 나가면서 자기는 이미 합격이 내정된 사람이라고 자랑까지 했어요!’

툭, 나는 녹음 파일을 재생했다.

“뭐…… 뭐야 저게? 당장 안 치워! 이 새꺄!”

김현석이 주먹을 쥐며 덤벼들 기세였다.

“그러게, 왜 그러셨습니까? 죄도 손발이 맞아야 저지르는 법입니다! 철없는 아드님, 입단속부터 시켰어야죠! 외제 고급차 타고 다니면서 클럽이나 들락거리는 자가 차비가 아까워 걸어다니며 열심히 공부한 사람을 실력이 아닌, 권력과 돈으로 짓밟는 건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닙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눈살을 찌푸렸다.

“너…… 이놈!”

실핏줄이라도 터뜨릴 기세로 김현석이 눈을 부릅떴다.

“김현석 씨! 지금 당신의 행동은 전부 녹화가 되고 있다는 것을 명시하십시오! 그냥 얌전히 앉아 계시는 것이 좋을 텐데요?”

나 역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와우! 우리 선배님 진짜 최고다! 저런 멘트를 어떻게 날리지? 이런 명언은 좀 적어야겠다!”

유리창 너머로 지켜보던 장 검이 다이어리를 꺼내 들었다.

“흠, 어느 정도 배포가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저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차장님! 아주 속이 후련한데요?”

“거봐. 내가 김부장을 한번 믿어보자고 했잖아!”

하하하, 전준호 팀장이 목젖이 보일 정도로 크게 웃었다.

“팀장님이 그러셨나요?”

한상도 부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그랬다면 그런 거야!”

험험, 전중호 팀장이 연신 헛기침을 했다.

“난! 몰라.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 이후, 김현석은 모르쇠로 일관하며 우리가 내놓은 정황 증거를 무시했고 어느새, 날이 밝고 말았다.

“음, 그동안 수고많으셨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인사했다.

“너… 이러고도 무사할 듯해? 특검으로 뽑히니까 네 세상이 된 것 같지? 착각하지 마! 특검, 이건 겨우 70일짜리라고! 그 이후에 자네가 날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김현석이 한층 수척해진 얼굴로 악다구니를 부렸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입가에 냉소적인 미소를 띠었다.

취조 종료 후,

“일정 부분 진술도 받아냈고 하니 일단 내보내!”

취조실에서 돌아온 나를 향해 전중호 차장이 말했다.

“음, 팀장님, 구속해야 합니다! 증거인멸에 도주 우려도 있어요!”

“맞습니다! 구속해야 해요!”

장 검이 옆에서 맞장구를 치며 흥분했다.

“음…… 나도 그렇게 하고 싶긴 한데, 지금 확보한 증거 가지고는 2프로가 부족해. 법원에서 기각될 거야. 좀 더 자료를 취합해보자고! 그리고 쥐도 도망갈 곳을 터놓고 쫓으라는 말도 있지 않나? 이 정도면 제아무리 천하의 중수부장이라도 심적 부담을 가질 거야. 분명히 뭔가, 액션을 취할 거라고. 우리는 그 점을 예의주시해야 할 거야!”

전중호 차장이 피곤했는지 눈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논리였다.

“네. 알겠습니다.”

나 역시 반론의 여지는 없었다. 순순히 그의 말에 따르기로 마음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네들도 오늘은 좀 들어가 쉬어! 벌써 일주일째 집에 못 갔잖나? 몸에서 쉰내가 나! 집 가서 좀 씻고 오라고!”

킁킁, 전중호 차장에 내 몸에 코를 대며 코를 벌름거렸다.

“네에. 알겠습니다.”

나는 멋적은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에이, 난 선배님 냄새, 남자답고 좋기만 한데요. 뭘!”

장 검이 환하게 웃으며 내 팔짱을 끼었다.

“이거 봐라. 정말, 아무래도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

전중호 팀장이 턱을 매만지며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하하하, 맞아요. 맞아!”

한상도 부장이 거들며 박장대소했다.

* * *

띠리리링.

잠시 후, 특검 사무실을 빠져나오려는 찰나 전화가 왔다. 이 수사관이 걸어온 전화였다.

“네. 수사관님! 무슨 일이세요?”

“부장님! 찾았습니다!”

다급한 이 수사관의 목소리였다.

“네? 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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