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
[84화] 연운정 게이트 (2)
<대치동 특검 사옥 앞, 기자석>.
팡! 팡! 팡!
대검 중수부장, 김현석이 대치동 특검 사옥 앞에 등장하자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연신 플래시를 터뜨렸다. 기자들의 수가 엄청났다.
“김현석 씨 지금, 심정을 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정우그룹과는 어떤 관계십니까?”
“…….”
“김현석 씨, 정우그룹으로부터 거액의 비자금을 받았다는데, 사실입니까? 검찰총장의 지시가 있었던 겁니까? 사실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
김현석을 병풍처럼 둘러싼 수많은 기자가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내며 몸싸움을 벌였다.
“김현석 씨! 김종수 씨가 작년에 특채로 정우 기업에 입사했는데, 김종수 씨 때문에 입사 시험에 억울하게 떨어진 수험생들에게 미안한 맘은 없습니까?”
김종수는 김현석의 차남이었다. 한 여기자가 김현석에게 마이크를 들이밀며 김현석의 심기를 건드렸다.
“뭐…… 야? 지금 기자를 노려보는 거야?”
김현석이 불쾌한 듯 한동안 여기자의 얼굴을 노려보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모든 것은 특검 조사에서 모두 밝히겠습니다. 성실하게 조사받고 나오겠습니다!”
시종일관 뻣뻣한 자세로 일관했던 김현석이 짤막한 멘트만을 남긴 채, 특검 요원들과 함께 특검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뭐든 한 말씀만 하시죠!”
“김현석 씨!”
기자들이 아쉬운 듯 그의 꽁무니를 쫓았다.
<전중호 수사팀장실>.
“어서 오십시오. 부장님!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전중호 수사팀장이 반갑게 그를 맞아주었다.
“음… 이렇게까지 반갑게 맞이할 일은 아닌 것 같구먼. 아무튼, 다들 왜 저렇게 미쳐 날뛰는 거야? 별것도 아닌 일에… 아무튼, 정치부 기자들은 이해되질 않아. 뭐, 뜯어먹을 거 없나 킁킁거리는 하이에나같단 말이야.”
철퍼덕, 김현석이 몸을 내던지듯 앉더니 다리를 꼬고 앉아 양팔을 소파 위에 걸쳤다.
별것도 아닌 일이라고? 법과 질서를 유린한 당신의 입에서 그런 말이 어떻게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그런가요? 형님! 오늘 여기서 미련 없이 다 털어냅시다.”
김현석 부장은 전중호 차장의 고교 1년 선배이자 대학 동문이다. 사석에서는 서슴없이 형님이라고 칭할 정도로 친분이 있던 사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적인 자리에 국한된 것일 뿐, 전중호 차장은 공과사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중호야,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털긴 뭘 털어? 내가 뭔 죄라도 졌다는 소리로 들린다? 무지 섭섭한데?”
김현석 부장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흠… 그거야. 뭐, 조사해 보면 나오겠죠. 아무튼, 오늘 저희가 좀 예의 없이 굴어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고 협조해 주세요. 형님!”
전중호 차장이 머리를 긁적이며 입가에 어색한 미소를 띠었다.
“음… 그래. 뭐 대충대충하고 술이나 한잔하자. 그나저나 오늘 내 담당은 누구야? 전 차장이 하는 건가?”
김현석 부장이 소파에 몸을 더욱더 깊숙이 파묻으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아뇨. 저는 따로 할 일이 있어서, 아마도 한상도 검사가 취조를 맡아서 할 겁니다.”
“한상도? 부산지검의 한상도를 말하는 거야?”
비스듬히 누워있던 김현석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말했다.
“네. 한상도 부장이 취조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흠… 중호야! 이건 좀 너무하는 것 아니냐? 한상도면 나보다 네 기수나 후밴데, 선배를 향한 기본적인 예우는 지켜줘야 하는 것 아냐?”
김현석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김현석 부장님! 지금 뭔가 단단히 오해하신 것 같은데, 여기는 지금 고등학교 동문회를 하는 곳이 아닙니다. 부장님은 기수 선배로 이곳에 오신 것이 아니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으러 오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전중호 차장이 좀 전과는 다르게 웃음기 걷힌 얼굴로 김현석 부장을 응시했다.
“너… 네가 아주 약을 먹은 모양이구나? 피의자? 지금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아! 부장님! 무례했다면 사과드립니다.”
전중호 차장이 저 자세를 취하며 그에게 사과했다. 마치, 전중호 차장은 그를 조롱하는 듯 보였다.
“아무튼, 조심해라. 내가 누군지는 너도 잘 알 거 아냐?”
흠흠, 김현석이 거들먹거리며 전중호 차장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네네. 부장님! 근데, 죄송하지만 지금부터는 존칭을 사용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지금 부장님의 후배가 아니라 특검, 수사팀장 전중호입니다.”
헤헤, 전중호 차장이 고개를 숙여 보였지만, 그의 말속엔 뼈가 있었다.
이제부터는 본 수사에 선후배 관계 같은 사적인 관계는 고려치 않겠다는 그의 의지였다. 아무튼, 사람을 쥐고 흔드는 능력은 타고난 양반이었다.
“흠, 그래그래. 네 체면도 있고 하니 그거야 뭐 그렇게 못할 건 없지!”
김현석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이곳에서 잠시 쉬고 계시면, 아마도 잠시 후에 취조실로 안내할 겁니다. 그럼 전, 바빠서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철저한 기선제압이었다. 전중호 차장은 처음부터 상대의 기를 꺾어놓으려는 심산이었다.
<특검 취조실>.
“안녕하십니까? 부산지검의 한상도입니다.”
한상도 검사가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했다.
“어어, 그래 수고가 많아. 한 부장!”
고개를 삐딱하게 숙인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장님, 지금부터 취조를 시작하겠습니다. 성함이 김현석이 맞습니까?”
한상도가 조금은 긴장된 목소리로 인정 심문을 시작했다.
“…….”
의자에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김현석 부장이 고개만 까딱거렸다.
“주소를 말씀해 주…….”
“야, 그냥 대충 가자. 우리 집이 여기서 엎어지면 코 닿는 곳이란 건 누구나 아는 사실 아냐? 대충 하고 빨리 본론으로 넘어가자고!”
김현석 부장이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한상도의 말허리를 잘랐다.
“아… 네.”
목까지 벌게진 한상도가 우물쭈물 거리며 난감해 했다.
쾅!
“한상도 부장! 나가서 밥 좀 먹고 와!”
그 순간, 전중호 차장이 취조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네? 점심은 좀 전에 먹었는데…….”
깜짝 놀란 한상도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전중호 팀장을 바라봤다.
“뭐… 뭐야? 아까 바쁘다고 하지….”
깜짝 놀란 건 그뿐만은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전중호 차장의 등장으로 김현석 역시,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한 부장, 점심에 뭘 먹은 거야?”
“아… 네. 시간이 없어서 샌드위치를 좀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맥아리가 없지. 가서 제대로 된 밥 먹고 와. 저 앞에 소머리국밥 잘하던데 가서 곱빼기로 먹고 힘내서 오라고! 검사가 그렇게 깡다구가 없어가지고 범인 잡겠어? 돈 없으면 내가 줘?”
전중호 차장이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는 시늉을 했다.
“아닙니다. 제가 사 먹겠습니다.”
“와우! 선배님! 우리 팀장님, 지금, 저거 먹이는 거 맞죠? 완전 아카데미 주연상 감이네요. 저기 저기, 김현석 부장 얼굴 좀 보세요!”
유리창 밖으로 취조 광경을 지켜보던 장 검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김현석 부장이 붉어진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며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음… 아마도….”
역시, 전중호 차장이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조용히 유리창 밖에서 벌어지는 김현석 주연의 코미디 한 편을 감상하고 있었다.
“흠… 김현석 부장님, 한상도 부장이 목소리가 작아서 잘 안 들리셨죠? 원래 검사는 밥심으로 취조를 하는데 밥을 제대로 못 먹었나 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전중호 차장이 고개를 숙였다.
“어… 어? 그래.”
그의 엉뚱한 행동에 어이가 없었는지 김현석은 멀뚱멀뚱 그의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다.
“아무래도 좀 더 혈기왕성한 젊은 검사를 들여보내야겠어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 래. 아무튼, 빨리빨리 하자. 전 차장!”
김현석 부장이 못마땅한 듯 코끝을 찡그렸다.
“네. 그럼, 팔팔한 놈으로 들여보내 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전중호 팀장이 나와 장 검이 있는 쪽으로 넘어왔다.
“정환아, 네가 들어가!”
전중호 팀장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네? 제… 가요?”
“그래, 너, 말이야. 여기에 정환이가 너 말고 또 있어?”
“그래도, 제가 들어가도 될지…….”
솔직히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선배님! 이럴 땐, 그냥 ‘네!’ 하는 거예요.”
짝짝짝, 장 검이 손바닥을 마주치며 환하게 웃었다.
“그래, 이럴 땐, 장 검이 더 남자답다니깐?”
전중호 차장이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네….”
“어차피, 김 부장, 저 인간 입에서 뭔가가 나오길 기대하긴 글렀어. 하지만, 최소한 우리가 얼마나 이 사건에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는 각인시켜야지. 저 능구렁이 같은 인간, 절대로 가만 둬서는 안돼! 강한 자에겐 절대적으로 충성하고 약한 자는 짓밟는 약삭빠른 동물 근성에 충실한 인간이야. 이번엔 반드시 잡아 처넣어야 하지 않겠나? 그게 정의 아니냐?”
네! 100번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죄를 졌으면 벌을 받는 것이 인지상정이지요!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팀장님!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특검 취조실>.
나는 노트북과 두툼한 서류뭉치를 들고 취조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김정환 검사입니다.”
“…….”
역시나, 김현석이 비스듬한 자세로 앉아 나를 노려봤다. ‘넌, 또 뭐냐?’라는 눈빛이었다.
“음… 지금부터 인정 심문을 시작하겠습니다. 편의상, 부장이란 호칭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아까 했잖아?”
김현석 부장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김현석 씨, 성함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나는 노트북의 전원을 켜며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야… 아까 말했잖아! 야 이 새꺄! 너. 내가 누군지 몰라서 물어?”
김현석 부장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가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볼을 부풀리며 막말을 쏟아냈다.
“흠, 다시 여쭙겠습니다. 성함이 김현석이 맞습니까?”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다시 응시했다.
“이 새끼가 진짜 미쳤나? 너, 몇 기야?”
“김현석 씨! 지금 뭔가 대단히 착각하시고 계시군요. 김현석 씨는 지금 피의자 신분입니다. 존대를 사용해 주십시오. 지금까지가 검찰 대선배이니 드리는 마지막 예우입니다. 더 반말을 쓰신다면 저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나는 날카롭게 그를 응시했다.
“가만히 있지 않아? 가만 있지 않으면? 어떡하겠다는 거야?”
헐, 김현석이 어이없다는 듯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김현석 씨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형법 311조에 의거 모욕죄, 형법 제136조 1항에 의거 공무집행 방해죄로 기소되실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미리 경고합니다. 지금부터 이 법은 적용될 것입니다.”
절대로 기싸움에 밀려서는 안돼!
나는 눈을 부릅뜨며 그를 응시했다.
“뭐… 뭐야? 이…… 새끼야?”
김현석이 스프링처럼 자리에서 튀어 오르며 입가에 게거품을 물었다.
“김현석 씨! 지금 당장 자리에서 앉으세요! 꼭, 팔에 수갑을 차셔야 하겠습니까?”
쾅, 나는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뭐…… 뭐야? 저… 눈빛?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 순간, 김현석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