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83화 (83/170)

# 83

[83화] 연운정 게이트 (1)

중국의 현인, 한비자는 말더듬이여서 말보다는 글로 황제에게 충언을 올렸다고 한다. 그는 끊임없이 충언을 올려 나라의 정의를 밝히려 했고 ‘진실을 알고도 고하지 않으면 불충’이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정의를 수호하려는 사람이었다.

그래! 나는 법으로써 법앞에 불평등한 이 나라의 불행한 현실을 바로잡으려고 한다!

* * *

<김정환 부장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알게 된 나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이튿날, 출근하자마자 이 수사관을 호출했다.

“수사관님, 1997년 2월 20일, 박윤석이라는 분의 뺑소니 사고조사 자료 좀 부탁합니다.”

나는 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확인해야 했다.

“1997년이요? 음… 그때면, 벌써 10년이 넘어버린 사건인데, 거의 공소시효도 끝나가는 사건을 무슨 일로….”

“수사관님! 그냥, 제가 갖다 달라고 하면 갖다 주세요! 무슨 말이 그렇게 많습니까?”

나도 모르게 목청이 높아졌다.

“네? 네에….”

이 수사관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김정환! 아니, 박상우 너답지 않게 왜 그래?

좀처럼 분노를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어제 잠을 좀 못 자서 신경이 예민했나 봅니다. 미안해요.”

후우,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셔 진정한 후 숨을 짧게 내뱉었다.

“아닙니다. 부장님! 최대한 빨리 취합해서 보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수사관이 손을 내저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네. 가능하면 최대한 빨리 부탁합니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네.”

그날 저녁,

“부장님, 접니다.”

“네. 들어오세요.”

이 수사관은 생각보다 빨리 사건 자료를 취합해 내 방으로 들어왔다.

“부장님, 말씀하신 사건 수사 자료입니다.”

이 수사관이 두툼한 서류뭉치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

“이… 게 뭐죠? 세상에 이런 엉터리 수사가 어디 있습니까?”

휘리릭. 수사 자료를 검토하던 나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초동수사 미흡에 현장 보존도 되어 있지 않았고, 탐문 수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단 한 명의 목격자도 확보하지 못한 엉터리 수사자료였다.

“이…… 이럴 수가?”

더욱더, 나를 분노하게 만든 일은 제대로 된 수사는커녕, 단, 3개월 만에 미제 사건으로 분리되어 내팽개쳐졌다는 사실이었다.

그…… 때, 조금만 더 확인을 했었어야 했는데…….

어린나이에 아무것도 모른 채, 허무하게 아버지를 보내드린 죄책감에 가슴이 사무쳤다.

“수사관님! 이… 게 말이 됩니까? 사고로 아니 이건 정황상 분명 고의적인 타살로 사람이 죽었는데, 3개월 만에 수사를 종료하다뇨? 세상에 어떤 나라에서 이런 엉터리 수사를 한답디까? 이 사람들! 나라에서 주는 돈 받는 경찰들 맞습니까?”

촤르르, 나는 책상 위에 널브러진 수사 자료를 들어 바닥에 내팽개쳐 버렸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도무지 삭일 수가 없었다.

“그… 게, 저도 검토하면서 좀 수상쩍다 했는데, 범인이 워낙 완벽하게 범행을 저질렀고, 목격자도 없는 상황이라 수사가 상당히 어려…….”

이 수사관이 바닥에 흐트러진 서류를 주워 올리며 중얼거렸다.

“이… 사건, 담당 형사가 누굽니까? 제가 좀 만나 봐야 하겠습니다!”

양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도저히, 흥분된 감정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그… 게 그것도 좀 이상한 게, 민장석이라고 양천 경찰서에서 근무했었는데 이 사건 처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가 버렸어요. 뭐, 아이들 공부 때문에 그랬다고는 하는데… 암튼 그랬습니다.”

이 수사관이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이건 분명히 내가 알지 못하는 음모가 있다.

아버지는 결코 우연한 사고로 돌아가신 것이 아냐! 반드시. 반드시… 놈을 잡고 만다!

얼마나 세게 입술을 깨물었는지 입술 사이로 피가 배어 나왔다.

“수사관님, 1997년 전후 때 30대 전후 연령인 남자 전과자들의 전과 조회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음…… 그건 너무 막연한데.”

이 수사관이 곤란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신상 명세는 모르겠어요. 180cm 정도의 키에 건장한 체격입니다. 그리고, 오른팔 부근에 전갈 모양의 문신을 하고 있었습니다. 몸통에 날개가 달려있는 독특한 문양이었습니다. 혹시, 가능할까요?”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남긴 유일한 단서! 나는 어떡하든 그를 찾아내야 했다.

“음… 쉽지는 않겠지만, 만약에 그 자가 교도소에 수감된 전력이 있다면 어쩌면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게 시간을 좀 주시면 최대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수사관이 손바닥으로 턱을 문질렀다.

“네. 부탁드립니다. 꼭, 찾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음, 그리고 제가 좀 흥분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금 사과드립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이 수사관이 양 손을 들어보였다.

* * *

일주일 후, 전중호 차장의 말대로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릴 놀라운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생방송 오늘의 손성훈입니다. 앞서 전해드린 것처럼 지금부터는 최근 불거진 정우그룹의 비자금 사건과 연관된 새로운 소식을 지금부터 집중 보도해드리겠습니다.”

다소 긴장된 표정의 손성훈 아나운서가 들뜬 목소리로 보도를 시작했다.

“김 기자! 사전에 검토해 본 바로는 곧 있으면 공개하게 될 이 동영상이 온 국민을 충격의 도가니로 빠뜨릴 것 같군요?”

손성훈 아나운서가 조금은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옆에 앉아 있던 기자의 얼굴을 쳐다봤다.

“네. 저도 무척이나 긴장이 되는 순간이군요.”

“CBC가 단독 입수한 본 동영상에는 어떤 것이 담겨있습니까?”

“네. 본 동영상은 약 5분짜리 영상으로 한 용기 있는 제보자에 의해 세상에 공개되었는데요, 동영상 속에는 국민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너무도 놀라운 영상이라 지금도 믿어지지가 않는군요!”

“도대체, 어떤 동영상이기에 김 기자가 이렇게 긴장하는지 자못 궁금하군요.”

“네. 일단, 동영상을 보신 후, 자세히 보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 기자의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다.

빠바밤 빠빠바밤!

장중한 효과음과 함께 등장한 동영상!

연운정이라는 요정의 한 내실을 촬영한 동영상이었다. 대여섯 명의 접대부들과 3명의 중년 남자가 향응을 즐기고 있는 충격적인 동영상이었다.

“저… 저게 누구야?”

“지… 진짜, 저 사람 한민당, 진철훈 대표가 맞… 아?”

티비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사람들,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술에 취해 난잡하게 접대부를 희롱하는 남자들의 모습에 시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기, 저 남자는 정우그룹 회장, 현정우고 저… 저 사람은 누구야?”

“어디 어디? 뭐야? 검… 찰총장, 정현배 아냐?”

“뭐야?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거야? 이… 거 영화에서나 나오는 장면 아냐?”

“후, 요즘은 영화보다 현실이 더 극적이구먼. 이게 나라냐? 나라가 망하려고 작정을 했지!”

쯧쯧쯧, 한 남자가 인상을 구기며 혀를 찼다.

CBC에서 긴급 보도한 동영상은 한민당 대표 진철훈, 정우그룹 총수 현정우, 그리고 검찰총장 정현배, 이상 셋이서 연운정이라는 비밀 요정에서 질펀하게 향응을 즐기고 있는 충격적인 동영상이었다.

본 동영상이 보도되자 대한민국은 발칵 뒤집혔고 온 국민의 눈과 귀는 국회와 검찰에 쏠리게 되었다. 전중호 차장의 말대로 경천동지(驚天動地), 분기탱천(憤氣撐天)한 상황이었다.

“본인도 억울한 면이 있지만, 이 모든 일은 제가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진철훈 대표가 서둘러 사퇴 성명을 발표했지만, 국민들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진철훈은 국민들 앞에 석고대죄하고 정부는 진상을 규명하라!”

“이게 나라냐? 특검을 발족시켜 발본색원하라!”

국민들은 연일 광화문 광장으로 몰려들었고 한민당의 지지율은 끝없이 곤두박질쳤다. 결국, 특검법이 국회에 제출될 수 밖에 없었다.

국회법상 통상 제정법의 경우 2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야하지만, 여야 합의에 따라 이를 생략할 정도로 사안은 심각했다.

“본 회의 표결 결과 찬성 200명, 반대 10명, 기권 10명으로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땅땅땅, 국회의장이 근엄한 표정으로 의사봉을 두드렸다. 사상 초유의 매머드급 특검이 발족되는 순간이었다.

이번 정우그룹 정치 비자금 비리 수사에 관한 특별법, 이른바 연운정 게이트의 특검은 기존의 특검법안보다 대규모였다. 특검은 4명의 특검보를 임명할 수 있고 20명의 파견 검사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또한, 각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들로 구성된 특별 수사관은 최대 40명까지 임명할 수 있었다.

“이번 연운정 게이트의 특별 검사로 이병호 변호사를 명합니다.”

“추상 같은 법률로 좌고우면하지 않고 철저한 수사로 진상을 규명하겠습니다!”

이병호 특검의 취임 일성이었다.

전중호 차장 검사 말처럼, 특별 검사로 이병호 변호사가 임명되었고 특검은 ‘정우 그룹 불법 비자금 조사’, ‘진철훈 대표 뇌물수수 조사’, ‘검찰 비위 수사’등 3개의 카테고리로 구성되었었다.

한편 전중호 차장은 1년 이내에 공무원 생활을 한 사람은 특검보가 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파견 검사 신분으로 특검팀 수사팀장으로 임명되었다. 검찰 수뇌부를 직접적으로 정조준한, 이병호 특검의 승부수였다.

“앞으로 전차장의 역할이 크네. 잘 부탁해! 잘 해내리라 믿어!”

이병호 특검이 전차장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특검님! 이 친구는 앞으로 저와 함께 수사를 진행할 서울중앙지검의 김정환 부부장입니다.”

전중호 차장이 이병호 특검에게 나를 소개했다.

“그래, 나도 이미 알고 있어! 김정환 검사! 요즘 김 검사 모르면 간첩이라지?”

하하하, 이병호 특검의 짙은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아닙니다. 특검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그래, 우리 잘 해보자고!”

이병호 특검이 내 손을 꽉 쥐었다.

이렇게 해서 전중호 차장이 이끄는 ‘검찰 비위 수사’ 특별팀은 부산지검의 특수통 한상도 부장, 나 그리고 우리 팀의 유일한 홍일점, 장 검으로 꾸려지게 되었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야. 각오들 단단히 해야 할 거야!”

“네!”

“네!”

장 검이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꽃처럼 피어나는 보조개는 여전히 싱그러웠다.

* * *

<전중호 수사팀장실>.

일주일 동안, 기존 수사 자료를 검토한 우리 팀은 본격적인 소환 수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음… 오늘부터 소환 조사를 시작할 거야. 상대는 대검 중수부장이니까 다들 마음 단단히 먹도록 해!”

첫 소환 대상자는 검찰 내에서도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던 김현석 대검 중수부장이었다.

“네? 대검 중수부장이오?”

놀란 장 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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