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
[82화] 특별검사, 김정환 (2)
“차장님, 우리 손으로 식구를 쳐낸다는 말씀이 무슨 뜻이죠? 그리고 무슨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란 말씀이신지?”
“곧 알게 될 테니, 너무 조급해 말게. 아무튼, 조만간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 터질 거야.”
전중호 차장이 목덜미를 주무르며 눈을 감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터진다는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떠오르는 일이 없었다. 다만, 하나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면 혹시?
“혹시, 지금 우리 쪽에서 수사 중인 정우그룹 비자금 건과 연관이 있는 겁니까?”
정우그룹 비자금 사건은 정우그룹의 내부자 한민중의 폭로로 수사가 착수되었지만, 어느 누구 하나 구속된 인사 없이 전원 불구속 수사로 진행된 형식적인 수사였다. 항간에서 빈 수레 수사라 칭하며 빈정거릴 만큼, 허점 투성이 수사였다.
“흠, 글쎄! 곧, 알게 된대도? 뭐가 그렇게 급해? 앞으로 정신 없이 바빠질 텐데, 그건 그렇고 우리 곱창에 소주나 한잔하러 가세. 지난번에는 내가 샀으니까 이번엔 자네 차례인 거 알지? 나도 요즘 지갑이 새털처럼 가벼워서 말이야.”
하하하, 전중호 차장이 빈 지갑을 내보이며 웃었다.
“네. 알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사죠.”
“그래그래, 오늘도 한번 대취해 보자고!”
“참! 자네, 순천지청에 있었지?”
전중호 차장이 외투를 몸에 걸치며 물었다.
“네. 이곳에 오기전까지 그곳에서 근무했었습니다.”
“그럼, 혹시, 장영은 검사라고 아나?”
장 검을 말하는 건가? 그녀는 또 왜 묻는 건가?
“네. 순천지청에 있을 때, 같이 일하던 동료입니다.”
“그렇군! 그 친구, 일 잘한다고 소문이 서울에까지 났더라고. 어쩌면, 조만간 두 사람 상봉하게 될지도 모르겠는걸?”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네?”
* * *
<지검 인근, 황소곱창집>.
“이모! 여기 모둠 3개랑 맥주랑 소주 대강 알아서 줘요!”
“차장님, 또 폭탄주 드시게? 건강 좀 생각해서 작작 드시지!”
“검사가 폭탄주를 마다하면 쓰나?”
하하하, 전중호 차장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잠시 후,
거나하게 술기가 올라 얼굴이 벌게진 전중호 차장이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정환아! 이번에 특검법이 발의될 것 같아.”
꼴꼴꼴, 전중호 차장이 소주잔에 술을 꾹꾹 눌러 채우며 말했다.
“네? 특검법이오? 정말, 정우그룹 건으로 말입니까?”
“그래. 생각보다 파장이 클 것 같아.”
크윽, 전중호 차장이 소주를 들이켜며 인상을 구겼다.
“파장이 크다뇨? 이번 사건은 전략 기조실 전기수 사장이 배임 및 조세포탈로 총대 메고 끝나는 사건 아닌가요? 제가 듣기론 대충 사건이 마무리되는 것 같던데요.”
“일단, 우리 쪽도 그 정도 선에서 대충 깃털 뽑아내고 마무리지으려 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왕건이들이 걸려든 것 같아.”
우물우물, 전중호 차장이 두툼한 막창을 장에 푹 담그더니 입안에 넣었다.
“왕건이요? 그게 무슨 뜻이죠?”
“조만간 CBC에서 한 방 터뜨릴 것 같아. 아마도, 여당 입장에서도 이번엔 어쩔 수 없을 거야. 아무튼, 정가에 태풍이 휘몰아칠 듯싶다. 여당 진철훈 대표가 연루된 것 같아.”
“진철훈 대표요?”
진철훈 대표는 서울 양천구에서만 다섯 번 내리 당선된 5선 중진의원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으로 집권 여당을 손아귀에 거머쥔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다. 철저한 오른쪽, 보수주의자로 중장년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사람이었다.
“그래! 근데, 이번엔 우리 쪽 타격도 만만치 않을 듯해. 정현배 검찰총장도 이번 일에 연루된 듯하다는 첩보야.”
“정현배 검찰총장이오? 그래서, 좀 전에 우리 손으로 식구를 쳐낼지도 모른다고 하셨던 건가요?”
“흠, 그래. 일단, 정총장 말고도 대검 중수부쪽 사람들도 줄줄이 엮일 것 같다.”
후우, 전중호 차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믿을 수가 없군요!”
말 그대로 듣고도 믿을 수 없는 얘기였다.
“아무래도, 사안이 사안인 만큼, 과정이야 요식행위로 끝날테고, 특검법은 무난히 통과될 거야. 특검으로는 이병호 변호사가 선임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
이병호 변호사!
판사 출신으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정과 직설적인 화법으로 유명한 강골이었다. 한때, 현역에서 은퇴해 서X대학교에서 교수를 하다 지금은 변호사 생활을 하는 인사다.
“흠, 그렇군요.”
“아마, 나도 특검에 차출될 듯 싶어! 그래서 말인데, 난 자네도 같이 데리고 갈 생각이야!”
또르르, 전중호 차장이 내 잔에 술을 따랐다.
“네? 저를요?”
“뭘 그렇게 놀란 토끼 눈을 뜨나? 이 정도 말했으면 당연히 수순 아냐? 내가 아무한테나 이런 정보를 흘릴 사람이야? 원, 사람도….”
“아… 네.”
“그건 그렇고 좀 전에 장영은 검사를 언급하셨는데 그럼 혹시, 장 검도?”
“음, 그건 이병호 변호사의 의중인 것 같아. 장영은 검사가 그의 제자였다더군. 하도 칭찬하시길래 내가 좀 알아봤는데 말 그대로 젊은 친구가 당차고 일 처리가 깔끔하더군.”
와우!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맞아! 이병호 변호사가 한때 우리 학교에서 헌법을 가르치셨지!
장 검이랑 내가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나?
흐흐흐, 나도 모르게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흘렀다.
“네. 맞습니다. 장영은 검사라면 잘 해내리라 봅니다!”
“뭐야? 지금 이 분위기는? 이거 이거 느낌 쎄한데?”
내가 상기된 얼굴로 목소리 톤을 높이자 전중호 차장이 나를 향해 눈을 흘겼다.
“아닙니다! 워낙, 당차고 똑 부러지는 여자라 배울게 많아서요!”
“그래? 아무튼, 앞으로 잘 먹고 잘 쉬고 몸 관리 잘하라고 이제 지옥문이 활짝 열렸으니 말이야.”
“…….”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것 없어. 우린 팩트대로 수사하고 죄가 있으면 명명백백 밝혀서 처벌받게 하면 되는 거야. 그 대상자가 누구든 말이야. 그것이 정의의 실현이 아니겠나?”
백 번, 천 번 옳은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한 원칙을 지키기가 왜 이렇게 어렵단 말인가?
“자… 한잔해!”
전중호 차장이 능숙한 솜씨로 폭탄주 두 잔을 제조해 전달했다.
“네.”
“김 부장! 헬게이트 입성을 축하하네! 건배!”
꿀꺽꿀꺽, 전중호 차장이 폭탄주를 단숨에 마셔넘겼다.
<황소곱창집 앞, 도로>.
“김 부장, 잘 들어가, 내일 봄세!”
“네. 차장님,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아마 앞으로 밤길 조심해야 될지도 몰라. 뒤통수 조심하라고! 아니면 뭐, 주짓수 같은 거라도 배워두던가.”
꺼억, 전중호 차장이 입을 벌려 트림을 하며 말했다.
“…….”
“택시! 택시!”
전중호 차장이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택시를 탔다.
특검이라?
그것도 유력 대권주자에 검찰총장이 걸려있는 특검!
나는 온몸에 찌릿한 전기가 통하는 것 같았다.
* * *
<김정환의 오피스텔>.
전중호 차장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새벽 3시, 목까지 벌게질 정도로 소주를 마셨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장 검은 어떻게 지내나? 아직 자신이 특검에 차출될 거란 생각은 꿈에도 못하고 있겠지?
침대 위에 누워 몸을 뒤척였지만 역시나 잠이 오지 않았다.
띠리리링.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누른 장 검의 휴대전화 번호!
물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손가락이 누른 것이라고 항변하고 싶다!
“여보세요? 선배님! 이 밤중에 무슨 일이에요?”
잠이 덜 깬 듯한 장 검의 목소리가 휴대전화에서 흘러나왔다.
미쳤어? 이게 지금 무슨 짓이야?
“어…… 어 미안 미안, 내가 그만 실수로 번호를 잘못 눌렀나 봐!”
당황한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정말요? 에이, 난 또, 무슨 일 난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요.”
“미안해. 그럼, 더 자! 전화 끊을게.”
“아니에요. 이렇게라도 선배님 목소리 들으니까 좋은데요. 뭘!”
“아냐 아냐. 잘 자!”
“싱겁긴!”
제발 좀 나대지 마라! 심장아!
심장이 쫄깃해지는 기분이었다.
“장 검!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지…… 지금 전화가 들어왔네?”
왜, 항상 마음과는 다르게 행동을 해야 하는가?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내가 싫었다.
“알았어요. 그럼, 나중에 통화해요.”
“그… 래!”
병신!
전화를 끊은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고개를 내저었다.
잠시 후,
드르륵, 장 검과의 전화를 끊고 잠이 확 깨버린 나는 창문을 열었다.
[킹 메이킹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그 순간, 묵직한 목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한유리 살인사건을 완벽하게 마무리한 보상으로 포인트 차감 없이 힌트권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YES/NO]
“혹시, 이번에 내가 맡게 될 특검과 연관이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특검과 연관이 있는 힌트권이라… 그래, 미리 알아둬서 나쁠 건 없지!
홀로그램 상태창의 나타난 YES 버튼을 클릭하자 무작위로 배열된 카드 중에 한 장이 선택되었다.
영상 힌트권?
카드 뒷면을 클릭하자 앞면에 나타난 문구였다.
[힌트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ES.”
[그럼, 지금부터 영상을 재생토록 하겠습니다.]
터벅터벅, 버버리 코트를 입은 중년의 남자가 한적한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는 영상이었다.
누… 구지? 어디서 많이 본 실루엣인데?
나는 허공이 떠 있는 상태창 쪽으로 몸을 기울여 화면을 응시했다.
끼이익! 쾅!
부우웅, 빠직!
그 순간, 대형 덤프트럭이 중년의 남자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더니 그 남자의 몸을 덮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미처 대처하지 못한 그 중년 남자는 트럭에 치였고 남자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이내 바닥에 내리 꽂혔다. 남자가 바닥에 고꾸라져 사지를 떨며 꿈틀거렸다.
뭐지? 왜, 이런 영상을 내게 보여주는 거야?
그때, 트럭에서 내린 한 남자!
마스크와 모자를 눌러써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였다.
저벅저벅.
남자가 차에서 내리더니 쓰러진 남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쓰러진 남자는 아직 숨이 붙어있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몸을 떨고 있었다.
툭툭, 그 순간, 남자가 주변에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쓰러진 중년 남자의 몸을 바로 건드리더니 거칠게 몸을 돌려 뉘었다.
그 순간, 선명하게 드러나는 중년 남자의 얼굴! 아…… 아버지!
쓰러진 남자는 분명, 돌아가신 아버지가 틀림없었다!
쿵.
난,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간 듯 힘없이 방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개새끼야! 지… 지금 뭐 하는 거야! 지금 뭐 하는 거냐고!
아버지는 의식을 잃은 채 가느다란 숨을 내뱉고 있었지만 분명 숨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살아 계신 것을 확인한 그자는 유유히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 끼더니 아버지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으… 으윽!
그 순간, 아버지가 몸이 부르르 떨리며 발버둥 대더니 이내, 축 늘어지고 말았다.
안… 안 돼! 안 돼!!!!
나도 모르게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 버지는 단순한 뺑소니 사고로 돌아가신 것이 아니었어!
죽여버릴 거야! 갈기갈기 찢어 죽일 거야!
쾅쾅 ,나는 주먹으로 벽을 내리치며 오열했다.
주르륵.
곧이어, 시뻘건 피가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전갈 모양 문신!
그 순간 그자가 옷소매를 걷어 올렸고 오른 팔목 부근 꿈틀거리는 힘줄 쪽에 새겨진 문신이 시야에 들어왔다. 분명히 전갈 문양의 문신이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