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81화 (81/170)

# 81

[81화] 박승리는 왜 증인석에 앉았는가? & 특별검사, 김정환 (1)

“그나저나, 박승리 그 친구를 어떻게 구워삶은 거야? 저 친구 어쩌면 끝까지 버틸 거라고 하지 않았나?”

전중호 차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코끝을 찡그렸다.

“음… 그게 말입니다. 차장님….”

“그래. 빨리 말해봐. 어떻게 된 거야?”

전중호 차장이 궁금한 듯 재촉했다.

“네. 말씀드리겠습니다. 저 역시, 그를 증인으로 신청을 하긴 했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반신반의했죠. 어쩌면 끝까지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단 말인가?”

“박승리를 만난 후에 그가 분명 사건일의 동영상 파일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을 했죠. 하지만, 심증만 가지고 압수수색을 한다거나, 무작정 구속을 시킬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계속해보게.”

“하지만, 그가 그토록 완강하게 부인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지금까지 그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이수연을 도왔다는 면에서 볼 때, 석연치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박승리의 뒤를 좀 파봤더니, 역시 이유가 있었더군요.”

“그래? 그 이유가 뭐지?”

전중호 차장이 콧대를 매만지며 관심을 보였다.

“국비유학생! 박승리는 다음 학기부터 미국의 메사추세스 공대로 유학을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었더군요. 몇 년 전부터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었나 보더라고요.”

“바로 그거군. 자신이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사실이 밝혀진다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테니… 박승리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어. 게다가, 이수연이 죽은 마당에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아겠지!”

전중호 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바로 그 부분이 포인트였죠.”

“흠… 근데, 그 사실을 자네가 알고 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지 않나? 박승리가 입을 열지 않으면 말일세. 자네 말대로 강제로 압수수색할 수도 없지 않은가?”

“네. 저도 사실 난감했었죠. 그런데, 하늘이 무심치는 않더군요.”

“하늘이 무심치 않아? 그건 또 무슨 소린가?”

“비유가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배나무 아래에선 갓끈을 고쳐 매지 말고, 오이밭에선 신발 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했던가요? 다행히도 그렇게 똑똑한 그가 결정적인 실수를 했더군요!”

“결정적인 실수? 자세히 말해보게!”

“네. 좀 치사한 방법이긴 하지만, 박승리가 스스로 파일을 들고 증인석에 앉게 하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뭐야? 무슨 소린지 알아듣질 못하겠네. 좀 쉽게 말해봐!”

전중호 차장이 의자를 바짝 당겨앉았다.

“네. 지금부터 말씀드리지요.”

일주일 전,

<국가 디지털 포렌식 검사 센터>.

박승리가 몰래카메라를 설치했다면, 분명 어딘가에 그의 흔적이 남아있을 거야!

나는 박승리의 흔적을 찾기 위해 디지털 포렌식 검사 센터의 박 연구원을 찾아갔습니다.

“연구원님, 이것이 전부입니까?”

“네. 확보할 수 있는 모든 파일은 샅샅이 뒤져봤는데, 없는데요?”

박 연구원이 내가 건네준 박승리 사진을 살펴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네.”

저와 박 연구원은 영상 파일을 밤새도록 반복해 돌려보며 실마리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허사였죠. 우리 둘 다 포기하려던 순간이었습니다.

“잠시만요! 연구원님, 화면을 뒤로 좀 돌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저… 저건 뭐죠?”

박장우의 거주하던 오피스텔 C동 엘리베이터 지하 주차장 입구에 설치된 CCTV를 누군가 수리하고 있는 화면이 내 시야에 잡혔다. 하지만, 카메라 사각지대를 이용해 교묘한 각도로 모자를 눌러써 신원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저 사람은 CCTV 카메라의 각도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야! 일반적인 직원이라면 굳이 얼굴을 가릴 필요가 있는가?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음… 저건, CCTV 업체 직원인 듯 보이는데요?”

“저 엘리베이터가 308호실과 바로 연결된 거 맞죠?”

박장우는 C동 308호실에 거주하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오피스텔에 CCTV를 설치한 업체가 어디죠?”

“어디 보자… 영상 파일 때문에 제가 연락한 적이 있는데… 아! 여기 있네요!”

박 연구원이 다이어리를 뒤적거리다 명함을 꺼내 내게 건네줬다.

삼원 네트웍스라?

띠리리링.

나는 곧바로 삼원 네트웍스에 전화를 걸었죠.

“네. 알겠습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리공이 화면에 잡힌 당일, 박장우의 오피스텔 CCTV를 수리한 내역이 없다는 직원의 설명이었습니다.

“수리 내역이 없다고요?”

놀란 박 연구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정기 점검을 하는 날도 아니고 그날은 CCTV를 수리한 내역이 없다고 하는군요.”

“헐, 부장님! 이거 점점 수상해지는데요? 뭔가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연구원님, 박장우가 거주했던 층의 CCTV 영상 좀 다시 보여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박 연구원이 3층, 박장우가 거주하던 308호실 현관이 보이는 영상 파일을 재생했다.

“어! 좀 전에 그 사람인데요?”

놀란 박 연구원이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모자를 눌러쓰고 교묘히 자신의 얼굴을 감춘 남자가 CCTV 카메라를 만지고 있었다.

“연구원님, 만약에 지하 주차장, 엘리베이터 입구와 지금 3층에 설치된 CCTV만 피하면 308호실로 몰래 들어갈 수 있을까요?”

“음… 일단, 계단은 CCTV가 없으니까, 지하주차장 CCTV만 피하고 계단으로 올라와 접근한다면 일단은 가능한데… 하지만, 아무리 귀신같은 놈이라도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장면은 찍힐 텐데요?”

그가 한 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럼, 혹시, 자신이 모습이 찍히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까?”

“글쎄요. 음… 투명인간도 아니고, 아! 맞아요. 전혀 없는 건 아닌데… 그게 너무 영화 같은 얘기라서….”

박 연구원이 턱 주변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요? 어떤 방법이 있는 거죠?”

“그게, 방법이 있긴 한데, 말하자면, 카메라는 정상적으로 돌아가지만 관제 센터에 동일한 영상만 전송하게 만드는 거죠.”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음… 그니까, 한 마디로 녹화된 화면만 반복적으로 전송하게 만드는 거예요. 영화에서 가끔 등장하는 기술이죠!”

“그러니까, 일정 시점의 동일한 화면만 반복적으로 전송하는 거란 말이죠? 만약에 녹화된 시점에 308호실에 주변에 인기척이 없었다면 계속 그 화면만 관제 센터 모니터에 나타나게 된다는 건가요? 그럼, 그 이후에 누군가 308호실에 들어가도 관리 직원은 모를 수밖에 없다는 거네요?”

“네. 정확히 맞습니다. 바로 그거예요!”

“그렇다면, 혹시, 지하주차장과 3층 CCTV 카메라를 분석하면 카메라 조작을 한 이후의 영상을 찾을 수 있을까요?

“흠… 글쎄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힘들 것 같은데, 일단 한번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박 연구원이 입술을 잘근거렸다.

“부탁합니다. 반드시 복원돼야 합니다!”

“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 * *

<전중호 차장실>.

“그… 그래서, 어떻게 됐나? 화면은 복원된 건가?”

“네. 다행히도 화면이 복원됐죠. CCTV를 설치했던 2월 3일, 그리고 한유리가 사망했던 새벽 5시경, 박승리가 두 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 곳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새벽 5시가 경비원 교대 시각이라 경비가 소홀한 틈을 노린거죠! 게다가 이수연이 사고난 것처럼 꾸며 경비원을 유인까지 했으니 박승리가 박장우의 집으로 잠입하기가 용이했을 겁니다!”

“그렇군! 혹시, 좀 전에 치사한 방법이었다는 것이 바로….”

“네. 차장님께서 지금 생각하고 계신 것이 아마도 맞을 겁니다. 공교롭게도 사건일, 박승리의 모습이 CCTV에 잡혔죠. 박장우의 오피스텔 현관 도어록,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한유리, 박장우, 이수연 그리고 박승리, 네 사람인데 그중 한유리와 이수연은 죽었고 박장우는 새벽 4시에 오피스텔을 빠져나간 것이 확인되었으니, 남은 사람은 박승리 혼자뿐인 난감한 상황이 돼버린 겁니다.”

“그렇지! 만약에 우리가 이 CCTV 화면을 근거로 박승리를 한유리 살해 용의자로 몰고가 압박한다면 박승리가 자신의 무죄를 밝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파일을 들고 증인석에 앉는 방법뿐이군!”

탁, 전중호 차장이 자신의 무릎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네. 좀 치사한 방법이긴 하지만, 저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박승리가 가지고 있던 파일이 반드시 필요했고, 방법은 이것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박승리가 어떻게 반응하던가?”

“아무리 연락해도 연락이 되지 않아 할 수 없이 메일을 보냈죠.”

“어떤 내용의 메일인가?”

[박승리 씨, 지금, 당신은 한유리 살해의 강력한 용의자입니다. 한유리가 사망할 당시, 당신이 박장우의 오피스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CCTV에 잡혔고 해당 시간에 박장우는 알리바이가 확실합니다. 또한, 살해 동기 또한, 명확하죠! 박장우는 당신이 사랑하던 이수연의 애인이었으니까요. 박장우를 한유리 살해범으로 몰아, 그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던 목적 아니었습니까? 우리는 일단 당신을 한유리 살해의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수사가 착수되면 그때는 너무 늦습니다. 당신의 무죄를 밝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이런 내용을 영상 파일을 첨부해 보냈습니다. 한동안 답장이 없어, 조바심이 났는데 공판 하루 전에 드디어 연락이 왔습니다. 증언을 하겠다고!”

“이것 참… 내가 뭐라 할 말이 없구먼. 할 말이 없어!”

허허허, 전중호 차장이 허탈한 듯 너털거렸다.

“그나저나, 박승리같이 똑똑한 인간이 왜 사건일에 박장우의 오피스텔에 간 걸까?”

“음… 아무래도 박승리는 이수연을 이수연은 또, 박장우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모양입니다. 박장우가 한유리를 죽이는 장면이 담긴 화면 속에 한유리의 사체는 욕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거든요.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실 겁니다.”

“그렇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한유리의 사체는 욕실에서 있었어! 그래서, 한동안 사고사의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었지! 이수연의 부탁을 받은 박승리가 한유리의 시체를 욕실로 옮겨놓은 거야! 사고사로 위장하기 위해….”

“물론, 저의 압박에 박승리가 상당한 부담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지만, 법정에 나선 이유는 꼭 그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의문점이 드는 구만. 첫째는, 시체의 위치가 옮겨졌다는 것을 박장우도 알았을텐데 그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지 의문이고, 또 하나는 그 정도 위험을 무릅쓸 정도로 이수연를 향한 감정이 깊었던 박승리가 왜, 파일을 끝까지 숨기려 했을까?”

전중호 차장이 턱을 매만지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음, 박장우 역시 시체 위치가 옮겨진 것을 눈치챘겠죠. 아마도 처음엔 굉장히 당혹스러웠을 겁니다. 누가 그랬는지 수소문을 했겠죠. 하지만, 재판에서 한유리가 어쩌면 사고사로 죽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자신에게 점점 유리하게 흘러가자 적어도 자신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짓은 아니라고 생각했겠죠. 그 와중에 이수연이 나타났으니, 그녀의 짓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결국, 이수연이 죽을 수밖에 없는 원인이 바로 그것이었죠!”

“음, 그렇군! 그럼 두 번째 의문은?”

“사랑이 배신감으로 바뀐 결과라고 할까요?”

“배신감?”

“네. 이수연은 박장우를 구하기 위해 박승리를 이용했던 것 같아요. 한유리가 죽던 일 이수연은 박승리에게 한 번만 자신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다시는 박장우를 만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요. 결국, 이수연을 사랑했던 박승리는 그녀의 부탁을 뿌리칠 수 없었죠. 아니, 어쩌면 이번 기회에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박승리의 착각이었어요.”

“맞아! 이수연이 프랑스로 간다는 문자 하나만 남기고 자취를 감췄으니 말이야. 박승리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겠지!”

전중호 차장이 코를 벌름거리며 말했다.

“네. 결국, 사랑은 증오가 되고 말았던 겁니다. 하지만, 이 사진 한 장이 그의 맘을 바꾸는 데 도움을 줬을 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전중호 차장에게 낡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어린 시절 박승리와 이수연이 장난을 치며 즐거워 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고 있었다.

[언제나 널 지켜줄게!]

사진 하단에 쓰인 박승리의 글씨였다.

“흠, 결국 이것이었군! 이걸 어디서 구한건가?”

“흠, 이수연의 아버지가 제게 준 것입니다. 어쩌면, 그 역시도 박승리가 이번 사건의 키를 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 *

<서울고등법원, 408호 법정>.

XX산에서 박장우의 지문과 이수연의 혈흔이 검출된 피 묻은 야구배트가 발견되면서 모든 사건의 전말은 드러나게 되었다.

“피고 박장우는 한유리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던 이수연마저 살해한 후 암매장해 유기한 혐의가 모두 인정되는 바, 그 죄질이 상당히 무거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한다.”

박장우의 최후를 알리는 추상 같은 재판관의 선고였다.

몇 달 후, 2012년 2월 말.

<전중호 차장실>.

국내 재벌 서열 1위 기업 정우그룹의 비자금 사건 수사가 한창이던 어느 날, 전중호 차장이 나를 자신의 방으로 호출했다.

“김 부장, 내말 잘 들어! 지금부터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 거야!”

전중호 차장의 표정이 비장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조만간, 방송에서 큰 건이 하나 터질 거야.”

“네?”

나는 전중호 차장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당시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쩌면, 우리 손으로 우리 식구들을 쳐내야 할지도 몰라!”

전중호 차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우리 손으로 식구를 쳐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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