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80화] 인과응보(因果應報), 법정 공방 (3)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검사 측에서 신청한 마지막 증인 신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승리 씨 출석했습니까?”
재판장이 서류를 들척이며 말했다.
“박승리 씨 출석했습니까?”
재판장이 반복해서 그를 호명했다.
“검사! 어떻게 된 겁니까?”
재판장이 미간을 좁히며 나를 쳐다봤다.
박승리 씨 빨리! 제발!
“재판장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지금 이쪽으로 오는 중입니다.”
“검사! 마냥, 이렇게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재판장님! 장시간의 재판으로 피고인이 탈진한 상태입니다. 지금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더는 오지 않는 증인을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30분이 지나도록 박승리가 도착하지 않자 정명수 변호사가 재판 종료를 종용했다.
“알겠습니다. 더 지체할 수 없으니 본사건….”
“부장님! 지금 막, 박승리 씨가 도착했습니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이 수사관이 검사석으로 뛰어 들어와 귓속말을 했다.
“도착했군요!”
그 순간, 박승리가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재판장님! 지금, 증인이 도착했습니다. 증인 신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흥분해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증인 신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증인! 증인석으로 나와 선서서를 낭독하시고 서명 날인하세요!”
“네.”
박승리가 증인석으로 천천히 걸어 나와 차분히 선서서를 낭독했다.
“검사, 심문 시작하세요.”
“네.”
“박승리 씨, 이렇게 증인석에 앉아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후,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네에.”
“박승리가 누구야?”
“이번 재판 때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인물인데? 김정환 검사의 히든 카든가?”
기자들이 손놀림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박승리 씨, 제가 알기로는 피고 박장우 씨나 피해자 한유리와는 일면식도 없는 관계로 알고 있는데, 법정에 출두하신 이유를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흠…… 그건, 검사님이 더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박승리가 차분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읊조리듯 말했다. 그가 눈을 마주치는 것이 부담스러웠는지 내 시선을 외면했다.
“박장우 씨! 저 사람을 알고 있었습니까?”
정명수 변호사가 박장우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상당히 당황한 표정이었다.
“아뇨.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박장우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군요! 결국, 결심하신 거군요. 아무튼, 잘 결정하셨습니다. 박승리 씨!”
나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었다.
“단지, 검사님 때문만은 아닙니다. 어린 시절 수연이와의 약속을 지켜야 했기에 증언대에 서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박승리가 가볍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네. 그렇군요.”
나는 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수연? 이 여자는 또 누구야?”
“저 두 사람,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그 순간, 방청석이 술렁거렸다.
이…… 이수연!
그 순간, 박장우가 입을 벌리며 경악했다. 순식간에 그의 얼굴이 잿빛으로 물들었고 동공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박장우 씨! 뭡니까? 왜 그래요? 나한테 숨기는 것이 있었습니까?”
정명수 변호사가 다급하게 박장우의 몸을 흔들었다.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허억, 허억, 박장우가 고개를 숙인 채, 숨을 몰아쉬었다.
“좀 더, 자세히 말씀을 해주시겠습니까?”
나 역시, 긴장됐는지 연신 입술에 침을 묻히며 물었다.
“수연이는 어린 시절, 제 친구였습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제 친구였죠. 그녀는 너무도 착하고 수정처럼 맑은 아이였어요. 그러던 그 아이가 어느 날, 누군가를 만나면서 그녀가 180도 바뀌었어요.”
박승리의 눈빛이 순간 흐려졌다.
“누구를 만났다는 거죠?”
“저기, 앉아 있는 박장우입니다.”
그가 손가락으로 박장우를 가리켰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검사는 지금 본 사건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증인을 이용해 사건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즉각 증인 신문을 멈춰주십시오!”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는지 정명수 변호사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검사! 피고 측에서 제기한 이의 사항과 같이 본 재판장도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박승리 씨의 증언이 본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까?”
“네. 연관이 있습니다.”
“만약에 재판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전략이라면 오히려 판결에 불리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네. 단언컨대, 한유리의 죽음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흠…… 좋습니다. 검사, 계속 심문하세요.”
“네. 재판장님!”
“계속하시죠. 박승리 씨!”
“네. 수연이는 박장우 씨를 만난 이후로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갔습니다. 처음엔 그저 팬으로서 좋아하겠거니 했는데 점점 이상해지더군요.”
“어떻게 이상해졌단 말인가요?”
“점점, 그에게 집착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저에게 박장우 씨의 집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달라는 부탁을 하더군요.”
“야 이, 개새끼야!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박승리의 증언을 듣던 박장우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벌떡 일어났다.
“피고! 조용히 하세요! 법정 소란죄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재판장이 추상같은 목소리로 엄중하게 경고했다.
“검사! 계속하세요.”
“네.”
“그래서, 증인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흠… 처음엔 당연히 거부했죠. 남의 집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은 불법이란 것을 모를 리 없잖습니까? 그런데, 수연이가 점점 이상해졌습니다. 히스테리 증세를 넘어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박장우 씨의 집에 원격 몰래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후, 박승리가 양 볼을 부풀리며 숨을 내쉬었다.
“지… 지금, 저 사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설… 설마, 사건일 영상 파일을 가지고 있기라도 한다는 거야?”
“김 기자! 빨리 본사에 연락해서 카메라 기사 보내라고 해! 이거 아무래도 특종 냄새가 진동하는데?”
“네. 알겠습니다.”
기자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재판장님! 지금 증인은 본 사건과……”
정명수 변호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변호인! 앉으세요. 지금 검사 측에서 증인 심문하지 않습니까? 검사 측 심문이 끝나면 반대 심문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진정하세요!”
재판장이 정명수 변호사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렇군요. 그럼, 어떻게 피고의 집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겁니까?”
“이미, 그 당시엔 수연인 박장우 씨의 집을 자유롭게 들락날락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박장우에게 밥을 차려줬느니, 빨래를 해줬느니 저에게 자랑했었거든요. 그러니, 제가 어렵지 않게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지금까지 박장우의 집에 설치된 몰래카메라를 통해 영상을 수집하고 계셨다는 말씀입니까?”
혈액 속에 적혈구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네. 영상을 파일로 저장해 수연이한테 건네줬습니다. 그리고, 원본은 만약에 사태를 대비해 제가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혹시, 한유리가 죽은 사건일, 3월 1일의 영상도 가지고 계십니까?”
꿀꺽, 나도 모르게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네.”
박승리의 한마디 말에 재판관도, 박장우와 그의 변호인, 정명수도 그리고 본 법정에 있는 모든 사람의 눈과 귀가 박승리의 입에 쏠리는 순간이었다. 법정 안은 간혹, 침을 삼켜 넘기는 소리만 들릴 뿐, 폭풍전야와도 같이 고요했다.
“지… 금, 그 파일을 가지고 있습니까?”
“네. 여기에 담아왔습니다.”
박승리가 주머니에서 USB를 꺼내 내게 전달했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지금 검사가 취득한 증거는 불법적인 경로로 취득한 증거로서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 본 법정에서의 파일 재생을 금지하여 주십시오!”
정명수 변호사가 황급히 일어나 필사적으로 방어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기각합니다. 불법적인 경로로 취득한 증거물이라 할지라도 검사 측에서 강압이나 강제, 위계, 기만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 취득한 것이 아니라면 법적인 효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재판장이 굳은 표정으로 정명수 변호사의 이의 신청을 묵살했다.
“다만, 본 법정에서 증인이 가지고 온 파일을 재생할 시, 주거침입 및 사생활 침해 등의 죄목으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박승리 증인!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네. 이미, 각오하고 있습니다.”
박승리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검사! 파일을 재생하세요.”
“네. 재판장님!”
지이이잉.
리모컨을 누르자 법정 중앙에 있는 스크린이 내려왔다.
딸각, 나는 컴퓨터에 USB를 장착하고 박승리가 제공한 파일을 재생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숨죽이며 스크린을 응시했다.
<3월 1일 새벽 1시 30분, 박장우의 오피스텔>.
“장우 씨 놔! 이제 우리 그만 만나. 장우 씨도 이젠,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야 하고, 나도 신곡도 발표했으니까 일에 집중해야 해. 우리 이쯤에서 정리하자.”
한유리가 박장우의 팔을 잡고 애원했다.
“뭐? 헤어져? 너, 미쳤니? 감히 네깟 것이 무슨 권리로 헤어지잔 소리를 지껄여?”
짝, 박장우가 한유리의 뺨을 후려갈겼다.
“장우 씨, 이러지 마! 제발! 우리 제발 좋게 헤어지자! 내가 이렇게 빌게!”
한유리가 무릎을 꿇은 채, 양손을 모아 빌었다.
“아아! 너 남자 생겼냐? 어쩐지, 전화도 안 받더니만 다 이유가 있었네? 이리 와 이년아!”
박장우의 눈에 살기가 가득했다. 그가 한유리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며 침실로 그녀를 끌고 같다.
“놔놔! 장우 씨, 나, 더 장우 씨 때문에 힘들어지고 싶지 않아. 다 알아. 장우 씨가 나 만나면서도 수 없이 많은 여자 만나고 다닌 거 다 안다고!”
한유리가 버둥거리며 필사적으로 반항했다.
“이 년이 아주 돌았구나? 너, 내 뒷조사까지 했니? 내가 미쳤니? 너를 놔주게? 누구 좋으라고 널 놔줘? 넌 내 장난감이야 야! 버리는 건 주인이 하는 거지. 장난감이 하는 게 아니라고!”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희번덕거리며 박장우가 한유리의 목을 짓눌렀다.
허억, 허억.
꽉!
그 순간, 한유리가 숨을 몰아쉬며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박장우의 양팔을 손톱으로 움켜쥐었다.
“으악! 이런 씨X! 너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반쯤 정신이 나간 박장우가 더욱더 거칠게 양손으로 한유리의 목을 짓눌렀다.
“네가 날 배신해! 죽어! 죽어!”
박장우가 흰자위를 내보이며 악을 썼다. 이미 제정신은 아닌 듯 보였다.
주… 죽은 거야?
찰싹찰싹, 박장우의 팔을 움켜쥐던 한유리의 손에 힘이 빠지며 스스로 미끄러지자 그녀의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
이…… 런, 씨X! 죽은 거야? 이 일을 어쩌지?
박장우가 거칠게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집안을 돌아다녔다.
한유리는 이내 숨을 거두었고, 당황한 박장우는 방안을 서성거렸다. 그러다 갑자기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통화한 후, 한유리의 사체를 끌고 욕실로 들어갔다.
박승리가 가지고 있던 파일의 영상은 여기까지였다.
“뭐… 뭐야? 지금, 내가 본 게 꿈이야 생시야?”
파일 재생이 끝나자 법정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했다.
“뭐…… 야? 이러면 빼박 아니야?”
“본사 빨리 연락해. 이건 특종 중 특종이야!”
가장 먼저 숨 막히는 정적을 깨뜨린 사람은 기자들이었다. 기자들이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법정 밖으로 하나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상, 증인 신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컴퓨터 전원을 끈 후, 천천히 검사석으로 돌아왔다.
“아냐,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저……저건 조작된 거라고, 난… 난 유리를 죽이지 않았어! 변호사님! 저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변호사님도 잘 알잖아요. 저 영상 속에 나온 남자는 내가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박장우가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양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피고! 반대 심문하겠습니까?”
“…….”
재판장의 질문에도 정명수 변호사는 멍한 표정으로 천정만 올려다볼 뿐이었다.
“변호인! 제 말이 안 들립니까? 반대 심문하시겠습니까?”
재판장의 목소리 톤을 더욱더 높였다.
“아니오. 반대 심문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전의를 상실한 패장의 초라한 모습이었다.
“정말 어려운 결정을 하셨습니다. 박승리 씨!”
나는 증인석에 앉아 있는 그를 응시했다.
“…….”
박승리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
“이상, 2011 고합 ****의 재심 공판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공판은….”
더 이상의 재판은 의미가 없었다. 재판장이 재판 종료를 알리자 기자들이 순식간에 내가 앉아 있는 검사 속으로 달려들었다.
“검사님! 이 영상 파일은 어떻게 확보하신 겁니까?”
“이수연이라는 여자의 행방은 알고 계십니까?”
“이수연과 박장우가 내연관계에 있었던 겁니까?”
기자들이 미친 듯이 질문을 토해냈다.
“잠시만요! 비켜주세요! 나중에, 나중에, 공식적으로 발표하겠습니다.”
이 수사관과 교도관들이 나를 엄호하며 기자들의 접근을 막았다.
“검사님! 아무 말씀이나 한 말씀만 해주시죠.”
기자 하나가 무리 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며 소리쳤다.
“인과응보! 모든 것은 인과응보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 * *
잠시 후,
<전중호 검사실>.
“김 부장! 수고했어! 이 어려운 걸 해내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전중호 차장이 환한 얼굴로 내 등을 두드려 주었다.
“아닙니다. 전부 차장님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신 덕택입니다.”
“이 사람아! 이럴 땐, 자부심을 느껴도 되는 거야. 겸손이 꼭 미덕은 아니라고.”
하하하, 전 중 호 차장이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었다.
“…….”
“그나저나, 박승리, 저 친구를 어떻게 구워삶은 거야? 저 친구 어쩌면 끝까지 버틸 거라고 하지 않았나?”
전중호 차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코끝을 찡그렸다.
“음… 그게 말입니다. 차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