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79화] 인과응보(因果應報), 법정 공방 (2)
“피고 측의 의견을 인정합니다. 검사! 무죄 추정의 원칙을 지켜주세요. 피고는 지금 유죄가 확정된 것이 아닙니다. 재판 중에 피고를 범인으로 단정 짓는 발언은 삼가십시오. 증인은 지금 검사가 한 질문에 대해 답변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네에.”
“서기! 지금 검사의 발언은 기록에서 삭제하세요.”
“네. 재판장님!”
서기가 기록을 삭제했다.
“음… 좋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일반적인 남녀 간의 다툼에서 이 정도 깊은 상처가 생길 수 있습니까?”
“상식적으로 사람이 다툼이 있을 때, 누군가 자신의 팔을 꼬집거나 잡게 되면 본능적으로 상대의 팔을 잡아당긴다거나 밀쳐내겠죠? 일반적인 남녀 간의 다툼에서는 이 정도로 깊은 상처가 생기는 것은 드물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이상, 심문을 마치겠습니다.”
정명수 변호사! 이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피고석을 응시하며 천천히 자리로 되돌아갔다.
“피고 측, 반대 신문하십시오.”
“네. 재판장님!”
정명수 변호사가 손에 몇 장의 사진을 들고 천천히 증인석 쪽으로 걸어 나왔다.
“증인은 부검 경력이 얼마나 되십니까?”
정명수 변호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흠… 올해로 10년 차가 됩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수많은 사체를 부검해 보셨겠군요?”
“네. 적어도 300차례 이상의 부검을 집도했습니다.”
최창호가 불쾌한 듯 코끝을 찡그렸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나 역시, 정명수 변호사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응시했다.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증인의 판단이 틀렸던 적은 혹시 없습니까?”
“네? 그게….”
흠흠흠, 최창호 증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그가 불쾌한 듯 연신 헛기침을 했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지금 피고 측 변호인은 본 사건과는 상관없는 사안으로 증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변호인! 본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질문은 삼가세요. 본 질문은 증인의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소지가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재판장이 정명수 변호사에게 엄중히 경고했다.
“흠… 네. 알겠습니다.”
험험. 최창호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럼, 분위기를 좀 바꿔보죠. 이 사진을 좀 봐주시죠!”
그 순간, 정명수 변호사가 A3 정도 크기로 확대된 두 장의 사진을 꺼내 들어 방청석에 내보인 후, 최창호에게 건네주었다. 두 사람의 팔뚝에 손톱자국 같은 흉터로 깊이 팬 사진 두 장이었다.
“이게 뭐… 죠?”
최창호가 두 사진을 살펴보더니 물었다.
“음… 두 사진 중, 어떤 사진의 흉터가 더 깊다고 생각하십니까?”
육안으로 봤을 때, 최창호의 오른쪽에 놓인 사진 속, 팔의 흉터가 훨씬 더 깊어 보였다.
“흠… 그게 말입니다. 그게… 오른쪽 사진이 더 깊은 상처로 보이는군요.”
당황한 최창호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훔쳐냈다.
“맞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여기 계신 누가 보더라도 이 사진 속에 나타난 팔의 흉터가 훨씬 더 깊습니다.”
정명수 변호사가 최창호 오른쪽에 놓아둔 사진을 들어 올리며 방청석을 응시했다.
“제가 지금 여러분께 보여드린 사진은 제가 소속된 박엔정 로펌에서 확보한 김모 씨의 팔을 찍은 사진입니다. 그리고, 이 사진은 지금 피고석에 앉아 있는 박장우 씨의 팔에 생긴 흉터를 찍은 사진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김모 씨의 팔에 생긴 흉터가 더 깊습니다.”
정명수 변호사가 또 다른 사진을 들어 방청석에 내보이며 잠시 심문을 멈췄다.
“변호인, 계속 설명해 보세요!”
재판장이 몸을 앞쪽으로 숙이며 관심을 보였다.
“네. 재판장님!”
“김모 씨의 팔에 생긴 상처는 최근 그의 아내와 다툼을 하다 생긴 상처라고 합니다. 그의 아내 황모 씨가 저희 로펌에 이혼 소송을 의뢰하면서 저희가 수집한 증거자료죠. 그렇다면! 검사와 증인의 말대로라면! 의뢰인 김모 씨의 아내인 황모 씨는 이미 질식사로 죽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웅성웅성.
“뭐야? 지금 분위기 왜 이래?”
“그러게, 이렇게 되면 김정환 검사가 한 방 먹은 게 되나? 일진일퇴구먼!”
법정 분위기는 순식간에 좀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피식, 피고석에 앉아 있던 박장우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피고, 박장우는 사건일, 연인인 한유리와 사적인 일로 다퉜고 다투는 와중에 피고는 팔에 상처를 입었을 뿐입니다.”
정명수 변호사가 눈을 부릅떴다.
“증인, 검사의 질문에 드물다는 단어를 사용하셨죠?”
“네… 에.”
최창호가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드물다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일이 잦지 아니하다.’라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잦지 않다는 것이지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뜻이겠죠? 재판장님! 이상입니다!”
정명수 변호사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역… 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웅성웅성.
“방청석! 정숙을 지켜주세요!”
방청석이 술렁거리자 재판장이 주의를 시켰다.
“다음은 피고 측에서 신청한 증인 신문을 하겠습니다.”
재판장이 다음 증인을 호명했다.
정명수 변호사가 신청한 증인은 XX 에이전시, 박상진 대표였다. 사건일 4시 이후, 박장우와 술을 같이 마셨다고 증언한 인물이었다.
“피고 측, 심문하십시오!”
“네. 재판장님!”
“증인은 피고, 박장우와 어떤 관계입니까?”
정명수 변호사가 한결 여유로운 표정으로 심문을 시작했다.
“장우는 우리 회사의 고객입니다. 저는 장우의 해외 진출을 돕고 있었습니다.”
“지금 증인은 장우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상당한 친분이 있으셨던 것 같군요?”
“네. 장우는 학교 후배였고 저도 한때는 야구를 했었기 때문에 아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게다가 종친이라 가까운 편이었죠.”
“그렇군요. 그러면, 지금부터 본격적인 질문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정명수 변호사는 피고와의 친분을 각인시킴으로써 피고에게 유리한 답변을 끌어내려 하고 있다!
늙은 너구리 같은 인간!
“피고는 한유리가 죽던 날 새벽, 박장우와 술을 마셨다고 증언하셨는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함께 술을 마신 시간이 몇 시였습니까?”
“아마도 4시 반 이후였습니다.”
“증인, 확실히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확히 몇 시였습니까?”
“네. 확실히 4시 30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1심에서는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죠?”
정명수 변호사가 미간을 좁혔다.
“그게, 첨엔 시간이 긴가민가했는데 우연히 양복 주머니에서 영수증이 나와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 시간을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장우가 소주를 먹고 싶다고 해서 제가 마트에 가서 소주를 사 왔거든요. 그 영수증에 표시된 시간이 새벽 4시 10분이어서 증언을 번복했습니다.”
“그 영수증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지난번 재판 때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그렇군요!”
“재판장님! 본 자료는 증인과 피고 박장우의 통화 내역과 영수증 사본입니다!”
정명수 변호사가 영수증과 통화 내역을 들어 보이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통화 내역은 새벽 4시부터 30분간 총 세 차례였고 영수증에는 찍힌 날짜는 정확히 새벽 4시 10분이었다.
“이렇게 되면 적어도 4시 30분 이후에는 피고의 알리바이가 확실하다는 증거겠군요! 이상입니다.”
흠, 박장우의 오피스텔에서 박상진의 집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30분, 결국 박상진과 박장우가 만난 시간이 4시 30분이라면 4시 이후의 알리바이는 확보된 셈! 국과수의 사체 시반 확인 미숙으로 사망 추정 시간이 뒤집힌 상황에 4시 이후의 알리바이만 확실하다면 박장우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이 나온다. 이것이 2심에서도 우리가 속수무책으로 당한 이유이기도 했다.
“검사 측, 반대 신문하세요.”
“네.”
나는 천천히 박상진이 앉아 있는 증인석 쪽으로 걸어 나왔다.
“음, 증인은 피고 박장우의 메이저리그 진출에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아는데요? 맞습니까?”
“네. 우리 회사에 명운을 걸었던 사업이었지요. 장우를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다시금 도약하려 했습니다.”
“그렇군요. 저희가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증인의 회사가 최근에 엄청난 자금 압박을 받고 있었던 것 같은데, 맞습니까?”
“네. 본 사건으로 장우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무산되는 바람에 재정적 타격이 좀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참 이상하군요? 박장우 사건 이후 불과 1년 만에 회사 경영이 정상화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추진한 사업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거의 부도 직전까지 갔던 XX에이전시 아니었습니까?”
“그건, 새로운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박상진이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 톤을 높였다.
“새로운 투자라고요? 주력사업이었던 피고의 메이저리그 진출에 실패한 망해가는 회사에 투자한 그 어리석은 투자자는 누굽니까?”
나는 좀 더 자극적인 말로 그의 심기를 건드려야 했다.
“그… 건!”
박상진이 말끝을 흐렸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지금 검사는 증인을 인신공격하고 있습니다.”
“네. 인정합니다. 검사! 본 사건과 연관 없는 질문은 삼가십시오!”
정명수의 이의신청은 즉각적으로 받아 들여졌다.
“좋습니다. 증인이 답변을 못 한다면 제가 답변을 하겠습니다. 정확히 2심에서 박장우가 무죄판결을 받은 그 시점에 XX에이전시에 10억이라는 거금이 투자 명목으로 입금이 되었습니다. 당시,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증인의 입장에서는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자금이었죠. 놀랍게도 그 투자자는 저기 앉아 있던 박장우의 부친이신 박상도 씨입니다. 묘하게도 시가가 겹치는 건 진정 우연일까요?“
“…….”
당황한 박상진이 붉어진 얼굴로 비지땀을 흘렸다.
“왜, 박장우의 아버지 가는 다 쓰러져가는 회사에 투자한 거야? 왜지?”
“아, 이거 구린내가 진동하는데?”
잠잠했던 방청석이 다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피고의 부친, 박상도 씨와 박상진은 종친으로 예전부터 친분이 두터웠으며 그 투자자금 역시, 사전이 이미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가 겹쳤을 뿐, 본 사건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음을 밝혀둡니다.”
그 순간, 정명수 변호사가 벌떡 일어나 쉴드를 치며 철벽 방어했다.
“그렇지! 사전에 모의했다는 증거는 없잖아?”
“맞아! 그냥, 우연의 일치일 뿐이지.”
매 순간, 변덕스럽게 반응이 180도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법정의 열기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다른 질문을 하나 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심문을 시작했다.
“증인은 ‘예스마트’를 잘 아시죠?”
“네. 우리 동네 근처에 있는 마트입니다.”
“네. 맞습니다. 증인이 이곳에서 소주를 구입하셨는데 확실합니까?”
“네. 그곳에서 소주 3병을 구매했습니다. 증거로 제출된 영수증을 보시면 아실 것 아닙니까?”
박상진의 좀 전의 상황에 분풀이하려는 듯, 그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네. 맞습니다. 여기 이렇게 씌어 있군요. 예스마트!”
나는 영수증을 들어 방청석에 내보였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예스마트에서 사건일 새벽 4시 10분에 소주 세 병과 마른안주를 구입한 것이 확실합니까?”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네. 확실합니다!”
그 역시 목소리 톤을 높였다.
“아뇨, 증인은 지금 거짓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획, 나는 방청석을 향해 몸을 돌려 세웠다.
“네? 거… 짓이라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 순간, 박상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이것을 보시죠! 현, 예스마트의 사업자 등록증입니다. 재판장님! 등록 일자를 유심히 봐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두 장의 사업자 등록증을 재판장과 정명수 변호사에게 건넸다.
“보시는 것과 같이, 예스마트의 사업자 등록일은 사건일로부터 정확히 한 달 후인 4월 1일입니다. 물론, 카드 등록도 4월 1일에 했죠. 제가 카드사에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증인이 제출한 영수증은 3월 1일이군요? 이것이 어떻게 된 일까요?”
나는 박상진을 쳐다보며 의문을 제기했다.
“그… 럴리가! 아닙니다. 분명 예스마트는 몇 년 전부터 우리 동네에서 영업했습니다. 네! 확실히 영업하고 있었어요!”
박상진이 연신 손사래를 쳤다.
“네! 물론, 증인의 말이 맞습니다. 예스마트는 예전부터 있었죠. 다만, 주인이 바뀌었을 뿐! 상호는 그대로였으니 증인이 헷갈릴만합니다. 그것은 증인이 예스마트를 거의 가보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이기도 하지요. 조사해보니 실제로 증인은 그곳을 이용한 적이 전혀 없었더군요! 아닌가요? 증인?”
나는 날카롭게 박상진을 응시했다.
“그… 그게?”
박상진이 어쩔 줄 모르며 몸을 배배 꼬았다.
“네! 증인의 말대로 예스마트는 예전부터 박상진의 거주지 근처에 있었죠. 다만, 지병이 있던 전 주인인 박영식 씨는 지인인 이민호 씨에게 마트를 양도했고 내부 수리를 마친 이민호 씨는 4월 1일 사업자 등록을 마쳤습니다. 물론, 단골들을 위해 상호는 그대로 예스마트로 등록했던 것입니다.”
부들부들, 피고석에 앉아 있던 박장우가 불안했는지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이 문서는 박영식 씨가 예스마트를 운영할 당시의 사업자 등록증입니다. 카드 영수증에 찍힌 사업자등록번호는 박영식 씨가 운영할 당시의 사업자등록번호가 아니라, 한유리가 사망 후 한 달이 지난 시점에 사업자 등록을 마친, 박영식 씨의 사업자등록번호입니다! 교묘히 날짜만 변경한 영수증이죠. 그러므로, 증인, 박상진은 위증하는 것이고 본 영수증은 위조된 것이 확실합니다! 따라서, 피고 측에서 주장하는 박장우의 알리바이는 성립되지 않음이 확인되었습니다!”
2심까지 단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던 증거물이었다. 한유리의 사망추정시간이 새벽 1시 30분 ~ 2시 30분이었기에 검찰에서 간과했던 부분이었다. 국과수의 시반 검사 실수와 검찰의 안일한 대처를 이용해 교묘히 짜 맞춘 박장우의 알리바이가 순식간에 깨지는 순간이었다. 박장우는 또 다른 알리바이를 증명해야 하는 위기에 몰렸다.
박상진! 아무 말도 하지 마! 입 다물어!
목까지 벌게진 박상진이 고개를 돌려 정명수 변호사를 쳐다보자 그가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후, 정명수와 나는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치렀고 어느새, 내가 신청한 마지막 증인만 남겨두게 되었다.
이젠, 마지막 정의의 칼을 휘두를 타이밍인가?
후, 나는 숨을 고르며 양 주먹에 힘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