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78화 (78/170)

# 78

[78화] 인과응보(因果應報), 법정 공방 (1)

“지… 금 뭐… 라고 하셨습니까?”

휙, 박승리가 몸을 돌려 세웠다. 새파랗게 질린 표정이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박승리 씨, 일단 진정하시고 앉으시죠.”

나는 손으로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게 무슨 소립니까? 수… 연이가 죽었다뇨? 수연이가 왜요? 왜? 그 아이가 죽습니까?”

그가 책을 들고 있던 손을 떨며 목소리 톤을 높이며 말했다. 박승리가 비틀거리며 다가와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한 표정으로 의자에 몸을 내던졌다.

웅성웅성.

“뭐야? 누가 죽었다는 거야?”

“그러게, 저 사람은 누구야?”

박승리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놀란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향했다.

“진정하세요. 박승리 씨! 일단 장소를 옮기는 게 좋겠습니다. 여기서 나가시죠.”

“수연이가 왜요? 그럴 리가 없어요. 그 애가 왜 죽어요?”

쾅쾅쾅, 박승리가 테이블을 내리치며 오열했다.

“박승리 씨, 일단, 나가시죠!”

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고 황급히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전산 학부관 뒤쪽, 한적한 벤치>.

나는 그를 한적한 곳으로 데리고 간 후, 이수연의 사망 경위에 관해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내 얘기를 듣는 내내, 박승리는 괴로운 듯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수연이는 프랑스에 간다고 했는데… 그 애가 왜 죽어요?”

그가 부들부들 손을 떨었다. 박승리가 울먹이며 흐느꼈다.

“프랑스요? 이수연 씨가 프랑스에 간다는 소리를 했던가요? 언제 그런 말을 들었죠?”

“네. 프랑스에 간다고 했었어요. 몇 달 전이었습니다.”

그때 어떡하든 내가 말렸어야 했는데….

박승리가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며 괴로워했다.

“박승리 씨, 진정하시고, 그게 무슨 소린지 자세히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이수연 씨가 왜 프랑스에 간다고 했죠?”

“네. 프랑스에 간다고 했어요. 이걸 보십시오. 이 문자가 수연이가 마지막으로 제가 남긴 문자였습니다.”

박승리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승리야! 그동안 고마웠어. 나… 프랑스로 갈 거야. 장우 오빠도 지금 사건 마무리하고 이쪽으로 오기로 했어. 우리 행복할 거야. 나 지금 너무 행복해. 다 네 덕이야. 승리야! 아마, 이게 마지막 문자일 것 같아. 부탁인데 우리 부모님한테는 말하지 마. 절대로! 그리고 네가 가끔 우리 불쌍한 부모님 좀 잘 돌봐줘. 부탁해!]

“이… 게, 전부였어요. 곧바로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어요. 그러다 전원이 꺼져버렸습니다. 그걸로 끝이었어요.”

“왜? 이수연 씨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 게, 수연인 거의 맹목적으로 박장우를 따랐어요. 만약에 수연이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게 돼서 일이 틀어지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연히 그럴 정도로 수연인 박장우에게 집착했어요. 그리고….”

박승리가 손톱으로 입술을 뜯어내며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뭡니까?”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박승리가 머리카락을 흩트리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박승리는 지금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박장우의 집에 몰래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수연 씨를 돕기 위해 박승리 씨가 설치한 것이 아닙니까?”

나는 그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응시했다.

“몰래카메라요? 처음 듣는 소리입니다. 아뇨. 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전 아무것도 몰라요.”

박승리가 완강히 부인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승리 씨! 친구분이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범인을 밝혀내 억울함을 풀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두 분은 친구 아닙니까?”

나는 그의 양손을 부여잡았다.

“수… 연이가 죽은 건 나도 너무 안타깝지만, 아무튼,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그런 파일은 제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요.”

박승리가 정색을 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파일이 없다고? 나는 파일에 관한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이 자는 분명히 사건 현장을 담은 동영상을 가지고 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거짓말을 하는 것이 틀림없어!

“박승리 씨, 물론, 이유를 막론하고 박장우의 집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것은 불법입니다. 그에 맞는 법적인 처분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20년이 넘도록 절친으로 지냈던 친구가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그리고, 딸을 잃은 그녀의 부모님들은 지금도 지옥 같은 생활을 하고 있어요. 제발, 진실을 말해주세요. 승리 씨가 저지른 불법적인 요소는 제가 최대한 정상참작이 되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이 사건의 진실은 오로지 박승리 씨만이 밝혀낼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떡하든 그를 설득해야 했다.

“아뇨, 아뇨. 난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런 몰래카메라를 설치하지도 않았고 수연이와는 그 이후로 연락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 애 말대로 프랑스로 가서 잘 살 거로 생각했어요. 이렇게 죽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난 아무것도 모르니 다시는 저를 찾아오지 마십시오.”

박승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뛰쳐나갔다.

“박승리 씨!”

나는 그의 팔을 잡 봤지만 박승리는 냉정히 내 팔을 뿌리쳤다.

[김정환 검사입니다! 통화가 되지 않아 문자 남깁니다. 문자 보시면 연락 주십시오!]

그 이후, 박승리는 철저하게 나를 피했고 수없이 많은 문자를 남겨봤지만, 답변이 없었다. 모든 것이 허사였다.

* * *

한유리 살인사건 재심, 공판.

어느덧 연기했던 3주간의 시간이 흘러 공판일이 다가왔다.

후, 이제부터 진정한 싸움인가?

나는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며 심호흡을 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 5부, 408호 법정>.

방청권을 사전에 추첨할 정도로 본 재판은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재판이었다. 250석 방청석은 이미 매진된 상태였고 수많은 기자로 법정은 북새통을 이뤘다.

“지금부터 2011고합 ****에 관한 재심, 공판을 시작하겠습니다.”

“피고의 이름이 박장우가 맞습니까?”

“네.”

“거주지는 주소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강남구 청담동 XX 빌라입니다.”

재판장이 검사와 피고 측, 변호인의 출석을 확인한 후, 피고에 대한 간단한 인정 신문을 마침으로써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었다.

“검사 측, 모두 진술하십시오.”

“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소장을 펼쳐 들었다.

“피고 박장우는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연인 한유리와 심하게 다툰 후, 그녀를 목 졸라 살해하고 사체를 욕실에 유기한 혐의로 본 검사는 피고에게 형법 250조에 의거 살인죄를 적용해 기소합니다.”

“피고 측, 모두 진술하세요.”

“네.”

“피고. 박장우는 한유리를 목 졸라 살해하지도 않았으며 당연히 그녀의 시체를 유기하지도 않았기에 검사 측의 기소 사실을 전문 부인합니다. 이상입니다.”

정명수 변호사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모두 진술을 마쳤다.

“그럼, 지금부터 첫 번째 증인 신문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창호 증인! 증인석으로 나와주십시오.”

재판장이 첫 증인을 호명하자 법정은 순식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네.”

한유리의 사체를 부검한 부검의, 최창호가 천천히 증인석으로 걸어 나왔다.

“증인, 선서서 낭독하세요.”

“네. 본인은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최창호가 또박또박 선서서를 낭독했다.

“흠, 검사 측, 증인 신문 시작하십시오.”

“네. 재판장님!”

나는 자리에서 나와 천천히 증인석으로 다가갔다.

“증인, 한유리의 직접적 사망 원인은 무엇입니까?”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입니다.”

“그렇군요.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라면 타살이 확실한 것이겠군요. 자신이 스스로 목을 졸라 죽을 순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자살이나 사고사는 본 재판에서 배제해도 좋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맞습니까?”

나는 한유리가 누군가에 의해 타살된 것임을 각인시켜야 했다.

“100%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자살이나 사고사일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생각합니다.”

“네. 그렇다면, 다시 질문하겠습니다.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가 맞는다면 그렇게 판단할 수 있을 만한 정황이 있을 텐데요. 증인은 어떤 이유로 한유리의 죽음을 질식사로 판단한 것이죠?”

“흠… 한유리의 사체를 부검한 결과, 몇 군데 팔다리에 생긴 타박상 외에는 특별한 외상이 없었고 얼굴과 눈에 좀 출혈과 울혈이 발견되었기에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판단했습니다. 점 출혈과 울혈은 일반적으로 경부 압박 당시 강한 압력에 의해 혈관이 터져 나타나는 현상으로 목 졸림에 의한 질식사로 시체에 흔히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 타박상은 왜 생긴 겁니까?”

“당연히, 피해자 한유리가 저항한 흔적이겠죠. 피해자가 죽기 전까지 완강히 저항하다 생긴 외상이라고 추정됩니다.”

“흠, 좋습니다. 그럼, 이 사진 좀 자세히 봐주십시오.”

나는 한유리의 손톱을 확대한 사진과 박장우의 팔에 생긴 손톱자국을 찍은 사진을 그에게 내밀었다.

“증인, 한유리의 손톱에서 발견된 살점이 박장우의 살점이 맞습니까?”

“네. DNA 판독 결과 박장우 씨의 살점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본 사진과 같이, 피고의 팔에 생긴 상처는 한유미의 손톱자국이 맞겠군요?”

“이의 있습니다. 재판장님! 지금 검사는 증인에게 유도신문을 하고 있습니다!”

정명수 변호사가 즉각,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흠… 현재로선 피고, 박장우가 유력한 용의자로 인식되는바, 검사 측의 추론은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피고 측의 이의신청을 기각합니다. 증인! 검사의 질문에 답변하세요.”

재판장이 단호한 목소리로 정명수 변호사의 이의 제기를 묵살했다.

“네. 정황상 그렇게 추측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뭐야? 너무 쉽게 가는 것 아냐?”

“아닐걸? 이렇게 쉽게 판결이 날 재판이었으면 대법원까지 올라가지도 않았을 거야. 정명수 변호사가 그렇게 호락호락 당할 것 같아?”

"그런가?"

기자들이 쑤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군요. 그럼,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이 정도 살점이 떨어져 나갈 정도면 어느 정도 격렬히 저항한 것일까요?”

“흠…… 일반적으로 이 정도 살점이 떨어져 나갈 정도면 굉장한 압력이 피부 표면에 작용했을 겁니다. 또한. 살점이 패인 깊이로 볼 때, 가해자는 피해자의 손톱에 찍힌 채, 상당한 시간 동안 머물렀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이 됩니다. 결국, 이 정도 살점이 떨어져 나갈 정도면 상당한 고통이 있었을 텐데, 그걸 참을 수밖에 없었다면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무언가를 계속해서 무력을 가했을 가능성이 크죠! 아니면 고통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극도로 흥분된 상태이거나요.”

“음… 말이 너무 어렵군요. 결국, 증인의 말은 피고가 한유리의 격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참고, 그녀를 죽이기 위해 목 부위에 압박을 가했다는 소리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나는 좀 더 자극적인 언급을 함으로써 정명수 변호사의 심기를 건드려 흥분시킬 필요가 있었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지금 검사는 피고를 범인으로 단정 짓고 있습니다.”

정명수 변호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예상대로 그가 이의를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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