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77화] 반전의 서막 (2)
숫자 2라… 숫자 2!
마… 맞아! 손가락이 다소 구부러져 있긴 했지만, 확실히 숫자 2를 표시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건, 이수연이 죽기 직전까지 뭔가를 나타내려고 한 게 틀림없어!
턱과 입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사망한 직후 뇌에 의한 근육의 억제력이 사라지기 때문에 손가락에 힘이 빠져 완전한 형태의 숫자 2를 표시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2를 표시한 손가락임이 틀림없었다.
죽은 자는 진실을 말한다!
이건 이수연이 네게 보낸 다잉 메시지가 틀림없다! 반드시, 그녀가 보낸 이 메시지를 풀어야 한다!
나는 주먹으로 양쪽 관자놀이를 힘껏 눌렀다.
숫자 2라… 숫자 2….
나는 방안을 서성거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박장우가 이수연을 죽였다는 것은 그녀의 존재가 더 필요 없다는 것! 그렇다면, 이미 동영상이 그에게 넘어갔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도 이수연은 뭔가를 알리려 했다! 그녀가 죽기 직전까지 필사적으로 알리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렇다! 이수연이 남긴 다잉 메시지는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
백업 파일!
백업 파일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수연은 그 백업파일이 있음을 알려주려 했던 거야!
맞아, 바로 그거야!
나는 혼잣말로 기합을 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숫자 2라….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라면 만약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 스스로 자문했다.
그렇지! 장소… 이건 파일을 보관한 장소를 뜻하는 것이 틀림없어!
나라면 파일이 보관된 장소를 표시했을 것이다.
이수연은 손가락으로 백업 파일이 보관된 장소를 표시했었던 거야!
나는 콧속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입으로 천천히 내뱉었다.
숫자 2, 2, 한글로는……, ‘이’를 뜻한다! ‘이’자로 시작하는 장소라?
학교! 이수연이 다녔던 대학교명이 이수 여자대학교!
이수연이 남긴 싸인은 이수 여자대학교를 의미했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양 주먹을 불끈 쥐며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탁탁탁, 나는 컴퓨터 전원을 켜고 이수 여자대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뭔가 있을 거야!
이…… 이연관!
이연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발레리나로 그녀의 이름을 따서 만든 예술 동의 이름이 이연관이었다. 그렇다면, 백업 파일이 보관된 곳은 이수 여자대학교 내에 있는 예술 동, 이연관이란 말이 된다.
나는 양손으로 천천히 머리를 쓸어올렸다.
“이 수사관님! 제 방으로 빨리 와주십시오. 빨리요!”
나는 지체하지 않고 이 수사관을 호출했다.
“네. 부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수사관님, 지금 당장 이수 여자대학교 무용과 학생회실에 가셔서 이수연이 사용하던 사물함이 있었는지 확인해 주십시오.”
만약에 파일이 학교에 보관이 되어 있다면 학생용 개인 사물함이 가장 유력한 장소였다.
“사물함요?”
이 수사관이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네. 이수연이 분명 사물함을 사용했을 겁니다. 학교에 가셔서 확인하시고 사물함에 있는 모든 물건을 확보해주세요. 특히나, USB나 그 밖에 외장 하드 같은 저장장치가 있는지 확인해 주세요. 안에 들어있는 물건 중에 중요한 단서가 나올 수 있으니 바짝 신경 쓰셔야 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학교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시간이 없습니다. 서둘러 주세요!”
반드시 나올 거야! 반드시…… 스모킹 건이 나올 거야!
나는 바짝 말라버린 입술에 침을 묻혔다.
잠시 후,
띠리리링.
이수 여자대학교로 이동한 이 수사관의 전화였다.
“부장님, 접니다.”
“뭐가 좀 나왔습니까?”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물었다.
“음… 그게 말입니다. 이수연이 얼마 전까지 사물함을 사용하긴 했는데…….”
이 수사관이 말끝을 흐렸다.
“네. 그래서요? 빨리 말씀해보세요.”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최근에는 다른 학생이 사용하고 있던데요?”
“계속 말씀해보세요.”
“네. 몇 달 전까진 이수연이 그 사물함을 사용했던 건 맞는데, 원래 사물함 사용기한이 한 학기라더군요. 그래서 다시 추첨해서 다른 학생에게 양도된 모양입니다. 과 사무실에서 이수연에게 여러 차례 연락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사물함 열쇠를 열고 그녀의 물건들을 치웠나 보더군요.”
“네? 그럼, 이수연의 소지품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네. 과 사무실에서 수거해 별도로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내… 내용물은 확인하셨습니까?”
심장이 점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네. 제가 직접 확인을 해봤는데, 책 몇 권하고 발레 슈즈 한 켤레 말고는 아무것도 없던데요? 별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어떡하죠?”
그… 그럴 리가 없는데?
“확실합니까? 혹시, 누락된 건 없나요?”
“네. 여기 과 사무실 학생회장 말로는 그 안에 들어있는 물건을 모두 수거해 개별 지퍼백에 담아 보관해 뒀다고 합니다. 이후에 과 사무실 캐비닛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건드린 사람이 없다는군요. 이게 전부라네요.”
“네에… 일단 알겠습니다. 그 물건들이라도 하나도 빠짐없이 가지고 와주세요.”
“죄송합니다. 부장님.”
“아니에요. 죄송하긴요. 수고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후…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나의 추론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 * *
재심 공판 일주일 전,
어느새 3주 중 2주가 지나가고 단 일주일만 남은 시점이었다.
이수연의 집, 그녀의 학교 그리고 그녀가 자주 찾던 카페 그리고 학교 도서관을 샅샅이 뒤져 봤지만, 동영상 파일을 찾을 수 없었다.
음… 내 생각이 달랐단 말인가?
나 스스로 자문했다.
아니야! 절대 그럴 리가 없다. 분명, 이수연은 뭔가를 남기려고 했던 것이 틀림없어! 백업 파일이 어딘가엔 있을 거야. 그 동영상 파일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사건 현장을 담은 동영상 파일이 없는 재판은 의미가 없었기에 나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이수연의 자택>.
흠… 이수연의 주변 관계를 살펴봐야겠어!
나는 어떡하든 연결고리를 찾아야 했다.
이연수가 손가락으로 표시한 것이 장소가 아니라면 그 파일을 보관하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녀의 주변 관계를 살펴보면 뭔가 실마리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이수연의 주변 관계 및 지인들을 확인하기 위해 그녀의 집을 다시 찾았다.
“아버님, 저 김정환입니다.”
“네. 어서 오십시오. 검사님.”
“아버님, 혹시 따님의 주변 관계는 어땠나요? 친구 관계나 그 외에 친분이 있는 선후배 관계든 뭐든 좋습니다!”
나는 어떡하든, 단서를 찾아야 했다.
“음, 우리 수연이는 워낙 내성적인 아이라 평소에 친구가 별로 없었어요. 게다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더욱더 그랬죠.”
“음, 그렇군요.”
“아, 어린 시절, 친한 절친이 하나 있긴 합니다만.”
이상필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누구죠?”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이상필 씨가 뭔가 떠오르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후에 이수연의 앨범을 들고 왔다.
“이거 한번 보시겠습니까?”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 그녀의 모습이 담긴 앨범이었다.
“아버님, 이 친구는 누구죠?”
유독 이수연의 앨범 속에 자주 등장하는 한 소년이 눈에 띄었다. 유치원, 초등학교 졸업, 최근 대학 입학 때까지 이수연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상당히 많았다. 언뜻 봐도 성실해 보이는 스타일에 선해 보이는 인상이었고 이수연과는 상당히 가까운 사이로 보였다.
“아! 이 녀석이요?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절친이에요. 어떤 때는 우리도 모르는 수연이에 관한 비밀을 이 녀석은 알고 있었던 적도 있을 정도였죠. 어릴 때는 우리 집에서 살다시피 한 아이입니다. 수연이하고는 둘도 없는 죽마고우죠.”
이상필 씨가 천천히 앨범을 넘기며 회상에 젖었다.
그래! 이 친구의 성이 이 씨라면 뭔가 퍼즐이 맞춰질 것도 같은데?
가슴이 턱 막히는 순간이었다.
“아버님, 혹시 이 친구 성이…… 이 씨입니까?”
나는 떨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뇨. 이 녀석은 박 씨에요.”
이것 역시도 아니란 말인가?
“그런가요.”
하, 나도 모르게 탄신이 터져 나왔다.
“음, 어릴 때부터 이 녀석이 우리 수연이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승리, 이 녀석! 우리 수연이와 결혼할 거라고 그랬는데…….”
이상필 씨의 입가에 쓸쓸한 미소가 묻어났다.
승리? Victory?
“지금 승… 리라고 하셨습니까?”
“네. 승리요. 이 녀석 이름이 박승리거든요.”
박승리? 후, 이수연이 손가락으로 표시한 건, 숫자 2가 아니라 알파벳 V였어!
“아버님, 이 친구 이름이 박승리가 확실합니까?”
나는 재차 그의 이름을 확인했다.
“네. 맞아요. 승리. 여기 사진들 좀 보세요. 녀석 이름이 승리라 사진 찍을 때마다 브이 자를 그리고 있잖습니까?”
그의 말대로 모든 사진 속에 등장한 남자는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고 있었다.
이수연이 남긴 다잉 메시지는 바로 이 친구였어!
박승리란 이 친구가 이번 사건의 키를 쥐고 있을 것이다!
그 순간, 혈관 속에 적혈구들이 휘몰아치는 듯했다.
“이 친구는 지금 어디에 있죠?”
“승리는 대전에 있어요. 녀석이 워낙 똑똑한 놈이라 공부를 무척 잘했죠. 영재고를 조기 졸업하고 지금은 카이스트에 다니고 있어요.”
카이스트라…… 그렇지! 무용을 전공한 이수연이 원격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는 건 쉽지 않았을 거야. 박승리라면 충분히 그녀의 조력자가 될 수 있다!
“혹시 이 친구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네에. 제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을 겁니다. 어디 보자…… 여기 있군!”
이상필 씨가 안경을 벗고는 전화번호를 찾아서 내게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박승리 : 011-XXXX-4521.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
나는 박승리를 만나기 위해 대전에 있는 카이스트를 방문했다. 그는 전산학부에 재학 중인 재원이었다.
“저를 찾아오셨다고요?”
한 남자가 휴게실에서 기다리던 나를 찾아왔다. 날카롭게 나를 주시하는 눈빛이 상당히 경계하는 듯했다. 그는 박승리가 틀림없었다.
“네. 혹시 성함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았다.
“박승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그러시죠?”
그가 의자를 돌리며 나와 거리를 두고 앉았다.
“네. 전, 서울중앙지검 검사, 김정환입니다.”
나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전, 검사님 같은 분을 만날 이유가 없는데, 저한테 무슨 볼일이신지?”
박승리가 명함을 들어 살피며 미간을 좁혔다.
“흠, 혹시 이수연 씨를 알고 계십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에 관해서 물었다.
“아… 뇨! 처음 듣는 이름인데요?”
박승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수연을 모른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이수연 씨와 어릴 적부터 친한 친구라는 말을 듣고 왔습니다.”
“아뇨, 사람 잘못 찾아오셨습니다.”
박승리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잠시만요. 승리 씨! 할 얘기가 있습니다.”
“…….”
나는 냉정히 돌아서려던 박승리의 등에 대고 말했다.
“저는 할 말이 없다는 데도…….”
“흠, 이수연 씨가 죽었습니다. 얼마 전에 변사체로 발견됐습니다.”
우뚝!
그가 가던 길을 멈춰 섰다. 그 순간, 미세하게 떨리는 그의 양 주먹이 내 시야에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