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74화 (74/170)

# 74

[74화] 결정적 단서 (1)

탁탁탁, 마우스를 쥐고 있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이미 확인했던 디렉토리를 다시 열어 사진들을 확인했다.

이…… 이 여자는 이수연이 틀림없어!

수십 장의 사진 속 가장자리에 눈에 띄지 않게 나타난 여자! 킹 메이킹 시스템이 내게 보여준 이수연이 틀림없었다. 모든 사진에서 이수연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지이이잉.

그 순간, 책상 위에 놓인 휴대전화가 이리저리 요란하게 흔들렸다. 광역수사대 김상중 팀장의 전화였다.

“부장님! 강상중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나는 모니터 속 사진들을 응시하며 전화를 받았다.

“이수연, 소재 파악됐습니다.”

“네? 확실합니까? 지금 이수연 씨 어디에 있습니까?”

탁, 나는 들고 있던 마우스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후, 그게 변사체로 발견됐습니다.”

“네? 이수연이 죽었다는 겁니까? 확실해요?”

“네. 확실합니다.”

“시체는 어디서 발견됐습니까?”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경기도 인근의 야산에서 발견됐습니다. 산책 나온 등산객이 최초 발견자입니다.”

“혹시, 타살입니까?”

“음… 시체가 부패한 지 오래돼서 확실치는 않지만, 머리 쪽에 무언가 둔탁한 것으로 얻어맞은 흔적이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부검을 해봐야겠지만 아무래도 타살로 추정됩니다.”

“이수연이 확실한 겁니까?”

“네. 확실합니다. 시체에서 이수연의 지갑이 나왔어요.”

“음… 제가 지금 갈 테니, 현장 보존 잘 해두시고, 일반인 통제 확실히 해두십시오.”

“네. 부장님! 저는 급한 다른 사건이 있어서 뵐 수가 없을 듯합니다. 대신, 현장에 박 형사가 있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수고하셨습니다.”

이수연이 죽었다!

게다가 타살의 흔적까지….

* * *

.

“뭐야? 사람이 죽었나 봐!”

주변의 산책 나온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여긴 통제구역입니다. 다들 비켜주십시오!”

수십 명의 전경과 경찰들이 폴리스라인을 쳐놓고 일반인의 접근을 막고 있었고, 국과수에서 나온 요원들이 조심스럽게 증거를 수집하고 있었다. 나는 부리나케 이수연의 시체가 발견된 XX산으로 달려갔다.

“박 형사님!”

“네. 부장님, 빨리 오셨군요.”

“사체는 어디 있습니까?”

“이쪽으로 오십시요. 저깁니다.”

박 형사가 투명 비닐에 감싸인 시체 한 구를 가리켰다.

“이수연이 틀림없습니까?”

“네. 주머니 속에서 이것이 나왔습니다.”

박 형사가 나에게 그녀의 지갑을 건네줬다.

이수연이 틀림없어!

지갑에서 나온 이수연의 주민등록증 사진과 박장우의 팬클럽에 등장한 사진, 그리고 킹 메이킹 시스템이 얼마 전에 보여준 사람은 동일인물이었다. 바로 이수연이었다.

그나저나 지갑을 남겨뒀다? 쉽게 신원이 파악될 텐데?

이런 일에 경험이 많은 놈이라면 절대로 이런 실수할 리가 없다. 이수연을 죽인 범인은 사람을 죽이는 일에 익숙한 자가 결코 아니야!

“그런데, 이상한 게 현금과 카드가 고스란히 남아있어요. 돈을 노린 범행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렇군요.”

게다가, 현금은 그대로? 박 형사의 말대로 돈이 목적이 아니야.

이수연의 지갑 속에는 상당한 금액의 현금이 있었는데도 범인은 손도 대지 않았다.

“성폭행하려고 했던 걸까요?”

“글쎄요. 그런 건 아닌 것 같군요.”

성폭행의 흔적도 전혀 없다!

입고 있던 치마, 속옷, 스타킹 등에 손상이 전혀 없었다. 전혀 반항한 흔적이 없었다.

나는 비닐 속에 쌓인 이수연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럼, 원한 관계였을까요?”

“흠, 글쎄요.”

수차례 머리를 가격했어!

이수연의 두개골은 여러 곳이 깨어져 있었다. 분명, 둔탁한 것으로 내려친 것이 틀림없었다.

뒤에서 갑작스럽게 가격한 것이 틀림없어! 미처 방어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당한 거야!

두개골 뒤쪽은 가벼운 흉터가 있을 뿐 뒤쪽보다는 이마 쪽의 손상이 훨씬 더 컸다. 특히 이수연의 왼쪽 이마와 관자놀이가 움푹 패어 있었다.

한 번에 정확히 가격해 쓰러뜨린 것이 아니야!

첫 가격은 실패했을 확률이 높았다. 서툰 범인이 첫 가격에 실패했고 이수연이 얼굴을 돌려서 범인을 봤을 것이다. 이후, 자신의 정체가 드러난 범인이 당황해 무자비하게 흉기를 휘둘렀던 가능성이 컸다.

만약에 이수연을 가격한 흉기가 야구방망이라면?

흉기를 휘두른 범인은 오른손잡이가 틀림없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놈이 사용한 흉기가 야구방망이가 맞는다면?

심장이 점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 수사관님! 국과수에 사체 부검 의뢰해주세요. 하루라도 빨리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특히, 직접적 사인과 범인이 사용한 흉기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시간이 없어요. 서둘러 주세요!”

나는 같이 현장에 도착한 이 수사관에게 말했다.

“네. 부장님!”

“음, 박 형사님, 이수연 부모님께 연락은 했습니까?”

“아직 연락 못 했습니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박 형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시체 수습하시고 연락을 취하시죠.”

“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시고 뒤처리 좀 부탁드립니다.”

“네.”

* * *

<국립 과학수사 연구소>.

경기도 야산에서 발견된 사체는 이수연의 시신이 틀림없었다. 나는 이수연의 부검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국과수를 찾았다.

“교수님, 서울중앙지검의 김정환 검사입니다.”

나는 부검의, 한 교수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네. 반갑습니다. 한정호입니다.”

나와 한 교수는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이수연의 직접적 사인은 뭡니까?”

“음… 두개골 함몰에 의한 외상성 지주막하 출혈인 것 같습니다. 여기를 보십시오. 여기 하얗게 보이는 부분이 출혈을 나타내는데, 이 정도 출혈이면 거의 즉사했을 겁니다.”

한 교수가 MRI 사진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그렇군요. 그럼, 범인은 어떤 흉기를 사용한 것일까요?”

“흠… 함몰된 두개골의 깊이나 표면적으로 볼 때, 날카로운 것은 아니고 끝이 둥근 형태의 흉기를 사용한 것 같습니다.”

한 교수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

“그럼 혹시, 야구 배트 같은 것일 수도 있습니까?”

“네. 맞습니다. 충분히 가능하죠.”

“이 사진을 보시죠. 두개골의 골절 방향과 함몰 정도가 비슷하지 않습니까?”

한 교수가 또 다른 사진을 내보였다. 이수연의 MRI 사진과 흡사한 형태였다.

“그렇군요.”

“저 사진이 어떤 조폭의 사진인데, 야구방망이로 두부를 공격받았었던 사진입니다.”

“네. 상당히 유사하군요!”

야구 배트라…….

점점 모든 협의는 박장우를 향하고 있었다.

“그럼, 이수연 씨의 사망 추정 시간을 알 수 있을까요?”

“흠, 그게 사실 법의학으로 밝힐 수 있는 사망 추정 시간은 사망 후, 2주 정도인데 사실 이 사체는 부패 정도로 봐서 한 달 정도는 된 듯 보입니다. 정확한 사망시간 추정은 불가능해 보이는군요.”

한 교수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연수가 집을 나간 시기는 두 달 전, 한 교수의 말이 맞는다면 죽기 직전까지 한 달간의 차이가 있다. 한 달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집을 나간 사람이 현금을 전혀 사용하지도 않고 신용카드 역시 사용 내역이 없다!

돈이나 신용카드를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는 소린데, 어떻게 의식주를 해결했을까?

나는 점점 더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누군가에 의해서 감금되어 있었던 거야!

“그 밖의 특이사항은 없습니까?”

“음… 일단, 범인은 오른손잡이가 확실해 보입니다. 뒷머리를 겨냥한 처음 타격은 빗나갔고 그 이후, 당황한 범인이 정신없이 흉기를 휘두른 것 같습니다. 범인은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일 확률이 높습니다. 다만, 이 정도 두개골이 깨져 함몰될 정도면 분명 팔 힘이 좋은 남자가 틀림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내가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며칠 후,

<김정환 부장실>.

팩트를 정리해 보자!

나는 마커를 꺼내 화이트보드에 사건 내역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수연은 박장우가 있는 곳은 어디든 모습을 나타냈다. 그녀는 분명 박장우의 팬클럽 회원이자 열혈팬일 가능성이 커!

그렇다면, 상당한 미모의 이수연은 박장우의 눈에 띄었을 것이다. 백종민의 증언이 맞는다면 박장우는 그녀를 가만두었을 리가 없다. 연인 사이까지는 아닐지라도 상당히 가까웠을 개연성이 크다.

그런 그녀가 박장우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이후 갑자기 실종됐고 두 달 만에 사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두 사람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었었던 것인가?

똑똑똑!

그 순간, 이 수사관이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네.”

이 수사관이 이수연의 부친을 모시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부장님, 이수연 씨의 부친 되시는 이상필 씨입니다.”

이 수사관이 나에게 그를 소개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정환이라고 합니다.”

“이상필입니다. 애 엄마는 지금 도저히 거동할 상황이 아니라 저 혼자 왔습니다.”

“저런, 하루빨리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악수한 이수연의 아버지, 이상필 씨가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희끗희끗한 머리, 짙은 눈썹에 입술 라인이 뚜렷한 중년 신사의 모습이었다.

“심적으로 힘드실 텐데 이렇게 모셔서 송구스럽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우리 수연이의 한을 풀어주는 일인데 뭐가 힘들겠습니까?”

“네에.”

나무 거죽처럼 말라비틀어진 그의 피부가 눈에 들어왔다. 심적 고생이 이만저만하지 않은 눈치였다.

“네. 그럼 몇 가지 묻겠습니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셔 입술을 적셨다.

“네.”

“이수연 씨가 평소에 이상한 말이나 행동 같은 걸 한 적이 없었습니까?”

“네. 있었습니다.”

이상필 씨가 작정한 듯 바로 대답했다.

“어떤 면에서 이상하다는 말씀이죠?”

“후, 네. 말씀드리죠. 우리 수연이는 내성적인 성격에 순한 아이였습니다. 집하고 학교 말곤 밖에 나가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도 부모에게 대들거나 말대꾸한 적도 없었죠. 그런데, 그놈을 알게 된 후부터 아이가 180도 변했습니다.”

이상필이 양쪽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놈이라면?”

“네. 야구 선수, 박장우란 놈입니다. 우리 수연이가 그놈, 팬카페에 가입한 후부터 완전히 다른 애가 되었어요.”

“죄송하지만, 어떻게 달랐는지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네. 감정 표현을 잘하는 아이가 아닌데, 어떤 날에는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이다가도 어떤 날에는 히스테리 증세가 심했습니다. 마치, 조울증 환자처럼 방방 뛰다가도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종일 울기만 했어요. 그리고 생전 한 적이 없던 외박도 자주 하고 아무튼, 그놈을 알게 된 후부터 우리 수연이 너무나도 이상해졌어요.”

이상필 씨가 괴로운 듯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랬군요. 그밖에 다른 특이사항은 없었습니까?”

“음… 후, 있습니다. 특히, 얼마 전에 죽은 한유리를 극도로 싫어했습니다.”

“한유리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드르륵, 나는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네.”

하루는…….

후, 이상필 씨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말을 꺼냈다.

“뭐야! 누가 저 여자가 나오는 걸 보래? 너 미쳤어?”

휙, 수연이가 거칠게 리모컨을 뺏어 들며 흰자위를 들어냈어요.

“누…… 나! 갑자기 왜 그래?”

당황한 창훈이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수연이를 올려다 봤죠.

“앞으로, 이 년 나오는 프로그램 보기만 하면 죽여버릴 거야. 알았어!”

수연이가 죽일 듯이 자기 동생을 노려봤어요. 평소에 거친 말을 입에 담지 않은 아이였는데, 너무도 변한 모습에 당황스러웠습니다.

“수연아! 동생한테 그게 무슨 말이야? 죽여버린다니!”

나는 딸을 나무랐죠.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면 가만히 있어! 저년이 얼마나 못된 년인데!”

“생전 처음 보는 딸의 눈빛이었어요. 마치, 뭐에 홀린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이상필 씨가 양손을 머리에 올리며 괴로워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검사님, 이거….”

이상필 씨가 잠시 머뭇거리다 밀봉된 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딸애의 다이어리입니다. 혹시 참고될지 몰라 가져왔습니다.”

“따님의 유품일 텐데, 이걸 왜 제가 주시는 거죠?”

“내용이 하도 끔찍해서 그동안 쉬쉬하고 있었는데 딸애가 이렇게 비명횡사한 마당에 뭐가 두렵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아마 보시면 아실 겁니다. 제가 돌아간 후에 열어보십시오.”

이마에 깊게 팬 주름이 그간의 심적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상필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검사님! 다른 건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습니다. 우리 수연이 이렇게 만든 인간! 반드시 잡아주십시오.”

이상필 씨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깊은 그의 눈에서 금세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잠시 후,

그가 방을 나간 것을 확인한 나는 천천히 다이어리를 열어보았다.

헉, 이…… 건?

[한유리 이, 미친년이 우리 오빠 팔짱을 꼈다. …저년 팔을 잘라 버리고 싶어!]

다이어리 첫 장부터, 살벌한 문구와 함께 한쪽 팔이 없는 한유리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꿀꺽, 나는 마른침을 삼켜 넘기며 조심스럽게 다음 장을 넘겼다.

[한유리! 이 X 년이 우리 오빠에게 눈웃음을 치며 꼬리를 쳤다.]

마찬가지로 눈이 도려내진 한유리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이… 이 정도로 박장우에게 집착했던 것인가?

페이지를 넘길수록 더욱더 충격적인 문구와 사진이 나타났다.

[그년이 차에서 내린다.]

[그년이 우리 오빠에게 키스했다. 입을 찢어버릴 거야!]

뭐…… 지 이건?

[그년이 오빠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다.]

[안 돼! 들어가지 마! 거긴 오빠와 내 집이야!]

우우우, 이…… 이건 지켜보고 있었던 거야!

이수연은 박장우와 한유리를 지켜보고 있었어!

다이어리를 들고 있는 손이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헉! 이…… 이건?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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