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73화 (73/170)

# 73

[73화] 어느 톱스타의 죽음 (4)

“네. 부장님! 행방불명된 지 몇 달이 지났다고 하더군요. 휴대전화도 꺼져 있고 현재는 완전 연락 두절 상태라고 하네요.”

행방불명? 이건 또 무슨 상황인 거야?

“확실한가요? 경찰에 확인해 본 겁니까?”

“네. 집을 나간 지 이틀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이 여자의 부모가 경찰에 실종신고 했나 보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실종 접수를 했는데, 아마도 경찰은 실종보다는 단순 가출 쪽으로 가닥을 잡았던 모양입니다.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었나 봐요. 지금은 사실상, 수사도 안 하는 상황이에요. 그쪽에 전담할 수사 인력을 투입할 여력이 되지도 못하는 상황이기도 했고, 아무래도 20대의 여성이 집을 나간 경우는 통계적으로 가출이 많다는 것도 수사를 소홀하게 만든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휴대전화 내역을 조사해보니 별다른 원한 관계도 없고 나중에 조사해보니 이수연이 나갈 때 짐을 챙겨간 정황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지금은 할 수 없이 이 여자의 부모가 전단지를 돌리며 직접 찾고 있나 봅니다.”

“이수연 씨가 마지막으로 휴대전화를 썼던 시간은 언제입니까?”

나는 어떡하든 실마리를 찾아야 했다.

“그게, 통신회사에 연락을 해보니 집을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화기가 꺼졌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마지막 통화 내역 확보됐습니까?”

“넵. 발신지는 공교롭게도 청담동이었습니다.”

“청담동요? 혹시, 박장우와 통화했습니까?”

청담동은 박장우의 오피스텔이 있는 곳이었다. 순간,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게, 안타깝게도 누구와 통화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발신지가 청담동이라면서요?”

“후, 공중전화였습니다. 대략 3분간 통화를 했고 그 이후에 이수연의 휴대전화 전원이 나갔어요!”

정 검사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음… 뭔가 있는 건데 과연 무슨 일일까? 분명, 박장우가 전화를 걸었을 텐데…….

나는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져 갔다.

“정 검사님, 부탁 하나 할게요.”

“네. 말씀하십시오. 부장님!”

역시나, 정 검사가 차렷 자세를 취했다.

“이수연의 실종은 이번 한유리 사망 사건과 분명히 연관 관계가 있을 겁니다. 음… 제가 연락을 미리 해둘 테니까 경찰청으로 가셔서 김상중 팀장을 한번 만나보세요. 아마도, 그분이 도와줄 겁니다.”

슥, 슥, 슥, 나는 메모지에 김상중 팀장의 연락처를 적어 정 검사에게 건네주었다.

“네. 알겠습니다. 부장님! 지금 바로 경찰청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재심 공판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촌각을 다투는 일입니다. 서둘러 주세요.”

나는 점점 피가 뜨거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참! 부장님, 그나저나 소식 들으셨어요?”

문을 열고 돌아가려던 정 검사가 갑자기 몸을 돌려 멈춰 섰다.

“아… 뇨? 무슨 특별한 거라도 있나요?”

“흠… 인터넷에서 난리도 아니에요. 오늘 박장우의 팬클럽, 와일드 씽 회원들이 어이없게도 우리 쪽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정 검사가 목을 돌리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요? 선전포고라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한마디로 박장우 재심을 반대한다는 거죠! 워낙 사생팬이 많기로 유명한 팬클럽이라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는데…… 하여간, 극성도 그런 극성이 없어요. 부장님, 시간 나실 때, 팬클럽 카페 한번 들어가 보세요. 난 처음엔 무슨 공포영화 홍보사이트인 줄 알았어요. 복면까지 쓰고 피의 복수니 뭐니… 아무튼, 대문부터 섬뜩하더라고요. 일주일 내로 재심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 지검 앞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가겠다고 난리에요.”

정 검사가 몸을 부르르 떨며 진저리를 쳤다.

어처구니없군!

“그런 일이 있었군요. 나중에 한번 보겠습니다. 그나저나 제가 부탁한 일 차질 없이 처리해 주세요. 부탁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참, 정 검사님! 이 수사관에게 연락해서 박장우와 평소에 친하게 지냈다던 NG 갤럭시의 백종민 선수를 좀 만나서 그의 평소 행적 좀 알아봐 달라고 하세요. 여자관계를 중점적으로 확인해 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문을 나서려는 정 검사를 불러 세웠다.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부탁합니다.”

“넵! 부장님!”

그가 다시 차렷 자세를 취했다. 출렁거리는 뱃살이 이젠 귀엽기까지 했다.

선전포고라? 이건 또 뭔가?

처음엔 그저 철없는 팬클럽 회원들의 치기 어린 장난이겠거니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띠리리링.

“안녕하세요. 팀장님! 저 김정환입니다.”

정 검사가 내 방을 나간 후에 나는 강상중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쿠, 우리 김정환 검사, 아니지, 아니지 김정환 부장님이 웬일로 이렇게 손수 전화를 주셨습니까? 흐흐흐, 영광입니다, 영감님!”

강상중 팀장이 호들갑을 떨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저, 부장 아닙니다. 부부장이에요. 그리고 영감님은 또 무슨 말입니까?”

“그거나 이거나죠. 곧, 부장님 되실 거 아닙니까? 영감님도 틀린 말은 아니죠. 헤헤.”

강상중 팀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나저나, 제가 팀장님께 부탁 하나 하려고요…….”

나는 이수연의 신상명세와 그녀가 실종된 사실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그 여자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는 거죠? 게다가, 이번 한유리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말씀이시고요.”

“네. 반드시 이 여자를 찾아야 합니다. 이수연이 결정적 단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뭐, 우리 부장님 부탁이라면 열 일 제쳐 놓고라도 도와드려얍죠. 딱 열흘만 주십시오. 제가 알아서 10일 내로 찾아내겠습니다. 이런 건 또 제가 전문이거든요.”

“그래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팀장님! 제가 우리 쪽에서 검사 한 분을 보낼 테니까 잘 좀 도와주세요.”

“네네. 알아모시겠습니다. 부장님!”

반드시 뭔가 있다, 분명히! 일단, 이 여자의 행적부터 찾아야 해. 만나보면 뭐가 나와도 나오겠지!

* * *

며칠 후,

NG 갤럭시의 현역 포수로 활동하고 있던 백종민을 만난 이 수사관이 수첩을 들고 내 방을 찾았다.

“부장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이 수사관님, 들어오십시오.”

이 수사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NG 백종민은 만나보셨습니까?”

“네. 지금 만나고 들어오는 길입니다.”

“뭐 좀, 건질 것이 있던가요?”

사실, 백종민과 박장우는 대외적으로 절친으로 알려져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네. 부장님! 음… 박장우가 평소에도 사생활이 아주 문란했더군요.”

이 수사관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사생활이 문란했다고요? 그게 무슨 소리죠?”

“네. 사생활이 아주 개차반이었나 보더라고요.”

“그래요? 그나저나, 절친이라고 하던데 쉽게 입을 열던가요?”

“절친은 무슨 해요. 아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라고요. 평소에 맺힌 게 많았나 보더라고요. 그 덕에 생각보다 쉽게 대화가 되긴 했지만요.”

이 수사관이 한쪽 입을 삐죽거렸다.

“그랬군요. 그거 다행이군요. 그건 그렇고 사생활이 어떻게 문란했다는 거죠?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평소에 여자관계가 아주 복잡했다더군요. 그래서 별명도 야구계의 아랍 왕자란 별명이 붙었더라고요.”

“아랍 왕자요?”

“네. 아랍 왕자들이 부인을 여러 명 두고 있잖아요. 생긴 것도 느끼하게 잘생겨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고 하더라고요. 이 인간 심해도 너무한 게 원정 나간 지방마다 현지처를 하나씩 두고 다녔나 보더라고요. 완전 카사노바 짓을 하고 돌아다녔더군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네. 서울은 물론이고 대전, 광주 찍고 대구, 부산까지 곳곳에 내연녀들이 있었더라구요. 아주 가관도 아니었답니다. 비근한 예로, 등판 하루 전도 숙소 이탈해 내연녀를 만나 밤새 술 마시고 정오가 다 되어 부스스한 얼굴로 연습장에 왔던 경우가 허다하다고 하네요. 말을 안 해 그렇지 배터리인 백종민 입장에서는 천불이 날 일이긴 했죠. 게다가 자신을 종 부리듯이 했다고 하니 말 다 했죠.”

“…….”

“그리고 중요한 건, 백종민이 슬쩍 흘려준 얘긴데요. 한유리와의 열애설을 공식 발표한 이후에도 팬클럽 회원 중에 얼굴 반반한 회원들은 꼬드겨 못된 짓을 했나 보더라고요. 개중에는 미성년자도 꽤 있었나 봅니다. 나쁜 새끼! 얘기를 들어보니 완전 쓰레기 오브 쓰레기였더라고요. 그 인간…….”

이 수사관이 인상을 쓰며 혀를 내둘렀다.

문란한 사생활에 팬클럽 회원들까지…….

당연히, 그 사실을 한유리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박장우를 멀리했겠지. 박장우 입장에서는 그런 그녀의 행동이 어이없을 테고! 여자들을 자신의 노리개쯤으로 생각하는 그의 입장에선 그런 한유리의 변심을 참을 수 없었겠지!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이 수사관님!”

“네. 언제든지 필요한 일 있으시면 찾아주십시오. 부장님!”

“네. 고맙습니다.”

이수연 역시, 그의 노리개였던 것인가?

일주일 후,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

“박장우의 재심을 결사반대한다!”

“반대한다! 반대한다!”

“우리 오빠를 더는 괴롭히지 말아라.”

“괴롭히지 마라! 괴롭히지 마라!”

그저 치기 어린 장난쯤으로 여겼던 박장우의 팬클럽 회원들이 드디어 일을 내고 말았다. 이마에 붉은 글씨로 ‘박장우 재심 결사반대’라는 문구가 적힌 두건을 쓴 수백 명의 회원이 피켓을 들고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더 이쪽으로 진입을 시도하면 강제해산 시키겠습니다. 진정들 하시고 귀가하여 주십시오!”

긴급 투입된 경찰과 전경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그들의 진입을 막았지만, 그들은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와 지검 앞은 완전 아수라장, 북새통을 이뤘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그 순간, 무리 중에 몇 명이 가위를 들고 앞으로 나와 정렬하더니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고 나머지 무리는 어이없게도 눈물을 흘리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뭐야, 어이가 없군! 이 노래는 너희들이 부르라고 지어진 노래가 아니야!”

하, 블라인드를 올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어처구니없는 허탈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나는 미간을 잔뜩 찡그리며 농성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혹시, 이수연이?

‘한유리와의 열애설을 공식 발표한 이후에도 팬클럽 회원 중에 얼굴 반반한 회원들은 꼬드겨 못된 짓을 했나 보더라고요.’

그 순간, 며칠 전 이 수사관이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틱, 탁탁탁.

이…… 건 뭐야?

박장우 팬클럽 사이트, 메인 페이지 화면은 섬뜩했다. 잔뜩 충혈된 눈에서 피눈물이 뚝뚝 떨어뜨리며 울고 있는 여자의 형상이 플래시 화면으로 무섭게 재생되고 있었다.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오른쪽에 정렬된 디렉토리를 클릭했다. 와일드 씽과 팬이란 디렉토리를 클릭해 들어가 보니 정기 팬클럽 행사, 오빠의 생일 파티 현장, 오빠와의 1박 2일 캠핑 등 박장우가 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즐비했다.

나는 하나하나 사진들을 클릭해 유심히 관찰했다.

이건, 박장우의 생일 파티 사진인 것 같고…… 이건, 캠핑 사진….

사진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박장우의 모습이 가증스러웠다.

헉! 이…… 건 뭐지?

그 순간, 사진을 유심히 살피던 나는 온몸에서 피가 빠져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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