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72화] 어느 톱스타의 죽음 (3)
인물 힌트권이 뭐지? 음…… 박장우나 한유리와 연관된 인물일까?
나는 지체하지 않고 인물 힌트권이라고 쓰인 카드를 클릭했다.
[이수연, 22세, 여. 직업 : 대학생]
킹 메이킹 시스템이 상태창에 띄운 건 이수연이라는 여자의 프로필과 사진이었다. 긴 생머리에 맑은 피부를 가진 상당한 미모의 여자였다.
이수연? 이 여자가 이번 사건과 무슨 상관인 거지?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것일까?
당시엔 킹 메이킹 시스템이 왜 이 여자의 프로필을 내게 보여준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김정환 부부장실>.
밤새 의구심에 잠을 이루지 못한 나는 출근하자마자 제일 먼저 그녀의 프로필을 조사해보기로 했다.
“정 검사님, 제 방으로 좀 오세요.”
나는 이번 사건을 함께 담당할 정 검사를 호출했다.
정찬호 검사는 20대 후반으로 경주 출신이고 대구지검에서 근무하다 최근에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로 발령받은 혈기왕성한 초보 검사다. 연수원 성적도 우수했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네. 부장님! 당장 튀어가겠습니다.”
정 검사의 패기 있는 목소리는 수화기를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똑똑똑!
“부장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정 검사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네. 들어와요.”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산만 한 덩치에 인상 좋은 얼굴을 한 사람이었다. 뒤뚱거리며 들어온 정 검사가 넙죽 인사를 하며 허리를 접었다.
“네네. 검사님도 안녕하시죠? 이제 그만 허리 펴세요. 힘들어 보이는데…….”
굽혀지지도 않는 허리를 억지로 숙이고 있는 그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네. 부장님! 존경합니다!”
정 검사가 허리를 곧추세우며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존경은 무슨요!”
“아닙니다. 평소에도 부장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최고십니다!”
와이셔츠 단추와 단추 사이로 두툼한 비곗살들이 삐져나오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푸웁!
나도 모르게 빵 터지고 말았다.
“왜… 그러십니까? 부장님!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정 검사가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의아해 했다.
“아뇨, 아뇨. 아니에요.”
나는 왼손으로 입을 가린 채, 오른손을 흔들었다.
“네에… 그나저나 부장님, 말씀 낮추십시오. 한참 부하직원인데요.”
정 검사가 손수건을 꺼내 육수처럼 흘러내리는 땀을 훔쳐내며 말했다.
“네! 네! 나중에 좀 친해지면 그렇게 할게요.”
캑캑, 또다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려다 사레들리고 말았다.
“부장님! 괜찮으세요? 어디 안 좋으세요?”
정 검사가 재빨리 정수기에서 물을 떠 와 내밀었다. 덩치와 달리 날렵한 행동이었다.
“아냐 아뇨. 미안해요. 미안해.”
탁탁탁, 나는 물을 받아 마시고는 주먹을 말아 쥐며 가슴을 가볍게 두드렸다.
“미안하긴요. 아닙니다. 그나저나 부장님, 뭐 시키실 일이라도….”
둔해 보이는 생김새와 달리 눈치는 빠른 듯 보였다.
“아 네… 정 검사님! 이 여자에 관해서 한번 알아봐 주세요.”
나는 그에게 그녀의 인적 사항이 적힌 쪽지를 내밀었다.
“이… 수… 연? 이 여자가 누굽니까?”
정 검사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해 보이는 눈망울이 호감을 주는 눈빛이었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는 여자예요. 그러니까, 최대한 자세하게 알아봐 주세요. 가족관계나 직업, 아무튼 가능한 정보는 하나도 빠짐없이 부탁합니다. 신경 쓰셔야 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정 검사가 차렷 자세로 답했다. 우렁찬 목소리가 온 방 안을 가득 메우는 듯했다.
“그나저나, 혹시, 이 여자가 한유리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건가요?”
정 검사가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냈다. 역시, 검사의 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글쎄요. 아직은 말씀드릴 수 있는 단계는 아닌 것 같네요.”
“그렇군요. 아무튼, 부장님! 부장님이 저한테 이 사건 같이 해보자고 하셨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박장우 이 자식! 어떻게 천사 같은 한유리를 그렇게 잔인하게…….”
어휴, 정 검사가 코를 벌름거리며 씩씩거렸다. 마치, 가족 중에 한 명이 변을 당한 것 같은 분함이었다.
“정 검사님 한유리 팬이셨나 보네요?”
“네. 물론이죠. 광팬이었습니다. ‘퀸이날다’라고 공식 팬카페도 가입했거든요.”
“그렇군요.”
후후후, 순수한 청년이었다.
“참! 제가 드린 공판 자료는 잘 분석하고 계시는 거죠?”
“넵! 물론이죠. 지금 열심히 분석 중입니다. 조만간, 분석된 자료 브리핑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치, 갓 자대 배치를 받은 이등병과 같은 모습이었다.
“공판 과정에서 빠진 것이 없나 철저하게 검토해 주세요.”
“네! 부장님!”
정 검사가 또다시 차렷 자세를 취했다.
“정 검사… 혹시, 출신 부대가 어디예요? 혹시, 해병대?”
“그… 게….”
정 검사가 우물쭈물 말을 잇지 못했다.
“나도 해병대 출신인데, 음…… 해병대는 아닌가요?”
“그게… 솔직히, 저 신의 아들입니다.”
정 검사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신… 의 아들이오? 그게 뭐죠?”
“사실, 저 면제입니다.”
정 검사가 몸을 배배 꼬며 말했다.
“아… 아, 그렇군요. 아무튼, 최대한 빨리 이 여자 인적 사항 좀 조사해줘요.”
나는 이마를 긁적거리며 어색한 미소를 띠었다. 나는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네! 알겠습니다.”
목소리가 시원시원하긴 했다.
킹 메이킹 시스템이 이 여자의 프로필을 내게 제공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야…….
나는 뒤뚱뒤뚱 걸어 나가는 정 검사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 * *
며칠 후,
<강남, XX 곱창집>.
전중호 차장이 자신이 단골로 다니는 곱창집에 나를 데리고 갔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술 한잔하자는 그의 의도였다.
“김 부장, 아니 정환아! 여기 곱창이 죽인다. 오늘 아주 제대로 즐겨보자.”
전중호 차장이 작정한 듯이 눈을 빛냈다.
전중호 차장이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는 의미!
그는 다른 검사들의 이름을 쉽사리 부르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부하검사의 이름을 부른다는 건, 그만큼 그 사람을 신뢰한다는 뜻이고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네. 차장님!”
“야… 야… 정환아! 사석에서는 그냥 형이라고 불러. 불편하게 웬 존칭이야. 우리 사이에!”
지글지글.
전중호 차장이 불판에 먹음직스러운 곱창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아… 네.”
“그나저나, 네 인사카드를 보니까 양친이 안 계시던데….”
전중호 차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제가 어렸을 때, 두 분 다 돌아가셨습니다.”
“흠… 그렇구나. 어린 나이에 고생이 많았겠네. 자 받아!”
전중호 차장이 소주잔에 술을 가득 채워 내밀었다.
“네.”
“흠…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했으니 하늘에 계신 부모님도 더없이 행복하실 거야.”
“…….”
“음… 오늘은 내가 사는 거니까, 아주 허리띠 풀어놓고 대취하도록 마셔보자! 건배!”
전중호 차장이 소주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아줌마! 여기 모둠 세 개랑 소주 한 병, 아니, 한 서너 병 주세요!”
전중호 차장이 작정한 듯 주문했다.
“네! 네! 차장님!”
이미 안면이 있었던지 주인아주머니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 마시자! 오늘 그동안 묵혔던 목구멍에 떼 좀 벗겨내 보자고!”
그렇게 두어 시간이 흘렀고 빈 소주병만 벌써 8병이 테이블 위를 뒹굴고 있었다.
“정환아!”
딸꾹,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른 전중호 차장이 딸꾹질하며 내 이름을 불렀다.
“네. 차장님!”
“또! 또!”
전중호 차장이 검지를 내밀며 인상을 썼다.
“네… 형님!”
“흠… 이번 재판 반드시 이겨야 한다!”
딸꾹, 전중호 차장이 몸을 가누지 못해 비틀거리며 연거푸 딸꾹질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 가지고는 안돼! 반드시, 반드시 정명수! 밟아버려야 해! 그게 내 소원이다, 정환아! 이 인간 변호사가 되어서도 버릇을 못 고쳤어! 반드시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야 해!”
그가 코를 벌름거리며 콧바람을 내뱉었다.
전준호와 정명수!
두 사람은 사법연수원 동기로 평검사 시절부터 앙숙으로 유명했다. 전중호 차장이 호탕한 성격으로 인간관계가 원만했던 반면 정명수 변호사는 강골이긴 했지만, 권모술수에도 능했고 독불장군 스타일이었다. 전중호 차장이 정도를 걸어왔던 반면, 정명수 변호사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하려 했으며, 그 과정에서 수차례 전중호 차장을 위기에 빠뜨린 적도 있었다. 그 결과, 전중호 차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감찰조사를 받고 면직당할 위기에 놓이기도 했었다. 물론 이후 조사 결과 무혐의 판정을 받기는 했지만, 아무튼, 둘 사이는 물과 기름, 견원지간(犬猿之間])이나 다름없었다.
“네… 가 꼭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해! 반드시, 꼭!”
털썩, 그 순간 전중호 차장이 테이블 위로 쓰러졌다. 이미 치사량이 넘도록 마신 듯했다.
“차장님! 차장님!”
아무리 흔들어 깨우려 했지만, 그는 꿈쩍도 안 했다.
<전중호 차장의 오피스텔>.
“택시! 택시!”
나는 할 수 없이 그를 둘러업고 택시를 탔다. 그의 지갑 속 주민등록증 주소를 확인하고 찾아간 그의 집은 놀랍게도 지검에서 멀리 않은 곳에 있는 소형 오피스텔이었다.
후, 서울중앙지검, 차장 검사가 이런 곳에서 살다니…….
아니나 다를까, 전중호 차장의 오피스텔은 12평 남짓한 원룸이었다.
털썩,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그를 침대에 눕혔다.
침대 머리맡에 놓인 단란한 가족사진!
사모님과 두 명의 자제분의 사진인 것 같았다.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사는 모양이었다.
그래! 나를 처음으로 끝까지 믿어준 분!
이 정도의 청렴함이면 평생 믿고 따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번 사건을 반드시 승리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다음 날,
<김정환 부장실>.
정 검사가 옆구리에 서류봉투를 낀 체, 급히 내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검사님! 말씀하신 이수연의 신상 조사 자료를 가지고 왔습니다. 여기 보십시오.”
정 검사가 뒤뚱거리며 들어와 책상 위에 서류봉투를 올려놓았다.
“헐, 벌써 조사하신 겁니까? 엄청 빠르신데요? 전 좀 더 걸릴 거로 생각했는데.”
“넵! 총알같이 구해왔죠. 물론, 제가 직접 한 건 아니지만 아무튼, 최대한 뽑아낼 수 있는 건 다 뽑아냈습니다.”
정 검사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턱을 내밀었다.
“수고하셨어요!”
나는 천천히 서류봉투를 열어보았다.
이수연, 21세, 거주지는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 XX 아파트 거주. 양친은 모두 살아있으며, 형제는 남동생 하나.
지극히 평범한 프로필이었다. 도대체 이 여자가 박장우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나는 점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건 뭐지?
신상정보를 읽어내려가던 내 눈이 중간쯤에서 멈춰졌다.
이수 여자대학교, 무용과 2학년 휴학?
“정 검사님, 왜 이수연이 휴학인 거죠?”
“그게, 저도 정확히는 알 수 없는데 작년에 휴학했더라고요. 학교에 알아보니 그냥, 가사 휴학이라고만 적혀 있었습니다.”
“그럼 이수연은 돈 때문에 휴학한 상태란 말인데, 그럼 학교 휴학하고 아르바이트 같은 것을 하는 건가요?”
“사실, 그게 현재 행방불명입니다.”
정 검사가 턱 주변을 매만지며 말했다.
“행방불명이오?”
“네. 올 초에 학교에 간다고 집을 나선 후에 여태까지 돌아오지 않았다는군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