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70화] 송민준의 최후 & 어느 톱스타의 죽음 (1)
<서울 중앙 지방 법원 408호 법정>.
“사형일까? 무기징역일까?”
“설마, 어이없는 결과는 아니겠지?”
세기의 재판을 지켜보기 위한 수많은 방청객과 기자들로 법정은 북새통을 이뤘다.
“검사! 구형하세요!”
“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검사석에서 일어났다.
“피고, 송민준은 자신과는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는 박정은을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하고 증거를 위조해 무고한 자신의 매형, 이현우에게 그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습니다. 이는 반인륜적인 패륜 행위이고, 반사회적 행위라고 단정 지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피고의 불우한 유년 시절과 초범임을 고려할지라도 그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판단됩니다. 그런데도 피고는 여전히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부를 이용해 수많은 사람을 유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진실의 가장 큰 적은 거짓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누군가 말했습니다. 결국, 피고의 삐뚤어진 믿음은 무고한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냈습니다. 생명을 경시하고 물질만능주의에 젖어 인간의 선한 본성을 내팽개쳐버린 피고와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라도 법의 준엄한 심판이 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본, 검사는 피고 송민준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합니다.
또한! 본 검사는 이 자리를 빌려 다짐합니다. 현재, 피고 송민준은 박정은 살해에 국한돼 기소되었지만, 본 검사는 여전히 피고가 서남부 연쇄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영원히 그 죄가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본 검사는 1년이든 10년이든 시간이 걸릴지라도 반드시 피고의 남은 여죄까지도 낱낱이 밝혀 억울하게 죽은 나머지 피해자들의 넋을 달래줄 것이라고 맹세합니다! 이상입니다!”
짝짝짝,
“거 참! 시원시원하군!”
“사필귀정이야.”
법정을 찾은 수많은 방청객들이 참담한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기대해도 좋습니다. 송민준 씨! 언젠가는 반드시 당신의 죄를 밝혀낼 겁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띠며 앉아있던 그를 응시했다.
<선고 공판. 408호 법정>.
“선고하겠습니다. 피고 송민준을 무기징역에 언도한다!”
송민준은 매머드급 변호인단을 구성해 필사적으로 자신을 변호했지만, 워낙 반대 여론이 들끓었고 명백한 증거들이 속속 나오는 바람에 중형을 피할 수 없었다.
죽은 레이첼의 진료기록, 박상은과 김정자의 자백, 그리고 그의 살인 행각을 도왔던 송민준의 숨겨진 수행비서 정도진의 검거를 통해 송민준은 박정은의 살해 혐의로 기소되었고 모든 기소 사실이 법정에서 인정되었다. 또한, 레이첼의 진료기록과 한국에서의 수사 자료를 바탕으로 미국에서도 재수사에 들어갔고 결국, 송민준이 스티브 김이라는 한국계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해 자작극을 벌였던 정황이 포착되었다.
결국, 미국에서도 레이첼 살해 협의가 적용돼 또다시 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김정환 검사실>.
이현우 검사가 양손에 커피를 들고 내 방을 찾았다.
“선배님, 사모님은 유럽에서 돌아오셨습니까?”
“어. 며칠 전에 돌아왔어.”
“사모님과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음…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 보기로 했어. 우린 지금까지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아. 이번 기회에 서로에 관해서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어.”
“그러시군요. 음,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정리되겠지요.”
“그나저나, 너무 아쉽군. 송민준이 나머지 피해자들을 죽인 게 틀림없는데.”
이현우가 입술을 잘근거렸다.
“저도 그 부분이 뼈 아픕니다. 하지만, 송민준이 너무 완벽했어요. 현재로선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정말, 이 부분은 두고두고 뼈아픈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참! 그리고 양복이야. 처남이 나랑 체격도 비슷하고 우리 집안 남자들은 다들 한두 벌은 가지고 있으니 그렇다 쳐도, 그 매듭을 처남이 사용한 거란 걸 어떻게 안 거야. 사실, 산악등반도 처남이 권유해서 시작했거든. 그게 나를 이렇게 옭아매려고 했던 것도 모르고…….”
이현우 검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맞아요. 송민준은 전문 산악인이었죠. 미국 유학 생활 시절에도 여러 번 히말라야 등반을 했었습니다. 음…… 이 사진을 보시죠. 송민준을 수사했던 윌리엄이 참고될지 모르겠다며 보내준 사진이에요.”
나는 이현우 검사에게 사진 몇 장을 보여주었다. 송민준이 미국에 있을 때 찍은 사진으로 매듭에 묶여 괴로워하는 여자들의 사진이었다. 매듭의 형태가 연쇄살인 피해자들을 묶은 매듭과 동일했다.
“헐, 이건 뭐야? 미국에서도 이렇게 가학적인 변태 생활을 했었군! 그나저나 이걸 왜 법정에 내놓지 않은 거야?”
이현우 검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상황에선 이 정도 가지곤 유죄를 입증하지 못합니다. 다만, 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증거를 수집해서 반드시 유죄를 밝힐 거예요.”
“김 검은 꼭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야. 나도 도울 일 있으면 도울게. 그나저나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장인어른은 송민준이 자신의 송민규를 죽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아마도 알고 있었을 거라고 추측됩니다. 그랬으니 미국의 정관계 인사를 동원해 필사적으로 송민준을 변호했겠죠. 아들이라곤 그 밖에 남질 않았으니…….”
“그렇다면, 장인어른의 죽음도 혹시……?”
이현우 검사가 설마라는 표정을 지었다.
“선배님이 생각하시는 것이 맞을 거예요. 심정은 그렇지만, 그것도 물증이 없습니다. 그 부분도 추후에 반드시 캐낼 거예요.”
나는 양 주먹에 힘을 주었다.
“흠…… 그럴 수도 있겠구먼.”
이현우가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그나저나, 선배님은 진짜 은퇴하실 겁니까?”
“어! 이제 이 생활도 지긋지긋해. 은퇴하고 당분간 여행이나 하면서 유유자적하고 싶어!”
“…….”
“참, 좋은 소식 하나 더 있어!”
이현우 검사가 밝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무슨 소식요?”
“음, 강력부 부부장 김정환 검사! 축하해?”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김 검사, 오늘부로 강력부 부부장으로 발령 났어. 부장 자리도 공석이니 이제 강력부는 당신이 접수하는 거야! 곧, 부장 자리도 꿰찰 거야!”
하하하, 이현우 검사가 목젖이 보이만큼 크게 웃었다.
[킹 메이킹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그 순간, 한동안 잠잠했던 낮고 굵은 목소리가 지면을 울렸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스스로 능력으로 사건을 해결하셨습니다. 이에, 능력치를 1단계 업그레이드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승급 포인트 100 포인트를 지급합니다.]
“뭐야? 그동안 잠잠하더니…….”
쩝, 나는 입맛을 다셨다.
“김 검사? 뭘 그렇게 중얼거려?”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전중호 차장실>.
나는 전중호 차장의 부름을 받고 그의 방을 찾았다.
“흠, 조금 아쉽긴 하지만, 수고했어. 김 검사! 아… 아니지, 김 부장!”
전중호 차장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감사합니다.”
“앉지!”
“네.”
“음…… 이번 일 마무리 잘한 것도 있지만, 위에서 자네를 좋게 본 모양이야. 일단, 부부장 검사 타이틀이지만 아무래도 부장 자리가 공석으로 있으니 한 1~2년 근무하다 앞에 붙은 부자는 빼버리자고!”
전중호 차장이 환하게 웃었다.
“과찬이십니다.”
“앞으로 우리 일당백, 강력부 잘 부탁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음, 그리고, 송민준 건은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찬찬히 뜯어보자고. 내가 생각해도 놈이 연쇄살인범이 맞는데 말이야.”
전중호 차장이 코끝을 찡그렸다.
“네. 맞습니다. 반드시, 협의를 밝혀내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아무튼,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야. 열심히 해보자고!”
하하하, 전중호 차장이 등을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 * *
며칠 후, 토요일.
<김정환 검사실>.
주말이었지만 나는 정리할 것이 있어 지검에 나와 일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장 검은 잘 있으려나? 이 사건도 사실 장 검 때문에 실마리가 풀린 건데 밥이라도 사야 할 텐데 말이야.
띠리리링.
그 순간, 전화벨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려 퍼졌다.
“선배님! 승진 축하해요!”
싱그러운 장 검의 목소리, 언제나 청량감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녀도 양반은 못되나 보다!
“어떻게 알았어? 나도 이제 막 차장님한테 들은 얘긴데?”
“흠, 원래 이런 소문은 지방이 더 빨라요. 여긴, 어떡하든 서울로 가려고 안달 난 사람 천지라 정보가 LTE 급이죠.”
“아무튼, 고마워! 장 검 덕이야. 지난번에 장 검한테 도움받은 것도 있고 장 검이랑 밥 한번 먹어야 할 텐데.”
“음…… 지금 먹으면 되죠!”
“뭐? 지금 먹자고?”
“네. 음, 선배님 창가 쪽으로 나와 보세요!”
“뭐? 창가는 왜?”
나는 휴대전화를 들고 창가 쪽으로 걸어 나와 블라인드를 올렸다.
헐, 장 검?
나를 향해 흔들어 주는 가느다란 손, 꽃처럼 피어나는 상큼한 보조개, 분명 내가 알고 있던 장 검이었다.
“장 검!”
나도 모르게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네. 선배님! 놀라셨어요?”
“어. 조금…….”
“혹시, 지금 나오실 수 있어요?”
“어… 어, 그래. 어차피 지금 퇴근하려고 했어!”
할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장 검이 더 중요했다.
“정말요? 그럼 빨리 내려오세요. 저랑 같이 가실 데가 있어요.”
“어디…… 를?”
“일단 내려오세요!”
“그래, 알았어!”
나는 정신없이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선배님, 얼른 차에 타세요. 급히 갈 곳이 있어요.”
장 검이 나를 보자마자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어딜 가는데?”
“가보시면 알아요!”
<연희동, 장 검의 집>.
장 검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장 검의 집이었다.
“여기가 어디야?”
“우리 집이에요.”
장 검이 차에서 내려 팔을 잡아당겼다.
“자…… 장 검. 뭐야? 왜 여기로 나를…….”
“사실, 오늘이 우리 아빠 환갑이신데 선배님이랑 식사나 하려고요. 아까 밥 먹자고 했잖아요.”
“그렇긴 한데, 이건 좀…….”
나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후, 사실은 선배님…….”
장 검이 우물쭈물 말을 잇지 못했다.
“왜? 뭔데?”
“진짜 어려운 부탁인데요. 들어주실 거죠?”
“글쎄, 들어줄 만하면 들어주겠지만…… 지금 상황은 좀….”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들어주신다고 하세요. 제발!”
장 검이 내 팔을 흔들며 입술을 내밀었다.
“흠, 좋아, 어차피 내가 신세 진 것도 있으니까 말해봐.”
“진짜죠? 그럼 말할게요. 사실은 오늘이 우리 아빠 환갑이라 서울에 올라왔거든요. 근데요. 우리 아빠는 제가 남자친구가 있는 줄 알아요. 그래서…….”
장 검이 혀를 내밀며 말을 잇지 못했다.
불안하다! 지금 이 여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그… 그래서?”
“오늘만 제 남자친구가 돼주세요!”
아뿔싸! 항상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했던가?
“뭐? 나! 못 해. 장 검, 나 간다.”
나는 지체없이 몸을 돌렸다.
“헐, 뭐예요. 뭐든 들어주신다면서요.”
장 검이 돌아서는 내 팔을 잡아당겼다.
“영은아! 거기서 뭐 해!”
그 순간,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중년의 신사가 장 검의 이름을 불렀다.
“어, 아빠!”
아빠?
그분은 장 검의 아버지였다.
“누구니?”
“어… 어… 내가 말한 그 남자친구! 정환 씨, 인사해!”
장 검이 옆구리를 찌르며 눈치를 줬다. 장 검의 능숙한 거짓말에 난 어이가 없었다.
“아…… 안녕하세요. 김정환이라고 합니다.”
“아, 그래요? 반가워요. 난, 영은이 아비 되는 사람이올시다.”
어르신이 내 양손을 덥석 잡았다.
“여보, 빨리 이리 와봐요. 영은이 신랑감 왔어!”
그 순간, 어르신이 대문에 대고 소리를 쳤다.
헐, 신랑감? 난감하군.
‘미안해요!’
장 검이 나를 보며 입 모양만 뻥긋거렸다.
“어머 어머, 영은이 신랑감이 왔다고요?”
그 순간, 인상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왔다.
“어머, 잘생겼네. 키도 크고! 이름이?”
“네……. 김정환입니다.”
“반가워요. 난 우리 영은이 엄마예요.”
장 검의 모친이 내 몸을 이곳저곳 만지며 말했다.
“어…… 엄마, 여기서 이러지 말고 일단 들어가자. 음식 식겠다.”
당황한 장 검이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래요. 먼 길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어르신도 장 검의 말을 거들었다.
“그나저나, 여보, 진짜 영은이가 남자친구가 있었나 봐요?”
아주머니가 놀란 표정으로 연신 나를 힐긋거렸다.
“그러게. 아주 착실하게 생긴 청년이구먼.”
어르신도 내 얼굴을 힐끗거렸다.
잠시 후,
“차린 건 없지만 어서 들어요.”
“네…… 잘 먹겠습니다.”
차린 것이 없다니?
난 생전 먹어본 적도 없는 음식들이 즐비했다.
“고향은 어디에요?”
“우리 영은이가 어디가 그렇게 좋았슈?”
끝도 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덧, 이틀 같은 2시간이 지났다.
“음. 그럼, 정환 씨는 우리 영은이랑 언제부터 사귄 거예요?”
장 검 어머니가 쉴 새 없이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엄마, 정환 씨는 지금 가봐야 돼. 지금 정신없이 바쁘거든. 여기도 간신히 시간 내서 온 거야.”
“그래도…… 좀 더 있다 가지.”
아주머니의 표정에 아쉬움이 잔뜩 묻어있었다.
“아냐, 나랏일을 보는 사람이 그러면 쓰나. 정환 군, 어서 일어나시게.”
눈치 빠른 어르신이 거들었다.
다행이군!
나는 그나마 어르신 덕분에 위기를 탈출할 수 있었다.
<장 검의 집 앞>.
“선배님, 진짜, 진짜 미안해요. 엄마가 하도 선을 보라고 성화하셔서 어쩔 수 없이 그랬어요.”
장 검이 손바닥으로 어깨를 문지르며 말했다.
“아냐 아냐, 나도 오늘 즐거웠어. 음식도 맛있었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한 분위기였어.”
“정말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근데 사실 꼭 엄마 때문은 아니에요.”
헤헤, 장 검이 혀를 내밀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달빛 아래 비치는 그녀의 보조개는 언제나 상큼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나저나 밥 사는 건 이걸로 퉁쳐요.”
장 검이 발그레한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그래? 싱겁긴…… 그리고 이건 이거고, 내가 밥은 사야지. 조만간, 순천에 한 번 내려갈게. 그럼, 나 간다.”
“네. 선배님! 오늘 너무 고마웠어요! 그리고 승진하신 거 다시 한번 축하해요.”
장 검이 길을 나서는 내 뒤에 대고 소리쳤다.
우리 아버지도 살아계셨으면 장 검 아버님과 비슷하셨을 텐데, 우리 엄마는 뭐 하실까?
엄마! 나, 성공할게. 두고 봐요. 당신 아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칡흙 같은 어둠에 삼켜진 초승달이 슬퍼 보였다.
일주일 후,
<전중호 차장실>.
“음, 김부장, 앉게!”
“네? 아네. 아직, 부장이란 타이틀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차장님!”
“후후, 그런가? 그런 거야. 뭐 차차 적응할 게고.”
“네. 차장님!”
“좋아! 앞으로 우리 강력부는 김 부장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해!”
“네.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 좀 검토해봐.”
전중호 차장이 두툼한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한유리 살인사건 관련 서류]
표지에 적혀 있던 타이틀이었다.
“……….”
"한유리라고 몰라? 그 뭐냐, 더퀸의 리더 겸 메인보컬이잖아."
한유리는 등장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그룹 더퀸의 메인보컬로 뛰어난 가창력과 미모를 겸비한 가수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다 의문의 사고로 죽은 사건이었다. 살해 용의자는 남자친구, 박장우로 최근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전도유망한 투수였다. 1심선 유죄가 인정돼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으나, 피고 측에서 항소한 2심에서는 무죄판결을 받은 특이한 사건이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 일단, 수사 자료가 넘어왔으니까 우리 쪽에서 검토해야 할 거야. 워낙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니까 김 부장이 직접 맡아서 처리해!”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일단 용의자가 야구선순데 김 검도 알다시피 박장우야. 1심에선 무기징역이 선고됐다가 2심에서 무죄로 완전히 뒤집힌 사건이야. 우리 쪽에서 상고해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되어 넘어온 사건이니까 자네가 이번 사건 한 번 맡아봐. 상대는 그 유명한 정명수 변호사니 만만치 않을 테니, 바짝 긴장해야 할 거야.”
전중호 차장이 콧날을 매만지며 미간을 좁혔다.
“톱스타, 한유리라…… 게다가 박장우가 용의자라?”
나는 천천히 수사자료를 넘겨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