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69화 (69/170)

# 69

[69화] 작전명, 몬테스 타이타 (2)

<전중호 차장실>.

“바로 그 점을 송민준이 노린 것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자신이 빠져나갈 준비는 완벽하게 해두었던 거죠. 일단, 정황 증거만 가지고 자기를 구속할 수 없다는 것을 계산해 뒀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성급하게 체포 영장을 발부하길 기다렸던 거죠. 일단, 자신의 유죄를 우리가 입증하지 못하면 자신은 완전히 용의 선상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리고 그 화살은 선배님께로 돌아갈 것까지 미리 염두해둔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수사 방향을 꿰고 있던 박 수사관이 자신의 스파이였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나는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나갔다.

“후우, 그러니까 김 검이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속아줬던 거란 말이지? 하긴, 나도 좀 이상했어. 그 정도 정황 증거를 가지고 김 검이 너무 섣불리 체포 영장을 발부한 건 아닌가, 찜찜했거든!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먼.”

햐아, 전중호 차장이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또 하나, 박 수사관은 결정적인 실수를 했습니다.”

“그게 뭐지?”

“전, 이미 조사를 해둬 알고 있었지만 그를 떠보기위해 송민준의 미국 생활에 관련된 자료를 조사해달라고 부탁을 했죠. 그가 송민준의 스파이라는 것을 확인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됐지?”

전중호 차장이 매의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예상했던 대로 송민준이 자신의 여자 친구를 죽인 살해 용의자로 검거된 사건 자료를 가져왔더라고요. 물론, 몇 가지 중요한 정보는 누락한 채로 말입니다.”

“누락? 그게 뭔가?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시게!”

“송민준은 미국 생활 시절 자신의 연인인 레이첼을 죽인 혐의를 받게 되었죠.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레이첼을 칼로 살해했다는 혐의였습니다. 물론, 송 회장의 필사적인 방어와 그의 입장에서는 천만다행으로 새로운 용의자가 등장하는 바람에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죠.”

“근데, 뭐가 문제였다는 거지?”

“네. 말씀드리죠. 저도 하마터면 놓칠뻔했던 포인트가 있었습니다. 두 분, 이 사진들을 보시죠. 특히 입술과 목 주변을 유심히 봐주시죠.”

나는 두 장의 사진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한 장의 사진은 포도 알레르기가 있는 일반인, 또 한 장은 죽은 레이첼의 사진이었다.

“흠, 입술이 푸르스름하게 부풀어 올랐고, 어디 보자… 그리고 목 부위에 울긋불긋 두드러기 같은 게 보이는데?”

전중호 차장이 사진을 자세히 살펴봤다.

“맞습니다. 차장님! 알레르기가 맞아요. 저희 아버님도 포도 알레르기가 있었거든요. 같은 증세입니다.”

이현우 검사가 말을 덧붙였다.

“네. 선배님 말대로 두드러기가 맞습니다. 두 사진의 공통점은 포도 껍질에 있는 타닌이란 성분의 알레르기 반응입니다. 저도 우연히 티비에 방송하는 건강 프로그램을 보다 알게 된 사실이죠.”

“그게 뭐가 문제가 된다는 거지? 포도를 먹었거나 그 성분이 들어있는 음료를 먹었을 수도 있잖아!”

전중호 차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장님! 바로 그 부분이 포인트입니다. 미국 측에서 보내온 수사자료에 따르면 송민준은 사건 당일, 레이첼의 생일선물로 와인을 사가지고 갔다고 진술했다고 되어있습니다. 게다가, 집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레이첼이 죽어있었다고 했죠. 본인 역시, 괴한의 공격을 받아 정신을 잃었다고 진술했습니다. 당연히, 아직 오픈하지 않은 와인이 현장에서 발견됐었죠!”

나는 검지를 펴서 앞쪽으로 내밀며 말했다.

“그럼, 그 와인은 트릭이었단 말이군. 결국, 레이첼이란 여자가 와인을 마셨다는 결론이야. 물론, 그 안에는 수면제나 정신을 잃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겠지!”

지금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이현우 검사가 목소리 톤을 높였다.

“네. 맞습니다. 여기서 의문점 하나가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혼까지 약속한 연인인 레이첼이 포도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도 몰랐던 그인데 박 수사관의 말대로 송민준이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었던 걸까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던거죠. 그녀가 분명 송민준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포도 알레르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을 위해 준비한 송민준의 성의를 무시하지 않았으니까요!”

“음… 이제야 좀 감이 오는군! 그러니까, 송민준은 와인에 무언가 타서 그녀에게 먹인 후, 그녀를 살해했고 자신도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은 것처럼 자작극을 벌였다는 거군!”

“네. 맞습니다.”

“그런데 말이야. 여기서 또 한 가지 의문점이 있는데, 그쪽 검사들이 그걸 몰랐을까? 부검을 하면 명확하게 나왔을 텐데 말이야?”

전중호 차장이 코끝을 매만지며 의아해했다.

“그게, 레이첼의 가족들이 부검을 결사반대했더군요. 이유는 충분히 추론이 가능하시라 생각됩니다!”

“역시, 송 회장이 손을 쓴 게로군! 돈으로 그녀의 가족을 매수한 거야!”

후우, 전중호 차장이 답답한지 넥타이를 풀어헤쳤다.

“맞습니다. 바로 그 부분이 당시 담당 검사인 윌리엄의 입장에서는 뼈 아픈 부분이었죠. 이후, 송 회장이 지인을 통해 전방위적인 로비를 펼쳤고 용의자는 검거가 되지 않자 사건은 흐지부지됐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레이첼도 송민준도 미국 국적이 아니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듯합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나저나, 그쪽도 어쩔 수 없이 사건을 접었다면 우리도 증거를 확보하기 힘든 것 아냐? 증거를 어떻게 확보하지?”

전중호 차장이 미간을 좁혔다.

“그래서, 제가 차장님께 부탁 하나를 하려고 합니다!”

“그게 뭐야? 뭐든 말해봐!”

“일단, 미국 보건당국에 레이첼의 의료 기록을 요청해 주십시오. 분명, 레이첼은 포도 알레르기 때문에 진료를 받은 기록이 있을 겁니다. 반드시, 그 기록이 필요합니다. 차장님!”

“알았어… 그건 내가 알아서 하지.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가지곤 박 수사관이 송민준의 스파이라는 것을 입증하기엔 2% 부족한 감이 있는데?”

전중호 차장이 덥수룩한 턱수염을 매만졌다.

“네. 그렇죠. 저도 100% 확신할 순 없었지만, 박 수사관이 자승자박(自繩自縛])을 하는 바람에….”

“자승자박?”

“네. 제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은 선배님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했던 김정자 씨입니다. 박 수사관이 선배님을 범인으로 몰기 위해 그녀에게 거짓 증언을 받아온 거죠!”

“맞습니다. 그분이 우리 집 가정부로 일했던 건 맞지만, 하도 도벽도 심하고 기억력도 가물가물해서 어쩔 수 없이 내보낼 수밖에 없었어요. 그랬더니 앙심을 품고 우리 집안에 관한 괴소문을 퍼뜨렸죠. 어머니가 새어머니 때문에 자살했다는 등, 제가 관음증 환자라는 등 그랬던 거 같습니다. 어머니는 지병으로 돌아가셨던 거였거든요. 하지만, 그간 정도 있고 해서 우리도 별다른 조치를 하진 않았죠. 그러다 말겠거니 했습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군. 믿어지지 않아!”

전중호 차장이 주먹을 말아 쥐며 이마를 두드렸다.

“저 역시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정황이 확실했습니다. 그때 확실히 선배님이 범인이 아닌 걸 알게 된 거죠.”

나는 이현우 검사의 얼굴을 쳐다봤다.

“좋아! 그나저나, 이번 사건의 스모킹 건은 사라진 송민준의 휴대전화 아냐? 그걸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 같은데?”

전중호 차장이 양손을 모아 주무르며 말했다.

“그래서, 제가 미리 밑밥을 뿌려뒀습니다.”

이현우 검사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 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제가 처남을 만나 수사의 초점이 저한테 맞춰진 것 같다고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이현우 검사가 눈을 감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처남, 아무래도 김정환 검사가 나를 진범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 같아! 어떡하지? 흠… 그 휴대전화만 발견되면 난 꼼짝없이 당할 거야. 내가 아무리 결백을 주장해도 소용없잖아.”

이현우 검사가 연거푸 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윗선에 줄을 좀 대보겠습니다.”

또르르, 송민준이 잔에 술을 따랐다.

“아냐! 사건이 사건인 만큼 이번엔 힘들 거야. 어쩌지? 그나저나 그나마 다행인 게 아직 수사팀에서 그 휴대전화를 찾아내지 못한 것 같아! 흠… 없어졌겠지? 수사팀이 못 찾겠지? 그렇지?”

이현우 검사가 송민준의 팔을 잡고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다.

“음… 네. 못 찾을 거예요. 아마도 누가 수거해가서 해외에 중고 폰으로 팔았을 겁니다. 분실 휴대전화들 거의 그렇게 해외로 나가잖습니까?”

송민준이 이현우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렇겠지? 그거만 없으면 나도 해볼 만하거든!”

<전중호 차장실>.

“그래서, 어떻게 됐나? 송민준이 미끼를 물던가?”

드르륵, 전중호 차장이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네. 다행히 실수하더군요. 전, 적어도 송민준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익명의 소포쯤으로 우리에게 휴대전화를 넘길 것으로 생각했는데, 본인 스스로 휴대전화를 가지고 왔더군요.”

“그건 왜 그런 거지? 그렇게 치밀한 사람이?”

“첫째는 그 휴대전화를 익명의 소포로 보낸다고 해도 자신이 보낸 것임을 우리가 눈치챌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자만심이었겠죠! 세상에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을 거라는 자만심! 너희가 나를 잡아? 어디 잡아볼 테면 잡아보라는 심리였을 겁니다.”

“흠… 그랬군. 일리 있는 말이야. 이제야, 자네와 이 검이 나를 찾은 이유를 알겠어! 그러니까, 미국에서 레이첼의 진료기록이 도착할 때까지 송민준을 안심시키기 위해 이 검을 대신 수감하겠다는 건가?”

“네. 맞습니다.”

“이 검, 괜찮겠어?”

전중호 차장이 슬그머니 이현우 검사의 얼굴을 쳐다봤다.

“네.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김정환 검사 아니었으면 하마터면 연쇄살인범이 될 뻔하지 않았습니까?”

이현우 검사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좋아! 두 사람이 이미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면, 나야 뭐. 믿고 가는 수밖에… 그건 그렇고 일단 지검장님을 설득하려면 작전명이라도 알아야 하는 거 아냐? 임 검! 이번 작전명이 뭐야?”

전중호 차장이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몬테스 타이타! 몬테스 타이타가 이번 작전의 작전명입니다.”

“흠… 그 칠레산 와인인 몬테스 타이타를 말하는 건가?”

“네. 맞습니다.”

“몬테스 타이타라… 음, 그 치명적인 달콤함이 결국 송인준에겐 독주가 되었구먼!”

<합동 수사본부, 회의실>.

“나…… 난 아니야? 내가 왜 그런 미친 짓을 해? 검사님! 지금 이게 무슨 소립니까? 전 아닙니다. 아니에요!”

박 수사관이 뒷걸음질을 치며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후, 제가 뒷조사를 좀 해보니, 최근 고향인 대구에 엄청난 땅을 매입하셨더군요. 수사관님 월급으론 감당하기 힘든 규모던데, 무슨 로또라도 맞으셨던가요?”

강상중 팀장이 날카롭게 박 수사관을 응시했다.

“그… 건, 아냐. 아니라고 검사님! 전 아닙니다. 믿어주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혹시나 찾아갈까 봐 김정자 씨를 고향으로 보내놓고 수시로 들러서 세뇌한 거 아닙니까? 안 그러면 연고는 없는 목포에는 내려갈 이유가 없잖아요.”

“아냐 아냐! 아니라고!”

박 수사관이 무릎을 꿇고는 내 바짓단을 잡아당겼다.

“흠… 아니라면 나중에 절차를 밟아 소명하시면 될 겁니다. 수사관님!”

“박 형사, 연행해!”

강상중 팀장이 밖에서 대기 중인 박 형사와 경찰들을 불러들였다.

“아냐… 아니라고, 난 절대 아니라고!”

박 수사관이 질질 끌려가며 절규했다.

“흠, 검사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도 진짜 긴가민가 고민했는데….”

강상중 팀장이 혀를 내둘렀다.

“팀장님도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아뇨. 저야 뭐. 검사님이 시키신 대로 했을 뿐인데요. 뭐. 그나저나 이제 송민준이 잡아 와야죠.”

“네. 체포 영장 발부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확보된 증인들 보호에도 만전을 기해 주세요.”

“후, 넵! 지독한 놈! 이제야 잡아 혀 넣을 수 있는 건가?”

강상중 팀장이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 * *

.

“송민준 씨, 당신을 박정은 씨 살해 용의자로 체포합니다.”

“놔. 내 발로 들어갈 테니. 난 내 슈트에 너희 같은 벌레들이 스멀거리는 게 죽기보다 싫거든?”

강상중 팀장이 송민준에게 수갑을 채우려고 하자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

“송민준 씨, 한 말씀만 해주시죠! 레이첼 살인사건이 자작극으로 밝혀졌는데 그럼, 송민규 씨도 경영 승계를 노리고 살해하셨던 겁니까?”

송민준이 호송차에 내려 검찰로 들어가려 하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송민준 씨, 박정은 씨를 살해한 것이 맞습니까?”

“나머지 피해자들도 송민준 씨 본인이 죽인 것입니까?”

기자들이 봇물 쏟아지듯 질문을 토해냈다.

“전, 아무도 죽이지 않습니다. 100% 조작이고 모략입니다. 저는 이에 강력하게 대응할 것입니다. H 그룹의 명예를 걸고 절대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전 무고합니다.”

획, 송민준이 기자 쪽으로 몸을 돌려 항변했다. 이것이 대중 앞에 선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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