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68화] 작전명, 몬테스 타이타 (1)
<합동 수사본부>.
나는 박 수사관, 강상중 팀장과 함께 회의실로 들어갔다.
“두 분 모두 자리에 앉으시죠!”
“네. 검사님!”
“검사님, 좀 전에 하신 말씀이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이현우가 범인이 아니라요?”
박 수사관이 이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평소에 보이지 않는 행동이었다.
“네. 지금부터 차근차근 설명을 드리지요. 놀라지 마십시오.”
나는 두 사람의 눈을 마주 보며 말문을 열었다.
* * *
얼마 전,
<전중호 차장실>.
이현우 검사와 함께 전중호 차장실을 찾았다. 나는 그에게 지금까지 조사한 수사 내용과 향후 수사 전략에 관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뭐라고? 그러니까, 송민준을 잡기 위해 이현우 검사를 구속시키겠다는 거야? 내가 지금 들은 말이 맞아?”
깜짝 놀란 전중호 차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김 검사가 한 말이 맞습니다. 제가 일단 구치소에 들어가야 할 듯합니다. 그래야, 송민준이 안심할 테니까요. 제가 기꺼이 미끼가 되겠습니다.”
이현우 검사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흠… 난 머리가 안 좋아 도무지, 무슨 소린지 알아먹지를 못하겠어. 김 검, 자네가 좀 더 자세히 설명해봐. 그러니까, 송민준이 범인이 확실하다는 거지? 내가 이해한 게 맞아?”
“블라인드를 좀 쳐주시죠.”
“어? 그래. 알았어.”
전중호 차장이 일어나 창가 쪽으로 이동해 블라인드를 내리고 방문 시건장치를 확인한 후, 자리에 앉았다.
“자… 이제, 안전하니까 어서 말해봐.”
전중호 차장이 외투를 벗어 책상 위에 집어던졌다.
“네. 그럼, 말씀드리죠. 저도 처음에는 솔직히 너무 헷갈렸습니다. 하마터면, 선배님을 범인으로 지목할 뻔했죠.”
나는 이현우 검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근데? 어떻게 송민준이 범인이라는 거야?”
“그건, 제가 말씀드리죠.”
이현우 검사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래, 누구든지 얼른 말해봐. 답답해 죽겠으니까. 빨리 말해봐. 이 검!”
“제가 송민준 휴대전화로 궁지에 몰린 날, 김 검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이현우 검사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 * *
“난, 절대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결백하다고!”
“선배님 진정하세요.저도 선배님이 범인 아닌 것 알고 있습니다.”
“저… 정말?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맞아. 난 절대 그 여자를 죽이지 않았어. 진심이야. 믿어줘!”
이현우 검사가 내 손을 꼭 쥐었다.
“네. 선배님은 박정은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저도 확신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왜 선배님이 송민준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갔는지 말씀해 주세요.”
“그… 게….”
이현우가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지 못했다.
“선배님, 반드시 사실대로 말씀해 주셔야 선배님이 빠져나가실 수 있습니다. 거짓 없이 말씀해 주십시요.”
나는 이현우 검사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정은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었어. 난 그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했어. 착한 여자였지. 김 검은 이런 내 맘을 잘 모르겠지만…. 사실, 난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지. 아내는 항상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원했어. 하지만, 난 그럴 만한 능력이 되지 못했거든. 그러다 보니 난 항상 초라해질 수 밖에 없었고 그녀를 향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아왔어. 그런데, 우연히 정은이를 만났고 그녀는 날 따뜻하게 감싸줬지. 생전 처음 느껴보는 포근함이었어. 아내한테는 느끼지 못하는 그런 감정이었어.”
이현우 검사가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음… 계속하시죠.”
“근데, 언젠가부터 그녀가 내 전화를 받지 않더군. 집으로 찾아가도 없고 미쳐버리는 것 같았어. 그런데, 그런 그녀가 처남한테 전화를 걸었다고 하니 내가 얼마나 당황했겠어.”
이현우 검사가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혹시, 선배님의 불륜 사실이 송민주 씨에게 알려질까봐 불안하셨습니까?”
“아니아니, 나는 별 상관없어 어떻게 되든. 하지만, 아내는 정말 무서운 여자야. 아마도 정은이를 가만두지 않았을 거야. 난 그게 더 두려웠어.”
후우, 이현우 검사가 연신 손사래를 치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 사람,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했구나!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김 검이 알고 있는 대로야. 난 송민준인 척하고 그녀를 만나려 했지. 어떡하든 자초지종을 알아야 했으니까, 그런데,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가보니 이미 그녀는 칼에 찔린 채 싸늘하게 죽어있었어! 정말이라고 믿어줘. 김 검!”
이현우 검사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어!
“계속하시죠!”
“그 당시엔 너무도 당황스러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머리털이 쭈뼛하더군. 자칫하면, 내가 범인으로 몰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잖아. 일단, 그 자리를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지. 정신이 아득해서 무심결에 처남 휴대전화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정신없이 그 자리를 떠났지. 그런데, 한참 운전을 하다 보니 순간, 내가 실수한 것을 깨달았어. 그래서 휴대전화를 되찾기 위해 그곳으로 되돌아갔어. 그런데, 쓰레기통을 아무리 뒤져봐도 휴대전화가 없더군.”
이현우 검사가 고개를 숙이며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음… 그 휴대전화, 지금 송민준이 가지고 있을 겁니다.”
“뭐? 그… 게 무슨 소리야? 그럴 리가 없잖아.”
“송민준이 선배님에게 사람을 붙였을 거예요.”
“왜… 왜, 처남이 그런 짓을 한 건데?”
“선배님을 범인으로 몰아야 했으니까요.”
"마…… 말도 안 돼. 나와 처남은 정말로 마음이 통했다고…… 그럴 리가 없어!”
“아뇨. 그건 선배님의 착각입니다. 송민규를 죽인 것도 미국에서 자신이 살인누명을 쓴 것도 모두 송민준의 자작극입니다.”
“뭐?…… 말도 안 돼!”
이현우가 양손을 머리로 올리며 경악했다.
“아뇨. 말이 됩니다. 박정은의 동생, 박상은을 매수한 것도 그리고 선배님의 집안일을 돌봐주셨던 가정부, 김정자 씨를 매수한 것도 모두 송민준의 짓이니까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자세히 설명을 좀 해봐! 믿을 수가 없어!”
이현우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선, 박상은, 박정은의 동생이 첫 번째 단서입니다. 이 여자가 어느 날, 저에게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찾아왔죠. 자신의 언니가 죽기 전에 전송한 범인의 사진이라고 했어요. 중요한 단서였기에 당시엔 믿을 수밖에 없었죠.”
나는 이현우 검사에게 박상은이 가지고 온 사진을 내보였다.
“이… 건 내가 아니라고! 난 절대 아냐!”
이현우 검사가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알고 있습니다. 저도 하마터면, 깜빡 속을 뻔했죠. 선배님! 이 사진을 잘 보시죠. 혹시, 우측 상단이 희미한 불빛이 보이십니까?”
나는 손가락으로 우측상단을 가리켰다.
“음… 그러게, 불빛같아. 이건, 가로등 같은데? 맞아! 가로등 불빛이야.”
이현우 검사가 사진을 자신의 눈 가까이 가져다 댔다.
“그렇죠! 확실히 가로등 불빛이 맞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장소엔 가로등이 딱 한 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확인해보니 박정은이 사망한 당일, 3월 7일 22시에서 그 다음 날 새벽 1시까진 그 지역이 완전 정전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변전기가 터져버린 사고가 있었거든요. 제가 한전에 연락해 확인했습니다. 한전 측에 따르면 보수 공사는 다음 날, 낮 1시경에 완료가 됐으니까, 이 사진에 이런 불빛이 찍힐 이유가 없었던 거죠.”
나는 이현우 검사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 그렇다면 뭐야? 혹시…….”
“맞습니다. 사진을 조작한 거죠. 게다가, 그날 진술에서 박상은은 일을 하느라 바빠서 전화를 못 받았다고 했는데, 제가 박상은이 일했던 편의점을 탐문했더니 재밌는 것이 밝혀지더군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박상은은 3월 7일, 박정은이 사고 당하던 당일,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던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는 편의점에 손님이 거의 없었어요. 바쁘지 않은 상황이었겠죠. 게다가, 박상은은 완전 휴대전화 중독에 걸릴 정도로 항상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다녔죠. 그 일로 인해 편의점 주인과 매번 실랑이를 벌였나 보더라고요. 그날도, 하루 종일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고 일하지 않아 주인과 대판 싸웠다더군요. 그러고나서 일도 안 하고 가게를 뛰쳐나갔기에 주인이 정확히 기억하고 있더군요.”
“…….”
“그 이후, 어디서 돈이 생겼는지, 알바도 관둔 사람이 명품 가방에 명품 의류에 돈을 흥청망청 쓰고 다녔던 정황이 포착됐죠. 그 돈이 어디서 났을까요? 사실, 처음에는 선배님을 의심한 것 사실이었습니다. 그 돈을 선배님이 준 것으로 생각했으니까요.”
나는 이현우 검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처남이 그 여자를 매수해 일부러 사진을 김 검한데 보내라고 한 거라는 거야? 서…… 설마, 처남이? 그럴 리가 없잖아. 그 일로 인해, 처남이 체포되기까지 했는데!”
“빠져나갈 자신이 있었겠죠. 우리 쪽에 송민준이 심어놓은 사람이 있었으니까요!”
나는 입을 굳게 다물며 지긋이 눈을 감았다.
* * *
<전중호 차장실>.
“뭐? 그게, 그… 게 누군데? 누구냐고!”
그 순간,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잔뜩 흥분한 전중호 차장의 목소리였다.
“음…… 저와 아주 가까이에서 저를 도와줬던 사람입니다!”
“그… 럼, 설마 바… 박 수사관!”
전중호 차장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여 맞는다는 표시를 했다.
“서… 설마?”
전중호 차장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합동 수사본부 회의실>.
“무…… 슨 소리세요? 이, 이게 말이 됩니까? 난 아냐! 절대 아냐. 거…… 검사님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그렇죠? 제가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제가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합니까?”
내내 불안한 표정으로 내 얘기를 듣고 있던 박 수사관이 벌게진 얼굴로 뒷걸음질을 쳤다.
“박 수사관님! 그냥 앉아 계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더 이상 움직이면 제가 어떻게 돌변할지 알 수 없으니까요.”
강상중 팀장이 박 수사관의 팔목을 잡아채 앉히고는 그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박 형사!”
“네!”
저벅저벅.
그러고 난 후, 강상중 팀장이 박 형사에게 수신호를 보내자 대기하고 있던 경찰들이 회의실 앞에 진열했다.
“검사님, 계속 말씀하시죠.”
“네. 팀장님!”
아냐아냐, 나… 난 아니라고!
박 수사관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전중호 차장실>.
“네, 박 수사관이 송민준이 심어놓은 스파이였습니다.”
“흠, 이거 도대체 믿을 수가 있나? 그, 근거는? 증거가 있나? 박 수사관은 우리 강력부에서도 강직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어. 말이 안 되잖아!”
당황한 전중호 차장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박상은이 사진을 들고 찾아온 날, 몇 시간 전부터 유독 박 수사관이 안절부절못하더라고요. 원래 진중한 사람인데 무슨 일이 있나 싶었죠. 그런데, 한참을 밖을 내다보더니 지검 앞에 차가 멈췄고 잠시 후에 박상은을 데리고 온 겁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요!”
“그 정도 정황 가지고 어떻게 박 수사관이 송민준의 스파이였다는 것을 단정지을 수 있나? 게다가 그렇게 되면 제일 먼저, 송민준이 용의자로 의심받을 수도 있을텐데… 그런 무모한 짓을 할 이유가 없잖아!”
전중호 차장이 입술을 잘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