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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67화 (67/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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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검거(檢擧) (2)

“네? 판도라의 상자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아뇨. 그냥 해 본 소립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필요한 책이 국내에선 안 팔아 미국에서 구매한 겁니다.”

“아… 네에….”

“그나저나, 검사님! 이제 슬슬 재판 준비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글쎄요. 아! 재판? 해야죠. 하긴 해야겠죠!”

“하긴 하다뇨?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박 수사관이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해야죠. 재판! 당연히 해야죠.”

하하하, 나는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었다.

“네.”

오늘 좀 이상하시네?

박 수사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음… 저 오늘 송민준과 저녁 식사 약속이 있어서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송민준과요?”

“네. 무슨 문제 있나요?”

“지금 이현우가 기소된 상황에 가족을 만나는 건 좀 무리가 아닐까요?”

“흐음, 송민준이 이현우와 가족 지간이었던가요? 원수지간 아니었던가요?”

“그야 그렇지만…….”

“아무튼,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참고인 조사 차원에서 만나는 겁니다. 제가 알아서 문제 되지 않도록 처신하겠습니다.”

나는 박 수사관을 향해 밝게 웃어주었다.

“네. 검사님.”

.

“참고인 조사면 검찰에서 해도 될 텐데 굳이 밖에서 만나자고 해서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검사님!”

송민준 나와 악수하고 난 후,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아 네. 상무님이 결정적 증거를 제공해주신 덕에 수사가 급진전을 했기에 감사 차원에서 식사나 대접하려고 모셨습니다. 크게 부담 갖지는 말아 주십시오. 그나저나, 음식이 입에 맞으실려나 모르겠군요.”

“아 네…… 뭐, 이 일로 우리 집안이 일순간에 쑥대밭이 돼버렸는데 감사 받을 일은 아닌 듯싶군요! 아무튼, 저도 일식은 좋아하긴 합니다만.”

“그럼 다행이군요. 참! 일이 바빠서, 송 회장님 장례식에 참석을 못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버님 일은 참으로 애석하게 됐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공무를 수행 중인 분이신데 마음만으로 고맙습니다.”

송민준 손바닥을 보이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똑똑똑.

“음식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자, 드시죠.”

“네. 그럽시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우리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 식사했다.

“그나저나, 개인적으로 무척 궁금한 게 있는데 H 그룹 쪽에서 이번 일에 너무 미온적이지 않나 해서요. 저희는 매머드급 변호인단에 대비해 준비를 많이 했는데요. 헛수고를 하고 말았습니다.”

“음… 그건 돌아가신 아버님의 유언이었습니다. 죄를 졌으면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하셨죠. 저는 선친의 유언에 따랐을 뿐입니다. 아무튼, 정식 재판에 들어가면 변호인단을 꾸릴 생각이긴 합니다.”

송민준이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매형에게 이토록 무관심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미 이현우의 유죄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어! 잔인한 인간!

“그렇군요. 흠, 그럼 우리도 준비해야겠군요. 그건 그렇고, 죄송하지만 뭐 하나만 더 여쭤봐도 될까요?”

“음, 괜찮긴 한데 이거 영 취조 받은 것 같군요?”

하하하, 송민준이 호탕하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례를 범했나 봅니다.”

“아닙니다. 괜찮아요. 여쭤보시죠. 제가 답해 드릴 수 있는 거면 대답해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여쭤보죠.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그러는데 누님은 왜 갑자기 유럽으로 떠난 겁니까? 남편이 구속된 상황에서의 유럽여행은 아무래도 본인에게나 그룹이나 부담일 텐데요.”

“누님은 이번 일로 충격이 크셨던 모양입니다. 게다가 매형이 외도하고 있다는 것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나 봅니다. 마음을 좀 추스르려고 유럽으로 떠나신 듯해요. 아마도, 그곳에서 기거하며 매형과 정리할 마음의 준비하실 듯 합니다.”

송민준이 사케를 마시며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음… 말이 되질 않는다!

그렇다면 굳이 경영권과 보유 주식을 포기할 일이 없지 않나? 지금 이 사람은 천하의 송민주가 어쩔 수 없이 경영권을 포기하고 도주하듯 떠날만한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무서운 인간! 소름 끼친다.

이 모든 것이 그의 계획대로 치밀하게 계산된 결과라면…….

“그렇군요. 아무튼, 여러 가지 안 좋은 일로 심려가 크실 텐데, 맘 단단히 먹으시고 회사 경영에 힘써 주십시오. H 그룹은 우리나라의 굴지의 대기업 아닙니까? 우리 경제를 위해서라도 굳건히 지켜내셔야죠.”

나는 천천히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 H 그룹이 이 만한 일로 쓰러질만한 회사는 아닙니다. 지금의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죠.”

흠…… 이미 H 그룹의 총수가 된 듯하군!

“네. 다 드셨으면, 이만 일어날까요?”

“네. 오늘 식사 초대 감사합니다. 나중엔 제가 한번 대접해 드리죠.”

송민준이 일어나 공손히 인사를 했다.

“저야 언제든지 좋습니다. 음…… 추후에 참고인 조사가 한두 번 더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네. 부르시면 기꺼이 가겠습니다.”

“참! 혹시 지난번 레이첼이란 분, 생일 때 꽃다발이랑 같이 가져가신 게 위스키였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입으며 물었다.

“네? 아냐 아뇨. 와인이었습니다. 몬테스 타이타라고 칠레산 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왜요?”

“아…… 제 여자친구가 내일이 생일인데 뭘 선물할까 하다가 상무님이 얼마 전에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요. 제가 그런 거에 좀 약해서요.”

나는 얼굴을 붉히며 멋쩍어했다.

“아…… 그럼 몬테스 타이타가 괜찮습니다. 칠레산이라 저가란 이미지가 있는데 향은 섹시하고 매혹적이고 맛은 마치 초콜릿을 입에 문득 달콤하고 부드럽습니다. 결코, 프리미엄 보르도 와인과 비교했을 때, 맛과 풍미가 뒤지지 않습니다. 여자친구분이 좋아하실 거예요.”

송민준이 친절하게 와인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네! 정말 감사합니다. 역시, 다르시군요. 그나저나 그 레이첼이라 분이 와인을 좋아하셨나 봐요.”

“흠, 네. 특히 몬테스 타이타를 좋아했죠.”

“아…… 그렇군요.”

며칠 후,

<합동 수사본부, 취조실>.

나는 참고인 조사를 위해 박정은의 여동생, 박상은을 수사본부로 소환했다.

“음, 저희에게 제출해준 사진이 전송된 날이 언니, 박정은 씨가 사망한 날이라고 했죠?”

“네. 맞아요. 그날이었어요. 3월 7일.”

“그렇군요. 너무 업무가 바빠서 전화를 확인하시지 못했다고 했고요.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러면, 실례지만 상은 씨는 무슨 일을 하십니까?”

“특별한 직업은 없고요, 편의점 알바도 하고 이것저것 하고 있습니다.”

“그럼, 언니가 사망할 당시엔 편의점 알바를 했던 거로 아는데 맞나요?”

“네. 그런데. 그건 왜요?”

상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특별한 건 아닙니다. 그냥, 재판을 위해 참고삼아 여쭤봤습니다.”

“네에…….”

“음… 그나저나 이제라도 언니를 죽인 범인이 잡혀서 다행이군요.”

“네, 이제야 언니도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흑흑흑, 상은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음. 진정하시죠.”

나는 손수건 그녀에게 건네줬다.

일주일 후,

<김정환 검사실>.

이현우의 집에서 30년 동안 집안일을 돌봤던 가정부, 김순덕의 소재지를 찾아 나선 박 수사관으로부터 마침내 연락이 왔다.

“검사님! 얼마전에 이현우에 관해 증언한 가정부, 김정자 씨의 소재지가 파악됐습니다.”

“네? 확실해요? 지금 어딥니까?”

“목포예요. 김정자 씨 고향이 이곳이더라고요. 지금 모시고 서울로 올라가겠습니다.”

“네. 설득하셨군요? 수고많으셨습니다. 얼른 모시고 오십시오!”

“네. 검사님!”

<합동 수사본부, 취조실>.

김정자씨는 백발이 성성한 70대 노인이었다.

“어르신, 박 수사관님께 하셨던 얘기를 다시 한번 해주실 수 있습니까?”

“내가 말이여, 저짜그에서 일할 적에…….”

김정자는 이현우의 가정사와 그의 유년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30년이나 지났지만 마치 어제 일어난 일 마냥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운 것처럼 말하고 있어!

“그러시군요. 어르신 제가 뭐 좀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그랴. 검사 양반.”

“어르신은 손주가 있으십니까?”

“암만, 나가 손지가 너이나 있는디, 괜시리 그걸 왜 묻는디야?”

김정자가 손가락을 꼽아가며 수를 세었다.

“음… 그럼, 손주님들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그니까 말여, 정민이가 가만있어봐라. 그거시, 갸가 몇 살이더라. 우리 아들한테 한번 물어보끄나?”

김정자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자신의 손자들 나이도 모를 만큼 기억력이 어두우신 어르신이 30년 전에 일어났던 일은 완벽하게 꿰고 있군!

“아닙니다. 아니에요. 어르신! 괜찮습니다. 그냥, 할머님 인상이 너무 좋으셔서 저희 할머니 생각이 나서 여쭤봤습니다.”

나는 대충 둘러댔다.

“그랴그랴, 우리 손지도 검사님 멩키로 훌륭한 검사가 되면 참말로 좋겄구만….”

“네. 충분히 그렇게 되실 수 있을 겁니다. 어르신!”

<김정환 검사실>.

나는 향후 일정을 협의하기 위해 박 수사관과 강상중 팀장을 내방으로 불렀다.

“검사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이현우가 재판에 넘겨지면 우리 수사본부도 해체를 해야겠군요.”

강상중 팀장이 감회에 젖은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흠… 강 팀장님! 그동안, 진짜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 지독한 살인마 쫓다 다니느라… 그 연쇄살인마가 이현우 검사라니….”

박 수사관이 강상중 팀장의 손을 덥석 잡았다.

“검사님! 이제 참고인 조사도 다 끝났고 공판 준비만 하면 끝이겠네요. 어차피 저쪽에서 변호사 아니라 변호사 할아버지를 선임한다 해도 이번 재판은 힘들 겁니다. 그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

“왜 이렇게 말이 없으십니까? 막상 수사본부를 해체하려고 하니 섭섭하십니까?”

껄껄껄, 내가 말없이 두 사람의 얼굴만 쳐다보자 강상중 팀장이 허리에 손을 얹고는 자지러지게 웃었다.

“흠, 강 형사님, 어떡하죠?”

“네? 어떡하긴요? 뭘요?”

강상중 팀장이 놀란 눈을 크게 떴다.

“수사본부 해체하지 못할 것 같은데요.”

“네?”

“그게 무슨 소린가요?”

박 수사관과 강상중 팀장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강 팀장님, 이제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진범 잡으러 갑시다!”

“네. 잡아야죠. 네? 지…… 진범은 이미 잡혔잖아요. 이현우 검사가 진범 아닙니까?”

“아뇨. 이현우는 진범이 아니에요.”

“아놔. 미치겠네. 검사님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말씀이십니까?”

박 수사관이 입술에 침을 바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곧 알게 되십니다. 진범이 누군지…….”

“미치겠네. 그럼 진범이 누구란 말입니까?”

“일단 두 분, 수사본부로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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