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66화 (66/170)

# 66

[66화] 검거(檢擧) (1)

<합정동, 검경 합동 수사본부>.

“박 수사관님, 포렌식 결과가 나왔다고요?”

송민준과 헤어진 나는 부랴부랴 수사본부로 돌아왔다.

“네. 검사님! 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역시 예상했던 결과입니다.”

이현우의 DNA가 검출된 것인가?

“네. 말씀해보세요.”

“일단, 휴대전화 사용 내역을 삭제하거나 데이터베이스를 조작한 흔적은 없지만, 정밀 감식 결과 2개의 DNA와 3개의 지문이 검출됐습니다.”

“이현우의 DNA가 검출되었습니까?”

다른 지문과 DNA는 중요하지 않았다.

“네. 검출되었습니다.”

박 수사관이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는 어떡할까요?"

박 수사관이 눈을 부릅뜨며 나를 응시했다. 체포영장 발부를 묻는 듯했다.

“흠… 일단, 알겠습니다.”

“체포영장 발부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옆에서 듣던 강상중 팀장의 목소리였다. 답답했는지 그의 목소리 톤이 높았다.

“이현우는 검사입니다. 그렇게 쉽게 결정을 내릴 수는 없어요. 무작정 이현우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게 되면, 검찰 내에서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일단, 제가 전중호 차장과 협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검사라고 특별대우를 하시는 것은 아니십니까?”

강상중 팀장이 못마땅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수사에 성역이 어디 있습니까? 다만, 절차에 따르자는 것이지요. 일단, 제 상관인 전중호 차장의 결제를 받는 것이 수순입니다.”

“그거나 이거나 뭐…….”

강상중 팀장이 불만인 듯 구시렁거렸다.

“음… 아무튼, 이러게 되면 이현우 검사가 범인이 확실해지는 겁니까?”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박 수사관이 강상중 팀장을 보며 코끝을 찡그렸다.

“흠… 거의 그렇다고 봐야죠.”

강상중 팀장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전중호 차장실>.

나는 그간의 수사 결과와 송민준의 휴대전화에서 검출된 이현우 DNA에 관한 보고를 하기 위해 그의 방을 찾았다.

“이거야, 나 원!”

수사 결과 브리핑을 마치자 전중호 차장의 얼굴이 잿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 이게 모두 사실이란 말인가?”

푸르르르, 전중호 차장이 양 입술을 마주쳐서 소리를 냈다.

“네. 송민준의 휴대전화에서 이현우 검사의 DNA가 검출되었습니다. 게다가 사건일 이현우 검사를 봤다는 증인도 확보했습니다.”

“이… 거,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구먼. 이 검이 연쇄살인범이라니… 이게 말이 되나!”

전중호 차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망연자실했다.

“차장님, 어떡할까요?”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의중을 물었다.

"글쎄, 내가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구먼. 지검장님이나 총장님이 이 사실을 알면 난리가 날 텐데….”

전중호 차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음… 일단, 내부적으로 이현우 검사를 불러서 사실관계를 확인해 보는 건 어떻겠나?”

“아뇨.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런 법적 구속력 없이 수사 정보만 노출하게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차장님!”

나는 단호하게 그의 제안을 거부했다.

“후, 정말 난감한 일이군. 김 검, 나한테 조금만 시간을 주겠나? 내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그래.”

“네. 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반드시 체포영장을 발부해야 합니다. 하루가 시급합니다. 증거인멸에 도주 우려가 있습니다. 게다가, 이현우 검사는 H 그룹의 사위입니다. 그에게 시간을 줘서는 안 됩니다.”

“흠… 알았어. 내가 곧 연락할 테니 일단 자네 방으로 돌아가 있게.”

전중호 차장이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네. 알겠습니다.”

몇 시간 후,

<김정환 검사실>.

“김 검! 이현우 검사, 체포영장 발부해!”

전중호 차장이 장고 끝에 결정을 내린 듯했다.

“네. 알겠습니다.”

“김 검, 최대한 언론에 노출되지 않게 신경 써! 지검장님의 특별 지시야.”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일은 검찰 얼굴에 스스로 똥칠하는 일이야. 김 검, 유죄 증명 못 하면 나나 자네나 옷 벗을 각오해야 할 거야. 지검장님, 설득하는데 애먹었어.”

“네. 명심하겠습니다.”

“박 수사관님, 제방으로 잠깐 들어오세요.”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박 수사관을 호출했다.

“흠… 드디어 체포영장 발부하는 겁니까?”

눈치 빠른 박 수사관이 물었다.

“네. 일단, 차장님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지금 당장, 법원에 이현우 체포영장 신청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검사님!”

결국, 이현우 검사의 체포영장이 장고의 실질 심사를 통해 발부되었다. 사상 초유의 현직 검사가 연쇄 살인의 용의자가 되는 엄청난 순간이었다.

<이현우 검사실>.

“놔, 내 발로 갈 테니까! 어디 경찰이 함부로 내 방에 들어와?”

이현우 검사가 연행하려던 강상중 팀장의 팔을 거칠게 뿌리쳤다.

“팀장님, 그냥 놔두시죠.”

강상중 팀장이 억지로 수갑을 채우려 하자 나는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흠, 네.”

강상중 팀장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수갑을 내려놓았다.

“가시죠. 선배님!”

“김 검, 지금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뭐가 잘못되어도 한 참 잘못된 거라고!”

이현우 검사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합정동, 검경합동 수사본부>.

우리를 집요하게 추적하던 기자들을 따돌리며 이현우를 수사본부 안으로 데려오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마치 007 수송 작전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미 정보를 입수하고 대기하던 기자들은 어쩔 수 없었다. 수사본부 앞은 카메라와 휴대전화를 들고 있는 기자들로 아수라장이었다.

“잠시만요! 김정환 검사님! 한 말씀만 해주시죠?”

기자들이 휴대전화와 마이크를 내 앞에 내밀었다.

“이현우 검사를 기소하실 생각입니까?”

내가 차에서 내리자 기자들이 벌떼처럼 따라붙었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조사 후에 공식적인 브리핑을 통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현우 검사가 박정은 씨 살해 용의자로 알고 있는데 나머지 피해자들의 살해 혐의도 추가되는 겁니까?”

“…….”

“모두 비켜주십시오!”

박 수사관과 강상중 팀장이 기자들을 밀치며 실랑이를 벌였다.

“나중에 보고한다고요!”

강상중 팀장이 거칠게 기자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갔다.

“한 말씀만 해주시죠! 국민도 알 권리가 있습니다.”

기자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따라붙었다.

몇 번의 몸싸움이 더 벌어졌고 나는 간신히 수사본부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취조실>.

이현우 검사가 까칠해진 모습에 변호사도 없이 취조실로 들어왔다.

“선배님, 변호사 없이도 괜찮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변호사를 선임하시겠습니까?”

“아냐, 내가 검사야.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흠… 그럼, 지금부터 심문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현우 씨 본명….”

탁, 옆에 있던 강상중 팀장이 수사 자료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인정 신문을 시작했다.

“그만하시죠. 팀장님! 지금부터 심문은 제가 하겠습니다. 팀장님은 죄송하지만, 밖으로 나가주셨으면 합니다.”

“네? 네에… 알겠습니다.”

강상중 팀장이 코끝을 매만지며 미간을 좁혔다.

“감사합니다.”

나는 검사로써 이현우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그럼 심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지금부터, 편의상 선배님 호칭은 생략할 테니 양해하여 주십시오.”

강상중 팀장이 나가자 나는 심문을 시작했다.

“좋으실 대로 해.”

이현우가 시선을 바닥으로 향했다.

“그럼 묻겠습니다. 이 휴대전화 기억하십니까?”

나는 테이블 위에 송민준의 휴대전화를 올려놓았다.

“…….”

“다시 묻겠습니다. 박정은 씨를 알고 계십니까?”

나는 그 앞에 그녀의 사진을 내밀었다.

“…….”

이현우는 눈을 감은 채, 여전히 묵비권을 행사했다.

“지금 상황에 이현우가 불겠습니까?”

“아마도 끝까지 묵비권을 행사할 거야. 아마, 지금쯤, H 그룹 법무팀에서 물밑 작업을 진행하고 있겠지. 호화 변호인단이 구성되기 전까진 절대 안 불 거야.”

강상중 팀장이 콧날을 매만졌다.

“아무리, 막강한 변호인단을 구성한다 해도 이번엔 힘들지 않을까요?”

박 형사가 허리에 손을 올린 채 말했다.

“글쎄.”

유리창 너머로 심문 과정을 지켜보던 강상중 팀장이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이현우 씨, 지금은 정황 증거, 물증이 모두 확보된 상황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묵비권은 이현우 씨에게 오히려 불리할 수 있습니다.”

“김 검사도 내… 내가 범인이라고 생각해?”

드디어 이현우가 꾹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음…… 아직 확정 지을 순 없지만, 현재까진 이현우 씨가 박정은 살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입니다.”

“나는 그 여자를 안 죽였어! 내가 왜 그 여자를 죽이냐고?”

이현우가 고개를 들어 나를 응시했다.

“이현우 씨! 본인이 무고하다고 생각하면 묵비권을 행사할 것이 아니라 당신의 무고함을 증명하시면 되는 겁니다. 적극적으로 소명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차분히 그를 설득했다.

“…….”

“정밀 감정 결과, 이현우 씨가 송민준의 휴대전화를 사용한 흔적이 발견되었고, 박정은이 죽은 일, 현장에서 이현우씨를 봤다는 목격자도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박정은을 만난 직후에 그녀는 사망했습니다. 저는 구속영장을 신청할 것이고 큰 이변이 없는 한 법원에서 발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이현우 씨 본인에게 달려있는 일이니 현명하게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일단, 오늘 심문은 여기까지만 하죠!”

“아니라고, 난 이 여자를 죽이지 않았어!”

쾅, 이현우가 책상을 내리치며 울부짖었다.

“후, 이런 상황에선 검사나 잡범이나 별반 차이가 없군요. 궁지에 몰리니 감정적으로 대응하네요. 난 검사는 좀 다를 줄 알았는데.”

박 수사관이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띠었다.

“…….”

후, 강상중 팀장이 이마를 긁적이며 유리창 넘어 이현우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며칠 후,

충격에 빠진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고, 강력하게 저항할 거로 예상됐던 H 그룹은 오히려 잠잠했다. 큰 무리 없이 이현우의 구속영장은 발부되었다.

다만, 이슈라 한다면 이현우의 구속 소식에 병중에 있던 송 회장이 심장 쇼크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점과 이현우의 와이프인 송민주가 장례를 치른 후, 급히 유럽으로 출장을 떠났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참고인 출석 요구서를 보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후, 자연스럽게 후계 구도 3순위였던 송민준이 H 그룹을 접수할 절호의 기회를 가지게 됐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김정환 검사실>.

“검사님, 이현우 검사가 완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돼버렸네요. 장인은 죽고 마누라는 떠나버렸으니……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끌끌끌, 박 수사관이 혀를 찼다.

“…….”

“이젠, H 그룹은 완전히 송민준 세상이 돼버리겠네요. 경쟁자들이 다들 이 지경이 돼버렸으니까요.”

“음… 오늘 이현우씨 심문할 겁니다. 구치소에 연락 좀 넣어주십시오.”

“네? 아… 네….”

내가 듣기 거북하다는 표정을 짓자 박 수사관이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참! 검사님, 근데 좀 이상한 게 지난번에 이현우 조사할 때 만났던 가정부가 완전히 모습을 감췄습니다. 이현우 재판 때 증인으로 세우려고 다시 찾아가 봤거든요. 그런데 이미 이사를 가버리고 없더라고요.”

박 수사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그거 저한테 주시려고 오신 것 아닙니까?”

나는 그의 말은 들은 채 만 채, 박 수사관 손에 들려진 상자를 가리켰다.

“네? 아… 이거 검사님 앞으로 온 소폰데요. 미국에서 온 거네요?”

박 수사관이 상자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드디어, 도착한 건가?

“네. 감사합니다.”

"근데, 이게 뭐죠?"

"음, 이거요? 판도라의 상자쯤으로 해둘까요?"

후후후, 나는 박 수사관을 쳐다보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네? 판도라의 상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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