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65화] 양설(兩舌) (2)
“송민준 씨,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그만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흠… 그렇게 하시죠.”
“네. 죄송합니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네. 전, 오랜만에 온 곳이라 조금 더 있다 가겠습니다.”
“네. 그럼 이만.”
나는 옷을 챙겨 몸을 돌렸다.
“김 검사님!”
“네?”
그가 나가려던 나를 불러 세웠다.
“혹시… 급한 일이라는 게 이것 때문인가요?”
탁, 송민준이 테이블 위에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건 뭐지? 서…설마?
꿀꺽, 나는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그게 뭡니까?”
“제 휴대전화입니다. 이거 때문에 가시는 길 아니셨습니까?”
송민준이 깍지를 끼며 양손을 모았다.
“제… 제가 좀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드르륵,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등골이 오싹했다. 머리털이 쭈뼛하는 느낌이었다.
“…….”
송민준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꺼이 보란 듯이 손을 뻗어 손바닥을 내보였다.
나는 카페 주인에게 비닐장갑을 얻어 끼고는 조심스럽게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이건, 송민준이 분실했다는 그 휴대전화가 확실하다!
그런데 왜 이걸 저자가 가지고 있는 건가?
휴대전화를 살펴보던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죽은 박정은과 주고받은 문자 내용이 그대로 담겨있는 휴대전화였다. 지난번, 취조 때, 송민준이 잃어버렸다는 그 휴대전화가 틀림없었다.
“이… 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 휴대전화는 잃어버리셨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휴대전화를 들고 있던 내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흠… 그때는 그랬죠.”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때, 제가 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면 지금처럼 편하게 검사님과 차를 마실 수 있었을까요?”
이 사람! 자신의 혐의가 벗겨질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그 당시 이 휴대전화가 발견됐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테니…… 게다가, 우리가 이 휴대전화를 찾는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휴대전화는 이현우의 죄를 증빙하는 스모킹 건이 될 테니까!
“좀 더 알아듣게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좋습니다. 그럼, 약속 하나 하시죠.”
“…….”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비밀로 해주실 수 있습니까?”
좀 전에 내가 했던 말이다.
“비밀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비밀이 아니란 말씀을 하셨던 거 같은데….”
“제가 검사님을 그만큼 신뢰한다는 뜻으로 생각하시죠.”
피식, 그가 안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좋습니다. 말씀하시죠.”
* * *
<지난 3월 5일, 논현동 재즈 카페>.
저는 매형과 함께 술을 마시기 위해 논현동 재즈 카페에 갔고 위스키를 마신 저와 매형은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온 상태였습니다.
그가 차분하게 그날의 기억을 회상했다.
“형님, 전 경영권 승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누나가 지금까지 잘 해오셨으니까, 앞으로도 누나를 돕고 싶어요.”
꺼억 꺼억, 송민준이 울먹거리며 말했다.
“진정해. 나도 알아 처남이 회사 일엔 관심 없는 거. 난 다 이해한다고.”
이현우가 송민준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절 가만히 두질 않아요. 저… 진짜,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매형! 맘 편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구요!”
“그래그래, 그런 처남 맘을 왜 모르겠어. 진정해! 오늘따라 웬 술을 이렇게 많이 마셔? 술도 잘 못 마시는 사람이….”
“너무 괴로워서요. 진짜 죽을 만큼 괴롭습니다.”
흑흑흑, 송민준이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자자, 그만 돌아가자고. 너무 많이 마셨어!”
이현우가 송민준 옆자리로 옮겨 그를 부축하려 했다.
“근데, 매형! 혹시, 박정은이란 여자를 아세요?”
“뭐? 누… 구?”
송민준이 뜬금없이 박정은이란 이름을 들먹이자 이현우가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박정은이라고 하던데? 형님 아는 여자예요?”
송민준이 게슴츠레 눈을 떴다.
“그… 글쎄. 처음 듣는 이름인데, 그 여자가 나를 안다고 그… 래?”
“그게, 이 여자가 이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계속 저한테 연락이 오네요? 매형에 관해 할 말이 있다나 어쩐다나요? 회사로도 연락이 오고 귀찮게 해요. 꼭, 저한테만 전할 물건이 있다고 하던데?”
“뭐? 모르게? 나에 관해 할 말? 물…… 건? 그… 그래서 그 여자를 만난 거야?”
이현우가 술이 깨는지 아랫입술을 손톱으로 쥐어뜯었다.
“아뇨, 제가 그런 여자를 왜 만납니까? 분명, 매형하고 저 사이를 알고 뭔가 협박을 하려는 게 틀림없어요. 게다가, 매형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 여자를 상대하겠어요. 말도 안 되죠.”
송민준이 연신 허공에 손사래를 쳤다.
“그…… 그래.”
이현우의 눈빛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튼,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등쳐먹으려는 여자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한 번 더 연락이 오면 그땐 경찰에 신고해 버릴게요. 아무튼, 매형! 전 매형만 믿습니….”
술에 취했는지 송민준이 테이블에 얼굴을 처박고 쓰러졌다.
“검사님, 상무님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저희가 댁으로 모실까요?”
그 순간, 송민준의 모습을 지켜보던 박도준 사장이 자리로 다가왔다.
“아냐, 아냐, 내가 내 차로 데려갈게.”
“검사님도 술을 좀 드신 것 같은데….”
“괜찮아. 이제 좀 술이 깬 것 같아.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박 사장은 신경 쓰지 마!”
이현우가 황급히 송민준을 부축해 가게 문 쪽으로 향했다.
“어? 검사님! 잠시만요!”
“왜?”
“여기 휴대전화가 떨어져 있네요?”
박도준이 테이블 아래에서 휴대전화 하나를 주워 들었다.
“어… 그거, 처남 휴대전화인 모양이군. 이리 줘! 내가 가져갈 테니….”
“네. 여기 있습니다.”
박도준이 이현우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줬다.
* * *
여기까지가 송민준이 내게 해준 얘기였다.
“그러니까, 이 휴대전화를 이현우 검사가 가져갔다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흠… 의문이 생기는군요. 이현우 검사가 송민준 씨의 휴대전화를 가져갈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지금부터, 설명해드리죠. 누님은 야망과 질투심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지금 맡은 H 패션에 만족할 분이 아니에요. 제가, 경영 수업을 포기하고 의학의 길을 선택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유약한 형에 비해 누님은 냉정했어요. 아무튼, 저는 살기 위해 어떤 것이든 누나와 매형의 약점을 잡아야 했죠. 그래서, 암암리에 조사를 해보니, 매형이 박정은이란 여자와 내연관계였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게다가, 그 여자를 매형이 가학적으로 학대했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됐죠.”
이현우와 박정은이 내연관계? 게다가 가학적 학대? 이 말이 사실이면 이현우는 결코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래서, 그 사실을 알고 이현우 검사를 자극해 이 휴대전화를 쓰게 만들려 술 취한 척 한 거란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음, 이현우로선 자기가 저지른 일이 있으니 박정은이 상대를 안 할 테고 결국, 송민준 씨인 척 박정은의 속내를 알아내려 한 것이군요.”
“네. 그 여자 이름을 언급했더니 의심 많은 매형이 역시, 당황하더군요. 이후에 제가 우리 쪽 사람을 붙여 매형의 뒤를 밟게 했습니다.”
“계속하시죠.”
“3월 7일, 그러니까 박정은이 죽던 날, 매형은 나인 척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고 만나려 했던 모양입니다. 물론, 내가 한 말을 확인하려 했겠죠. 저인 척해야 박정은이 그 물건을 가지고 나왔을 테니까요. 박정은이 무엇을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했겠죠.”
“그게 확실합니까?”
“제가, 미행을 붙여둔 사람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으니 확실할 겁니다. 저는 그 보고를 받고 바로 미국 출장을 떠났죠.”
“그럼, 이 휴대전화는 어떻게 송민준 씨가 가지고 계신 겁니까?”
“출장에서 돌아와 보고를 받았습니다. 매형이 그 여자를 만난 후, 한참 후에 밖으로 나왔고 쓰레기통에 이 휴대전화를 버렸다더군요. 저희 쪽 사람이 그걸 가져와 저에게 전달해 주었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 박정은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죠. 그 상황에서 제가 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 어떻게 됐을까요?”
지금 이현우가 박정은을 죽인 진범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송민준이 자신이 유리한 상황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이자는 모든 수사 과정을 꿰뚫고 있다!
“음… 제가 듣기엔 이현우 검사가 박정은을 죽였을 거라고 말씀하고 계신 듯한데, 맞습니까?”
“믿을 수 없지만, 정황상 그게 타당한 추론이 아닐까요?”
무서운 인간이다!
자신의 매형을 살인 용의자라고 언급하는 이 순간에도 전혀 감정의 변화를 읽을 수 없다!
그토록, 그들에 대한 원한이 사무쳤단 말인가?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할 만큼?
“아! 참, 제가 아까 여쭤봤던 질문에 답해주시겠습니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송민준이 자신의 턱을 문지르며 말했다.
“…….”
"말씀하시기 곤란하신가 본 데, 제가 말씀드리죠. 전 결코, 레이첼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시죠?”
“그날 그녀의 집에서 만나기로 한 건 사실이었죠. 그날, 그녀의 생일이었고 저는 꽃다발과 와인을 사 가지고 그녀의 집에 갔습니다. 인기척이 없길래 제가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갔죠. 우린, 서로의 집 도어록 번호를 공유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집에 들어가 거실 조명을 켜니 그녀가 죽어있었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었어요.”
“그게 무슨 소리죠?”
“전 누군가의 공격을 받고 기절했습니다. 깨어나 보니, 레이첼은 죽어있었고 제 손엔 칼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송민준이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그것 역시, 누나와 매형의 짓이라고 생각합니까?”
“음… 정황상, 그렇게 추론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송민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군요. 왜, 그들은 송민준 씨를 죽이지 않았을까요? 그게 더 깔끔한 방법이었을 텐데…… 제가 매형의 입장이었으면 그렇게 했을 텐데요.”
“검사님도 이젠 우리 매형을 범인이라 생각하시나 보군요?”
후후후, 송민준이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흘렸다.
역시, 송민준은 이현우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벅찬 사람이었어!
“…….”
“두 형제를 다 죽이기엔 부담이 됐던 모양이죠. 제가 살인자로 구속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한 달 사이에 두 사람이 의문의 사고로 죽는 건 너무 티나지 않습니까?”
송민준이 깍지 낀 손으로 턱을 받쳤다.
그의 논리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완벽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현우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좋습니다. 일단, 이 휴대전화를 제가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그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여기, 혹시 지퍼 팩 같은 거 있습니까?”
카페 주인을 불렀다.
“네. 여기 있습니다.”
나는 지문이 묻지 않도록 휴대전화를 조심스럽게 지퍼 팩안에 담아 넣었다.
* * *
<김정환 검사실>.
“수사관님, 제방으로 좀 오십시오.”
“네.”
“음, 이거 중요한 증거물이니 국과수에 연락해 디지털 포렌식 검사 좀 의뢰해 주십시오.”
나는 박 수사관에게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박 수사관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음… 이게 이현우 검사의 사약이 될 수도 있겠네요.”
“혹시, 차… 찾으신 겁니까? 스모킹 건?”
박 수사관이 흥분한 듯 소리를 지르려다 손으로 입을 막았다.
“…….”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검사님! 지금 바로 국과수에 연락하겠습니다.”
이현우!
이제 어디 빠져나갈 테면 빠져나가 봐라!
박 수사관이 눈을 반짝거렸다.
<중앙지검 화장실>.
“선배님!”
“앗! 뭐야?”
내가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깜짝 놀란 이현우 검사가 양치하던 칫솔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죄송해요, 선배님!”
나는 바닥에 떨어진 칫솔을 주워 들어 그에게 전달했다.
“아냐아냐, 이제 양치 다 했는데 뭐. 바닥에 떨어진 걸 어떻게 쓰나?”
이현우 검사가 투덜거리며 칫솔을 휴지통에 내던졌다.
이렇게 얻은 이현우의 칫솔을 국과수에 보낼 수 있었다.
며칠 후,
띠리리링!
포렌식 센터에 결과를 확인하러 갔단 박 수사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검사님! 국과수 디지털 포렌식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게… 와, 진짜.”
그가 흥분한 듯 말을 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