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
[64화] 양설(兩舌) (1)
<이현우 검사실>.
나는 본격적인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쓰기 위해 이현우 검사의 방을 찾았다.
“선배님, 저 김정환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김 검사, 어서 와.”
이현우 검사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앉지!”
“네.”
“향이 좋은 커피가 있는데 한잔하겠나?”
“네. 좋습니다.”
“자… 마십시다.”
이현우 검사가 원두커피를 내려 내 앞에 내놓았다.
“네. 감사합니다.”
“음, 향이 참 좋군요.”
나는 머그잔을 들어 향을 음미했다.
“그래? 많이 있으니까 자주 내 방에 놀러와.”
“네.”
“그나저나, 단순히 커피 마시러 온 것 같지는 않고 나한테 볼일 있어 온 것 같은데?”
잠시간의 어색한 시간이 흐른 뒤, 이현우 검사가 커피 향을 음미하며 곁눈질을 했다.
“선배님, 아무래도 우리가 수사를 무리하게 진행한 듯합니다. 송민준 씨를 용의선상에서 완전히 배제해야 할 것 같아요. 결정적인 혐의점이 없습니다.”
나는 입술을 잘근거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먼. 잘됐네.”
이현우 검사가 들고 있던 머그컵을 내려놓으며 반색했다.
“그동안,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성급하게 수사한 제 불찰입니다. 용서하십시오.”
나는 고개를 숙여 그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아냐 아냐, 송 상무가 협의를 벗었다면 그걸로 된 거지. 수사하다 보면 이런저런 일도 생기는 법이야. 너무 괘념치 말아. 괜찮아!”
이현우 검사가 손을 내저었다.
“……….”
“음…… 그나저나 우리 송 상무가 용의 선상에서 빠져나가면 수사가 난관에 봉착하겠구먼.”
이현우 검사가 차분한 톤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유력한 용의자 하나를 확보해 둔 상태입니다.”
나는 이현우 검사의 속내를 떠보고 싶었다.
“그래? 그건 불행 중 다행이군.”
이현우 검사가 다리를 꼰 채 커피를 마셨다. 차분한 모습이 긴장한 티는 나지 않았다.
궁금할 텐데, 되묻지 않는다!
미끼를 한번 던져봤지만, 그는 전혀 미동도 없었다.
“네. 우리 수사팀이 주시하고 있는 용의자가 있는데 아직 오픈할 단계는 아니지만,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나는 좀 더 그의 속을 태워야 했다.
“그렇군. 하루라도 빨리 그놈을 잡아들여야지 세상이 시끄러워서 말이야. 요즘, 다들 일찍들 귀가한다고 하더군. 김 검사가 수고 좀 해줘.”
이현우 검사가 끌끌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그런데, 선배님! 제가 용의자의 성별이 남자라고 했던가요?”
나는 커피를 마시며 그의 표정을 살폈다.
“어? 여자였던가? 난, 뭐 당연히 남자일 거라고 생각을 해서 말이야.”
그동안 침착하던 이현우 검사가 다리의 위치를 바꾸며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당황했구나. 이현우!
나는 그의 머그잔에 잔잔한 파동이 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긴 하죠. 일반적으로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여자일 확률은 없겠죠.”
후루룩, 나 역시 머그잔을 들어 올려 커피를 마셨다.
“그… 그렇지!”
“그나저나, 송민준 상무에 관해 조사하다 보니 좀 이상한 것들이 있어서요?”
나는 이현우 검사의 심기를 조금 더 자극해야 했다.
“이상해?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그가 코를 찡그리며 되물었다.
좀 전과는 다르게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긴장하고 있다는 뜻!
“음…… 그게 선배님과 연관된 일이라 말씀드리기가 좀 곤란한데….”
나는 이현우 검사를 좀 더 초조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나와 연관이 있다고?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이현우 검사의 목소리 톤이 조금씩 높아짐을 감지할 수 있었다. 땀이 배는지 이현우 검사가 바짓단에 손바닥을 문질렀다.
“뭐, 송민준 상무가 용의 선상에서 빠진 마당에 의미는 없는 일이긴 합니다만, 아무튼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래도, 내가 연관됐다는 말을 들으니까 괜히 기분이 좀 찝찝해지는데?”
그가 또다시 다리의 위치를 바꿔 앉았다. 목 안쪽에서부터 조금씩 홍조가 올라오는 듯했다.
“아, 진짜 별거 아닌데…… 음, 그럼, 말씀드리죠. 지난번에 저를 데리고 가셨던 재즈 카페 아시죠?”
나는 마지못해 말하는 척, 무심히 말을 던졌다.
“아… 논현동에 있는 곳 말인가? 거긴 왜?”
“그곳에 송민준 상무와 자주 가셨습니까?”
“어, 몇 번 같이 간 적이 있었지. 근데 그게 뭔 문제가 되나?”
이현우 검사가 뭔가를 생각하는 듯 잠시 멈칫하다 되물었다.
점점, 묻지도 않은 말에 질문하기 시작한다! 심적 동요가 일었다는 증거!
“그랬군요. 송민준 상무가 그곳에서 자기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고 하네요. 그 휴대전화에서 중요한 단서가 나왔기 때문에 그의 입장에서는 유무죄를 판가름할 수 있는 스모킹 건이 될 수 있었거든요.”
“그런 일이 있었나? 글쎄, 난 금시초문인데?”
이현우 검사가 어깨를 들썩이며 모른척했다.
평소에 하지 않는 행동! 확실히 지금은 긴장하고 있다.
“그래서, 확인차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송민준이 술에 취해 정신이 없어서 선배님께 그 휴대전화를 드렸다고 하더라고요!”
“나한테? 난 기억나지 않는데? 그 집 사장이 나한테 줬다고 그래?”
난 사장이 휴대전화를 건네 줬다는 소리는 하지도 않았다!
그가 속이 타는지 연신 입술에 침을 묻혔다. 긴장했는지 말실수가 잦아졌다.
“사장이 준 건가요? 제가 듣기론 매니저가 내 준 것으로 아는데?”
“아냐, 사장이 주워서 줬…….”
이현우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방금, 기억이 안 나신다고 하지 않았나요?”
“어… 그게, 말야.”
목 주변에만 머물던 홍조가 드디어 얼굴까지 올라오는 순간이었다.
“아… 그게, 음… 상관없어요. 뭐 누가 건네 주었던 무슨 상관입니까? 이미 쓸모도 없는 건데요. 뭐!”
“어, 그래. 내가 그날 술을 많이 마셔서 기억이 가물가물 하네.”
이현우 검사가 목울대를 꿀렁거렸다.
“그랬군요! 뭐. 그럴 수도 있죠.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 래. 그나저나, 나 급한 약속이 있어 나가봐야 하는데, 어떡하지?”
한가하다고 하지 않았나?
“넵. 저도 이만 돌아가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래. 그럼 수고하고.”
이현우가 황급히 양복을 챙겨 입었다.
“네. 선배님!”
며칠 후,
나는 송민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김정환 검사입니다. 제가 상무님을 좀 뵈었으면 하는데요.”
“저에게 무슨 볼일이 남으셨습니까? 저는 이미 혐의를 벗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송민준이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이 있어 몇 가지 여쭤보고 싶군요.”
“흠… 개인적인 일이라, 제가 시간이 별로 없어서….”
송민준이 전화를 끊으려 했다.
“잠시만요! 제가 조사를 좀 해봤더니 돌아가신 형님, 송민규 씨의 죽음이 석연치 않은 점이 몇 가지 있더군요.”
“음……그게 무슨 소리죠? 우리 형님은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석연치 않을 이유가 없지요!”
송민준이 잠시 멈칫하다 말을 이었다.
“만약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면요?”
“음… 좋습니다. 밖에서 만나죠. 사람들의 눈에 띄어서 좋을 건 없으니까요.”
송민준이 마지못해 약속을 승낙했다.
* * *
<교외 한적한 카페>.
“뷰가 참 좋은 곳이군요.”
“네. 제가 머리가 복잡할 때마다 가끔 찾는 곳입니다.”
송민준과 나는 가벼운 환담을 잠시 나눈 후, 본격적인 대화에 들어갔다.
“형님의 죽음이 석연치 않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네. 사고 자료를 조사해보니 몇 가지 의문점이 남더군요.”
“의문점이라,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네. 그러죠. 다만, 본론에 들어가 가기 전에 약속 하나만 받아야겠습니다.”
“말씀하시죠.”
송민준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모든 얘기는 비밀로 해주실 수 있습니까?”
“비밀을 지키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남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이라고 했는데 저에게 말씀하시면 비밀이 아니지 않을까요? 그래도 괜찮다면 지킨다고 말씀드리지요.”
“그만큼 제가 송민준 씨는 믿는다는 뜻이라 해두죠.”
“좋습니다. 말씀하십시오.”
그 순간, 나와 송민준의 시선이 마주쳤고 그 속에서 마치 줄다리기를 하듯 눈빛이 교환됐고 주변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송민규 사망 사건을 조사하다 보니…….”
나는 송민규 사망의 몇 가지 의문점들을 그에게 설명했다.
“흠,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니 비밀이라고도 할 수도 없겠군요.”
송민준이 천천히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의외로 담담한 표정이었다.
알고 있었다고?
“지금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네. 알고 있었습니다. 형님은 굉장히 정적인 분이셨죠. 항상, 책을 가까이하셨고 거친 운동은 전혀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 분이 새벽 운동 후 돌아오다 교통사고라…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그렇지 않나요, 검사님?”
송민준이 커피 한 모음을 입에 잠시 담아둔 후, 삼켜 넘겼다.
이 사람은 이미 송민규 죽음의 진실을 알고 있었어!
“이미 알고 있었다니 의외군요.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송민규 씨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라면 타살이라고 보신다는 말씀이신데, 누가 송민규 씨를 죽였을까요?”
나는 그의 반응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글쎄요. 형님이 죽게 되면 가장 덕을 보는 사람이지 않겠습니까?”
“덕을 보는 사람이라, 그렇다면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당신의 누님인 송민주와 그의 남편이 된다는 소린데, 물론, 송민준 씨 본인도 그에 해당하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나는 그의 속마음을 떠보았다.
“그렇게 되나요? 글쎄요. 우리 집안에 관해 조사를 해보셨다니 저에 대한 조사도 물론 해보셨겠죠?”
후후후, 송민준이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날카롭게 나를 응시했다.
“네. 물론입니다.”
“그럼, 제가 살인 누명을 쓴 사건도 알고 계시겠군요.”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럼, 능력 있는 검사님이시니 제가 하나 묻죠. 제가 레이첼을 죽였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가 몸을 내 쪽으로 숙여 나를 응시했다.
차갑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이 인간, 결코, 이현우 따위에 쉽게 당할 사람이 아냐!
“그 사건은 이미 무죄 판결된 사건 아닙니까?”
“아뇨. 사건 판결 결과를 묻는 것이 아니라 검사님의 생각을 여쭙는 겁니다.”
“개인적으론,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돌려 말씀하시지 마시고, 직접 말씀해주시죠. 제가 죽였습니까? 안 죽였습니까?”
섬찟하다!
마치, 배고픈 맹수가 먹잇감을 노려보는 듯했다.
“개인적인 판단으론…….”
띠리리링.
때마침, 강상중 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실례지만, 잠시 자리 좀 비워도 되겠습니까?”
나는 휴대전화를 내보이며 양해를 구했다.
“…….”
그가 말없이 고개만 까딱거렸다.
“잠시만요.”
“강 팀장님 무슨 일입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반드시, 이현우가 재즈 카페를 방문할 것을 예측했고 수사팀에 그의 미행을 지시해 두었었다. 미행 나간 형사에게서 연락이 온 모양이었다.
“검사님, 이현우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