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62화 (62/170)

# 62

[62화] 확신(確信) (1)

<강남 논현동, XX 재즈 카페>.

이곳이 틀림없을 거야!

나는 지난번에 이현우 검사와 함께 왔던 재즈카페를 찾아왔다.

“김정환 검사님! 안녕하십니까?”

사장 박도준이 지난번에 왔던 것을 기억했는지 나에게 인사를 했다. 제법 눈썰미 있는 사람이었다.

“저를 기억하십니까?”

“물론이죠. 저희 카페는 VVIP들만 입장할 수 있는 곳이라 웬만하면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이현우 검사님과 함께 오셨죠?”

박도준이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나는 그에게 전후 사정을 설명한 후, 회원 명단을 확인을 부탁했다.

“부탁합니다. 그래야 더 무고한 희생자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어요.”

“아… 안타깝긴 하지만, 저희 가게의 방침이 회원 명단은 외부로 유출 되면 안돼서요. 죄송합니다. 검사님!”

“사장님의 동생이나 아내가 희생자가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박도준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음… 그래요? 그럼 할 수 없군요. 방침이라면 어쩔 수 없죠. 메뉴 좀 주시겠습니까? 온 김에 술이나 한잔해야 겠군요.”

털썩, 나는 의자에 몸을 내던졌다.

“아, 네. 알겠습니다. 도움을 못 드려 죄송해서 그런데, 제가 위스키 한 병 서비스해도 괜찮겠습니까?”

박도준이 정중히 내 의사를 물었다.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그냥, 메뉴 주십시오.”

“네에… 알겠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검사님!”

박도준이 직접 메뉴판을 들고 나왔다.

“음… 가격이 적혀 있지 않군요? 이건 얼마나 하죠?”

“네… 저희 가게는 회원제로 운영되어서….”

“아뇨, 아뇨, 이 술의 가격이 얼마인지 묻는 겁니다. 여기에 가격이 표시되어 있지 않잖아요!”

“아… 그게. 그때그때 다르거든요. 회원님들이 서비스에 만족하시면 더 주시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분명 술도 정가가 있는 것일 텐데, 그때그때 가격이 다르다고요? 지난번에도 보니, 이현우 검사가 와인 한 병값으로 100만 원을 지불했던 것 같은데, 그 와인 시중가 20만 원 정도하는 와인 아닙니까?”

나는 박도준을 뚫어지도록 응시했다.

“그… 게, 원래 이런 곳은 그렇게 비즈니스를 하는 거라서….”

당황한 박도준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비지땀을 흘렸다.

“흠… 이렇게 폭리를 취하시고 실제 장부에는 매출을 과소 계상하셨겠죠? 제가 매출 장부 좀 확인해 봐도 될까요? 세무조사가 필요할 지도 모르겠군요. 게다가, 좀 전에 보니 비상구 쪽 소방설비 역시 미비하던데….”

나는 더욱더 그를 몰아붙였다.

“그… 게, 후, 알겠습니다. 장부 확인해드리겠습니다.”

더 버티기가 힘들었는지 눈치 빠른 박도준이 내실로 들어가 장부를 꺼내왔다.

“검사님, 제가 이거 꼭, 비밀은 지켜주셔야 합니다. 안 그러면 저희 가게 문 닫습니다.”

박도준이 장부를 내놓으며 볼멘소리를 했다.

“그런 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메뉴판에 가격표시 제대로 하시고 소방설비 제대로 갖추십시오. 전부, 불법입니다.”

“네. 검사님!”

잠시 후,

“음…… 송민준이라 아… 여기 있군요. H 전자 상무 이사님!”

장부를 읽어내려가던 박도준의 손가락이 중간쯤에서 멈췄다.

“송민준이 확실합니까?”

“네. 맞아요. 인제 보니 기억이 납니다. 원래 우리 회원은 아니셨는데 이현우 검사님과 자주 오셨죠. 그 이후에 회원이 되셨고요.”

“좀 전에 보니 기억력이 좋으시던데 이현우 검사와 송민준 상무가 자주 이곳을 드나들던 때가 언제입니까?”

“음… 어디 보자. 여기 적혀 있을 겁니다. 우리는 프리미엄 회원제라 고객님들이 오신 날, 그날의 특징 등을 간단히 메모하죠.”

박도준이 기억을 더듬으며 다이어리를 넘겼다.

“…….”

“아, 여기 있네요. 올해 3월에 이곳에 자주 들렀습니다. 어디 보자! 3월 2일, 그리고 3월 5일, 이때 오셨네요!”

3월 5일이면 박정은이 죽기 이틀 전이란 소린데? 그 시간이라면 송민준이 휴대전화를 분실한 시기와 겹친다!

“혹시, 그때 특별한 일이 있었습니까? 예를 들어 평소와 다른 행동이나 아니면 두 사람이 말다툼을 한다거나 그런 거 말이에요.”

“말다툼이요? 에이 아니에요. 두 사람은 항상 사이가 좋으셨어요. 말다툼 같은 건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군요.”

“아, 맞다! 한 번은 송민준 상무가 인사불성이 되도록 취한 적이 있었어요. 원래, 과하게 술을 드시지 않는 분인데 그날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만취를 했더라고요.”

“그래요?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음…… 이현우 검사가 거의 업다시피 해서 데리고 나갔죠. 저희가 모시겠다고 해도 한사코 자기가 데리고 가겠다고 했어요.”

“그때가 언제인지 기억하십니까?”

“그날이… 아 맞다. 3월 5일! 맞아요 3월 5일이 틀림없습니다.”

딱, 박노준이 손가락을 마주쳐 소리를 냈다.

3월 5일?

“확실합니까?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날짜를 기억하고 계시죠? 시간이 꽤 흘렀는데요.”

점점 맥박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네. 정확히 기억할 수밖에 없죠. 제가 여기에 메모를 해뒀으니까요. 자 보시죠!”

박도준이 자신의 다이어리를 내보였다.

“그렇군요.”

맥박이 점점 빨라졌다.

“전 직원들이 그날 일찍 끝내고 회식을 하기로 했는데, 이 검사님과 송상무가 와서 시간이 지연됐고 송상무가 오바이트를 하는 바람에 청소를 하면서 다들 투덜거렸어요. 그래서 정확히 기억이 납니다.”

박도준이 기억을 더듬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합니까?”

그에게 되물었다.

“네. 확실하다니까요!”

“그러니까 이현우 검사가 술 취한 송상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간 건 확실한 거네요.”

“네. 저희가 차까지는 배웅해드렸죠.”

“혹시, 거기서 송민준의 휴대전화를 본 적이 있습니까?”

“음…… 네. 맞아요. 송 상무님이 휴대전화를 떨어뜨리셨길래 제가 주워서 이현우 검사님께 드렸어요. 네. 맞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기억이 나네요.”

점점 냄새가 진동하는군!

“네. 고맙습니다. 일단, 저랑 얘기하신 내용은 최대한 비밀로 해주십시오.”

“네. 근데 검사님, 혹시 두 분 중에 범인이 있는 겁니까?”

박도준이 궁금한 듯 내게 다가와 소곤거렸다.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참고할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네. 아무튼, 빨리 범인이 잡혔으면 좋겠네요.”

박도준이 콧방울을 매만지며 말했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송민준이 휴대전화를 분실한 곳이 이곳이 확실하다면? 아니, 분실한 것이 아니라, 이현우 검사가 가져간 것이라면….

왜일까? 답은 뻔하지 않은가?

점점 심장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 * *

며칠 후,

<김정환 검사실>.

“검사님! 드디어 자료가 나왔습니다.”

박 수사관이 황급히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서류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드디어 찾으셨군요! 뭐 좀 건질 만한 게 있던가요?”

송민준이 미국에서의 행적이었다. 나는 서류를 넘겨보며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생각하고 계신 것 그 이상일 겁니다.”

박 수사관이 가슴을 내밀며 자신감을 보였다.

“이… 게 전부 사실입니까?”

서류를 들고 있던 내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송민준이 미국에 있을 때, 살인사건에 연루된 적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네. 100% 팩트입니다. 송민준이 메릴랜드주 법정에 섰던 적이 있더군요!”

박 수사관이 가져온 자료는 송민준이 존스홉킨스에 다닐 무렵, 같은 대학교에 다니던 미국인 여자친구, 레이첼을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섰던 자료였다.

“그게, 당시엔 빼박이었나 보더라고요. 송민준은 마약에 취한 상태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해롱거렸고 레이첼이라는 미국 여자는 칼이 찔려 유혈이 낭자한 상태에서 현장 검거가 됐으니까요. 게다가, 송민준의 손엔 그녀의 혈흔이 묻은 칼이 쥐어져 있었으니 거의 실형이 확실한 상황이었나 봅니다.”

박 수사관이 콧잔등을 매만졌다.

“그런데, 어떻게 무죄 판결이 난 거죠?”

“당시, 그 소식을 들은 송 회장이 미국 쪽 정관계 인사들을 총동원했나 보더라고요. 필사적으로 방어를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현장 검거가 되었고 정황증거가 확실한데 아무리 손을 쓰더라도 쉽지가 않았을 텐데요.”

“그거야 권력과 돈의 힘이었겠죠. 그리고, 그게 좀 웃긴 게, 메릴랜드 주법, 그거 골때리더라고요. 어떤 놈은 임신한 여자친구를 죽였는데, 그 뱃속에 있는 태아를 죽인 죄는 모면했죠. 아직 완전한 인격체가 아니라나 어쩐다나….”

박 수사관이 미간을 좁혔다.

“원래. 메릴랜드 주법이 타 주에 비해 관대한 편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사건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아무튼, 당시 최고의 변호사를 고용한 것도 있었고 일단, 송민준이 그전까지는 마약을 한 전력이 없고 별다른 전과도 없었을뿐더러 살해 동기가 불분명했나 봅니다. 게다가, 현장에서 송민준의 것이 아닌 의문의 혈흔과 칼에서 또 다른 지문이 검출됐는데 그게 신원미상으로 밝혀졌고 끝끝내 그 자를 검거하지 못했나 봅니다. 법원에서는 그 신원미상의 사람에게 살해 혐의를 좀 더 두었던 모양입니다.”

“…….”

“결국, 그로 인해 송민준은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로 판결됐죠. 아무튼, 그 일로 인해 송민준은 더욱더 송 회장의 눈 밖에 났나 보더라고요. 워낙 송민준이 똑똑했으니 그럴 만도 했죠. 그 이후로 완전히 후계구도에서 멀어진 듯했더군요. 그리고 그 사건 이후로 송 회장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된다는군요.”

혈흔과 칼에서 발견된 지문이라…… 게다가, 신원미상!

“참, 그리고 이게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시점이 묘하게 송 회장의 장남, 송민규가 사망한 시점과 거의 일치합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일어난 일이니까요. 두 후계자 후보의 연이은 사고! 이거, 냄새가 나도 너무 나는 것 아닙니까. 검사님!”

송민규의 의문의 교통사고, 송민준의 살해 혐의!

이건, 결코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김정환의 오피스텔>.

나는 지금까지 밝혀진 팩트를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사건 관계도와 사건과 연관된 주요 사진들을 화이트보드에 붙여 정리했다. 일단은 송민준은 용의 선상에서 빠져나가도 좋다. 지금의 상황에선 그는 가해자라기보단 피해자에 가까우니까….

나는 지우개로 화이트보드에 적혀 있는 그의 이름을 지웠다.

그렇다면, 이현우 검사와 그의 부인 송민주!

나는 송민주와 이현우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다.

송민주!

그녀로선 자의든 타의든 송민규와 송민준이 제거되면 가장 많은 혜택의 수혜자가 된다. 그리고 그의 남편, 이현우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그렇다면 10명의 무고한 희생자는 어떻게 된 것인가?

굳이, 송민준을 연쇄살인범으로 몰지 않아도 제거할 방법은 많았을 것인데… 왜일까?

분명, 송민준을 연쇄살인범으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

띠리리링.

그 순간, 휴대전화 소리가 고요한 정적을 깨뜨렸다. 박 수사관의 전화였다.

“검사님, 접니다.”

목소리 톤이 높았다. 흥분한 상태가 틀림없었다.

“네. 수사관님! 무슨 일이십니까?”

“밤늦게 죄송하지만, 내일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제가 지금 검사님 계신 곳으로 가도 되겠습니까? 직접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아뇨, 음, 일단 수사본부로 오십시오. 그리고 강상중 팀장한테 연락하셔서 같이 오시는 게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검사님,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죠?”

무슨 일이지? 이 밤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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