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59화] 연쇄살인범, 누구냐 넌? (5)
<합동 수사본부, 취조실>.
“안녕하십니까? 담당 검사 김정환입니다.”
드르륵, 의자를 빼내 앉으며 그에게 인사했다.
“…….”
송민준이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고개만 까닥거렸다.
“피곤해 보이시는 데 뭐,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송민준이 손을 들어 올렸다.
“네. 그럼, 바로 심문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나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 말했다.
“뭘, 더 심문하시겠다는 겁니까? 지금까지 우리 의뢰인이 의심을 받을 만한 증거가 아무것도 없잖습니까? 이쯤 하면 된 거 아닌가요?”
장국진 변호사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아… 변호사님, 괜찮습니다. 그냥 놔두십시오. 이렇게 된 이상, 모든 의심은 털고 가야 하지 저도 개운하지 않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의 말 한마디에 급 고분고분해지는 그였다.
“그럼, 시작하시죠. 김정환 검사님!”
흔들림이 전혀 없었다. 그가 의자를 잡아당겨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안광이 날카로웠다.
예사 눈빛이 아니군….
“좋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휴대전화를 분실하셨다고 했죠?”
“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분실한 것을 모르셨다고 하셨는데 언제 아셨습니까?”
“흠… 미국 출장을 다녀온 지 한 3, 4일 후쯤에서 알게 됐습니다."
그가 고개를 들어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말을 이었다.
“그렇군요. 그럴 경우, 보통은 해당 통신사에 연락해 사용 내역을 확인하지 않습니까? 누군가 휴대전화 사용을 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범죄에 이용될 수도 있는 부분이니….”
“흠… 제가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냥 비서에게 부탁해 처리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동안 침착하게 상대의 말을 경청하던 송민준이 말허리를 잘랐다. 그건, 분명 뭔가 마음속에서 동요가 일어났다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말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이상하군요. 비서가 해지하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본인이 직접 통신사에 연락하셔서 사용 해지한 것으로 아는데요? 휴대전화가 많아 잃어버렸는지도 모를 정도로 신경을 안 쓰시는 분이 유독 이 휴대전화 해지는 직접 했을까요?”
“그… 게, 우리 의뢰인은….”
옆에 있던 장국진 변호사가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음… 솔직히 말씀드리죠. 후, 그 폰 안에는 지극히 사생활이 담겨있었습니다. 저의 프라이버시라 남에게 맡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처리할 수밖에 없었죠. 제가 살해 용의자로 의심받는 입장이어서 괜한 의심을 받을지 몰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당황했는지 송민준이 입술을 이빨로 잘근거렸다. 심문 시간이 2시간이 지난 현재,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팀장님! 지금 검사님이 하신 말씀이 뭔가요? 우린 몰랐잖습니까?”
박 형사가 놀란 눈으로 강상중 팀장을 쳐다봤다.
“글쎄. 나도 몰랐던 사실이야. 아무튼, 무슨 생각이 있으셨겠지.”
강상중 팀장이 까칠해진 자신의 턱수염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어쨌거나, 저 인간 표정이 꽤 당황했나 본데요?”
“좀 더 두고 보자고.”
“좋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럼, 하나 더 묻겠습니다. 죽은 박정은의 직업이 도우미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우리는 박정은의 직업이 도우미란 사실을 말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송민준을 응시했다.
“그거야… 언론에서 발표한 자료도 그렇고, 죽은 여자들은 대부분 그런 직업을 가졌던 거 아닙니까?”
장욱진 변호사가 대충 얼버무렸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 사건 피해자들의 직업은 철저히 외부에 노출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6번째 피해자가 살해당한 직후에는 모방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언론에 노출된 정보를 범인이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7번째, 피해자인 박정은 씨부터는 경찰이나 검찰이나 철저히 비밀을 유지했죠. 그런 이유로 쉽게 알 수 없었을 텐데요. 외부 유출이 되지 않았으면 말입니다.”
팔짱을 낀 채, 송민준을 응시했다. 나는 그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야, 맞대응하려면, 우리 쪽도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장국진 변호사가 당황한 듯 횡설수설했다.
“그 말은 우리 쪽 수사 정보가 그쪽으로 넘어간 것으로 해석이 되는데요. 맞나요?”
“음… 저는 잘 모르는 내용이니 우리 쪽 법무팀에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모르는 내용입니다.”
그동안, 그토록 침착했던 송민준이 긴장되는지 연신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래요? 하나만 더 묻죠. 제가 알기론 서울중앙지검에 이현우 검사가 송민준 씨의 매형으로 아는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만… 그러나 이번 일은 매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이상하군요. 제 귀에는 매형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정보를 얻었다는 소리로 들리는군요. 저는 이현우 검사와 인적 관계에 관해서만 여쭤봤을 뿐입니다. 게다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아무튼, 이번 사건 정보가 밖으로 샌 정황이 확인된바, 불법적인 요소가 있었다면 법적인 책임을 반드시 물도록 하겠습니다.”
“흠… 네. 그렇게 하시죠.”
송민준이 목울대를 꿀렁거리며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와, 역시 김 검사님이시네요. 얼음처럼 냉정하던 저 인간, 당황한 표정 보이세요. 목덜미까지 빨개졌어요.”
박 형사가 주먹을 불끈 쥐며 호들갑을 떨었다.
“…….”
강상중 팀장이 팔짱을 낀 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심문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귀가하셔도 좋습니다.”
“네? 확실합니까?”
예상치 못한, 귀가하라는 조치에 놀란 듯 장국진 변호사가 되물었다.
“네. 조사는 이 정도면 충분하니 돌아가셔도 좋다고요."
“네. 알겠습니다.”
송민준이 찜찜한지 한참을 머뭇거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검사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이렇게 그냥 보내시면 어떡해요? 저놈이 틀림없이 범인입니다.”
내가 심문을 마치고 돌아오자 박 형사가 얼굴을 붉히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
“박 형사! 검사님한테 이게 무슨 무례한 짓이야? 빨리 사과드려?”
강상중 팀장이 박 형사의 팔을 잡아당겼다.
“죄송합니다. 검사님!”
박 형사가 마지못해 고개를 숙였다.
“아뇨. 괜찮습니다.”
“음… 검사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도 박 형사와 같은 생각입니다. 저놈이 범인이 틀림없습니다. 제 촉이 그래요. 구속영장 발부해 주십시오. 반드시, 제가 입을 열게 만들겠습니다.”
“음…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법원에서 100% 기각될 겁니다. 괜히 무리해서 저 사람들을 자극할 필요가 없어요.”
나는 안경을 벗고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제길,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강상중 팀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좀 더, 확실한 물증을 잡아야겠지요. 저한테도 생각이 있으니 일단, 송민준, 내보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강상중 팀장이 주먹을 불끈 쥐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는 어쩌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
분명, 자신의 신분 노출과 가족의 신변을 더 걱정하고 있어. 진범이라면 그것이 과연 중요하겠는가?
* * *
[무리한 체포영장 발부! 위기에 빠진 검찰!]
[김정환 검사! 깊은 수렁에 빠지다.]
[보여주기식 수사, 진정 그들은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연일 언론은 송민준 체포영장 발부에 관한 기사를 쏟아내며 나를 공격했다. 물론, 중립적인 내용의 기사도 있었지만, 언론 대다수에서는 비판 일색이었다. H 그룹은 여론몰이를 통해 우리 수사팀을 압박해 왔다.
“김 검, 내 방으로 좀 오지?”
“네. 차장님.”
전중호 차장이 인터폰으로 나를 호출했다.
<전중호 차장실>.
“차장님, 김정환입니다.”
“어, 들어오게. 앉지!”
“네.”
“음… 너무 상심하지 말게나. 수사하다 보면 이런저런 일도 생기는 거야.”
전중호 차장이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아냐, 아냐. 나였어도 김 검과 다르지 않았을 거야. 그만한 정황 증거면 체포영장 발부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어. 언론 따위는 너무 신경 쓰지 말게, 김 검사.”
“…….”
“그나저나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상대가 상대인 만큼, 한 번 밀리면 쉽게 주도권을 가지고 오기 힘들 텐데 말이야. 아무래도 송민준이 다시 검찰로 부르긴 쉽지 않을 거야. 게다가, 기사들을 보니 이미 언론에도 손을 써둔 모양인데….”
전중호 차장이 입술을 오므렸다 펴며 우려를 나타냈다.
“좀 더 면밀하게 자료를 검토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흠…… 그래. 차근차근 가자고. 그리고 이현우 검사 말인데, 곤란하겠지만 자네가 신경 좀 써. 그래도 같은 식구 아닌가? 이번 일로 상심이 컸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강 부장을 한 번 찾아가 보게. 강 부장이 여태 이 사건을 맡았으니까 뭔가 김 검한테 도움이 될 만한 것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
“강 부장님이요? 지금 병원에 계시지 않나요?”
“어. 몸이 많이 안 좋아 병원에 입원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나 보더군.”
“네. 알겠습니다. 조만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람아! 이 정도로 기운 빠지면 쓰나? 어깨 펴고! 우리 부서가 그 유명한 일당백 땅개 부서 강력부 아닌가?”
하하하, 전중호 차장이 호탕하게 웃으며 격려했다.
“네. 알겠습니다.”
<김정환의 오피스텔>.
퇴근 후, 나는 모든 수사 자료를 취합해 집으로 가지고 왔다.
지금 상황에선 송민준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틀림없지만, 결정적 증거가 없어! 게다가, 그의 대응 또한 흔들림이 없었다.
이 수사, 어쩌면 원점에서 재수사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나는 유리창에 피해자들의 사진을 붙여놓고 유심히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띠리리링.
그 순간,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순천지청에 있는 장영은 검사의 전화였다.
“선배님! 저예요.”
휴대전화 스피커로 퍼져 나오는 청량감 넘치는 목소리, 너무도 반가운 장영은 검사가 틀림없었다.
“어, 장 검! 웬일이야?”
나는 저절로 입가가 미소가 번졌다.
“얼, 선배님 요즘 스타시던데요?”
“그게 무슨 소리야?”
“요즘, 거의 매일 일간지 1면을 장식하시잖아요.”
“기사 봤구나? 휴, 좋은 일로 올라야지 말이야.”
“그럼요. 선배님 기사 뜰 때마다 스크랩해두는걸요? 우리 선배님 안 봐도 얼굴이 반쪽이 됐겠네. 어쩌면 좋아.”
장 검의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그러게 말이야. 요즘 죽을 맛이야.”
“선배님, 다름이 아니라, 제가 스크랩을 하다 보니 좀 이상한 게 있어서 보내드리려고 하는데 수사에 참고하세요.”
“이상한 거? 뭔데?”
“별거는 아니고요. 송 회장 일가의 가족사에 관한 건데, 특별한 건 아니에요.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요.”
“그래? 장 검이 원래 촉이 좀 좋잖아. 그럼 보내봐.”
“알았어요. 선배님, [email protected] 이메일 주소 맞아요?”
“어, 맞아. 그쪽으로 보내면 돼.”
“네. 지금 보냈어요. 확인해 보세요! 선배님 수사에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읽어보세요. 그리고 궁금한 거 있으면 다시 전화하시고요.”
“어… 그래.”
송 회장의 가족사? 뭐지?
틱, 나는 장 검과의 전화를 끊자마자 컴퓨터 전원을 켜고 그녀가 보낸 이메일을 확인했다.
송 회장의 가족사라…….
“헉, 내… 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지? 그러고 보니… 너무도 이상했어!”
그녀가 보내준 이메일 첨부파일을 읽던 나는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