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58화 (58/170)

# 58

[58화] 연쇄살인범, 누구냐 넌? (4)

“들어오시죠. 선배님!”

나는 문을 열고 그를 맞았다.

“김 검,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장난해?”

이현우 검사가 거칠게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들어왔다.

“검사님! 잠시만요. 이러시면 안 됩니다.”

박 수사관이 그의 팔을 잡으며 따라 들어왔다.

“놔! 안 놔?”

이현우 검사가 독기 서린 눈으로 박 수사관을 노려봤다.

“수사관님은 나가 계세요.”

“그래도….”

박 수사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멀뚱멀뚱 서 있었다.

“괜찮습니다.”

“네. 검사님!”

박 수사관이 나와 이현우 검사의 눈치를 살피고는 뒷걸음질 치며 밖으로 나갔다.

“김정환 검사,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 좀 해봐.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거야?”

털썩, 이현우 검사가 씩씩거리며 소파에 몸을 내던졌다.

“진정하십시오. 우선 이거 좀 드시죠.”

나는 그 앞에 냉수를 내놓았다.

벌컥벌컥.

“처남, 아니 아니, 송상무 체포영장 발부한 게 김 검사 맞아?”

이현우 검사가 단숨에 잔을 비우며 말했다.

“네. 제가 체포영장 발부했습니다.”

“왜? 무슨 이유지? 혐의가 뭐야?”

“박정은 씨 사망 사건과 관련해서 조사할 내용이 있었습니다.”

“뭐? 미쳤어?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처…아니 송 상무가 뭐가 아쉬워 사람을 죽인다는 거야?”

이현우 검사가 허공에 손을 휘젓더니 거칠게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음…… 그건 조사해 보면 알겠죠.”

“김 검, 내 말 잘 들어. 당신 지금 실수하는 거야. 지금 김 검이 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아? 멀쩡한 기업가를 살인자로 둔갑을 시켜? 내가 가만있을 줄 알아?”

이현우 검사가 목덜미가 벌어지도록 핏대를 세우며 입가에 게거품을 물었다.

“죄가 없다면 경찰 조사에서 소명하면 될 겁니다. 물론, 죄가 있다면 그에 맞는 처벌을 받으면 되는 거고요.”

“후, 내가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군. 꽤 강직하고 청렴한 검사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이런 식으로 이벤트 터뜨려 이름 석 자 좀 알리겠다는 수작인 것 같은데, 타깃을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어? H 그룹 법무팀이 어떤 곳이지 알기나 해?”

“…….”

“내가 알기론 이미 위쪽에서도 움직이고 있어. 내 말 명심해. 결정적 증거도 없이 무고한 사람을 체포해? 만약에 유죄 증빙 못 하면 당신 옷 벗을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이현우 검사가 삿대질해대며 목소리를 높였다.

“협박입니까?”

“아니, 경고라고 해두지! 아무튼, 당신은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너 버린 거야. 되돌아올 배는 없다고!”

쾅,

약을 치더라도 먹힐 데다 쳐야 먹히지. 감히, 언감생심 지방검사 출신 주제에…… 이현우 검사가 문을 박차고 나가며 중얼거렸다.

<검경 합동 수사본부, 취조실>.

긴급 체포된 송민준이 그의 변호사와 함께 취조실에 도착했다. 취조는 강상중 팀장이 담당했고 나는 취조실 유리창 너머로 그 장면을 유심히 지켜봤다.

“우리 의뢰인께서는 묵비권을 행사할 것입니다. 필요한 질문은 저에게 하시고 답변 또한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송민준의 변호사, 장국진이 서류뭉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네. 좋을 대로 하십시오.”

강상중 팀장이 노트북을 전원을 켜며 말했다.

“저 인간이 표정이 굉장히 편안해 보이는데요?”

옆에 있던 박 형사가 코를 만지작거렸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죠.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죄가 없거나 아니면 죄가 있어도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거나…….”

나는 팔짱을 낀 채, 유심히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럼 지금부터 몇 가지 묻겠습니다.”

“…….”

송민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다리를 꼬았다.

“이 여자를 아십니까?”

강상중 팀장이 죽은 박정은의 사진을 내밀었다.

“아뇨. 처음 보는 여자군요.”

장국진 변호사가 사진을 집어 들려 하자 송민준이 빼앗아 잠시 사진을 살펴보더니 이내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음, 우리 의뢰인 신분에 도우미를 하는 여자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장국진 변호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군요. 이 사진 속 여자는 2010년 3월 14일 05시 30분에 변사체로 발견됐습니다.”

“그래서요?”

“당신이 이 여자를 죽인 게 아닙니까?”

강상중 팀장은 그의 반응이 궁금했는지 자극적인 질문을 던졌다.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장욱진 변호사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아…… 그냥 계십시오. 그럴 수도 있죠.”

송민준이 장국진 변호사의 팔을 잡아당겼다.

“네.”

“내가 죽여요? 왜죠?”

표정의 변화가 전혀 없었다. 그가 무심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왜요? 어처구니없군요. 지금 그걸 밝히기 위해 당신이 이곳에 와 있는 겁니다. 좋습니다. 다시 묻죠. 3월 13일 22시 ~ 3월 14일 05시까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강상중 팀장이 어이없다는 듯이 이마를 매만졌다.

“글쎄요. 시간이 꽤 지난 시점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군요. 아! 3월이면 음… 우리가 한참, TPS 시스템과 전략적 제휴를 준비 중이었으니 회사에서 밤을 새운 적이 많았으니까 아마도 회사에 있었겠군요.”

송민준이 뭔가를 떠올리며 검지를 내밀었다.

“아뇨. 우리가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당신은 사건 당일 20시에 회사를 나섰습니다. 그리고 다시 회사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다시 회사에 나타난 시간은 그 다음 날, 오전 8시 30분이었습니다. 박정은이 살해된 그 시간에 당신은 분명 회사에 있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강상중 팀장이 송곳 같은 시선을 송민준에게 보냈다.

“그런가요? 오래된 일이라 제가 착각을 했나 봅니다. 음… 그럼 집에서 자고 있었겠죠? 그 시간이면 한창 잘 시간 아닙니까?”

송민준이 너무도 태연한 태도로 강상중 팀장의 질문에 응대했다.

“맞습니다. 우리 의뢰인은 퇴근 후에 집으로 오셨고 아이들과 놀아준 후, 일찍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다음날 중요한 회의가 있었거든요.”

장국진 변호사가 옆에서 거들었다.

“검사님, 저 인간 보통은 넘는 놈이 틀림없군요. 감정의 변화가 전혀 없어요. 일반적으로 이 정도 빼박 정황이면 당황해서 횡설수설하기 마련인데, 저 일관된 태도 좀 보십시오.”

박 형사가 입술 위아래를 이로 잘근거렸다.

흠…… 송민준은 집 말곤 사건일 행적에 관한 알리바이가 전혀 없다. 그는 우리가 함부로 자택 수색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거야. 물론, 하려 해도 어떻게든 막겠지만 말이야. 또한, 압수수색을 한다 한들, 이미 입을 맞춘 상황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박 형사 말대로 쉽지 않겠는걸….

미간이 저절로 일그러졌다.

“좋습니다. 그럼 이건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휙, 강상중 팀장이 사진 한 장을 꺼내 송민준에게 밀어 던졌다. 박정은이 살해당하기 직전 자신의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이었다.

“음…… 이게 뭡니까?”

“뭐긴 뭐야? 네 뒷모습이잖아! 이번엔 어떻게 빠져나갈래? 이 미꾸라지 같은 놈아!”

강상중 팀장이 이를 악다물었다.

“이 양복, 지금 송민준 씨가 입고 있는 양복을 같은 거 아닙니까?”

강상중 팀장이 송민준의 슈트 상의 하단의 문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 그렇군요. 자세히 보니 제가 입고 있는 슈트와 비슷한 거로군요!”

송민준이 사진을 들어 자세히 보더니 손가락을 들어 사진을 가리켰다.

“검사님, 이번엔 어떻게 못 하겠죠?”

“음… 글쎄요.”

“네? 글쎄 아뇨? 이번엔 못 빠져나갈 겁니다. 이 정도 증거를 들이미는데…… 어떻게 대답하나 보자.”

박형사가 유리창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강상중 팀장이 긴장했는지 목울대를 꿀렁거렸다.

“음… 형사님, 제가 선물로 이 슈트 하나 해드릴까요?”

송민준이 손가락으로 사진 속 슈트를 가리키며 뜬금없이 되물었다.

“네? 지금 장난하십니까? 그게 무슨 소립니까? 당신은 지금 살해 용의자예요. 장난할 때가 아니란 말입니다.”

“강 형사님 말을 삼가십시오.”

장국진 변호사가 얼굴을 붉혔다.

“변호사님 괜찮습니다. 음…… 형사님이 오해가 있으신가 보군요. 그러니까, 제가 이 슈트를 선물한 사람만 100명이 넘습니다. 친구 생일 선물로 맞춰준 것도 있고 외국 바이어에게 준 것도 있지요. 하물며, 우리 집 집사, 아드님이 대학 합격했을 때도 제가 이 슈트를 선물했죠. 형사님,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는지 이해하시겠습니까?”

송민준이 양손에 깍지를 끼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

“형사님, 체격도 저랑 비슷하신데 그럼, 이 양복을 형사님이 입으시면 살인사건 용의자가 되는 겁니까?”

송민준이 몸을 강상중 팀장 쪽으로 당기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나왔어!

물론, 철저히 준비는 했겠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답변하는 그의 침착함은 놀라웠다.

어느새, 등줄기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흠… 좋습니다. 그럼, 010-2344-XXXX, 이 번호 본인의 휴대전화 번호가 맞습니까?”

당황한 강상중 팀장은 필살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수사하는 과정에서 송민준이 대포폰을 쓰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우리 수사팀은 그의 수행비서 명의의 폰을 송민준이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아뇨. 제 명의의 휴대전화 번호가 아닙니다.”

역시, 흔들림 없는 눈동자였다. 그가 고개를 내저었다.

“확실합니까?”

“네. 제 폰이 아닙니다.”

“여기서 거짓 증언을 하면 할수록 당신이 불리해집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이 번호를 모르십니까?”

강상중 팀장이 자신 넘치는 표정으로 리스트를 내밀었다.

“네. 제 명의의 휴대전화 번호가 아닙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송민준은 비서들의 명의로 대포폰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 휴대전화는 송인준 명의의 휴대전화는 아니었다.

“그 번호의 명의가 누구입니까?”

툭툭, 장욱진 변호사가 리스트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물었다.

“음… 물론 수행비서, 이진철 명의의 휴대전화입니다.”

“흠… 그럼 지금 비서 명의의 휴대전화 내역을 들고 와서 우리 의뢰인을 협박하는 겁니까? 어이가 없군요! 휴대전화 명의자에게 물어야지 왜 우리 의뢰인에게 묻는 겁니까?”

장국진 변호사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얼굴을 붉혔다.

“이거 보세요! 명의는 비서지만 내역을 살펴보십시오. 분명, 송민준 씨가 사용한 휴대전화가 맞습니다. 이 사람들 전부 송민준 씨 지인들 아닙니까?”

탁탁, 강상중 팀장이 리스트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게다가 사건 발생일 3시간 전, 피해자 박정은과 문자를 주고받은 내역이 6건이나 됩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휙휙, 강상중 팀장이 리스트를 넘기며 자신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그… 게….”

리스트를 살펴보던 장국진 변호사가 당황한 표정으로 송민준을 쳐다봤다.

“흠…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쓴 휴대전화가 맞는군요.”

“네? 그런데 왜 아니라고 잡아떼셨습니까?”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강상중 팀장이 더욱더 매섭게 다그쳤다.

“사실, 제가 지금 쓰고 있는 휴대전화가 5개가 넘습니다. 물론, 회사 보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포폰을 사용했지만 말입니다. 음… 그 폰은 제가 출장 간 사이 분실한 폰입니다. 회사에 두고 간 것 같았는데, 없어졌더군요. 워낙, 휴대전화가 많다 보니 잃어버린 줄 몰랐죠. 나중에 확인하고 나서 바로 사용중지를 했습니다. 물론, 대포폰을 사용하는 것이 불법인 줄 알고 있지만, 사정상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는 신분으로써 대포폰을 쓰고 있다는 것이 창피했습니다. 그리고 전 거짓 진술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이 휴대전화는 분명 제 명의가 아니니까요. 이게 문제가 된다면 그에 대한 처벌은 달게 받도록 하죠.”

송민준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위기를 헤쳐나갔다.

“흠… 검사님, 이거 쉽지 않겠는데요?”

그의 대응엔 허점이 없어 보였다. 박정은이 죽기 2일 전까지 송민준은 미국 출장 중이었고 그녀가 죽은 지 이틀이 지난 후에 휴대전화는 사용 정지되었었다. 그 사이 송민준이 이 전화기를 사용했다는 증거 또한 없었다. 문자 내용 역시, 시간, 장소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일 뿐, 그가 범인이라는 직접적 단서는 없었다.

흔들림 없이 일관된 진술! 놈은 예상보다 훨씬 더 지능적인 인간이었다.

“박 형사님! 강 팀장님한테 가서 취조는 이쯤하고 이쪽으로 오시라고 하세요.”

“네. 검사님!”

“검사님이 일단 이쪽으로 넘어오시라고 하십니다.”

취조실로 들어간 박 형사가 강상중 팀장에게 귓속말했다.

“알았어. 먼저 나가 있어.”

“네.”

박 형사가 송민준을 노려보며 뒷걸음쳐 나갔다.

“그나저나, 송민준 씨, 제가 손 좀 내밀어 보시겠습니까?”

강상중 팀장이 턱짓으로 책상 밑에 있는 송민준의 손을 가리켰다.

“네? 아… 네.”

송민준이 잠시 멈칫거리더니 손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후, 손가락이 참 길군요.”

후, 유심히 그의 손을 응시하던 강상중 팀장의 입에서 허탈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네. 제가 좀 손가락이 긴 편입니다만, 우리 집안 내력입니다.”

송민준이 손을 들어 올려 앞뒤로 뒤집어 보았다.

“흠… 알겠습니다. 잠시 자리 좀 비우려는데 괜찮겠습니까?”

“네. 편한 대로 하시죠.”

송민준이 고개를 살짝 기울여 끄덕거렸다.

* * *

“검사님, 저 인간 보통이 아닌데요? 감정의 변화가 없습니다. 좀 더 심문해서 뭔가 결정적인 단서를 잡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취조실에서 나온 강상중 팀장이 혀를 내두르며 진저리를 쳤다.

“음… 지금부터는 제가 심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검사님이 직접요?”

강상중 팀장이 눈이 커졌다.

“네. 제가 직접 심문하겠습니다.”

“네에….”

강상중 팀장이 멋쩍은 듯 턱밑을 손톱으로 긁어내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