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57화] 연쇄살인범, 누구냐 넌? (3)
<검경 합동 수사본부, 상황실>.
박 형사의 연락을 받은 나와 강상중 팀장은 합정동에 있는 검경 합동수사본부로 향했다.
“박 형사!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접점을 찾았냐는 거야?”
쾅!
강상중 팀장이 종종걸음으로 상황실 문을 열었다. 박 형사는 브리핑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오셨습니까? 팀장님!”
“뭐야? 물증을 잡은 거야? 접점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강상중 팀장이 외투를 벗고 팔을 걷어붙이고는 상황판을 주시했다.
“김 검사님도 오셨군요. 일단 두 분, 진정하시고 앉으시죠.”
박 형사가 양손을 들어 보이며 한 템포 숨을 돌렸다.
“네. 형사님!”
나는 자리에 앉아 그의 얼굴을 주시했다.
“그럼, 지금부터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후, 브리핑 준비를 마친 박 형사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지이이잉.
박 형사가 리모컨 버튼을 누르자 천장에서 하얀 스크린이 내려왔다.
PPT 화면이 켜지고 세 개의 리스트가 나란히 화면에 나타났다. 하나는 국내 최고의 양복 장인이라고 알려진 김정복 씨가 운영하는 세기 양복점의 고객 명단, 또 하나는 최근 2년 이내에 네팔로 출국한 여행자들의 명단,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히말라야 등반 학교 수강생 명단이었다.
그 중, 단 한 명만 세 개의 리스트에 공통으로 포함돼 있었고 이름 옆에 빨간색 별 표가 쳐 있었다. 박 형사가 찾아낸 단서는 바로 이 리스트였다.
그 이름은 놀랍게도 송민준!
국내 재계 서열 3위의 재벌, H 그룹의 송광석 회장의 둘째 아들이었다. 박 형사가 말한 접점은 송민준, 바로 그였다.
180cm가 넘는 키에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한 이색 전력의 재원으로 최근 H 그룹의 후계자로 급부상한 인물이었다. 초고속 승진을 거쳐 현 H 전자의 상무이사직을 맡고 있었다.
송민준?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공교롭게도 그가 바로 이현우 검사의 둘째 처남이라는 사실이었다.
“박 형사 빨리 시작하지!”
강상중 팀장이 조바심이 나는지 연신 손을 흔들었다.
“네. 그럼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세기 양복점은 철저한 회원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아무리 돈이 많아도 보통 일반인들이 그곳에서 옷을 맞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국내 굴지의 재벌들이나 유명한 셀럽들만 드나들 수 있는 곳이죠. 비록 일게 양복점이지만 드나드는 사람들의 신분이 워낙 높은지라 보안이 철저해서 고객 명단을 확보하는 데도 적잖이 고생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 집사만 드나들 뿐 실제 옷 치수를 측정할 땐 직접 김정복이 자택으로 가기 때문에 더욱더 고객들을 확인하기 쉽지 않았죠. 아무리 수색영장을 내보여도 절대 입을 열지 않더라고요. 그 양반, 진짜 고집불통이더구먼요.”
박 형사가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 어떻게 명단을 확보한 거야?”
“하늘이 도왔는지 그쪽 경리를 담당하는 여직원 하나를 구워삶을 수 있었습니다.”
“뭐? 여직원? 어떻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여직원이 양복 원단 대금을 야금야금 삥땅을 쳤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이용했죠.”
“이거 뭐, 다행인 건지 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결과적으론 잘된 일이군.”
강상중 팀장이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거렸다.
“아무튼, 그녀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하다 보니 김정복 씨는 K 그룹, H 그룹 총수 일가의 옷을 전담으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양복 대금 역시, 보안을 위해 집사를 통해 철저하게 현금으로만 받았더군요.”
“음… 사진 속의 등장한 범인이 입고 있던 양복이 그곳에서 만든 게 확실합니까?”
“네. 확실합니다. 김정복 씨는 항상 옷을 만들 때 양복 상의 하단에 독특한 형태의 수를 넣는데 양복점에 진열된 양복 문양과 사진 속 문양이 정확히 일치합니다. 보십시오.”
박 형사가 사진 두 장을 나와 강상중 팀장에게 내밀었다.
똑같은 문양이군!
하나는 사건일 박정은이 찍은 범인 사진과 또 하나는 양복점에 전시되어 있던 슈트를 찍어온 사진이었다. 슈트 상의 하단에 수놓아진 문양이 동일했다.
“그래서, 저 이름에 별 표시가 된 사람이 H 전자의 송 상무라는 거야?”
“네. 맞습니다.”
“검사님, H 전자라면 만만치가 않겠는데요?”
후, 강상중 팀장이 한숨을 내쉬며 목덜미를 긁적거렸다.
“그러게요. 당연히 쉽지 않겠죠. 음…… 계속해 보시죠. 박 형사님!”
“네. 김정복 씨는 H 그룹 총수 일가에 양복을 공급했고 물론, 송민준 역시, 그곳에서 만든 맞춤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게다가, 공항 출국 자료를 조사해 보니 작년에 네팔에 간 흔적이 있더라고요.”
“그래? 당연히 목적은 등반이었겠지?”
강상중 팀장이 얼굴을 돌려 나를 쳐다보며 눈을 깜박였다.
“네. 맞습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했던 행적이 밝혀졌습니다. 해발 3000m 지점의 데우랄리까지 등반을 했더군요. 당연히, 산악등반을 즐겨 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검사님, 이쯤 되면 확실히 냄새가 나는데요?”
강상중 팀장이 다시 얼굴을 돌려 나를 쳐다봤다.
등반하기 위해 네팔에 갈 정도면 상당한 산악등반을 좋아한다는 얘긴데…….
“음… 아직 속단은 이릅니다. 계속하시죠. 박 형사님!”
하지만, 상대가 H 그룹인 만큼 좀 더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희가 찾아낸 접점은 바로 이겁니다. 여기 히말라야 등반 학교 수강생 리스트입니다.”
박 형사가 몇 장의 자료를 내밀었다.
“송민준이가 그곳에서 등반 교육을 받았단 말이지!”
강상중 팀장이 의자를 바짝 당겨 앉으며 뚫어지도록 자료를 쳐다봤다.
“네. 물론, 일반 수강생으로 교육을 받은 건 아니고 말하자면 개인 교습 같은 걸 받은 모양입니다. 그쪽 강사를 통해서 이미 확인했습니다.”
“좋았어, 수고했어. 박 형사! 검사님, 이 정도면 체포영장 발부받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강상중 팀장이 얼굴에 홍조를 띠며 흥분했다.
“아뇨. 상대는 H 그룹이에요. 법원에서도 100% 확신이 서지 않는 이상, 쉽게 영장 발부를 해주지 않을 겁니다. 아직은 시기상조예요.”
“그래도… 현재로선 이 자가 가장 강력한 용의자인데요. 그럼 어쩌죠?”
강상중 팀장이 입술을 잘근거렸다.
“일단은 참고인 조사 통보를 해주세요.”
“음… 참고인 조사라는 게 당사자가 안 나오겠다고 버티면 그만일 텐데요.”
“그래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일단, 참고인 조사 통보해 주시고 그 이후는 차차 생각해 봅시다."
“네. 알겠습니다. 검사님!”
H그룹의 강력한 후계자, 송민준! 게다가, 이현우 검사의 처남이라…….
이거 진짜 쉽지 않겠는데….
꿀꺽, 나는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 * *
<김정환 검사실>.
띠리리링.
이틀 후, 수사본부에 있는 강상중 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네. 김정환입니다.”
“검사님, 송민준이가 참고인 조사를 거부했습니다.”
“음… 그래요?”
역시, 예상대로 송인준은 경찰의 참고인 조사에 출석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다.
“이젠, 어떡하죠?”
“음… 그럼 할 수 없죠.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럼, 체포영장 발부하실 겁니까?”
“필요하면 해야겠지요.”
“네! 알겠습니다.”
강상중 팀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상기된 목소리로 톤을 높였다.
<법원, 정준호 판사실>.
나는 모든 수사 자료를 가지고 체포영장을 발부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방법원 체포영장 실질 검사 심사관을 찾았다.
“김정환 검사님, 전중호 차장님한테 연락은 받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흠,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자료를 넘겨보던 정준호 판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 자료면 충분히 체포영장 발부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뇨, 아뇨. 그건 나도 아는데, 상대는 국내 굴지의 기업인 H 그룹이라고요. 만에 하나 유죄 증빙 못 하면 그 이후엔 모든 걸 검찰 쪽에서 감내하셔야 할 겁니다. 나는 지금 그걸 묻는 거예요. 그쪽에서 역공이 만만치 않을 거예요. 쉽지 않아요. 않아!”
정준호 판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손바닥을 비볐다.
“그 정도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거… 참, 사람 하곤, 다시 생각해봐요. 괜찮겠어요?”
정준호 판사가 안경을 추켜 올리며 눈을 위로 떴다.
“네. 제 의지는 확고합니다.”
“흠… 좋습니다. 좋아요. 전차장님이 그렇게 칭찬을 해서 어떤 분인가 했더니 아주 황소고집이구먼. 차장님의 간곡한 부탁도 있고 하니, 우리 쪽에서 신중히 검토한 후에 연락드리죠.”
“네. 알겠습니다. 판사님! 부탁드립니다.”
“흠… 이거 또, 가뜩이나 시끄러운 시국에 세상이 또 한 번 발칵 뒤집히겠군.”
정준호 판사가 허리를 두드리며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며칠 후,
“검사님! 결국, 영장 발부하셨군요!”
강상중 팀장의 들뜬 목소리였다.
“네. 일단 송민준 상무 수사본부로 소환해 주십시오. 아마도 팀장님이 직접 가셔야 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결국, 송민준에 대한 체포영장 실질 심사는 70시간의 장고 끝에 가까스로 통과되어 그 앞으로 영장이 발부되었다.
* * *
<테헤란로, H 전자 본사 송인준 상무실>.
강상중 팀장과 형사들이 체포영장을 들고 H 전자 본사를 들이닥쳤다.
“안에 송민준 씨 있죠?”
“어머, 뭐예요? 이곳에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화들짝 놀란 비서들이 경찰들의 앞길을 막아섰다.
“비켜주세요. 자꾸 이러면 공무집행 방해로 처벌받으실 수 있습니다.”
“지금 어디서 행패십니까? 이곳은 외부인들이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입니다. 당장 전부 나가주세요!”
이미 소식을 들었는지 건장한 보안요원 서너 명이 나타나 입구를 막아섰다.
“후, 뚜껑 열리네. 행패? 여기 영장….”
“아침부터 웬 소란입니까?”
박 형사가 영장을 꺼내려는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송민준과 그의 수행비서들이 걸어 나왔다.
“아, 송민준 씨 맞습니까?”
박 형사가 영장을 손에 들고 그 앞으로 다가갔다.
“네. 제가 송민준입니다만. 무슨 일이십니까?”
“흠… 자 그럼, 읽겠습니다. 송민준, 당신을 박정은 살해 용의자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뭐야 지금? 이 분이 누군 줄 알고 여기서 행패야?”
송민준의 수행비서들이 박 형사를 밀치며 눈을 희번덕거렸다.
“아, 괜찮아. 다들 비켜!”
굵은 톤의 목소리가 지면을 묵직하게 울렸다.
“네. 상무님!”
그의 말에 수행비서들이 고분고분 자리를 비켰다.
“그렇습니까? 잠시만요. 오늘 중요한 결재가 몇 건 있어서 그런데, 저한테 한 10분만 주실 수 있을까요?”
송민준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이미 경찰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었다. 전혀 얼굴색에 변화가 없었다.
“뭐야 지금?”
“아… 박 형사, 가만 있어! 그렇게 하시죠. 단, 10분 이상은 기다릴 수 없습니다.”
박 형사가 눈을 부라리며 달려들자 강상중 팀장이 그를 막아섰다.
“이렇게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송민준이 강상중 팀장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별말씀을….”
강상중 팀장이 입 주위를 매만졌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허락을 받은 송민준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슈트가 멋지시군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상중 팀장이 입술을 매만지며 날카롭게 그의 슈트를 응시했다.
슈트 상의 하단의 문양이 선명했다.
“아…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송민준이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리며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김정환 검사실>.
우당탕!
“김정환 검사! 김 검!”
이현우 검사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문을 걷어차며 들어왔다.
“검사님! 왜 이러십니까? 고정하십시오.”
놀란 박 수사관이 내 방으로 막무가내로 들어오려던 그를 막아섰다.
“비켜! 안 비켜?!”
이현우 검사가 박 수사관의 팔을 거칠게 뿌리치며 악다구니를 부렸다.
“박 수사관님!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나는 문을 열고 날카롭게 그를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