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56화] 연쇄살인범, 누구냐 넌? (2)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뭐가 다르다는 거예요?”
이현우 검사가 궁금하다는 듯이 내 얼굴을 쳐다봤다.
“아무튼, 오셔서 보시면 아십니다. 빨리 이쪽으로 오십시오. 빨리요!”
박 수사관이 다급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무슨 일이야?”
전화를 끊자마자 이현우 검사가 물었다.
“네. 후… 신월동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네요.”
“설…… 마? 그… 미친놈 짓이야?”
이현우 검사도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네. 아무래도 동일범인 것 같아요. 선배님, 죄송하지만 지금 가봐야 할 것 같은데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양복을 챙겨 입었다.
“그래그래, 얼른 가봐. 이건 뭐야? 지정수가 진범이 아닌 것이 밝혀지자마자 터진 거네? 이…… 인간 대담성 좀 보소?”
이현우 검사가 양 볼을 부풀리며 혀를 내둘렀다.
“그럼. 선배님, 저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그래, 어서 가봐. 벌써 4시가 넘었네? 나도 들어가야지.”
그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한눈에 봐도 명품시계가 틀림없었다.
<11번째 희생자가 발견된 안양천 인근>.
안양천 산책로!
11번째 희생자가 발견된 곳은 안양천 인근의 산책로 풀숲!
하지만 주변의 풀들은 가지런히 정돈된 상태였다. 희생자가 반항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
“야! 증거 유실되니까 조심히 다뤄!”
“와, 이건 뭐! 어떻게 이렇게 난도질을…….”
사체를 살펴보던 형사들이 혀를 내둘렀다.
팡!팡!
어떻게 알았는지 이미 기자들이 몰려와 있었다.
“저기요! 폴리스 라인 넘지 마세요!”
“야, 한 형사 사진 좀 못 찍게 해!”
이미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었고 국과수 감식반과 광수대 형사들이 현장에 나와 있었다.
음… 이 여자는 이곳에서 죽은 게 아니다. 놈은 다른 곳에서 이 여자를 죽이고 일부러 공개된 장소에 사체를 유기한 거야!
우리가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악마 같은 놈!
나는 놈의 대담함에 치가 떨렸다.
“어서 오십시오. 검사님!”
멀리서 나를 알아본 강상중 팀장이 내게로 달려왔다.
“네. 팀장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아무래도 놈의 짓인 것 같습니다.”
“최초 목격자는 누굽니까?”
“네, 아침 운동을 나온 50대 남자가 사체를 발견하고 신고해 출동했습니다.”
“산책로 주변 CCTV는 확인해봤습니까?”
“그게 좀…….”
강상중 팀장이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거리며 머뭇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최근에 이곳에 설치된 CCTV가 노후되어 고장 났거든요. 구청에서 업체에 수리를 의뢰했는데 아직 수리가 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놈은 이 지역에 CCTV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거, 완전히 치밀한 놈인데요.”
흐음, 강상중 팀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사체 신원은 파악했습니까?”
“네. 역시나 지갑이 그대로 있습니다. 현금은 건드리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합니다. 이걸 좀 보시죠.”
강상중 팀장에 나에게 피해자의 주민등록증을 내밀었다.
파마머리에 통통한 외모의 40대 여성!
그 순간, 난 박 수사관이 전화통화로 이상하다고 했던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이… 럴수가?
사체를 확인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울혈과 점 출혈,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는 틀림없었다. 종전의 살해 패턴과 다르지 않았다. 또한, 사체의 손과 발을 묶어 루프 매듭으로 연결한 범행 수법은 그 전과 동일했다. 매듭의 형태로 볼 때, 분명 우리가 쫓고 있는 범인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번 피해자의 외모는 이전 피해자와는 확연히 달랐다. 주민등록증의 사진과 같이 피해자의 외모는 파마머리에 통통한 체격의 평범한 40대 아줌마의 모습이었다.
게다가 이전과는 다르게 심하게 훼손된 피해자의 음부까지….
“검사님, 이번 사건은 범인이 수사의 혼선을 주기 위한 트릭 같습니다. 기존 피해자들과는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아요.”
강상중 팀장이 까칠한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아뇨.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놈은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음… 놈은 지금 우리에게 경고하는 거예요.”
“네? 경고요? 그게 무슨?”
강상중 팀장이 당황한 듯 눈을 껌뻑거렸다.
“이 사건은 지정수가 진범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직후에 벌어진 사건이에요. 놈은 우리의 수사 전략을 정확히 꿰뚫고 있어요. 그래서 일부러 기존의 피해자들과 전혀 다른 외모의 여성을 선택한 겁니다. 우리가 기존 피해자의 한결같이 비슷한 외모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거죠. 게다가, 수사의 혼선을 주려 했으면 기존과 같은 매듭을 사용하지 않았을 겁니다. 놈은 자신의 짓임을 우리에게 과시하고 있는 거예요. 일종의 경고인 거죠. 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잔인한 놈일 가능성이 큽니다."
나는 놈의 대담함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군요. 맞아요! 검사님 말씀대로 수사의 혼선을 주려면 자신의 존재를 감춰야겠지요. 이 여자를 묶은 매듭은 확실히 그놈의 매듭이 맞아요. 보여주는 거죠. 내가 범인이라고… 해볼 테면 해봐라! 우우우, 무서운 놈!”
강상중 형사가 치를 떨었다.
“…….”
“그나저나, 음부를 저렇게 칼로 도려낸 이유는 뭘까요? 기존에 피해자들은 이런 적이 없었잖습니까?”
강상중 팀장이 손수건을 꺼내 입을 막으며 말했다. 피해자의 음부가 날카로운 도구에 의해 처참하게 도려져 있었다.
“분노! 분노의 표출입니다. 지정수의 정체가 밝혀진 상황이 놈은 못마땅했던 거죠. 그 끓어오르는 분노를 이 여자를 살해하면서 분출한 거예요. 이 여자를 살해할 때 놈은 굉장히 흥분한 상태였을 거예요. 보십시오. 음부뿐만 아니라 이렇게 가슴도 도려냈습니다. 게다가, 아마도 범인은 이 여자와는 아무런 연관 관계도 없었을 겁니다. 그냥,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 대상자로 선택된 것일 뿐이죠.”
‘김정환! 나와 게임이나 한 판 해볼까? 어디, 쫓아올 테면 쫓아와 봐!’
심하게 훼손된 사체에 생긴 칼자국들이 마치 나를 향해 그가 경고하는 상형문자와도 같았다.
“저… 정말 무서운 놈입니다. 이렇게 지독한 놈은 형사 생활 이래 생전 처음입니다.”
우우우, 강 형사가 손바닥으로 거칠게 얼굴을 문질렀다.
“…….”
“그나저나, 검사님 말대로 그렇게 흥분한 상태였다면 뭔가 실수를 했을 법한데 지금까지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강상중 팀장이 마른 입술에 침을 묻혔다.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도 놈은 침착하게 범행을 마무리했어요. 저 매듭을 보면 압니다. 이전 희생자들의 매듭과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아니, 더욱더 꼼꼼하게 매듭을 지었습니다. 전혀 손의 흔들림이 없었다는 것을 뜻하는 거죠. 얼음 같은 냉철함을 소유한 악마가 바로 그입니다.”
“정말, 이놈은 악마일지도 모르겠군요.”
“음…일단, 교통관제센터에 가셔서 이 지역 주변 도로에 설치된 CCTV 화면을 좀 확보해주세요. 아마 시간대 새벽이라 이동한 차량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겁니다. 분명, 놈은 차량을 이용해 이곳에 왔을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검사님!”
자신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놈, 조물주의 자리를 넘보는 악마!
네놈은 반드시 내 손으로 잡는다!
후우, 나는 심호흡을 하며 양손에 힘을 주었다.
<전중호 차장실>.
나는 새벽에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 11번째 희생자, 장순영 씨에 관한 보고를 하기 위해 그의 방을 찾았다.
“음…… 그러니까 그놈의 짓이란 말이지?”
보고서를 자세히 살펴보던 전중호 차장이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네. 분명 동일범의 짓이 맞습니다.”
“흠… 대담성에 침착함까지 후… 김 검사, 이거 만만치 않겠는데?”
전중호 차장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네. 생각보다 치밀한 놈입니다. 차장님! 그래서 말인데요, 수사를 지금부터 비공개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언론에 수사 과정이 노출되다 보니 놈이 쉽게 우리의 동선과 전략을 쉽게 파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철저하게 언론을 통제해 주십시오.”
“음… 알았어.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자넨 수사에 집중해. 이놈 반드시 잡아야 해. 무고한 사람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죽이다니, 나쁜 놈!”
쾅, 전중호 차장이 눈을 치켜뜨며 책상을 내리쳤다.
“…….”
“그나저나, 피해자 가족에겐 연락했나? 이건 뭐, 너무 참담하구먼.”
전중호 차장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네. 경찰 쪽에서 연락했을 겁니다.”
“흠… 그래. 알았어. 김 검사, 이놈 반드시 수갑 채워 와!”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며칠 후,
<김정환 검사실>.
강상중 팀장이 수사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내 방을 찾았다.
“검사님, 말씀대로 교통관제센터 쪽 자료를 확인해봤는데 특별한 단서가 없습니다. 그 시간에 안양천 산책로 쪽으로 빠져나가는 차량이 없었어요.”
강상중 팀장이 CCTV 화면을 찍은 사진을 내밀었다.
“확실합니까?”
“네. 게다가 그 시간에 이쪽 도로를 이용한 차량은 대부분 화물차량이었고 전부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다들 알리바이가 확실합니다. 아무것도 단서가 될 만한 것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강상중 팀장이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흠…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수제 양복점 탐문한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것이 나왔나요?”
“그게… 서울에만도 유명 수제 양복점이 수백 개는 돼서 시간이 좀 걸립니다. 지금 3개 조로 나눠 탐문을 하고 있는데 아직 뚜렷한 단서는 찾지 못했습니다. 공항 쪽 출국자 명단과 등반학교 수강생 리스트도 확보를 해뒀으니 접점이 나오는 대로 바로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수고하시고 일말의 단서라도 나오면 바로 보고해 주십시오. 범인은 만만한 놈이 아닙니다. 우리도 정신 바짝 차리고 대응해야 할 것이에요.”
나는 눈에 힘을 줘 그를 응시했다.
“네. 알겠습니다.”
띠리리링.
그 순간, 강상중 팀장의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여보세요?”
강상중 팀장이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팀장님, 접니다.”
“어. 박 형사, 무슨 일이야?”
“팀장님! 드디어 접점을 찾았습니다.”
박 형사의 목소리가 들떠있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자세히 말해봐!”
“검사님, 접점을 잡았답니다.”
“네? 확실합니까?”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강상중 팀장이 한 손으로 수화기를 막고 내게 말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박 형사, 자세히 좀 말해봐!”
“전화로 말씀드리긴 좀 그렇고 자세한 건 수사본부에 들어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팀장님!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수화기 밖으로 튀어나온 박 형사의 목소리가 한층 고무돼 있었다.
“알았어! 지금 당장, 검사님과 같이 갈게. 기다려!”
꾹, 강상중 팀장이 전화기 종료 버튼을 눌렀다.
“검사님! 박 형사가 뭔가 단서를 잡은 모양입니다. 가시죠!”
강상중 팀장이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음… 좋습니다. 지금 바로 가시죠!”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투를 챙겨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