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55화 (55/170)

# 55

[55화] 연쇄살인범, 누구냐 넌? (1)

<김정환 검사실>.

“안녕하십니까? 서울지방경찰청 광역 수사대 강력 1팀장, 강상중이라고 합니다.”

덥수룩한 수염에 날카로운 눈빛, 각진 턱이 강인해 보이는 한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와 인사했다. 그는 이번 서울 서남부 연쇄 살인사건 재수사를 위해 투입된 형사 강상중이었다. 경찰청 광역 수사대 내에서도 최고의 검거율로 능력을 인정받는 베테랑 형사였다.

“어서 오십시오. 형사님! 앉으시죠.”

나는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네. 김 검사님과 같이 일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강상중 팀장이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를 했다.

“아뇨. 저야말로 광수대 최고의 에이스 형사님과 일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반갑습니다. 김정환입니다."

“지난번, 길상파를 수사하신 소식은 익히 들었습니다. 굉장히 인상적이시더군요. 솔직히 쉽지 않으셨을 텐데 잘해 내셔서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강상중 팀장이 느닷없이 길상이 사건을 언급했다.

“이길상을 알고 계셨습니까?”

“네. 잘 알다마다요. 사실, 최근 길상파가 전라도 지역을 넘어 수도권을 넘보고 있었기 때문에 예의주시하고 있었거든요. 최근에 서울 쪽 다른 조직, 보스들과 왕래가 잦았죠. 저희도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

강상중 팀장이 덥수룩한 수염을 쓸어 넘겼다.

“그러시군요. 아무튼, 반갑습니다. 형사님!”

날카로운 눈매에 진중한 말투, 분명 여느 형사들과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나는 한눈에 그가 보통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음… 그건 그렇고, 사실 저도 이번 사건에 미심쩍은 부분이 한둘이 아녔습니다. 범행 수법의 치밀함이나 뻔히 발견될 걸 알면서도 공개된 장소에 사체를 유기하는 대담성 등을 고려할 때, 지정수 정도의 레벨이 저지를 사건은 아니라고 생각했죠. TV에서 지정수를 연쇄살인범으로 지목했다는 보도를 보고 서부경찰서장이 무리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지정수는 절대 아니었는데…….”

강상중 팀장이 안타깝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 사람도 감을 잡고 있었구나!

“…….”

“솔직히 같은 경찰로서 무척 유감입니다. 이번에 반드시 진범을 검거해 실추된 경찰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습니다.”

강상중 팀장이 어금니를 깨물며 주먹에 힘을 주었다.

“네. 저도 그 점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우리 최선을 다해서 반드시 진범을 검거합시다.”

나 역시 그의 말에 동감했다.

“음… 검사님, 제 생각엔 범인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찰의 수사 선상에 오른 적이 없는 인물일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전과기록도 없을 거예요.”

“왜죠?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강상중 팀장과 같은 생각이었기에 나는 그의 의중을 파악하고 싶었다.

“검사님이 보내주신 자료를 검토했는데, 일단 기존의 연쇄살인범의 범죄 유형과는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릅니다. 첫째, 사건 현장이나 피해자의 몸에서 범인의 체모는커녕, 단 0.01%의 체액이 발견되지 않은 점입니다.”

“음… 범인이 철저하게 증거를 남기지 않은 것 아닐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인 부녀자 연쇄살인의 경우 범인의 왜곡된 여성관이 투영되는 경우가 많아요. 일종의 여성 혐오에서 오는 변태적인 성욕 분출이 대표적이죠. 그런 과정에서 아무리 치밀하게 뒤처리를 하더라도 반드시, 사소한 증거를 남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번 10명의 피해자의 몸에선 그 어떤 단서가 될만한 것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

“음…… 계속해 보시죠.”

“이번 사건들은 너무도 완벽했어요. 어쩌면, 범인은 자신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 범행을 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애초에 성적인 접촉이 없으니 증거 또한 남일 일이 없겠죠. 게다가,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사건 당시 상당한 금액의 현금을 몸에 지니고 있었어요. 그런데, 범인은 그 돈을 건드리지도 않았죠. 관심조차 없었어요. 그게 뭘 뜻하는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동의를 표했다.

“일반적으로 기존 연쇄살인범들은 일정한 직업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히 생활이 궁핍했겠죠. 결국, 피해자들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을 테고 다음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서라도 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겠죠. 게다가 현금이라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 연쇄살인범은 기존과는 그 궤를 달리합니다. 그는 우리와 게임을 하자는 겁니다. 지금!”

강상중 팀장의 눈이 반짝거렸다.

음… 역시, 내가 생각한 것 그 이상이야.

경찰 특유의 촉과 노하우를 겸비한 사람이었다.

“그럼, 다시 묻죠. 범인은 왜 그들을 죽였을까요?”

나는 좀 더 그의 분석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일단, 피해자들이 하나같이 비슷한 외모를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얀 피부에 긴 생머리, 그리고 무엇보다 핑크색 미니스커트, 범인은 분명 그런 외모를 지닌 여자를 향한 증오가 있었을 거예요. 아니면, 반대로 로망이 있었을 수도 있겠죠. 분명, 보통 그런 가치관은 유년기, 정체성이 확립되기 전에 형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죠. 범인 역시 유년기에 그런 여성으로부터 정신적인 충격 또는 동경을 가졌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음… 그렇죠.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겠죠.”

“또한, 최고급 수제 양복과 구두를 구매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범인은 우리가 예상치 못할 만큼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거나 부를 영위할 수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내 생각과 같아! 이 사람과 함께라면 한번 해볼 만하겠어.

나는 그의 치밀한 분석에 마음이 놓였다.

“좋습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수사를 진행하실 생각입니까?”

“일단, 검사님이 보내주신 범인의 사진을 가지고 수제 양복점들을 샅샅이 뒤질 예정입니다. 이 정도 퀄리티의 양복이라면 일반인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은 아니겠죠. 뒤져보면 뭔가 단서가 나올 겁니다.”

강상중 팀장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네. 맞습니다. 또한, 전국의 주요 등반 학교 수강생들의 인적 사항 좀 확보해주세요. 그리고, 최근에 네팔이나 주요 산악 국가에 방문한 출국자들도 명단도 확인해 봐 주시고요. 분명 뭔가 접점이 나올 겁니다.”

“네. 검사님!”

똑똑똑!

“김 검사 들어가도 괜찮나?”

이현우 검사였다.

“네. 들어오세요.”

“아! 손님이 있었구먼? 다음에 다시 올까?”

이현우 검사가 내 방으로 들어오려다 강상중 팀장을 보고는 다시 밖으로 나가려 했다.

“아뇨, 아뇨. 지금 막 끝내려는 참이었어요. 괜찮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음… 그래.”

이현우 검사가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다.

“형사님, 그럼 나중에 다시 봅시다.”

“네. 검사님!”

강상중 팀장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형사? 아… 이번 서남부 사건 재수사를 한다더니 담당 형사님이신가?”

이현우 검사가 손가락으로 강상중 팀장을 가리키며 아는 척을 했다.

“네. 광수대 김상중 형사십니다. 참, 형사님 인사하시죠! 이쪽은 강력부 검사이신 이현우 검사십니다.”

나는 강상중 형사에게 이현우 검사를 소개했다.

“광수대, 김상중입니다.”

그가 손을 내밀어 이현우 검사에게 악수를 청했다.

“아, 네. 전 강력부 검사, 이현우입니다.”

“그럼 전 이만…, 김 검사님, 나중에 수사본부에서 뵙겠습니다.”

강상중 팀장이 피식거리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어휴, 아파 죽겠네. 저 사람 경찰 티 너무 내는 거 아냐? 왜 이렇게 손을 꽉 잡아. 뭔 손아귀 힘이 저렇게 좋은 거야?”

강상중 형사가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한 이현우 검사가 벌게진 얼굴로 손을 연신 털어대며 투덜거렸다.

“강 형사가 그랬나요? 괜찮으세요?”

“괜찮아. 경찰들이 뭐 다 그렇지. 이런 식으로라도 우리한테 힘을 과시하고 싶었겠지. 뭐, 일종에 열등감이라고 할까? 그건 그렇고 참! 오늘 우리 한잔하기로 했잖아. 김 검, 시간 괜찮아? 설마 잊은 건 아니겠지?”

이현우 검사가 자연스럽게 말을 놓으며 달력을 가리켰다.

“아… 맞다. 그날이 오늘이었나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어했다.

“사람 하곤, 바쁘면 나중에 하고….”

그가 검지를 흔들며 고개를 내둘렀다.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저도 이제 막 퇴근하려는 참이었어요. 같이 가시죠.”

“그럼 그럴까?”

이현우 검사가 입가에 환한 미소를 띠었다.

<시내 XX 재즈 바>.

Summertime and the livin’ is easy~.

이현우 검사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재즈 뮤지션이 라이브로 연주를 하는 고급스러운 재즈바였다.

“김 검사, 그동안 수고 많았는데 한잔해.”

이현우 검사가 잔에 와인을 따랐다.

“네.”

“아무튼, 정말 대단해! 첫 사건을 이렇게 멋들어지게 해결할 줄은 몰랐어. 김 검, 다시 봐야겠는걸!”

이현우 검사가 엄지를 추켜올렸다.

“아닙니다. 운이 좀 좋았어요.”

“겸손하긴, 그나저나 어떻게 지정수가 범인이 아닌 걸 눈치챈 거야?”

이현우 검사가 와인 잔을 부드럽게 흔들며 물었다.

“음… 저도 처음엔 긴가민가했는데 결정적인 제보가 있었어요.”

나 역시, 와인을 한 모금 삼켜 넘겼다.

“제보? 무슨 제보?”

탁, 이현우 검사가 와인 잔을 내려놓으며 관심을 보였다.

“아… 그게, 지정수의 알리바이가 깨졌어요. 7번째 피해자인 박정은이 살해당하던 날, 지정수가 장한평에 있는 룸살롱에 있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결정적 제보는 박정은이 찍은 진범의 사진!

하지만, 나는 육감적으로 꺼림칙했다. 왠지 이 사실을 그에게 말하고 싶지 않아 대충 둘러댔다.

“아… 그랬군. 칠칠찮긴. 그래서 꼬리가 잡힌 게로군. 한심한 인간!”

쯧쯧쯧, 이현우 검사가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

“그럼 앞으로 수사는 아까 그 형사가 진행하는 건가? 그 강상중인가 뭔가 하는 형사 눈빛이 보통은 넘어 보이더군.”

그가 잔을 들어 흔들며 와인을 한 모금 삼켰다.

“네. 광수대에서도 상당히 능력을 인정받는 모양입니다. 좀 전에 보니 범인 검거를 향한 의지가 엄청나더군요.”

“음… 그렇군. 아무튼, 알아서들 하고, 수사가 진전되면 내게도 좀 귀띔 좀 해줘. 사건이 흥미진진한 게 영화를 보는 것 같더구먼….”

그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거렸다.

뭐? 흥미진진? 10명의 무고한 사람이 안타깝게 죽은 사건을 가십거리로 생각한다는 건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네에….”

그의 말이 상당히 귀에 거슬렸다.

“김 검은 결혼 안 하나?”

“음, 아직은 생각이 없습니다.”

아무튼, 나는 새벽이 되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어느덧 시계가 새벽 4시를 가리켰다.

띠리리링.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박 수사관의 전화였다.

이 시간에 전화가 올 일이 없는데… 설마?

나는 직감적으로 단순한 전화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여보세요. 수사관님 이 시간에 무슨 일입니까?”

“어휴, 검사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숨이 넘어가십니까? 진정하시고 천천히 말씀하세요.”

“그게, 어휴, 신월동에서 사람이 죽었습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좀 더 자세히 말씀해 보세요.”

“그게,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과 수법이 동일해요. 피해자의 팔과 다리를 묶은 매듭이 동일한 게 아무래도… 놈의 짓인 듯합니다.”

박 수사관의 목소리가 잔뜩 긴장한 듯 보였다.

“네?”

“그런데, 좀 뭔가 이상합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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