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54화] 거짓에 관한 진실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 (5)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나는 그의 의도가 궁금했다.
“뭘 어떡해? 잘못을 했으면 그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공평한 거 아닌가?”
전중호 차장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뭔가 생각해 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차장님, 이번 이 사건을 오픈하시면 경찰 쪽 반발도 만만치 않을 텐데요?”
“그야 그렇겠지! 아무래도 쥐도 막다른 곳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그들에게도 이번 참에 쇄신할 기회를 줘야지!”
“기회요?”
“그래. 기회! 아마도 그들은 내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을 거야. 물론 어떤 선택을 하든 그들은 지옥을 경험하겠지만 말이야. 똥물을 뒤집어쓰든 구정물을 뒤집어쓰든 말이야. 어쩌면 구정물이 더욱 그들에겐 고통일 수도 있겠지만.”
흠…… 전중호 차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 * *
<시내 XX 한정식>.
전중호 차장은 이번 지정수 연쇄 살인사건을 진두지휘했던 서부경찰서장과 식사하기 위해 시내 한정식집을 찾았다.
“어쩐 일로 차장님께서 직접 밥을 사신다고 하십니까? 저야 반갑지만, 왠지 영 불안해집니다.”
껄껄, 서부경찰서장 이형종이 외투를 옷걸이에 걸며 악수를 청했다.
“불안하긴요. 이번 지정수 건도 있고 해서 서장님이랑 밥이나 한 끼 하려고요. 앉으시죠!”
악수한 전중호 차장이 그에게 앉기를 권했다.
“네. 좋습니다. 오래간만에 술 한잔하며 차장님과 시국을 논하는 것도 괜찮겠지요.”
이형종 서장이 밝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자…… 한잔하시죠.”
“네. 주십시오.”
1시간여, 두 사람은 이런저런 검찰과 경찰의 일상사를 주고받았으며 술을 마셨고 뭔가 찜찜했는지 이형종 서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음…… 그나저나 지정수는 우리가 검찰 쪽으로 넘긴 지 좀 된 거 같은데 처리가 좀 지지부진한 거 같습니다?”
이형종 서장이 전중호 차장의 잔을 채우며 말했다.
“글쎄요. 담당 검사가 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네요. 좀 더 조사가 필요하다고 하네요.”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미심쩍다뇨?”
이형종 서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요. 어떡하겠습니까? 담당 검사가 그런 것을…… 그렇지 않아도 바쁜데 말입니다. 뭘 그렇게 시간을 끄는지 모르겠군요.”
전중호 차장이 술을 마시며 이형종 서장에게 날카로운 눈빛으로 응시했다.
“음…… 담당 검사가 누굽니까?”
“이번에 순천지청에서 이쪽으로 발령받은 김정환 검사라고 아주 당찬 검사입니다.”
“순천지청이오?”
이형종 서장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뭔 문제가 있습니까?”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자꾸 검찰에서 지정수를 그렇게 오랫동안 잡고 계시면 저희로서 좀 곤란하기도 하고, 순천지청이면….”
“순천지청이면 뭐죠? 지방 검사 출신이라 문제가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전중호 차장이 미간을 좁혀 심기가 불편함을 내보였다.
“그게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검사가 이런 중요한 사건을 맡으면 공정성이나 뭐, 여러모로….”
“음… 그것과 공정성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그나저나, 진즉에 여쭤보려 했는데 그렇게 공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경찰이 왜 그러셨습니까?”
전중호 차장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날카로움에 손이 베일 정도였다. 그가 뚫어지도록 이형종 서장을 응시했다.
“차장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왜 그러다뇨? 뭘 말씀하시는 건지?”
당황한 듯 이형종 서장의 동공이 흔들렸다.
“쓰읍, 그게 배우 연기는 나름 괜찮았는데, 연출이 영 시원찮아서 흥행이 안 될 듯한데요. 어떡하죠? 이번 작품은 개봉도 못 하게 생겼는데?”
“허허, 도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 말씀만 하십니다.”
이형종 서장이 잔에 술을 따라 단숨에 삼켜 넘겼다. 술잔을 잡은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음… 이해가 되지 않으십니까?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지정수가 연쇄살인범이 맞나요? 이 서장님!”
전중호 차장이 눈을 똑바로 뜨며 그를 응시했다.
“뭐요? 지금 그걸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세상에 그런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이건 대한민국 경찰을 향한 심각한 모독입니다. 아무리 검찰이지만 이건 너무 지나치시군요. 전중호 차장님!”
이형종 차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그냥 궁금해서 여쭤본 건데 이렇게 발끈하시니 진짜 뭔가 있는 모양입니다.”
허허허, 전중호 차장이 너털거렸다.
“뭐요? 검찰이면 이렇게 막말을 하셔도 되는 겁니까?”
이형종 서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요? 가시게요?”
전중호 차장이 무심히 그를 올려다 봤다.
“더는 불쾌해서 앉아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흠흠흠, 이형종 서장이 헛기침하며 옷을 챙겨 입었다.
“흠… 서장님, 어떡하죠? 안타깝게도 지정수 알리바이가 깨져버렸는데요?”
전중호 차장이 천천히 자신의 잔에 술을 따랐다.
“네… 그게 무슨 소리이신지?”
화들짝 놀란 그가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했다.
“이게 무슨 술이죠? 향이 참 좋군요.”
탁, 전중호가 테이블 위에 수사 자료가 담긴 봉투를 내려놓으며 향을 음미했다.
연출하시려거든 잘 좀 하시지, 옥에 티가 많아도 이렇게 많아서야….
쯧쯧쯧, 전중호 차장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이…… 이럴 수가?
전중호 차장이 턱짓으로 봉투를 가리키자 이형종 서장이 조심스럽게 내용물을 확인했다. 서류를 읽어 내려가던 그의 동공이 작아졌다 커지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를 읽은 그의 손이 마구 떨렸다.
“차… 장님! 죄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
털썩, 그가 느닷없이 전중호 차장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얼른 일어나시죠.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전중호 차장이 불쾌한 듯 미간을 좁혔다.
“저의 불찰입니다. 워낙, 여론이 들끓어…….”
이형종 서장이 코가 바닥에 닿을 만큼 더욱더 허리를 숙였다.
“진실을 말한다면 어떤 것도 기억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뭡니까? 얼마나 이 일을 은폐하기 위해서 수없이 거짓말을 만들어 내고 또 기억하기 힘들었을까요? 이렇게 검찰을 속이고 국민을 속이고, 더 나아가 경찰 자신들을 속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무고하게 희생당한 피해자들은 어떡할 겁니까?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요! 그들의 억울함을 무엇을 보상한단 말입니까?”
전중호 차장이 지금껏 참아왔던 분노를 한꺼번에 터뜨려 버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죽을죄를 졌습니다.”
이형종 서장이 어쩔 줄 몰라하며 손바닥으로 바짓단을 문질렀다.
“후, 하나만 물어봅시다. 이거 위쪽에서 지시가 내려온 겁니까?”
전중호 차장이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아냐 아뇨. 청장님은 아직 모르고 계십니다. 제… 선에서 지시한 겁니다. 성과에 눈이 멀어 그만…… 용… 용서하십시오.”
이형종 서장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들어 올렸다.
“용서가 말이 됩니까? 이게 어디 내가 용서한다고 되는 일이에요?”
전중호 차장이 눈을 깜빡이며 인상을 썼다.
“그…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슨 일이든 다 하겠습니다.”
꿀꺽, 당황한 이형종 서장이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음… 저도, 우리 대한민국 경찰이 이런 치졸한 짓을 하고 있었다는 걸 우리 국민에게 보여드리고 싶진 않습니다. 후, 이렇게 하시죠. 똥물보단 구정물이 나을 테니….”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중호 차장이 말을 마치자 이형종 서장이 연신 고개를 상하로 흔들었다.
“그리고, 서장님은 지금의 그 제복이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분이십니다. 서장님을 비롯해 이 일과 연관된 모든 사람은 옷을 벗어야 할 겁니다. 명심하세요. 아시겠죠?”
“네… 차장님.”
이형종 서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검 조사실>.
모든 진실은 밝혀졌고 지장수 역시 명확한 증거와 알리바이를 부정할 순 없었다. 하지만, 지정수는 자신의 모든 죄를 경찰 쪽에 돌리며 뻔뻔한 태도를 보였다.
“검사님, 잘못했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맞아요. 제가 저 사람들을 다 죽인 게 아닙니다.”
지정수가 몸부림을 치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
“저는 다만 경찰들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아무 잘못이 없다고요! 경찰들이 이 모든 죄를 내가 뒤집어쓰면 가족들을 돌봐준다고 했고 나중에 감형도 시켜준다고 꼬드겼습니다.”
지정수가 더욱더 몸을 세차게 흔들며 소리쳤다.
“아무 잘못이 없다고요? 한수지 씨를 성폭행하고 잔인하게 죽인 짓도 아무 짓이 아닙니까?”
“…….”
지정수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알을 굴렸다.
“지정수 씨, 당신 역시, 연쇄살인범과 다를 바가 전혀 없습니다. 당신은 한수지 씨 살인범으로 기소될 것이고 여죄 또한 철저히 수사할 겁니다. 앞으로 각오 단단히 하셔야 할 겁니다.”
쾅, 나는 문을 세차게 닫으며 조사실 밖으로 나왔다.
며칠 후,
<긴급 기자회견>.
“경찰의 크나큰 실수를 국민 앞에 사죄합니다. 경찰이 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한 지정수는 수사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 진범이 아님이 확인되었습니다. 향후, 철저한 재수사를 통해 반드시 진범을 검거할 수 있도록 경찰의 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할 것을 국민 앞에 맹세합니다. 또한, 이번 일로 물의를 일으킨 담당 서장과 수사진들은 일괄 사표 처리할 것임을 밝힙니다. 죄송합니다.”
경찰청장, 고창석이 침통한 표정으로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긴급 기자회견 내용은 지정수를 배우로 써서 사건을 마무리하려 했던 부도덕함을 사죄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무능함의 사죄였다. 결국, 이형종 서장은 전중호 차장이 내민 선택지 중 똥물이 아닌 구정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경찰청 간부 회의에서 자신의 실수를 고백하고 옷을 벗는 선택을 했다.
찰칵찰칵, 팡팡!
그 순간, 수많은 기자의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그럼, 지정수가 범인이 아니라면 누가 범인입니까? 또 다른 용의자가 있습니까?”
한민족 신문, 김 기자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지금 수사 중입니다.”
경찰청장이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향후 수사는 어떻게 진행되는 겁니까?”
“서울중앙지검의 김정환 검사와 우리 광역 수사대 최고의 경찰들이 투입돼 본격적인 수사본부를 꾸릴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경찰의 무능함에 분노한 국민께 사죄 말씀하시죠?”
“음… 이번 일로 국민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경찰청장, 고창석을 비롯해 뒤쪽에 정렬해 있던 경찰청 간부들이 허리를 굽히고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했다.
<서울중앙지검, 김정환 검사실>.
경찰청장의 사죄로 여론은 들끓었으며 국민들의 모든 관심은 아직 잡히지 않은 진범에 쏠려있었다.
똑똑똑, 한 남자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십시오.”
“네.”
“안녕하십니까? 경찰청 광역 수사대 강력 1팀장, 강상중이라고 합니다.”
덥수룩한 수염에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한 남자가 자신을 소개하며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