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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52화 (52/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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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거짓에 관한 진실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 (3)

며칠 후,

“검사님, 지정수가 조사실에 도착했습니다.”

박 수사관이 인터폰을 했다.

“네. 알겠습니다.”

<지검 조사실>.

조사실로 들어가자 지정수가 앉아있었다. 건장한 체격에 나름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그가 연신 손톱을 물어뜯으며 다리를 떨고 있었다. 정신적으로 상당히 불안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검사 김정환입니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그에게 인사했다.

“…….”

인사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산만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금부터 심문을 시작하겠습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검사님, 저, 무진장 배고픕니다. 밥 좀 사주십시오.”

내가 미란다 고지를 하려고 하자 그가 자신의 배를 문지르며 볼멘소리를 했다.

“네? 밥이오? 음… 좋습니다. 뭐가 드시고 싶습니까?”

최대한 그의 비위를 맞춰 의미 있는 대답을 이끌어야 했다.

“선지 해장국이 먹고 싶습니다. 선지 듬뿍 넣어서요.”

그가 새빨간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수사관님, 여기 선짓국만 하나만 배달 좀 시켜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박 수사관에게 전화를 걸어 음식을 주문했다.

잠시 후,

“이거 좀….”

음식이 배달되자 지정수가 손을 들어 올렸다. 수갑을 풀어달라는 표시였다.

“교도관님, 수갑 풀어주세요.”

나는 밖에서 대기 중이던 교도관을 불렀다.

“검사님, 그래도….”

교도관이 난색을 보였다.

“아뇨, 괜찮습니다. 풀어주세요.”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 주십시오. 야! 4532 점잖게 있는 거다. 알았지?”

딸각, 교도관이 지정수의 수갑을 풀어주며 눈을 부라렸다.

“…….”

후루루룩, 수갑이 풀리자 지정수가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굵다!

그 순간, 선짓국을 먹고 있는 지정수의 손가락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솥뚜껑 같은 손에 엄지와 검지는 보통 사람보다 훨씬 두꺼웠다.

젓가락질도 서툴다!

그는 젓가락질이 서툴렀다. 불편했는지 깍두기를 먹을 때도 숟가락을 사용했다.

젓가락질도 불편해할 정도의 손놀림이라면? 그렇게 정교한 매듭을 지을 수 있을까?

나는 그가 식사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잘 먹었다.”

커억, 지정수가 경박하게 트림을 하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여기 좀 치워주시죠!”

“네. 검사님.”

박 수사관이 들어와 빈 그릇을 가지고 나갔다.

“이젠 심문을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좋을 대로 하세요.”

지정수가 입을 쩍 벌려 이쑤시개를 쑤시며 말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인 이유가 뭡니까?”

모든 것을 떠나 나는 그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흐흐흐, 검사님은 사람 죽여본 적 없죠?”

지정수가 이죽거리며 되물었다.

“…….”

“그러시겠지. 검사님처럼 공부도 많이 한 사람이 사람을 죽여봤을 리가 없겠죠? 근데 사람 죽이는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냥 죽이는 거지.”

지정수가 태연하게 웃으며 연신 다리를 떨었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에게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을 왜 죽인 겁니까?”

인면수심, 지정수의 태도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뭐… 그야. 여자도 고프고 그래서, 사랑 좀 해주려는데 지랄발광을 떨어서 죽였소. 그렇게 내가 이뻐해 주는데 왜 그 지랄을 떠는지.”

쯧쯧쯧, 지정수가 대수롭지 않은 듯이 이죽거리며 혀를 찼다.

뭐? 사랑? 사랑이란 단어는 그런 데다 쓰는 게 아니야. 이 쓰레기 같은 인간!

“알… 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더 한 공간에 이 짐승 같은 인간과 함께 있다가는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그와 대화를 섞고 싶지 않았다.

“에이, 난, 야리야리한 검사님이 맘에 드는데. 우리 좀 더 얘기나 하죠? 빵 안엔 전부 시커먼 인간들뿐이라…….”

지정수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띠었다.

“교도관님, 여기 심문 다 끝났습니다.”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삼켜 넘기며 이를 악다물었다. 단, 1분 1초도 그와 같이 있고 싶지 않았다.

“네. 검사님! 야. 4532 가자!”

교도관들이 쇠고랑을 채우고는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알았어. 알았수다. 어이, 검사님! 담에 또 봬요!"

지정수가 어처구니없게 나를 향해 윙크했다.

비록, 인간의 탈을 쓴 짐승과의 치 떨리는 첫 만남이었지만 두 가지 얻은 것이 있었다.

첫 번째, 지정수의 손놀림이 둔하다는 것!

두 번째, 그의 범행 동기는 주체할 수 없는 성욕에서 비롯됐다는 것!

<전중호 차장실>.

나는 지정수 사건에 관해 지금까지 수사한 내용을 요약한 중간보고를 하기 위해 분석 자료를 들고 그의 방을 찾았다.

“어서 와. 김 검! 앉지.”

“네.”

“음… 어떻게, 좀 성과가 있나?”

전중호 차장이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다리를 꼬았다.

“나름 몇 가지 포인트를 잡았습니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번 사건에 세 가지 이해가 안 되는 의문점이 있습니다.”

“그래? 어떤?”

전중호 차장이 허리를 곧추세우며 관심을 보였다.

“우선, 이 자료를 보십시오.”

나는 그에게 분석한 자료를 내밀었다.

“흠… 그래. 좀 더 자세히 설명 좀 해보겠나?”

그가 안경을 벗고는 자료를 들춰보며 말했다.

“첫째, 보시는 바와 같이 피해자들을 결박할 때 묶은 매듭의 형태가 미세하게 차이가 납니다.”

나는 11명의 피해자 사진을 그 앞에 내놓았다.

“글쎄… 내가 보기엔 전부 똑같아 보이는데?”

전중호 차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네. 저도 처음엔 같은 매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등반 학교에 문의해보니 미세한 차이가 있더군요. 저기 끝맺음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두께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사진들을 가리켰다.

“오… 그래. 맞아! 차이가 있군. 분명 이전 피해자들을 묶은 매듭과 한수지가 묶인 형태가 좀 다르군!”

전중호 차장이 신기한 듯 사진을 눈앞으로 가져다 댔다.

“그렇다면, 김 검사! 이게 의미하는 바가 뭘까?”

전중호 차장이 코끝을 찡그렸다.

“차장님께서 지금 생각하고 계시는 것이 맞을 겁니다. 100% 확신하긴 무리가 따르지만 11번째 피해자를 죽인 범인과 이전 피해자들을 죽인 범인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음… 충분히 가능한 얘기야.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겠지. 하지만, 이 정도 심증 가지고 사건을 뒤집는다는 건 무리야. 경찰 쪽 반발이 만만치 않을걸?”

전중호 차장이 양손을 모아 입 주변에 가져다 댔다.

“물론입니다. 이 정도 가지고는 부족하겠죠.”

“또 다른 무언가가 있나?”

“두 번째는 살해 패턴입니다.”

“살해 패턴?”

“네. 이번 연쇄 살인범은 일정한 패턴이 있었습니다. 60대인 김순덕 피해자만 제외하고 나머지 9명의 피해자는 살해 당시 전부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음… 김 검사 말이 맞다면 김순덕 씨는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트릭이겠군.”

“네. 맞습니다. 김순덕 씨는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트릭이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11번째, 피해자 한수지만 살해 당시 청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음… 우연의 일치가 아닐까?”

전중호 차장이 입술을 잘근거렸다.

“아뇨. 사진을 자세히 보십시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피해자의 모습들이 너무도 닮았습니다. 마른 체형, 하나같이 흡사한 핑크색 스커트, 긴 생머리, 하얀 피부… 우연의 일치치곤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나는 테이블 위에 피해자 사진을 펼쳐 놓았다. 유독, 한수지만이 다른 피해자와 다른 체형이었다.

“그렇군! 분명 통통한 체형의 한수지와는 다른 모습들이야.”

전중호 차장이 상기된 표정을 지으며 관심을 보였다.

“분명, 범인은 피해자들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여성에 대한 혐오 또는 어쩌면 로망 같은 것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좋아. 그러면 마지막 하나는 뭔가?”

전중호 차장이 약간은 긴장한 듯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DNA 검출입니다. 실제로 11명의 피해자 중 단 한 사람, 한수지 몸에서만 DNA가 검출됐어요. 10명의 피해자를 죽인 연쇄살인범은 굉장히 치밀한 성격과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증거가 될 만한 그 어떤 것도 남기지 않았으니까요. 철저하게 CCTV 사각 지역에서 범죄를 저질렀고 체모나 정액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점이 경찰들이 검거하는 데 애먹었던 부분이죠. 그런데….”

“그런데, 유독 11번째 피해자 한수지의 몸에서만 정액이 검출되었다. 이건가?”

전중호 차장이 내 말을 이어받았다.

“네. 그렇습니다. 아직 단정 짓긴 이르지만, 모방 범죄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예측해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좀 전에도 제가 지정수 심문을 하고 왔는데 지정수는 그렇게 치밀한 사람이 못됩니다. 물론 조심했겠지만 1/10000의 정액으로도 DNA가 검출된다는 것까지는 몰랐겠죠. 그만큼 뒤처리가 깔끔하지 못했다는 방증이겠죠.”

“그렇다면, 한수지를 죽인 건 지정수가 확실하나 나머지는 그가 아니라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나?”

전중호 차장이 콧잔등을 매만지며 긴장했다.

“단정 지을 순 없지만 그럴 개연성은 상당히 높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분석한 바에 의하면 지정수는 단순 성폭행범일 가능성이 큽니다. 자신의 욕정을 채우기 위해 한수지를 타깃으로 성폭행을 했고 그녀가 반항하자 자신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언론에 노출된 자료를 바탕으로 모방 범죄를 저질렀을 확률이 높습니다.”

“음…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럼 이 사실을 경찰이 몰랐을까?”

전중호 차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뇨. 분명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수많은 병력과 프로파일러를 동원했는데 모를 리 없겠죠. 게다가, 지정수의 범죄는 상당히 서툴렀습니다. 분명 알고 있었을 겁니다.”

나는 그에게 확신에 찬 눈빛을 보냈다.

“그럼,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지정수를 이용해 사건을 덮으면 가장 웃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굴까?”

전중호 차장이 허리를 굽혀 몸을 내 쪽으로 기울였다.

“음… 물론, 경찰이겠죠.”

“빙고! 내 생각도 같아. 우연히 지정수는 연쇄살인범을 따라 한 모방 범죄를 저질렀고 피해자의 카드를 쓰려다 잡혔어. 연쇄살인범은 자네 말대로 살인 그 자체에 관심이 있을 뿐, 돈에는 관심이 없었거든.”

놀라웠다! 전중호 차장 역시, 지정수에 관해 분석된 상태였다.

“일단 가정이지만 모방 범죄를 저지른 지정수를 배우로 써서 미궁에 빠졌던 이전의 연쇄살인까지 전부 뒤집어씌우려 했던 거야. 지정수야 어차피 중형은 피하기 어려웠을 테니 경찰 쪽에서 ‘가족들을 돌봐주겠다.’, ‘나중엔 형을 감형시켜 주겠다.’ 등 적당한 딜로 설득하긴 쉬웠겠지. 내가 이 사건을 보고받으면서 그게 가장 찜찜했던 부분이거든. 역시, 김 검이 이 점을 잡아낼 것이라는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전중호 차장이 고무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음… 당분간 모든 수사 내용은 극비에 부치고 나한테만 보고해.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받게 해야지, 오히려 그 죄를 이용하려 들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전중호 차장이 소파에 몸을 기댄 채,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전중호 차장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뛰어난 감각을 가진 분이 틀림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그럼 진짜 연쇄살인범은 누굴까?”

“악마!”

“뭐? 악마?”

“네. 실제로 그놈은 성적인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돈에는 관심도 없었으니까요. 어쩌면 경찰과 게임을 하듯 살인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

전중호 차장이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았다.

며칠 후,

<김정환 검사실>.

“검사님, 검사님을 뵙겠다고 누가 찾아왔습니다.”

박 수사관이 헐레벌떡 내 방으로 들어왔다.

“누구요?”

“이번 연쇄살인의 7번째 피해자, 박정은의 동생이라는데, 검사님께 꼭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는데요?”

“네? 박정은의 동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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