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51화] 거짓에 관한 진실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 (2)
이…… 이건 뭐지? 무슨 매듭 같은데? 특이하게 생겼군.
피해자들의 손과 발을 묶어 연결한 매듭의 형태가 특이했다. 두 개의 노끈으로 피해자의 손과 발을 각각 묶고 서로 연결해 놓았다.
자료를 찾아봐야겠어.
나는 곧바로 인터넷에 접속해 자료를 검색했고 그 결과 등반용 로프를 연결하는 매듭임을 알 수 있었다.
등산용 로프 매듭!
지정수가 피해자를 묶은 매듭은 등산용 로프 매듭의 하나인 피셔맨 매듭이었다. 낚싯줄 연결 시에 많이 사용해서 낚시 매듭이라고도 부르는 매듭의 종류였다. 암벽등반 시, 로프가 끊어지지 않도록 연결하기 위한 매듭인 만큼 가위나 칼로 잘라내지 않는 이상 풀리지 않을 정도로 강도가 높은 매듭이었다.
지정수가 전문적으로 산악등반을 했다는 건가?
비전문가인 내가 육안으로 보더라도 매듭의 형태로 봤을 때는 암벽 등반을 즐기는 전문적인 등반가의 솜씨가 틀림없었다.
<서울중앙지검, 김정환 검사실>.
아침에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박 수사관을 급히 호출했다.
“수사관님, 지정수 전과기록 좀 하나도 빼놓지 말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가능하신 대로 지정수의 과거 행적 좀 알아봐 주십시오.”
“네. 검사님.”
박 수사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지정수가 특별히 취미생활을 하고 있었는지 자료가 있으면 좋겠는데요.”
“네? 취미생활이오?"
박 수사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네. 스포츠든 등산이든 하여간 뭐든 취미생활을 했던 흔적이 남아 있는 게 하나라도 있으면 빼놓지 말고 취합 좀 해주세요.”
“음… 네. 알겠습니다.”
쓱쓱쓱, 박 수사관이 다이어리에 내가 말한 내용을 꼼꼼히 받아 적어 넣었다.
“후후후, 공 수사관님 같으면 왜 그런 걸 조사하냐고 꼬치꼬치 캐물었을 텐데….”
그 순간, 공 수사관의 모습이 떠올랐다.
“네? 무슨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박 수사관이 물었다.
“아뇨,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네. 최대한 빨리 자료 취합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음, 얼마면 될까요?”
“한 3일 정도만 주시면 될 듯합니다.”
“그렇게나 빨리요?”
예상했던 시간보다 너무 빨라 깜짝 놀랐다.
“여기가 어딥니까? 서울 중앙 지검입니다. 검사님!”
박 수사관이 손을 들어 OK 사인을 보냈다.
역시, 중앙이라 다른 것인가?
“네에…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김정환 검사님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그 순간, 강력부 동료 검사, 이현우가 인기척을 했다.
“그럼, 수사관님 부탁합니다.”
창 너머 그의 얼굴이 보였다.
“네.”
탁, 박 수사관도 다이어리에 볼펜을 끼워 넣고 겉표지를 덮었다.
“네. 들어오십시오.”
이현우가 두 손엔 커피가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박 수사관님도 계셨네? 나중에 다시 올까요?”
이현우가 문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닙니다. 검사님! 전 지금 막 나가려던 참이에요.”
박 수사관이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키며 몸의 방향을 틀었다.
“그래요. 수고해요. 박 수사관님!”
이현우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생각보다 매너가 있는 사람이군.
“앉으시죠.”
“그래요. 자… 커피 식겠어요. 이거 마셔요.”
이현우 검사가 커피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김 검사님, 여기 오신 지 얼마나 됐죠?”
이현우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이제, 열흘 정도 됐습니다. 아 참, 그리고 말씀 낮추셔도 됩니다.”
“음… 그래도 되나?”
이현우 검사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네. 선배님!”
“뭐… 차차 편해지면 그렇게 하기로 하죠.”
이현우 검사가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네.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음. 열흘이면 어느 정도 업무 파악은 됐을 테고 지검 생활하는 데 어려움은 없어요?”
“네. 아직 특별히 걸리는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잘 지낸다니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차장님한테 지정수 사건을 맡으셨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전 차장이 그에게 언질을 했던 모양이었다.
“네. 지금 수사 자료 검토 중입니다.”
나도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 사건, 경찰에서 엄청 신경 쓰는 사건이에요. 그동안 범인이 검거되지 않아 애를 먹었거든요. 잘 아시겠지만, 그 사건 때문에 경찰에 대한 여론이 급속도로 나빠졌었죠. 가뜩이나 안 좋은 여론이었으니 최악이란 말이 어울리겠군요. 이번에 범인이 검거되면서 한시름 덜어낸 모양입니다.”
이현우 검사도 지정수가 진범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구나!
“…….”
“아마 사건 처리하는데 어려울 것 없을 거예요. 정황증거 확실하고 피해자 몸에서 지장수 DNA도 검출됐으니 빠져나갈 데가 없을 겁니다. 원래, 강 부장님이 지휘하시던 사건인데 몸이 안 좋아 부재중이시니 김 검사님이 마무리 잘 해주세요. 우리 지검에 와서 맡은 첫 사건이니 가볍게 몸 푼다고 생각하면 편할 거예요.”
이현우 검사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차장님이 꼼꼼히 살펴보라고 하시던데…….”
“그러게 말이에요. 차장님은 왜 이 사건에 이렇게 집착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가뜩이나 경찰 쪽에서도 민감한 사건인데. 자꾸 그쪽과 각을 세우시려는지 몰라.”
이현우 검사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배님도 지정수가 범인이라고 확신하시는군요?”
“그렇죠. 모든 수사 자료가 지정수를 범인이라고 가리키고 있는데 굳이 경찰과 각을 세워가며 재수사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어차피 우리도 경찰 쪽에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인데.”
실리적인 사람이군!
“음…… 그건, 조사해 보면 알겠죠.”
“별거 없을 거예요. 아! 그나저나 김 검사님 술은 좀 하시나?”
이현우 검사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입을 삐죽였다.
“네. 그냥 조금 합니다.”
“그래요? 그럼 나중에 우리 찐하게 한잔합시다.”
“네.”
“그럼, 난 이만 가볼게요. 그림 멋지네요?”
이현우 검사가 발길을 멈추며 벽에 붙어있는 그림을 가리켰다.
“네. 이곳에 오면서 순천지청 동료들이 선물해준 겁니다.”
“그래요? 그림도 있고 나름 잘 꾸며놨네.”
이현우 검사가 사무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문을 열고 나갔다.
이현우 검사!
나보다 연수원 기수는 1기수 위지만, 차기 강력부 부장 내정자였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사법연수원 이후 줄곧 서울에서 검사 생활을 했다. 남부지검, 동부지검을 거쳐 지금 이곳에서 근무한 지 3년째였다. 예의 바른 성격에 꼼꼼한 성격으로 기소율, 유죄 선고율 모든 분야에서 지검 내 최고를 자랑했다. 유죄 선고율이 거의 100%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기소가 되지 않을 사건이나 유죄판결이 힘들다고 판단되는 사건은 절대 맡지 않았기 때문에 그 수치엔 거품이 끼어있긴 했다. 아무튼, 굉장히 현실주의자이며 출세지향형 검사임은 틀림없었다. 게다가 장인이 H 그룹 회장 송광석으로 앞길이 탄탄한 엘리트 중 엘리트 검사였다.
3일 후,
<김정환 검사실>.
박 수사관은 약속대로 3일 만에 내가 요청한 모든 자료를 준비해 가져왔다.
“검사님, 말씀하신 자료 준비했습니다.”
박 수사관이 두툼한 서류뭉치를 내밀었다.
“벌써, 준비하셨습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짜 3일 안에 자료를 준비할 줄은 몰랐다.
“네.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여기는 중앙지검이라고요. 저 하늘에 별도 따오라면 따올 수 있는 곳이 이곳입니다.”
박 수사관이 턱을 문지르며 미소를 지었다.
정말, 그의 말대로 대단한 정보력이었다. 순천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와는 질적으로 차원이 달랐다. 박 수사관이 가져온 서류에는 지정수의 어린 시절부터 검거되기 전까지 그에 관한 모든 정보는 물론, 세세한 습관이나 취향까지도 나열돼 있었다. 마치 그의 일대기를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봐도 지정수가 평소에 등산이나 산악등반을 다녔다는 말은 못 들어봤습니다. 주변 지인들을 통해 샅샅이 털어봤는데, 암벽등반은커녕 동네 앞산도 안 갔다고 하네요. 별로 산 같은 건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앞산에도 가보지 않는 자가 루프 매듭을 배울 필요가 있는가?
점점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네. 그렇군요. 아무튼, 자료 준비하시느라 수고많으셨어요.”
“네. 언제든지 자료 필요하시면 말씀하십시오.”
박 수사관이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인사했다.
“네. 그럴게요.”
.
지정수를 신문하기 전에 좀 더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나는 남대문 근처에 있는 등반 학교를 찾아갔다.
“이 정도 매듭을 지을 수 있는 실력이면 어느 정도 실력인가요?”
나는 그에게 피해자들의 사진을 내밀었다.
“글쎄요. 이건 전문용어로 피셔맨 매듭인데 이 정도 실력이면 상당히 숙련된 솜씨인데요?”
박진수라고 자신의 이름을 소개한 강사가 사진을 넘겨 가며 사진 속 매듭을 유심히 살펴봤다.
“이 학교에서도 이 매듭법을 가르쳐 주나요?”
“네. 기본적인 루프 매듭은 전부 가르쳐 주는데 음…… 좀 특이한 게 우리 학교에서 가르치는 매듭법은 아니고 약간 응용이 된 거 같은데… 여기 여기가 좀 다르죠?”
박진수가 선반에서 시연용으로 만들어준 매듭을 꺼내 내 앞에 내놓았다. 지정수가 범행에 사용한 사진 속 매듭이 더 촘촘하고 정교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이게 더 정교해 보이네요?”
나는 손가락으로 사진을 가리켰다.
“네. 맞아요. 확실히 정교합니다. 아무래도 이 매듭을 지은 사람의 손가락은 길고 얇을 거예요. 손재주가 좋은 사람일 겁니다. 아마도…….”
박진수가 손가락으로 이마를 긁적거렸다.
“그렇군요. 다른 특별한 점은 없나요?”
“어디 보자. 글쎄요 어? 검사님! 이건 좀 다른데요?”
박진수가 사진을 넘겨보더니 그중 하나를 꺼내 들며 소리쳤다. 11번째 희생자 한수지의 사진이었다.
“뭐가 다르다는 말씀입니까?”
“이게, 얼핏 보면 비슷한데 보세요. 끝부분에 맺음이 좀 다릅니다.”
박진수가 사진을 내밀며 말했다.
“제가 보기엔 다른 것과 같아 보이는데 어떻게 다르다는 거죠?”
육안으로는 구분이 불가능할 만큼 내 눈엔 차이가 없어 보였다.
“하긴 그렇죠. 일반인들이 보면 구분을 할 수가 없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10개의 사진 속 매듭은 독특한 끝맺음이 있거든요. 분명 동일인이 맨 게 틀림없는데 11번째 사진 속 매듭은 좀 다릅니다.”
“어떻게 다르다는 거죠?”
“상당히 비슷하게 매듭을 지었는데 매듭의 시작점이 달라요. 당연히 끝맺음도 조금씩 다르고요. 다른 사진에서 보는 매듭과 비교했을 땐, 좀 엉성합니다. 그리고 원래 매듭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에요. 마치 손가락 지문이 사람마다 차이가 조금씩 있는 것처럼요.”
박진수가 입술을 일자로 만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습니까?”
“네 확실합니다. 이봐. 강 샘! 이리 좀 와봐.”
박진수가 또 다른 전문가를 불렀다.
“왜요?”
“이거로 피셔맨 매듭을 좀 만들어봐.”
박진수가 서랍에서 로프를 꺼내 건넸다.
“보세요! 자세히 보면 매듭을 짓는 방식이 조금씩 다릅니다.”
박진수와 동료 강사가 동시에 로프로 매듭을 지어 내 앞에 내놓았다.
분명. 그의 말대로 분명 미세한 차이가 있다!
두 사람의 강사가 맨 매듭은 비슷했지만 분명 차이가 있었다.
어쩌면, 지정수는 연쇄살인범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순간, 심장이 펌프질해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