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50화] 거짓에 관한 진실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 (1)
<김정환 검사실>.
전중호 차장으로부터 수사 자료를 받아든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좀 더 자세히 살펴봐야겠어!
나는 수사 기록을 책상 위에 펼쳐보았다.
부녀자를 무차별적으로 납치, 성폭행 후 살해한 사건이었다. 용의자 지정수는 최근 2년 사이에 11명의 부녀자를 살해했다. 살해 장소는 대부분 서울 서남부 일대였으며 범행 대상은 60대에서 20대까지 다양했다. 주로 노래방에서 만난 여자들을 자신의 차로 유인해 성폭행 후 살해하는 패턴이었다. 결국, 마지막으로 살해당한 20대 회사원 한수지로부터 빼앗은 신용카드를 사용하려다 경찰에 덜미가 잡힌 사건이었다. 처음 검거될 당시 증거를 대라며 뻔뻔하게 범행을 부인했던 그는 피해자에 몸에서 발견된 극소량의 정액에서 추출한 DNA가 자신의 것과 일치한 결과가 나오자 순순히 범행을 자백했다.
“지금도 피 냄새가 그리워 미칠 것 같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싶습니다. 몸이 피를 원해요!"
경찰 조사 과정에서도 사람을 죽이고 싶다며 발작 증세를 보일 정도로 지정수는 정상적인 뇌 구조가 아니었다. 범행 수법이나 시체 유기 방식, 성폭행 전과 경력, 여성 편력 등을 고려해 볼 때 사이코패스의 전형이 틀림없었다.
다만, 너무도 공식처럼 맞아 들어가는 자료가 좀 의아할 뿐, 모든 지표는 범인으로 지정수를 가리키고 있었고 수사 자료는 완벽했다.
도대체, 전중호 차장은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고 했을까?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사 자료를 검토했다.
똑똑똑!
그 순간, 박 수사관이 문을 두드렸다.
“검사님! 저 박 수사관입니다.”
“네. 들어오세요.”
“검사님, 퇴근 안 하십니까?”
박 수사관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와 양손을 가운데 모아 예의 바르게 물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요?”
고개를 들어 벽시계를 바라봤다. 벌써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네. 너무 집중하고 계셔서 지금까지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박 수사관이 온화한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아휴, 뭐 하러 그러셨어요? 그냥 퇴근하셔도 괜찮은데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하하,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퇴근 안 하십니까?”
“아… 네. 검토할 게 좀 있어서요.”
휘리릭, 나는 수사 자료를 넘기며 말했다.
“그러십니까? 그럼 전 밖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필요한 것 있으면 부르십시오.”
박 수사관이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아, 아니에요. 음…… 퇴근합시다. 같이 나가시죠.”
처음부터 진상 같은 상관이란 인상을 주고 싶진 않았다.
“그러시겠습니까? 검사님, 천천히 하십시오. 앞으로도 밤샐 일이 수도 없이 많으실 거예요. 컨디션 조절하셔야 나중에 버티십니다.”
“네… 조언 감사합니다.”
“혹시,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 아뇨.”
그러고 보니 오늘 점심부터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었다. 배가 고프긴 했다.
“제가, 잘 아는 해장국집이 있는데 뼈 해장국 좋아하시면 가실래요?”
박 수사관이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그럴까요? 저도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마침 시장도 했고 이참에 박 수사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럼, 가시죠.”
박 수사관이 문 쪽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네.”
나는 상의를 주섬주섬 챙겨 그를 따라나섰다.
<서초동, XX 해장국>.
박 수사관과 같이 간 곳은 지검에서 얼마 멀지 않은 허름한 음식점이었다.
“여기가 보기엔 이래도 30년 전통의 맛집입니다.”
“아…… 네.”
내가 주변을 둘러보자 박 수사관이 눈치 빠르게 음식점을 소개했다.
“검사님, 반주 괜찮으세요?”
“네. 전 상관없습니다.”
“이모님, 여기 뼈 해장국 두 개랑 소주 한 병 주세요!”
박 수사관이 뼈 해장국 두 그릇과 소주 한 병을 시켰다.
“검사님, 지검 생활은 잘 적응되세요? 낯선 곳이라 쉽지 않을 텐데요.”
또르르, 박 수사관이 소주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네. 아직까진 별문제는 없습니다. 그럭저럭 지낼만합니다.”
“다행이네요.”
"해장국 두 개, 소주 한 병 맞죠?"
종업원이 쟁반에 음식을 담아 내왔다.
“자… 드세요. 시장하실 텐데.”
박 수사관이 해장국이 나오자 내 앞으로 음식을 밀며 말했다.
“네. 같이 드시죠.”
“전 차장님은…….”
반주를 곁들인 식사를 하며 박 수사관은 내게 전중호 차장을 비롯해 강력부 검사들의 성격 및 일하는 스타일, 그리고 지검 생활을 함에 있어 필요한 팁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내가 볼 때, 꼭 필요한 정보들이었다.
진중한 분이군!
차근차근 말하는 스타일에 차분한 분위기, 분명, 공 수사관과는 달리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우리 지검은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최고 프로들이 모인 곳이에요. 다들, 자기 잘난 맛에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주장도 강하고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능력 있는 검사라고 생각하는 사람 투성이죠.”
꿀꺽, 박 수사관이 단숨에 잔을 비우며 미간을 좁혔다.
“…….”
“다들 처음엔 데면데면할 거예요. 이곳 검사들의 특징이죠. 사실, 지방 지청 출신이라고 조금 얕볼 수도 있을 겁니다. 혹시나 다른 검사들이 그런 식으로 대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 다들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들이니까요.”
그가 술잔을 손바닥으로 닦더니 내게 잔을 내밀었다.
“네. 참고하겠습니다.”
“김 검사님, 전 검사님이 이곳에서 잘 해내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이 생활 벌써 15년 차라 눈치 하나는 빠른데 검사님 같은 강렬한 눈빛은 첨입니다. 뭐랄까… 굶주린 호랑이 같은 눈빛이랄까? 아무튼, 뭔가 크게 한 건 해낼 거 같은 그런 느낌이요.”
박 수사관이 턱을 들어 올려 눈을 위쪽으로 뜨며 말했다.
“제가요? 음… 전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칭찬으로 알아듣겠습니다.”
“아냐 아뇨, 감히 제가 검사님을 평가하는 건 아니고, 아무튼, 이 분이랑 일하면, 뭐… 심심하진 않겠구나. 뭐 그런 느낌이었어요.”
하하하,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네. 모쪼록 많이 도와주십시오.”
“참! 아까 얼핏 보니, 수사 자료를 보고 계시던 것 같던데, 벌써 사건을 맡으신 겁니까?”
박 수사관이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아네. 이번에 검거된 지정수에 관련된 사건입니다.”
“아… 서울 서남부 연쇄 살인사건이오?"
“네. 맞습니다.”
“아…… 그렇군요. 전차장님이 검사님을 상당히 높이 평가하는 가 봅니다. 그 사건은 차장님이 몹시 신경을 쓰고 있는 사건이거든요. 저 위쪽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여서 더 그렇긴 하지만요.”
박 수사관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위쪽이라면?”
“네. 검사님이 생각하고 계신 곳이 맞습니다. 그래서 더 그런지, 강 부장님이 사건을 맡으셨을 때도 전차장님이 직접 보고를 받을 정도로 신경을 쓰셨습니다.”
박 수사관이 입술을 매만지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수사관님, 혹시 지정수는 만나보셨습니까?”
“네… 만나봤죠. 어휴, 그 인간,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예요. 거짓말 탐지기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감정의 변화가 없었어요. 냉혈한 같은 인간이었죠. 겉은 멀쩡하게 생겼는데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짓을 하는지, 인면수심이 따로 없습니다.”
박 수사관이 몸을 흔들며 치를 떨었다.
“지정수의 가족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보통은 그런 류의 사이코패스는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내기 마련이었다.
“음… 어린 시절부터 불우했어요. 지정수의 어머니가 술집 작부 출신이었는데 결혼을 3번이나 했죠. 만나는 남자마다 정상적인 남자가 하나도 없었어요. 도박 중독자, 알코올 중독에 마약 중독까지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랐으니….”
역시, 지정수 역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
전형적인 반사회적 인격 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
지정수는 과거 이한철, 정현규 등 사이코패스들과 그 유형이 같았다.
“그렇군요. 그럼, 정신 감정은 받았나요?”
“물론이죠. 국립 정신 감정원에서 결과가 나왔죠. 아마도 좀 전에 검사님이 보시던 수사 자료에 자세히 있을 텐데, 정신 감정 결과도 사이코패스의 전형으로 나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 수사관이 내 옆에 놓여있던 수사 자료를 가리켰다.
“네. 그렇군요. 나중에 찾아보도록 하죠.”
“그나저나, 차장님은 왜 이 사건에 이렇게 집착을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정황 증거 확실하고 이미 지정수가 자백도 했는데, 그냥 기소해서 재판에 넘기면 그만일 텐데 말이에요.”
박 수사관이 의아하다는 듯이 입술을 오므렸다 폈다를 반복했다.
“음… 그만한 이유가 있으시겠죠.”
“하긴, 촉이 워낙 좋으신 양반이니 뭔가 있으니까 그러시긴 하겠지만… 그래도 왜 일을 크게 벌이시려고 그러시는지…….”
“저… 조만간 지정수를 한번 만나보려고 하는데요.”
그런 이유까지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박 수사관의 말 허리를 잘랐다.
“네? 네에… 알겠습니다. 구치소 쪽에 연락해 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은 늦었으니 그만 들어가 쉬시죠. 내일부터 바빠질 듯합니다.”
“네. 검사님! 검사님도 고단하실 텐데 그만 들어가 쉬십시오. 아, 오늘 밥은 제가 사겠습니다.”
박 수사관이 계산서를 들어 올리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음… 네. 그렇게 하시죠. 다음엔 제가 사겠습니다.”
굳이 호의를 무시하고 싶진 않았다.
<김정환의 오피스텔>.
나는 박 수사관과 헤어진 후, 수사자료를 들고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어린 시절, 소년원을 들락날락했던 청소년기, 평범하게 생긴, 아니 준수한 외모를 이용해 수많은 여성을 농락했던 청년기, 결혼한 이후에도 수많은 여성을 만나고 다녔던 결혼 생활!
‘그 친구는 결혼해서도 걸핏하면 여자를 소개해 달라고 했습니다.’
‘사회에 대한 불만이 많았어요. 맨날, 이 사회가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냐며 투덜거렸습니다.’
‘세상에서 여자가 제일 쉬웠다며 여자들을 우습게 생각했습니다.’
지정수의 지인들이 남긴 증언이었다.
아무리 봐도 이상할 게 없는데, 차장님은 왜 이 사건의 재수사를 나한테 맡긴 걸까?
나는 천천히 벽에 피해자의 사진들을 붙여보았다.
점 출혈, 그리고 울혈!
피해자 대부분의 몸에서 점 출혈과 울혈이 증세가 보였다.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가 틀림없었다. 또한, 피해자의 대부분은 노끈으로 결박된 상태였다. 노끈을 미리 준비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결국, 범인은 계획적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 이건 뭐지? 무슨 매듭 같은데?
피해자들의 손과 발을 묶은 매듭의 형태가 특이했다. 독특한 매듭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