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49화] 아쉬운 이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
“네?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같이 일을 하다뇨?”
“아… 아직 아무런 소식을 못 들었나? 자네 다음 달부터 이쪽에서 근무하게 됐어.”
“전, 아직 연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군! 곧 연락이 갈 거야. 아무튼, 나중에 서울에 올라오면 지검서 보세.”
“네에….”
이게 무슨 소리지? 서울지검으로 내가 올라간다고? 뭐가 뭔지 모르겠군.
“검사님 지금 지청장님이 급히 찾으십니다!”
덜컹, 그 순간, 공 수사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네? 저를요?”
“네. 아무래도 이번 사건 마무리를 잘하셔서 좋은 소식이 있을 듯한데요?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공 수사관이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윙크를 했다.
“수사관님! 제발, 그런 것 좀 하지 마세요. 진짜 닭살 돋아요. 손발 닳아 없어지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검사님!”
공 수사관이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내밀었다.
“하여간, 수사관님은 못 말리겠네요.”
덜렁대긴 해도 참 좋은 사람이었다.
<지청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지청장이 반갑게 나를 맞아 주었다.
“어서 와! 김 검. 앉지!”
“네.”
“음… 좋은 소식 하나와 나쁜 소식이 하나 있는데 뭐 먼저 알려줄까?”
지청장이 흥미롭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흔들며 말했다.
“네? 저야 뭐든 상관없습니다. 편한 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그럼, 나쁜 소식부터 알려주지! 음, 내가 이번에 광주지검장으로 발령이 났다네! 이게 다 자네 덕이야. 고맙네! 김 검!”
지청장이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정말입니까? 축하드립니다. 근데 그게 왜 나쁜 소식입니까?”
“아…… 이제 내가 김 검사를 볼 수 없으니까 나쁜 소식이지. 안 그래 김 검?”
하하하, 지청장이 기분이 좋은 듯 늘어진 볼살을 흔들며 웃었다.
“지검으로 가시더라도 여기서 멀지 않은데 가끔 지청에 나오시면 되잖습니까?”
“이 사람아! 자넨 서울중앙지검으로 발령이 났어. 이제야 드디어 자네도 꽃을 피우나 보네. 축하해!”
“네? 그럼, 아까 서울지검 차장님이 전화하셨던 게?”
“전 차장한테 전화가 왔었나? 그 사람, 성질도 급하긴… 아무튼, 영전을 축하하네. 축하해! 서울중앙지검이 어딘가? 검찰 계의 핵심 중에 핵심 아닌가? 꽃 중의 꽃이지.”
지청장이 검지를 흔들며 환하게 웃었다.
“네에.”
나는 뜻밖의 인사발령에 어리둥절했다.
<순천 외곽에 있는 XX 한정식집>.
결국, 나는 서울중앙지검으로 발령을 받았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서울중앙지검의 제3차장 검사 전중호 검사가 이끄는 강력부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며칠 후, 동료 검사들이 나의 깜짝 인사발령을 축하하기 위해 송별회 자리를 마련했다. 윤상원 부장, 장 검을 비롯한 공 수사관까지 형사 3부 전 식구가 한자리에 모였다.
파바바박!
“드디어 서울에 입성하시는 김정환 검사님의 영전을 축하하면서 건배!”
정훈이 능숙하게 폭탄주를 제조해 동료들에게 나눠 주고는 잔을 번쩍 들었다.
“건배!”
“선배님, 앞으로 꽃길만 걸어가십쇼!”
정훈이 흥을 돋우며 너스레를 떨었다.
“고마워! 한 검사.”
“검사님, 절대! 저 잊으시면 안 돼요!”
히잉, 얼큰하게 취한 공 수사관이 내 손을 잡고 훌쩍거렸다.
“제가 어떻게 수사관님을 잊겠습니까? 그동안 부족한 저를 많이 도와주셔서 너무 고마웠어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아 참, 그리고 이건 사모님 드리세요!”
미리 준비한 선물상자를 꺼내 공 수사관에게 주었다.
“이게, 이게 뭐예요?”
“화장품 세트인데 맘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와… 검사님! 맘에 안 들어도 들어야죠. 암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 선물 때문에 우리 마누라가 저보다 검사님을 더 좋아합니다.”
공 수사관이 선물을 들어 보이며 좋아했다.
“별거 아니에요. 정말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김 검! 서울 가면 잘해라. 진짜! 너는 잘 돼야 해!"
동기인 박 검이 술에 취해 혀 짧은 소리를 냈다.
“그래, 고마워! 자주 내려올게.”
밤늦게까지 화기애애한 술자리는 길어졌고 그 순간, 비어있는 장 검의 자리가 눈에 띄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지만, 장 검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간 거지?
“장 검! 여기서 뭐 해?”
한참을 찾다 밖으로 나왔더니 장 검이 술집 마당에 있던 그네에 앉아있었다.
“아… 선배님, 술기운이 좀 올라서 찬 바람 좀 쐬려고요. 이젠 제법 날씨가 차네요?”
장 검이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양손으로 만지며 말했다.
“그러게.”
나 역시, 그녀 옆에 있던 그네에 몸을 실었다.
“이제 정말 가시는 건가요?”
그녀의 눈빛이 쓸쓸해 보였다.
“그러게….”
“우리 그동안 환상의 커플, 아니 동료였는데요. 그렇죠?”
나를 응시하는 그녀의 눈망울이 흔들거렸다.
“그러게, 나도 장 검이랑 일하면서 너무 행복했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가슴 한구석이 아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후후, 정말요?”
“그래. 장 검도 나중에 서울로 올라와. 난 장 검과 손이 제일 잘 맞는 것 같아.”
“그럴 날이 올까요?”
그녀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당연하지.”
하마터면 그녀의 얼굴을 만질 뻔했다.
“선배님은 어디를 가시든 잘하실 거예요.”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응시했다. 살포시 팬 보조개가 달빛을 받아 더욱더 청초해 보였다.
“나도 장 검이 많이 보고 싶을 거야.”
“헐, 난 보고 싶을 거란 말은 안 했는데?”
“아… 아… 그런가?”
그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에이, 나 그렇게 쉬운 여자 아니에요. 선배님!”
호호, 장 검이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 그렇지! 하하하, 맞아!”
“헐, 선배님 뭐예요? 귀밑까지 빨개진 거 아세요?”
헐, 왜 이렇게 심장이 나대는 거야? 제발 진정해라 심장아!
“그…… 그래?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가? 왜 이렇게 더워?”
나는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연신 손부채질을 해댔다.
“더워요? 이렇게 날씨가 선선한데?”
“하하하, 그러게…….”
“후후, 선배님! 서울 올라가셔도 항상 지금 같은 마음 변치 마시고 소신껏 선배님의 신념을 펼쳐보세요.”
장 검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며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띠었다.
“그래, 열심히 할게….”
“그래요. 잘하실 거예요. 바람이 제법 부는데 이제 들어가요. 선배님!”
장 검이 그네에서 내려 팔짱을 꼈다. 은은한 향수가 코끝을 자극했다.
쿵쾅쿵쾅.
그 순간, 심장이 터져 나갈 듯이 요동을 쳤다.
“자… 장 검!”
“네?”
장 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응시했다.
“아… 아냐! 들어가자. 사람들 기다리겠다.”
“싱겁긴, 알았어요.”
병신! 무슨 말을 이렇게 못해?
그날 밤, 난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송별회의 밤은 깊어갔다.
<윤상원 부장실>.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나는 인사하기 위해 윤 부장의 방을 찾았다.
“드디어 서울 입성인가?”
윤 부장이 담배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네. 아직도 실감 나지 않습니다. 아! 담배 피우셔도 괜찮습니다.”
“아냐 아냐, 이번엔 진짜로 한번 끊어보려고.”
하하하, 윤 부장이 담배를 두 동강을 내더니 쓰레기통에 버렸다.
“네에. 그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한때, 무례하게 굴었다면 용서하십시오.”
나는 그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후후, 무례하긴! 나야말로 이번에 느낀 게 많아! 자네를 보면서 어쩌면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겠구나 싶어!”
윤 부장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찬이십니다.”
“아무튼, 새로운 시작을 진심으로 축하하네.”
윤 부장이 반갑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마, 서울에 올라가면 이곳하곤 분위기가 사뭇 다를 거야. 여러모로 힘들 텐데 언제든지 내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게.”
“네. 그러겠습니다.”
결국, 파란만장했던 순천지청에서의 검사 생활을 마치고 나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서울로 향하게 되었다.
* * *
<목동, 상우네 반찬가게>.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내가 찾은 곳은 엄마가 있는 목동이었다.
멀리, 내 이름을 딴 가게 간판이 보이자 가슴속에서 뭔가 뭉클거리며 설움이 북받쳐 올라왔다.
“네. 맛있게 드시고 또 오세요!”
“네. 사장님, 반찬 너무 맛있어요.”
엄마가 손님을 배웅하기 위해 가게 앞으로 나왔다.
휙, 나는 나도 모르게 모퉁이에 몸을 숨겼다.
엄… 마! 너무 보고 싶었어! 울 엄마 많이 야위었네…….
주르륵, 코끝이 시큰해지더니 굵은 눈물이 뺨 위로 흘러내렸다.
엄… 마! 엄마 조금만…….
손님과 인사를 나눈 후, 엄마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엄마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려고 목을 쭉 내밀어 쳐다보았다.
당장이라도 따라 들어가 엄마를 안아보고 싶었다.
미치도록 보고 싶었던 우리 엄마!
하지만, 지금의 난, 박상우가 아닌 김정환이었다.
엄마! 나… 반드시 돌아올게요! 그때까지, 아들 절대 잊으면 안 돼!
나는 북받쳐 오르는 설움을 삼키며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서울중앙지검>.
드디어 시작인가?
서초동 근처 오피스텔에 숙소를 정한 나는 첫 출근을 했다. 내가 배속받은 부서는 제3차장 검사 전중호 차장이 이끄는 강력부였다. 제3차장 검사의 휘하 부서는 특별 수사 1, 2부를 포함해 8개의 산하 부서가 있었다. 굵직굵직한 주요 사건을 처리하는 곳으로 지검 내에서도 가장 파워가 있는 곳이었다. 제3차장 검사는 차기 지검장으로 승진하는 것이 관례였다.
후, 긴장되는군!
나는 넥타이를 고쳐 매며 정문을 통과했다.
<김정환 검사실>.
중앙지검의 규모는 대단했다. 건물이나 시설도 그렇긴 하지만 검사 수에서도 순천지청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나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김정환 검사님! 이곳이 앞으로 검사님이 사용하실 사무실입니다.”
자신을 박상수라고 소개한 남자가 내 방을 안내했다. 그는 앞으로 나를 도와줄 수사관이었다.
분위기가 남다르군!
단정한 외모와 차분한 분위기는 덜렁대는 공 수사관과는 사뭇 달랐다.
“네. 감사합니다.”
띠리리링.
그 순간, 책상 앞에 놓여있던 전화기가 울렸다.
“김정환 검사, 출근했나?”
카랑카랑한 목소리, 전중호 차장의 목소리였다.
“네. 차장님! 지금 막 출근했습니다.”
“그래? 분위기는 좀 적응되나?”
“아뇨. 아직 좀 얼떨떨합니다.”
“그럴 거야. 그야 뭐 차차 적응되겠지! 그건 그렇고, 지금 내 방으로 오게. 지검장님한테 인사하러 가야지.”
“네. 알겠습니다.”
<김철승 지검장실>.
나는 전중호 차장 검사와 함께 지검장실을 찾았다.
“어서 오게. 김정환 검사!”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지검장이 손수 마중 나와 나를 반겨주었다.
김철승 서울중앙지검장!
온화하지만 대쪽같은 성품으로 신망이 두터운 인물이었다. 차기 검찰총장에까지 거론될 만큼, 검찰 내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김정환 검사입니다.”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인사했다.
“반갑구먼. 김 검사, TV에서 본 것보다 훨씬 잘생겼는데?”
하하하, 지검장이 목젖이 보일 정도로 호탕하게 웃었다.
“과찬이십니다.”
“지검장님, 외모뿐만 아니라 요즘 강력 수사계에 떠오르는 샛별입니다.”
전중호 차장이 지검장의 말을 받아 나를 추켜세웠다.
“그런가? 아무튼, 내가 김 검사한테 거는 기대가 커요! 우리 앞으로 잘해봅시다.”
지검장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좋아요! 전차장, 김 검사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잘 좀 도와줘요.”
“네. 알겠습니다. 지검장님!”
이렇게 해서, 본격적인 서울중앙지검 생활이 시작되었다.
* * *
30년 가까이 서울 생활을 했기에 적응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나는 업무를 파악하며 조금씩 서울 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중호 차장 검사가 자신의 방으로 나를 호출했다.
<전중호 차장실>.
“어서 오게. 김 검사. 앉지!”
전중호 차장이 두툼한 서류뭉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네. 차장님!”
“어때, 지검 생활은 좀 적응이 되나?”
“네. 지금은 많이 적응됐습니다.”
“살 집은 마련했고?”
“네. 지검 근처에 오피스텔을 하나 얻었습니다.”
“하하, 그렇구먼.”
한동안, 나와 전중호 차장은 차를 마시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잠시 후,
“음… 우리 지검으로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사건을 맡겨도 되나 모르겠네.”
전중호 차장의 얼굴이 사뭇 진지했다.
“무슨 사건이신지?”
“워낙, 세간에 화제가 됐던 사건이라 자네도 매스컴을 통해서 들었을 거야. 보게…….”
전중호 차장이 한눈에 봐도 수백 페이지는 족히 넘어 보이는 수사자료를 내 앞에 내놓았다.
[서울 서남부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
전중호 차장이 넘겨준 사건은 최근 전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서울 서남부 연쇄 살인사건이었다. 11명의 부녀자를 납치 강간 후,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었다. 살인마, 유현철 이후, 최악의 살인사건이었다. 최근에 용의자 지정수가 체포돼 구속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이미 용의자가 검거된 사건 아닌가요?”
나는 수사자료를 넘겨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흠… 그렇긴 한데, 아무리 봐도 뒷맛이 개운치가 않아서 말이야."
“문제가 있습니까?”
“음, 그야 조사해보면 알겠지. 지금 강 부장이 몸이 안 좋아 병원에 입원해서 부장 자리가 공석이라 내가 직접 챙길 생각이네. 사안이 하도 중대해서 서부지검에서 우리 쪽으로 넘어온 사건이니까 반짝 긴장해야 할 거야. 이 사건 자네가 맡아서 처리해봐.”
“네?”
그 순간, 몸속에서 피가 소용돌이를 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