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48화] 이 재판, 끝까지 간다 (7)
“검사, 증인 신문하십시오.”
“네. 증인 신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조상현 씨는 피고 이길상과는 어떤 관계십니까?"
나는 손바닥 펼쳐 이길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때는 동료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원수지간이지요.”
조상현이 이길상을 날카롭게 응시했다.
“증인, 법정에서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자극적인 발언은 삼가 주세요.”
재판장이 조상현에게 주의를 주었다.
“네. 죄송합니다.”
“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피고 이길상은 증인을 의형제와도 같이 생각한다고 했는데 그 점에 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하하, 의형제라… 어처구니없군요. 요즘은 의형제한테 이런 짓도 한답디까?”
조상현이 자신의 의수를 들어 올리며 냉소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 말씀은 증인이 그렇게 된 원인이 이길상과 연관이 있다는 쪽으로 해석을 해도 되겠습니까?”
“흠… 이길상은 집요하게 저를 추적했습니다. 제가 어디로 피신을 하든 저를 잡으러 왔어요. 저는 단 하루도 편히 잠을 자본 적이 없습니다. 제 오른팔도 이길상이 보낸 킬러와 혈투를 벌이다 잃었습니다.”
조상현이 다시 의수를 들어 올렸다.
“그렇군요. 그럼, 머리에 생긴 흉터도 그와 무관하진 않겠군요.”
“네. 머리 역시 이길상이 보낸 놈들과 대적하다 생긴 상처입니다. 정확히 기억합니다. 2005년 4월 7일에 이길상의 부하 망치로부터 공격받은 것입니다. 그날을 제가 어떻게 잊어버리겠습니까?”
“재판장님! 지금 증인은 근거 없이 피고를 음해하고 있습니다.”
장철호 변호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검사, 증인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자료가 있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재판장님! 지금 화면을 보시죠!”
나는 리모컨을 눌러 다시 PPT 화면을 열었다.
[진료 기록지, 본 환자는 머리에 20cm가량의 자상을 입고 내원한 환자로서 Scalp laceration에 대한 suture을 시행함, 2005년 4월 7일 23시]
“Scalp laceration에 대한 suture는 두피 열상 봉합술을 의미합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바로 기록지에 적힌 날짜입니다. 2005년 4월 7일! 본 날짜는 좀 전에 재생된 이길상과 정상필의 대화가 녹화된 날짜와 하루 차이입니다. 대화 중에 정상필이 ‘어제’란 단어를 언급했으므로 조상현이 습격을 받아 머리에 상처를 입은 날과 정상필이 그를 공격했다고 언급한 날이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걸 우연이라고 해야 할까요? 재판장님께 현명한 판단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와!
하아!
탄식과 환호성이 반대로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이쯤 되면 게임 끝난 거 아냐?”
“그러게. 이렇게 되면 김정환 검사의 대역전극인가? 빨리 본사에 기사 보내야겠어!”
기자들의 움직임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재판장님! 한 분의 증인을 더 신청하겠습니다.”
“네. 채택합니다.”
웅성웅성.
“바…… 박천수 회장님!”
“치… 매라고 하지 않았어? 저분이 어떻게 여기에!”
또 다른 증인은 박천수였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방청석에 앉아있던 길상파 조직원들이 입을 벌리며 경악했다. 비록, 지금은 그 힘을 다했지만, 박천수란 이름만으로도 그들을 경악시키기엔 충분한 듯 보였다.
“박… 천수… 네놈이 이곳을 어떻게….”
이길상의 반응 또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치매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는 줄만 알았던 그가 나타나자 이길상이 경악했다.
“박천수 씨, 이곳에 오신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네. 검사님!”
“우선, 한때 잘못된 생각과 사상으로 폭력조직을 운영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점, 역사와 국민 앞에 깊이 사죄드립니다.”
박천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정중히 사과했다. 물론, 그 모습은 치매에 걸린 환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치매가 아니었어? 어떻게 이런 일이….”
방청석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저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치매로 가장해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양원을 옮길 때마다 이길상은 저를 제거하기 위해 살수를 보내왔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은 적이 없었죠! 게다가 이길상은 우리 가족에게까지 위협을 가했습니다. 그래서, 더 버틸 수 없던 우리 식솔들은 해외로 도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건달 생활 50년 동안, 이길상 저자만큼 악랄하고 잔인한 건달은 본 적이 없습니다.”
박천수의 잔뜩 주름이 잡힌 눈가가 촉촉이 젖어 들었다. 한때는 자신들이 존경하며 모시던 옛 보스의 초라한 모습에 방청석에 앉아있는 조직원들도 침통한 듯 고개를 숙였다.
“그렇군요. 재판장님! 이상입니다.”
“피고! 반대 신문하겠습니까?”
“아니오. 반대 신문하지 않겠습니다.”
장철호 변호사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이길상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연신 마른 입술에 침을 발라대며 묶인 손을 들어 얼굴을 문질렀다.
기다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길상!
나는 간신히 붙어있던 이길상의 숨통을 끊어야 했다.
“검사! 추가로 공개할 증거가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PPT 화면을 보시죠.”
지이이잉.
법정 중앙에 위치한 스크린이 다시 내려왔다.
[비자금 목록 : 2004년 5월 25일 *** 의원 5천만 원, 2004년 6월 30일 *** 시장 3천만 원]
“화면 내역은 본 검사가 입수한 것으로써 최근 5년간의 정관계 인사들에 길상 그룹에서 지급한 비자금 내역입니다. 다음을 보시죠!”
틱, 나는 리모컨을 움직여 화면을 바꿨다.
[비자금 목록: 2004년 5월 25일 *** 의원 5천만 원, 2004년 6월 30일 *** 시장 3천만 원]
“본 자료는 최근 천기수의 비밀금고에서 압수한 비자금 내역입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날짜부터 금액, 대상자까지 정확히 일치합니다. 천기수는 이도식의 수하로써 이도식과 라이벌 관계에 있는 정상필과는 상극인 인물입니다. 따라서, 두 사람은 평소에 정보를 공유할 이유가 없었겠죠? 그런데도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작성한 비자금 내역이 동일합니다. 과연, 피고 측의 주장대로 천기수가 임의로 작성한 내역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끝났네. 끝났어!”
“검찰 계에 스타 탄생을 알리는구나!”
기자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야! 김정환이… 너 죽고 싶어! 당장 거기서 안 내려와!”
“지금, 어디서 허튼수작이야!”
그 순간, 몇몇 흥분한 길상파 조직원들이 벌떡 일어나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당장이라도 난동을 부릴 태세였다.
“교도관! 저 사람들 당장 퇴장시키세요!”
재판장이 소리를 치자 법정 양 쪽문이 열렸고 교도관들과 청원 경찰들이 몰려와 그들을 강제로 끌어내 퇴장시켰다.
“김정환, 앞으로 밤길 조심해라!”
경찰에게 결박되어 끌려가면서도 조직원들이 눈을 부라리며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경찰들과 조직원들 간에 가벼운 실랑이가 있었지만 큰 소란 없이 상황이 마무리되었다.
“피고 측! 최후변론하겠습니까?”
재판장이 장철호 변호사를 쳐다봤다.
“최후변론하지 않겠습니다.”
장철호 변호사가 안경을 벗고는 눈을 꾹꾹 누르며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그럼, 검사! 구형하세요.”
“네. 재판장님!”
“피고 이길상은 폭력조직을 규합해 그 힘을 등에 업고 수많은 불법을 자행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무자비한 폭력을 서슴지 않았고 선량한 시민들의 사유재산을 협박, 갈취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키워왔습니다. 또한, 그들의 만행을 감추기 위해 친분이 있는 정관계 인사들을 동원해 사건을 무마시키려 했습니다. 그들은 법을 유린하며 이 사회의 정의를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그런데도 반성하기는커녕, 지금도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나를 쳐다보는 이길상의 표정이 잔뜩 굳어있었다.
“‘가장 약한 팔도 정의의 검으로 치면 강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피고와 그의 조직원들은 돈과 권력 그리고 폭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강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저의 나약한 팔로 휘두르는 정의의 칼을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땅에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피고 이길상은 중형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더욱더 말에 힘을 주어 꾹꾹 눌러 말했다.
“이에, 본 검사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4조 범죄단체조직죄, 형법 31조 살인교사, 형법 제284조 특수협박 등에 의거 이길상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합니다. 이상입니다.”
고개를 돌려 이길상을 응시했다. 구형을 마치자 이길상이 재판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고개를 숙이며 침통해 했다.
이길상 씨! 감옥에서 평생을 사죄하며 사십시오. 그래도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나는 한참을 서서 한없이 초라해진 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 * *
한 달 뒤,
<405호 법정>.
“2009년 고합 *** 사건, 피고 이길상에 관한 선고를 하겠습니다. 피고 이길상을 무기징역에 처한다. 피고 이길상은…….”
재판장이 차분하게 주문을 읽어 내려갔다.
결국, 이길상의 형은 구형에서 한 단계 감형된 무기징역이었다.
[이 땅에 정의로운 검사, 김정환! 결국, 함정수사의 덫에서 빠져 나오다.]
[다윗 김정환, 골리앗 장철호 변호사에 극적인 역전승!]
매스컴과 인터넷은 연일 나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고 나는 하루아침에 인터넷 검색어 1위에 등극하는 스타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김정환 검사실>.
.
“최근 항간에 제기된 구속된 길상 그룹의 이길상 회장과의 연고로 곤욕을 치렀던 민정수석 ***이 도의적 책임을 지며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다음은 *** 수석의 기자회견을 들어보겠습니다.”
“항간에 제기된 모든 의혹은 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습니다. 저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음을 이 자리에서 밝힙니다. 다만, 한 나라의 민정수석으로서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도록 하겠습니다.”
조명을 받아 번들거리는 얼굴이 역겨워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도의적 책임? 어이없군!
*** 수석과 이길상의 검은 커넥션은 명백했으나, 그는 검찰 수뇌부와 정관계 인사를 동원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수 있었다. 지금의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나라는 아직도 멀었다. 나는 반드시 정권의 정치수단으로 전락한 검찰을 바로잡을 것이다. 반드시…….
나는 양 주먹에 힘을 주었다.
띠리리링.
그 순간,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김정환 검사 맞나?”
낯선 목소리였다.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네. 제가 김정환입니다.”
“나, 서울중앙지검에 전중호 차장이야.”
“네? 그런데 무슨 일이신지…….”
“자네. 앞으로 나랑 같이 일해보지 않겠나?”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