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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47화 (47/170)

# 47

[47화] 이 재판, 끝까지 간다 (6)

<정환의 아파트>.

황급히 집으로 돌아온 나는 킹 메이킹 시스템을 호출했다.

“김정환의 데이터베이스를 열어줘!”

나는 김정환과 망치의 연결고리를 찾아야만 했다.

[김정환의 데이터베이스를 활성화합니다.]

묵직한 목소리와 함께 데이터베이스 목록이 홀로그램 화면에 나타났다. 나는 우선 데이터베이스를 연도별로 list-up 했다.

2005년? 이 시기는 망치가 길상파에서 궂은일은 도맡아 하는 시기였다. 특히, 이 시기에 김정환과 망치가 상당히 가까웠던 시기이기도 했다.

분명, 여기에 단서가 있을 거야!

나는 2005년 1월부터 순차적으로 데이터를 검색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2005년 8월 데이터베이스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낼 수 있었다.

<2005년 8월 XX 룸살롱>.

접대부들을 물린 망치가 육중한 몸을 이끌고 김정환의 옆으로 가 앉았다.

“형님, 나가 달건이 생활로 시작해 올해로 15년째네요.”

망치가 스트레이트 잔에 양주를 따라 단숨에 마셨다.

“벌써 그렇게 됐나?”

망치가 옆으로 다가오자 부담스러웠는지 김정환이 살짝 몸을 비틀어 앉았다.

“그라지라. 시방, 15년째지라. 이적까정 온몸 바쳐 회장님을 보필했다 안 허요.”

후우, 망치의 눈이 점점 흐려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열심히 하니깐 네가 길상파 이인자가 됐잖아. 앞으로 길상파를 이끌어 갈 사람이 웬 엄살이야?”

김정환이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 다리를 꼬며 말했다.

“후후후, 그라고 넘버2라고 해부니까 기분이 겁나게 째져불구만. 고맙소 성님!”

망치의 입가에 허탈한 미소가 번졌다.

“왜 그래? 천하의 망치가 센치해져서? 야야. 안 어울려. 그만해라.”

김정환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성님은 워낙 유식헌께 토사구팽이란 말을 알것지요?”

“토사구팽? 뭐. 그야 알지만 지금 그 말을 꺼내는 이유가 뭐야?”

김정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냥 끝나면 주인이 사냥개도 잡아 묵는다. 그런 뜻으로 아는디 맞어라?”

망치가 아련한 눈빛으로 김정환을 쳐다보았다.

“맞긴 한데, 왜 자꾸 그런 말을 해?”

“나가 조만간, 디져불던가, 이도식이 그 후레아들 놈을 갈기갈기 찢어번지든가, 둘 중 하나는 해야 쓰겄소!”

망치가 살기가 가득 어린 눈을 희번덕거렸다.

“이도식? 이도식은 너보다 서열이 한참 아래잖아?”

“그라지라. 긍디, 회장님이 아무래도 갸를 이뻐라하는갑소.”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그의 눈망울이 슬퍼 보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흠… 기회를 봐서 나가 그 새끼 낯바닥으로 칼로 그서버려야 쓰겄소. 인자, 이판사판잉께.”

“…….”

“그래서 말인디, 나가 성님한테 쪼까 부탁 하나 할라요.”

“뭐… 뭔데?”

김정환이 불안한 듯 눈을 가늘게 말을 더듬었다.

“혹시나 나가 잘못되면 난중에 시골에 있는 우리 엄니하고 미숙이는 성님이 좀 챙겨 주믄 안 되겄소?”

진지한 눈빛이 허튼소리는 아닌 듯했다.

“뭐? 어…… 그래.”

김정환이 부담스러운 듯 몸을 살짝 비틀며 말했다.

“후후후, 그러고 놀란 토깽이맹키로 눈을 떠 쌌소? 걱정 마소. 나가 거시기 공것으로 그런다요? 나가 몸은 이라고 산도적 멩키로 생겼지만, 그라도 내 실속은 차린다 안 허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나가 회장님 등짝에 칼을 쑤셔 박을 자료를 갖고 있당께. 혹시나, 나가 잘못되면 성님이 가져다 조져부쇼. 나도 복수는 허야 헌께. 아마, 이 정도 자료믄 성님 승진하는데 솔찬히 도움이 될 거이오.”

“그…… 게 어디 있는데?”

김정환이 입술에 침을 잔뜩 묻혔다.

“하하하. 아적은 오픈 몬 하지라. 나가 적당한 때가 되면 갈챠 줄랑께 기다라보쇼. 어쩌면, 영원히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겄지만서도.”

망치가 눈을 빛내며 잔에 양주를 채웠다.

홀로그램 화면에서 재생된 동영상은 여기까지였다.

자료라…… 분명 망치가 이길상 등에 칼을 꽂을 수 있을 만한 자료라고 했어.

망치가 그 자료를 어디에 숨겼을까? 길상파 내에서 망치 정도의 서열이면 거의 모든 자료의 접근이 가능했을 것이다. 분명 이길상의 급소를 공격할 만한 파괴력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을 거야! 반드시 그 자료를 찾아야 한다!

<김정환 검사실>.

망치가 자료를 숨겨둘 만한 장소는 모두 샅샅이 뒤져봤지만 허사였다. 그의 집은 이미 폐허처럼 쑥대밭이 되어 있었고 그가 자주 찾던 그의 연인 이현숙의 집에서도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공판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나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킹 메이킹시스템을 가동합니다.]

그 순간, 굵직한 목소리가 다시금 내 고막을 흔들었다.

[힌트권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YES/NO]

아! 맞다. 미션을 수행하면 힌트권을 사용할 수 있었어! 왜 내가 이 생각을 못 했지?

[YES]

나는 지체하지 않고 YES 버튼을 터치했다.

[카드를 선택하십시오.]

그 순간, 상태창에 수많은 카드가 나타났다.

[키워드 힌트권]

카드 중에 한 장을 선택하자 나타난 문구였다.

키워드 힌트?

[키워드 힌트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사용 시, 포인트 10을 차감합니다. YES/NO]

물론, YES지!

[수구초심(首丘初心)]

킹 메이킹 시스템이 내가 보여준 키워드는 ‘수고초심’이라는 사자성어였다.

수구초심? 여우가 죽기 전에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머리를 바르게 하고 죽는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망치가 죽은 곳…… 망치의 고향, 맞아. 거제도!

한참을 생각 후에 머릿속에 떠오른 장소였다.

망치는 15살에 거제도에서 이곳으로 옮겨왔어! 그의 고향은 거제도다. 게다가 그가 죽은 곳도 공교롭게도 거제도! 그렇다면…….

구조라 방파제 인근의 초록 산장!

맞아! 내가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지? 그곳에 망치의 비밀금고가 있었어!

그 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수사관님, 저 잠시 출장 좀 가겠습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문을 나서며 공 수사관에게 말했다.

"출장이오? 어디를 가시는데요?”

“그런 것까지 내가 수사관님께 보고해야 합니까?”

“그…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공 수사관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수사관님, 또! 또!”

“아… 네. 알겠습니다. 묻지 말라 이거죠. 눼눼.”

공 수사관이 빈정 상한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아무튼,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까 급한 일 있으면 연락하세요. 그럼 전 갑니다.”

나는 부랴부랴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4시간 남짓 운전해 도착한 초록 산장!

그동안 인적이 드물었던지 이끼가 잔뜩 끼어있었지만, 내부는 예전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바로 이거야!

지하실에서 찾아낸 망치의 금고, 그의 말대로 이길상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는 엄청난 자료가 숨겨져 있었다.

죽은 망치가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나는 죽은 망치의 도움으로 재판의 흐름을 반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잡을 수 있었다.

* * *

<윤상원 부장실>.

어느덧, 한 달의 시간이 흘렀고 2차 공판 날이 다가왔다. 윤 부장이 자신의 방으로 나를 불렀다.

“오늘이 2차 공판인가?”

“네.”

“준비는 잘 된 건가?”

“부장님 덕분에 잘 준비했습니다.”

“내 덕분이라고?”

윤 부장이 검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의아해 했다.

“네. 부장님 덕분입니다.”

“하하하, 그래? 아무튼, 도움이 됐다니 나야 좋지만, 어떻게 도움이 됐다는 거지?”

“오늘 공판을 지켜보시면 압니다.”

“사람 하곤, 사람을 이렇게 궁금하게 만들어도 되나? 오늘 공판은 무슨 일이 있든지 간에 지켜봐야겠구먼.”

허허허, 윤 부장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환하게 웃었다.

<405호 법정>.

법정에 들어서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눈에 뜨일 정도로 줄어든 기자들, 냉랭한 분위기가 지난번 공판과는 확연히 달랐다.

중앙에 배치된 피고석에 앉아있는 이길상도 입가에 미소를 띠며 조롱하듯 나를 쳐다봤다.

마음껏 비웃어라! 그 미소도 오늘이 마지막일 테니…….

나는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으며 의자에 앉았다.

잠시 후, 공판은 시작됐고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장철호 변호사는 초반부터 맹공을 퍼부었다.

“검사는 함정수사를 통해 범의도 없는 피고를 기망했으므로 검사 측에서 제시한 모든 증거는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 또한, 천기수를 통해 확보한 비자금 목록과 살생부는 출처가 불확실하며 개인이 임의로 작성한 다이어리에 불과함으로써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없음을 주장합니다. 이상입니다.”

장철호 변호사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가슴을 내밀었다.

“검사! 반대 신문하십시오.”

“네. 재판장님.”

나는 한 손에 리모컨을 손에 쥐고 천천히 이길상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길상! 당신이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일 것이다! 장담컨대 기대해도 좋습니다. 당신 눈앞에서 펼쳐질 막장 드라마를…….

“피고는 박천수, 조상현 씨를 의형제처럼 생각하신다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그 마음 지금도 변함이 없으신가요?”

“네.”

“좋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그렇게 의형제처럼 지낸 사람을 해할 이유가 전혀 없겠죠? 특히나, 죽일 의도는 더욱더 없을 거고요?”

나는 이길상의 눈을 뚫어지도록 노려봤다.

“네. 물론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제가 드라마 한편을 상영토록 하지요!”

“드라마? 뭘 하려는 거지?”

뒤쪽에 앉아있던 기자들이 수군거렸다.

<2005년 4월 8일, 이길상의 자택>.

나는 리모콘을 들어 준비된 동영상을 재생했다.

“망치! 조상현이는 찾았나?”

낮고 굵은 목소리, 분명 이길상의 음성이었다.

“쥐잡듯이 뒤져가꼬 어제 찾아냈습니다.”

“뒤탈 없이 확실히 해뒀겠지?”

“네. 확실합니다. 그자가 대갈빡에 칼침을 맞았응께 아마도 뒈졌을 겁니다.”

망치가 으스대며 말했다.

“아마도? 망치, 지금 그걸 일이라고 해? 시체 확인했어?”

“그거시…… 거시기 그니까…….”

당황한 망치가 말을 더듬었다.

“내가 이러니까 너를 믿지 못하는 거야! 조상현이는 절대 살려 둬서는 안 돼. 지구 끝까지라도 쫒아 가서라도 목숨줄을 끊어놔야 할 것이다. 절대로 화근을 남겨 둬서는 안 돼!”

이길상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다그쳤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그건 그렇고, 박천수는 어떻게 됐어?”

“박천수는 지가 마킹하고 있는디요. 치매에다 인자는 풍까지 와가꼬 거시기 시방 오늘 낼 합니다.”

“서두를 건 없지만 혹시라도 구 천수파 애들이 들락거리면 적당히 상황 봐서 제거해.”

“네!”

“치매에 중풍이라…… 하여간 그 인간 말년도 드라마군, 드라마야.”

이길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웅성웅성.

법정의 분위기가 180도 바뀌는 순간이었다.

“마… 망치! 저자가 어떻게 저걸….”

동영상을 지켜보던 이길상이 하얗게 핏기가 걷힌 얼굴로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망치 형님이 도대체 왜 저기 나온 거야?”

“이 미친 새끼가 죽어서까지 조직을 망치는구나!”

“그나저나, 저 비디오는 어디선 난 거야?”

이길상의 조직원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보시는 바와 같이 의형제라고 칭하며 우애를 과시한 피고는 그의 하수인, 망치, 정상필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박천수와 조상현의 행방을 쫓았으며 최근까지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이는 분명, 피고 이길상이 범의를 가지고 있었음이 확인된 확실한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 검사와 수사팀의 수사는 기회 제공형 함정수사로 적법한 수사임을 주장합니다. 이상입니다.”

“아! 재판장님, 비록 정상필은 사망했지만, 이 동영상으로 인해 그의 가족이 위험에 처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따라서, 정상필의 가족에 대한 신변 보호를 요청합니다.”

비록, 김정환과 한 약속이었지만 나는 그의 약속을 지켜줘야 했다. 잔인한 길상파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다.

“요청을 수락합니다. 관계 기관에 통보해 적절한 신변 보호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어…… 떻게 된 겁니까?”

장철호 변호사가 황급히 이길상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물었다.

“모…… 모르겠습니다.”

당황한 이길상이 고개를 연신 가로저었다.

“와! 김정환 검사가 함정수사의 덫에서 벗어나는 건가?”

“본사에 빨리 알려야 하는 거 아냐? 특종이야! 특종!”

기자들이 휴대전화를 들고 황급히 법정을 빠져나갔다.

“재판장님, 더불어 본 사건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조상현 씨를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나는 확실한 카운터 펀치를 날려야 했다.

“재판장님! 본 증인은 사전에 협의하지 않은 증인입니다. 증인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다급해진 장철호 변호사가 비지땀을 흘리며 말했다.

“기각합니다. 정황상 증언이 꼭 필요한 증인입니다. 이의가 있으면 추후 서면으로 받겠습니다. 검사, 계속하세요!”

재판장이 단호한 결정을 내리자 장철호 변호사의 얼굴이 점점 잿빛으로 변해갔다.

절뚝절뚝.

판사의 지시와 함께 벙거지를 푹 눌러쓴 조상현이 의수를 한 채, 절뚝거리며 증인석으로 걸어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멀쩡한 데가 없는 몸이었다. 심한 고초를 겪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증인! 법정에서는 모자를 벗어주십시오.”

조상현이 증인선서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올라서자 재판장이 주의를 시켰다.

“네.”

그가 모자를 벗자 20cm가량의 깊은 칼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저…… 저거 칼자국 아냐?”

“와. 저 저 정도면 죽지 않은 게 기적이네.”

방청객들이 입을 벌린 채 경악했다.

“…….”

천하의 강심장 이길상도 이 순간만큼은 긴장했는지 연신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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