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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46화 (46/170)

# 46

[46화] 이 재판, 끝까지 간다 (5)

<405호 법정>.

박상우, 긴장하지 말자!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천천히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중앙 피고석에 거만한 표정으로 이길상이 앉아있었고 그 옆에 장철호 변호사가 그와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다. 방청석은 마치 세기의 재판을 지켜보려는 듯 만원이었다.

“지금부터 고합 2009*** 공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재판장이 좌우 배석 판서들과 눈을 맞추며 재판 개시를 알렸다.

“피고의 이름은 이길상이 맞습니까?”

“네.”

“주소는 전남 순천시…….”

간단한 재판장의 인정신문과 함께 이길상의 첫 공판이 시작되었다.

기습 기자회견을 통해 전국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이었기에 방청석은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차 있었다. 방청석 앞쪽은 이길상의 조직원들과 길상 그룹의 임원들이 자리를 메웠고 뒤쪽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무력을 상징하는 깡패들과 지성을 대표하는 기자들의 조합이 묘한 대조를 이뤘다.

약 10분간, 피고와 원고의 모두 발언을 마치고 드디어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었다.

“검사 측, 피고 신문하세요.”

재판장이 나를 쳐다보며 지시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천천히 피고 쪽으로 걸어 나오며 답했다.

“피고 이길상과 이도식은 자신의 조직원들을 동원해 기물을 파손하고 조상현 등 그들의 수하에게 위해를 가했습니다. 또한, 청부살인업자를 고용해 박천수 씨에 관한 살인을 교사했습니다. 게다가, 피고는 협박을 통해 타인의 사유재산을 갈취했으며 이를 무마하기 위해 정관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로비를 펼치는 등 악질적인 수법으로 그 죄가 심히 가볍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고개를 피고석 쪽으로 돌렸다.

이길상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며 나를 응시했다.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이었다.

“그럼, 피고에게 묻겠습니다. 피고는 7월 24일 14시, **동, 범아 빌딩 습격 사건을 직접 지시했습니까?”

“그런 일 없습니다.”

이길상이 무표정한 얼굴로 부인했다.

당연히, 부인하시겠지!

“좋습니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피고 이길상은 이도식을 통해 조상현과 그의 수하를 제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오. 그런 일 없습니다.”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그렇군요. 그럼 지금부터 이 화면을 보시죠!”

나는 법정 중앙에 설치된 스크린에 얼마 전 조상현을 치기 위해 길상파 조직원들이 습격한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김선출을 위시한 수십 명의 길상파 조직원들이 사시미 칼과 야구방망이를 동원해 기물을 파손하고 무력을 가한 동영상이었다.

웅성웅성.

“시X, 저게 뭐야? 이 시X놈아! 안 끄냐?”

“야… 죽고 잡냐?”

동영상이 상영되자 방청석에서 육두문자가 쏟아져 나왔다. 어떤 이는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기세였다.

“조용히 하세요! 더 법정에서 소란을 피울 시엔 퇴정 조치하겠습니다.”

화가 난, 재판장이 소리쳤다.

“검사! 계속하세요.”

“네. 지금 보시는 화면과 같이, 화면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김선출과 그의 조직원들로 조상현을 위시한 그의 수하들에게 무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피고 이길상이 조직한 폭력조직, 길상파의 행동대장과 그의 조직원들이 명백합니다. 이는 분명히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4조 범죄단체 조직에 의한 폭력으로 중형을 피할 수 없는 범죄입니다. 이상입니다.”

“그럼, 피고 반대 신문하십시오.”

재판장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장철호 변호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네.”

이길상의 변호인, 장철호가 천천히 앞쪽으로 걸어 나왔다. 금테 안경 너머로 비치는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피고에게 묻겠습니다. 피고는 이도식을 시켜 조상현 등 그의 수하를 제거하라고 시킨 적이 있습니까?”

장철호 변호사가 이길상을 쳐다보며 물었다.

“아니오. 그런 적 없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장철호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피고는 사전에 박천수와 조상현을 위해 할 생각이나 계획이 있었습니까?”

“아니오. 전혀 그런 생각 한 적이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한때, 저와 동고동락한 분들로 형제와 같은 분들입니다. 지금까지도 그런 맘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길상이 차분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표정을 읽을 수 없을 만큼 냉정한 모습이었다.

헉! 함정수사!

지금 장철호 변호사는 이 사건을 함정수사로 몰고 갈 생각이다. 현재, 이길상은 모든 면에서 불리하다. 정황증거도 충분히 확보된 상태고 무엇보다 그는 여론의 뭇매를 맞는 상황이다. 그가 처한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볼 때, 함정수사는 그들이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카드였을 것이다.

함정수사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범의 유발형 또 다른 하나는 기회 제공형 함정수사다. 두 가지 함정수사의 판단 기준은 범죄 의지 유무에 따라 나뉜다. 전자는 범죄 의지가 없는 경우, 수사기관이 계략이나 사술을 이용해 범의를 유발한 경우고 후자는 이미 범의를 가지고 있는 자에게 기회를 제공한 경우다.

물론, 후자는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어 최근에는 함정수사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전자!

이 부분은 분명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특히나, 범의라는 것이 범인의 내심의 의사이기 때문에 이길상이 이를 인정하지 않는 이상 외부로 드러나는 객관적 정황에 의해서 사후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내가 가장 우려했던 부분을 장철호 변호사가 비집고 들어왔다. 지금 장철호 변호사는 범의 유발형 함정수사로 본 사건을 몰고 가려고 하고 있다!

“재판장님, 이렇듯 지금 피고는 조상현과 박천수에게 위해를 가할 의사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검사 측은 이렇게 범죄 의사를 가지지 아니한 피고에게 고의로 범의를 유발케 하여 범죄를 교사토록 함정수사를 했습니다. 이는 명백히 위법이며 따라서, 검사가 제시한 모든 증거는 법적 효력이 없음을 주장합니다.”

장철호 변호사가 이를 악다물며 의지를 내비쳤다.

판례상 범위 유발형 함정수사는 위법의 가능성이 있고 기회 제공 함정수사는 위법하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본 사건은 정황상 기회 제공형 수사로 볼 수 있었으나 장철호 변호사는 그 부분을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법리 다툼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었다.

그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 사건의 초점을 함정수사로 몰고 가 논점을 흐리자는 것과 법리 다툼을 통해 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시간을 끌자는 의도였다. 아무튼, 경험 많은 변호사다운 전략임은 틀림없었다.

“이의 있습니다. 재판장님! 형사소송법 제199조 제1항에 의하면 ‘수사에 관하여는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조사를 할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있어 수사의 합목적성과 필요에 의해 다양한 수사 방법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 검사와 수사팀의 수사 역시, 기본적으로 임의수사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피고 측의 주장은 아무런 근거 없이 본 검사의 수사를 범의 유발형 함정수사로 단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시정을 요청합니다.”

나는 어떡하든 방어를 해야 했다.

“기각합니다. 변호인의 주장에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변호인 계속하세요!”

단호한 표정의 재판장이었다.

“네. 이렇게 범죄를 수사하고 방지하여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는 수사기관이 오히려 치졸한 함정을 만들어내 있지도 않은 피고의 범의를 끌어내 올가미를 씌운 점은 심히 유감입니다. 또한, 피고는 사업을 하는 사업주의 입장에서 자신의 사업영역에 뛰어든 경쟁자를 견제할 필요가 있었고 그 일을 상무인 이도식이 피고와 협의 없이 충성심에 수행한 것뿐입니다. 다만, 현장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들은 당시 흥분한 길상 유통 직원들의 우발적인 행동일 뿐 전혀 피고와는 무관함을 밝혀두는 바입니다. 이상입니다!”

말 그대로 최고의 변호사다웠다. 그는 정황상 전적으로 불리한 가운데에서도 약점을 찾아냈고 그곳을 집요하게 물어뜯었다. 장철호 변호사가 단호한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이렇게 되면 만만치 않은 상황으로 흘러간다! 당혹스러운 순간이었다.

“검사! 피고의 범의를 단정 지을 수 있는 증거가 있습니까?”

재판장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물었다.

“본 사건의 수사가 함정수사라는 것이 성립되려면 사전에 피고를 사술이나 계략 등을 사용해 범의를 유발해야 하는데 본 검사와 수사팀은 피고 이길상에게 협박이나 위협을 가하지도 않았으며 그럴듯한 미끼를 사용해 유혹하지도 않았습니다. 최근 판례를 보면…….”

“아뇨, 아뇨. 검사! 피고가 본 사건에 범의를 사전에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증빙할 수 있는 증거가 있느냐는 것을 묻는 겁니다!”

재판장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증거! 이길상이 스스로 입을 열어 자수하지 않는 이상,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음…… 아직 없습니다.”

웅성웅성.

만세!

하아!

앞쪽에 앉아있던 조폭들 사이에선 환호성이, 뒤쪽에서 재판을 지켜보던 기자들 사이에선 탄식이 동시에 뒤섞여 법정은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이후, 재판은 별다른 쟁점 없이 마무리되었고 재판의 흐름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상, 고합 2009*** 사건의 1차 공판을 마칩니다. 다음 공판은 30일 뒤 본 법정에서 재개됩니다.”

재판장이 재판 종료를 알리자 피고석에 앉아있던 이길상이 나를 향해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이게 지금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러게 분위기 싸한데?”

방청석에 앉아있던 기자들 역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 * *

<김정환 검사실>.

상황은 하루아침에 반전이 되어 있었다.

[함정수사 덫에 빠진 김정환 검사,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연일 신문은 기사를 쏟아부었다.

게다가 여론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았다. 들불처럼 타오르며 무조건 지지를 보내던 네티즌의 응원도 하루아침에 사그라드는 분위기였다.

“선배님, 괜찮아요. 이제 1차 공판이고 여전히 우리가 유리합니다. 힘내세요.”

장 검이 공판 자료를 들어 보이며 위로했다.

“그래. 내가 너무 안일하게 대처를 한 것 같아. 좀 더, 꼼꼼히 준비해야겠어.”

이렇게 말했지만, 입맛은 한없이 씁쓸했다.

“아무튼, 좀 쉬시고 다음 공판 착실해 준비해요. 우리!”

장 검이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우며 나를 바라봤다.

이렇게 며칠이 흘렀고, 어느 날, 윤 부장이 나를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윤상원 부장실>.

“너무 상심하지 말게. 김 검사!”

툭툭, 윤 부장이 부드럽게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죄송합니다. 부장님.”

“죄송하긴, 그게 무슨 소린가? 저쪽에 이렇게 작정하고 나온 이상 쉽지는 않겠다 싶었어. 역시 예상대로 그 점을 물고 늘어지더군. 하긴, 그 방법뿐이겠지. 그들 입장에선…… 아무튼, 이제부터 시작이야. 맘 다잡고 힘을 내자고!”

윤 검사도 씁쓸한지 입맛을 다셨다.

“……….”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건가? 저쪽 논리가 탄탄해 쉽지 않을 텐데. 함정수사라는 게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라 재판부의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는 문제라…….”

윤 검사가 까칠하게 털이 돋아난 턱을 문지르며 말했다.

“반드시 사전에 범의가 있었음을 입증할만한 단서를 찾아야겠죠.”

“음…… 이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내 경험에 비춰보면 이길상 같은 부류의 인간들은 사람을 절대 못 믿는 습성이 있거든. 그래서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한 사람에게 힘을 몰아주지 않아. 두세 사람에게 경쟁을 붙여 항상 자신에게 충성하게 만들지.”

윤 부장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

“그 점이 항상 문제가 되거든! 그러다 보니 불만을 품은 자가 나오기 마련이지. 결국, 자신이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지게 된다고 느끼는 순간, 그렇게 충직한 개는 주인의 뒤꿈치를 물 수밖에 없거든.”

윤 부장이 담배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불만을 품은 자? 주인의 뒤꿈치를 문다!

그렇다면…… 망치!

그래, 죽은 망치가 해답을 줄지도 모른다!

“부장님 죄송하지만 제가 볼일이 있어서요. 나가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그…… 그래.”

윤 부장이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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