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45화] 이 재판, 끝까지 간다 (4)
도대체 어떻게 하려는 건가?
“어떻게 판을 크게 벌이자는 말씀입니까?”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좋은 방법이 있지요. 프레스 센터에서 기습 기자회견을 엽시다. 준비는 제가 할 테니 검사님은 브리핑 자료나 준비해 주십시오!”
박철훈 기자가 눈을 반짝거렸다.
기자회견? 이거였군! 기자회견이 생방송으로 전국에 방송될 수만 있다면야…… 이것보다 효과적인 건 없겠지!
점점 심장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가 생각한 외통수는 기자회견을 열어 만천하에 이길상 사건을 폭로하자는 것이었다. 기자로서 생각해 낼 수 있는 최고의 묘수였다.
“흠… 그렇게 해주신다면 저야 천군만마를 얻는 격이지만 기자님은 곤란해지실 텐데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손가락으로 입술을 매만졌다.
“음… 저야 뭐. 살 만큼 살았고 자식새끼들 다 커서 자기들 앞가림할 만하고 기자질도 할 만큼 했습니다. 뭐가 아쉬울 게 있겠습니까?”
박철훈 기자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었다.
“그래도… 쉽지 않은 결정이실 텐데요.”
말 그대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자로서 불이익을 감내해야만 할 심각한 일이었다.
“아닙니다. 저도 간만에 기자로서 짜릿한 기분을 느껴보고 싶네요. 게다가, 윤 검사나 나나 과거에 진 빚이 좀 있어요. 이번 참에 그 빚을 한번 갚고 싶군요. 우리, 김 검사님을 통해서요.”
박철훈 기자도 각오를 단단히 한 모양이었다. 그의 눈빛에서 확고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흐음, 짜릿한 긴장감이 발끝에서부터 퍼져 올라와 머리털이 쭈뼛해지는 느낌이었다.
“크게 어려울 것 없습니다. 푹 쉬시고 목소리 쉬지 않게 감기나 조심하십시오!”
하하하, 박철훈 기자가 목젖이 보일 정도로 크게 웃었다.
<프레스 센터, 기자회견장>.
박철훈 기자의 말대로 모든 과정은 순조롭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나는 기습 기자회견을 열 수 있었다. 종로에 있는 XX 프레스 센터에 수많은 기자가 몰려와 있었다.
“오늘 순천지청 검사가 폭탄을 터뜨린다면서?”
한 기자가 옆에 앉아있던 또 다른 기자에게 말했다.
“소문으로는 적잖은 파문이 일 거라는데? 장난 아니라던데, 저기 위쪽과도 연결이 돼 있다는 소문이야!”
“진짜? 위쪽이라면 청와대?”
“아마도?”
“와… 이게 얼마 만에 보는 왕건이야? 청와대 누구? 설마 그분은 아니겠지?”
“글쎄, 잠시 후면 모든 것이 밝혀지겠지!”
“저기 온다!”
찰칵찰칵! 팡! 팡!
내가 프레스 센터에 들어서자 수많은 기자가 몰려들었고 당혹스러울 정도로 플래시 세례를 퍼부었다.
나는 단상에 올라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는 기자들을 응시했다.
박상우, 떨지 말자!
저절로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나는 넥타이를 고쳐매며 마음을 다잡았다.
떨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리라! 심장이 심하게 요동을 쳤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순천지청 김정환 검사입니다. 지금부터 저희가 수사 중이던 길상 그룹, 이길상 씨와 연관된 일련의 사건을 여러분께 낱낱이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차분히 이길상과 이도식의 검거 과정 및 갖가지 불법 사례 등을 브리핑했다. 실제 검거 과정에서 촬영한 동영상으로 그 신빙성을 더했다. 또한, 이길상과 정치인 간의 커넥션에 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이상 모든 브리핑을 마치겠습니다. 저는 검사로써 법 위에 군림하려는 이길상과 그의 일파들을 반드시 법으로써 단죄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30분간의 브리핑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멍했다. 아무튼, 브리핑은 성공적이었고 비록 공중파를 타진 못했지만, 인터넷과 케이블 방송을 통해 전국에 생방송 될 수 있었다.
* * *
<순천지청 지청장실>.
뒤늦게 기습 기자회견 소식을 전해 들은 지청장이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이 차장, 윤 부장과 함께 지청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저…… 저거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 차장!”
지청장이 거칠게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말했다.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김 검사가 왜 저기에?”
이 차장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티브이를 가리켰다.
“윤… 윤 부장, 당신은 알고 있었나?”
이 차장이 윤 부장을 쳐다봤다.
“아뇨. 저도 전혀 몰랐습니다. 서울에 볼일이 있다고 며칠만 휴가를 달라기에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윤 부장이 적당히 둘러댔다. 그의 연기 또한 일품이었다.
“이게… 이게 지금 말이 됩니까? 직속 상관이 부하 검사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저런 미친 짓을 하게 가만둬요!”
이 차장이 벌떡 일어나 윤 부장에게 연신 삿대질을 해댔다.
“아이고 두야… 내가 살다 살다 이런 일을 다 당하다니, 다들 꼴도 보기 싫으니까 나가요 나가!”
지청장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꾹꾹 누르며 소리 질렀다.
“돌아오면 책임을 물도록 하겠습니다.”
이 차장이 마른 입술에 침을 묻히며 말했다.
“뭐? 책임? 무슨 책임을 진다는 거예요? 그러면 저거, 저거 도로 물릴 수 있답니까? 꼴도 보기 싫으니까 나가라고 당장!”
지청장이 리모컨을 들어 전원 버튼을 누르더니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집어 던졌다.
띠리리링.
그 순간, 지청장의 전화기가 요란을 떨며 울려댔다.
“네네. 수석님, 죄송합니다. 그게 김정환 검사가…….”
민정수석의 전화였다. 전화기 사이로 육두문자와 함께 고성이 흘러나왔고 귀에서 전화기를 떼어낸 지청장이 안절부절못하며 비지땀을 흘렸다.
<기자회견장>.
모든 브리핑이 끝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을 순서였다.
“김정환 검사님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정말 놀라운 일이군요. 이번 일에 민정이 연관되어 있다는 말씀입니까?”
서아일보, 황 기자가 질문했다.
“네. 제가 아는 한 그렇습니다.”
웅성웅성.
기자회견장이 출렁거리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번 이길상 씨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야당의 모 중진의원이 누구인지 밝혀주실 수 있습니까?”
상앙일보 천 기자가 질문하자 기자회견장이 고요해졌다. 모든 사람이 내 입에 집중하는 듯했다.
“그 부분은 좀 더 수사가 진행된 후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현재로선 확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상당히 조심스러운 부분이었다. 일단, 확실한 정황을 파악하기 전까지는 조심해야 했다.
“분명 검찰 입장에서 보면 제 살 깎아 먹기라 이렇게 폭로하기가 쉽지 않은데 대단합니다. 아무튼, 진정한 깨어있는 검사를 보는 것 같군요. 김정환 검사님의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법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법입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것이 인지상정 아닐까요? 저는 단지 죄를 저지른 자들을 단죄할 뿐입니다. 법 앞에 모든 사람은 평등합니다.”
한민족신문 이 기자의 말과 함께 기자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퍼져 나왔다.
<장영은 검사실>.
“영은아! 지금 방송 봤어? 와 진짜 대박 사건!”
기자회견을 시청한 정훈이 헐레벌떡 장 검의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선배, 웬 호들갑이야?”
장 검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보고 있었구나? 지금 우리 지청 완전히 쑥대밭이야. 와, 진짜 김 검사님, 대단하다. 진짜 어떻게 저렇게 무모하지?”
정훈이 허리에 손을 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선배, 지금 무모하다고 그랬어?”
장 검이 정훈이를 흘겨봤다.
“그럼, 저게 무모한 짓이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어? 이제 김 검사님 돌아오시면 아마 작살날 걸?”
정훈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선밴 죽었다 깨어나도 김 검사님처럼 될 수 없는 거야. 무모함은 선배 같은 사람한테 어울리는 거지. 어떻게 감히 그런 단어를 김 검사님한테 써? 어이없게. 어휴!”
장 검이 도리질하며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정훈을 쳐다봤다.
“왜 넌 맨 날 날 못 잡아먹어서 난리야?”
정훈이 인상을 찌푸리며 볼멘소리를 했다.
* * *
긴급 기자회견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졌고 잠잠했던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다. 심지어, 내 이름이 인터넷 검색어 1위를 장식하기도 했다. 게다가, 나를 후원하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날 정도로 후폭풍은 대단했다.
[정의로운 검사, 김정환.]
[이길상의 뒤를 봐준 야당 중진의원은 누구?]
[청와대 민정수석 연루설] 등,
네티즌은 기다렸다는 듯이 연일 기사들을 쏟아냈다. 날이 갈수록 여론은 사그라들기는커녕 들불처럼 번져만 갔다.
결국, 이에 당황한 검찰 수뇌부는 여론이라는 물결에 밀려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본 검찰은 이번 이길상 관련 사건에 어떠한 외압도 없이 철저히 성역 없는 수사를 진행하겠습니다. 더불어 항간에 제기되고 있는 의혹도 철저히 조사하겠습니다.”
사태를 진화하기 위해 검찰총장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지청장실>.
“김 검사, 어서 와!”
지청장의 표정이 유난히 밝았다. 그가 나를 문 앞에까지 마중 나와 반겼다.
“네.”
“앉지! 자네. 사람을 놀래도 이렇게 놀라게 하면 쓰나? 기사는 읽어봤네.”
지청장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신문을 내 앞에 내놓았다.
[순천지청 백정식 지청장의 용기 있는 결단! 검찰의 위상을 높이다.]란 제목의 머리기사였다. 난 그를 내 편으로 만들어야 했다.
“자네가 날 이렇게 생각해주는지는 미처 몰랐어!”
지청장이 내 손을 부여잡았다.
“……….”
“좋아, 이렇게 된 이상, 이번 수사, 자네 소신껏 진행해봐. 내가 물심양면으로 밀어줄 테니! 김 검사, 이 사람 하여간 물건이야 물건!”
지청장이 검지를 뻗어 나를 가리키며 흡족해 했다.
<광주지방법원>.
결국, 재청구된 이길상 건에 관한 영장실질심사는 일사천리로 통과되었다.
“이길상 씨, 얕은꾀가 잔꾀를 속이려 한다고 하셨습니까?”
나는 호송차에 올라타는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흐음, 일단은 자네가 이긴 거로 해둠세. 하지만,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어.”
“재판은 게임이 아닙니다. 당신은 법의 이름으로 그 죄의 대가를 받을 겁니다. 제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
결국, 이길상과 이도식은 공갈 협박, 갈취, 살인교사 등의 죄목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이길상도 그냥 물러서지는 않았다. 이번 사건과 연루된 민정수석, 모 중진의원의 지원으로 대규모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대검 중수부장 출신, 장철호 변호사 등 법무법인 대서양의 초특급 변호인단이었다.
“선배님 오늘 첫 공판인가요?”
장 검이 내방을 찾아왔다.
“어, 그래.”
나는 공판서류를 정리하며 그녀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었다.
“지금까지 잘해오셨으니 재판도 잘 해내시리라 믿어요!”
장 검이 양주 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고마워!”
장 검의 미소만큼 내게 힘을 주는 건 세상에 없는 듯했다.
<광주지방법원, 408호 법정>.
이제 시작인가?
후, 법원에 도착한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는 옷매무새를 단정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