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43화] 이 재판, 끝까지 간다 (2)
<지청장실>.
지청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미 호출을 받았는지 이 차장과 윤 부장이 도착해 있었다. 잔뜩 어두운 두 사람의 표정에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왔나? 김 검사, 앉지.”
지청장이 조금은 경직된 표정으로 말했다.
“네.”
“그동안, 특별수사본부 운영하느라 수고많았어.”
지청장이 형식적으로 덕담을 건넸다.
“네. 전부 지청장님이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신 덕분입니다.”
“내 덕은 무슨, 전적으로 김 검사 공이지. 김 검사 덕분에 우리 지청 위상이 많이 올라가 기분이 좋구먼.”
허허, 지청장이 억지로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전부 이 차장님과 윤 부장님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이렇게 말하곤 옆에 앉아있는 두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굳어있는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음……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할 셈인가?”
지청장이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뭘, 어떻게 한다는 건가? 이길상과 이도식을 연행했으면 수사를 해서 구속하는 게 당연한 수순 아닌가? 뭘 어떻게 해? 그냥 풀어주기라도 하자는 건가?
나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옆에 앉아있는 이 차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흠흠흠.”
이 차장이 헛기침을 하며 내 시선을 외면했다.
그 순간, 지청장이 이 차장을 바라보며 턱짓으로 나를 가리켰다. 마치 폭탄 돌리기를 하려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몹시 곤란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흠흠…… 그게 말이야. 김 검!”
이 차장이 힘겹게 입술을 떼더니 어색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말씀하십시오. 차장님!”
“그래그래, 그럼 말함세. 실은 광주지검장님한테 연락이 왔는데 이번 수사는 이쯤 해서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고….”
“차장님, 중간에 말을 끊어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수사 종결이라뇨? 아직 제대로 된 수사는 시작도 안 했습니다. 이게 지금 무슨 소리입니까? 그럼 뭐 하러 특본은 만든 겁니까? 제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참으려고 했지만,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더 참기가 힘들었다. 나는 버럭거리며 대들었다.
“어허, 이 사람! 지청장님도 계시는데 지금 뭐 하는 겐가? 나도 아쉽지만 위해서 저렇게 간청을 하니 어쩔 수 없지 않나?”
당황한 이 차장이 내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아냐 아냐, 놔둬. 이 차장. 열심히 수사해서 이렇게 성과를 내놨는데 칭찬은커녕 수사 종결이라면 나라도 이해가 되지 않을 거야.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지청장이 연신 손사래를 쳤다.
“죄송합니다. 지청장님! 무례했다면 용서하십시오.”
머리를 숙여 정중히 사과했다.
“음…… 그럼 내가 말을 하지. 김 검사! 내 입장도 좀 고려해줘. 실은 얼마 전에 민정 쪽에서 직접 전화가 왔네. 수석님이 검찰 출신이 건 자네도 알지?”
뭐? 민정? 이길상이 청와대를 움직일 정도로 파워가 있었다는 건가?
“네? 민정이오?”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한 느낌이었다.
“그래… 이길상과 직접 연결된 건 아니고, 야당에 모 중진의원으로부터 이길상에 관한 소식을 들었던 거 같네. 수석님이 직접 전화를 하실 정도면….”
지청장이 민망한 듯 손수건으로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
나는 대꾸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 곧 국감이잖나. 게다가 그 의원이 법무 쪽이고…… 그래서 말이야. 이번 건만 잘 처리하면 아무래도…….”
지청장, 자신도 민망한지 횡설수설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건 뭔가? 이길상 같은 쓰레기는 그렇다 쳐도 어떻게 국회의원마저 부화뇌동하는가? 게다가, 민정수석까지…….
“그래서 어떻게 하란 말씀입니까?”
“뭘 어떻게 하나? 이번엔 우리 검찰 조직을 위해서 자네가 한발 물러서는 게 좋겠어.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나? 게다가 아직 확실한 물증도 없잖나?”
이 차장이 말을 받아넘겼다.
특본 만들자고 제일 앞장을 섰던 사람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수 있는 건가?
점점 속이 메스꺼워지기 시작했다.
“차장님! 현장 검거보다 더 확실한 물증이 있습니까? 게다가 지금 저희가 확보한 물증만으로도 100번은 구속할 수 있습니다.”
나는 더 참을 수 없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목에 핏대를 세웠다.
“허허허, 거 사람 하곤…… 이거 참!”
당황한 지청장이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김 검사, 진정해! 일단 나가자고.”
그동안, 잠자코 앉아있던 윤 부장이 내 팔을 잡아당겼다.
“지청장님! 전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검찰은 국감에서 흠 잡힐 일을 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럼 국감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죠. 그리고 흠 잡힐 일을 했으면 당연히 시정하고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죠! 이런 식으로 서로 야합하고 봐주고 그럼, 다음에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또 봐줄 겁니까? 여기가 시장 바닥입니까? 아니, 시장 바닥에서도 이런 치졸한 짓은 안 합니다. 이게 흥정거리가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전, 반드시 이길상 감옥에 처넣을 겁니다. 절대 포기 못 합니다.”
나는 더욱더 발악하며 속사포처럼 막말을 쏟아부었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일 수가 없었다.
“어허, 이 사람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망발이야. 윤 부장! 당장 김 검사 데리고 나가!”
보다 못해 이 차장이 벌게진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진정하고, 나가자고. 김 검사!”
윤 부장이 버티고 서있던 내 몸을 잡아끌었다.
“지청장님! 전 절대 포기 못 합니다.”
“……….”
지청장이 비지땀을 흘리며 어쩔 줄 몰랐다.
나는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아니, 꺾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윤상원 부장실>.
윤 부장이 내 팔목을 잡고 황급히 자신의 방으로 끌고 왔다.
“자네 그렇게 거기서 대들면 어떡하겠다는 건가? 매사에 침착한 사람이 왜 그렇게 흥분해?”
윤 부장이 미간을 좁혔다.
“부장님도 같은 생각입니까?”
나는 대답 대신 그에게 되물었다. 그의 의중을 듣고 싶었다.
“음…… 나라고 별수 있겠나? 지청장님이 저렇게 숙이고 들어오시는데 아쉽지만. 이번엔 양보하는 게 어때?”
“흠… 그건 지청장님이 아니라 부장님이 바라시는 것 같은데요?”
나는 윤 부장에게 쏘아붙였다.
“내가 원한다…… 원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자네를 보면 평검사 시절에 내가 생각나서 말이야.”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요즘 들어 부쩍 느끼는 건데 말이야. 난 자네를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드네. 하나는 ‘저렇게 살다간 언젠간 부러지겠지.’란 생각이 들거든?”
“…….”
“근데, 이상하게도 말이야 맘 한구석엔 자네의 대쪽 같은 신념이 부러지지 말았으면 한단 말이야. 그것참,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야. 내가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윤상원 부장이 아련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치지직, 윤 검사가 담배 하나를 꺼내 불을 붙였다.
“담배 끊지 않으셨습니까?”
“그냥 뭐, 내가 얼마나 오래 산다고 이 좋은 걸 끊나?”
흐흡, 윤 부장이 깊게 연기를 빨아 넘겼다.
“김 검, 소신대로 해봐.”
후, 그가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네? 그게 무슨 소립니까?”
“구속영장 신청해. 내가 책임지고 법원에 보낼 테니까!”
“정말입니까?”
“그래. 그 대신, 그 대쪽 같은 신념 언제 부러지나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볼 거야. 그러니까 알아서 해.”
나를 응시하는 저 눈빛! 지금 그는 자신의 진심을 말하고 있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왜 맘이 바뀌신 겁니까? 부장님은 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나요?”
“글쎄…… 그게 못마땅해서였는지 질투였는지 아니면, 부끄러움이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암튼 자네가 알아서 생각해.”
“네에…….”
아무튼, 지금 상황에선 그에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장영은 검사실>.
나는 장 검의 방을 찾아가 지청장이 지시한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구속하지 말라고요? 선배님, 그게 말이 됩니까?”
장 검이 나보다 더 발끈하며 나섰다.
“장 검은 어떻게 생각해?”
나는 그녀의 의중을 확인하고 싶었다.
“뭘요? 선배님!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당연히 구속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생각하고말고가 어디 있어요?”
장 검이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던지며 눈을 크게 떴다. 역시, 장 검이었다.
“음…… 우리 의지대로 처리하면 위험할 텐데 괜찮겠어?”
“망치 총에도 이도식 칼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저예요. 그까짓 게 문제 돼서 잘리면 검사복 벗고 변호사 해서 돈이나 실컷 벌죠, 뭐.”
웬만한 남자보다 훨씬 씩씩한 장 검이었다.
“좋아! 장 검만 좋다면야 까짓것 밀어붙여 보자고. 자료는 충분하지?”
“백만 번, 천만 번도 더 구속할 수 있는 자료에요!”
장 검이 두툼한 기소장을 들어 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오늘따라 그녀의 보조개가 더욱더 화사했다.
<김정환 검사실>.
이길상 이 인간! 도대체, 어디까지 줄이 닿아 있는 건가?
하지만, 장 검과 나의 의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기소하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이길상, 이도식의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되고 말았다. 명명백백하게 100번도 구속할 수 있는 자료였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은 소용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불구속 수사를 진행해야 했다.
“선…… 선배님, 이게 지금 말이 되나요? 영장 기각이라뇨. 이길상 이대로 내보내면 모든 게 물거품이에요! 증거 인멸하고 온갖 인맥을 동원해서 빠져나갈 거라고요. 결국, 잔챙이 몇 명 구속하는 선에서 끝날 겁니다.”
장 검이 절망적인 표정으로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너무 실망하지 마. 장 검, 다시 한번 재청구해보자고.”
나는 억울해 눈까지 벌겋게 상기된 장 검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순천교도소>.
나는 옷가지를 챙겨 귀가하려던 이길상을 찾아갔다.
“이게 누구신가? 우리 김 검사님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는가?”
이길상이 팔을 펼쳐 반기는 흉내를 내며 너스레를 떨었다. 분명 나를 조롱하려는 의도였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당신을 구속할 자료는 차고 넘칩니다. 불구속이라도 수사는 계속될 것이고 언제든지 다시 구속할 수 있습니다. 이길상 씨!”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삼켜 넘겼다.
“그럼 그럼, 끝나려면 멀었지. 암, 멀었고말고. 이 정도로 내가 당한 수모가 씻길 리가 없지? 안 그래. 검사 양반?”
이길상이 날카롭게 나를 응시했다.
“…….”
“옛말에 얕은꾀가 전 꾀를 속이려 한다는데 지금의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안 그래 검사 양반? 그럼, 또 봄세.”
하하하, 이길상이 허리가 뒤로 젖혀질 정도로 크게 웃으며 문을 나섰다.
띠리리링.
그 순간, 윤 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부장님, 웬일입니까?”
“자네 오늘 특별한 약속 있나?”
“아뇨. 지금은 시간 괜찮습니다. 근데, 무슨 일이십니까?”
“나랑 같이 소주 한잔하지 않겠나? 내가 긴히 자네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말이야.”
“네? 할 얘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