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42화] 여우를 사냥하다 & 이 재판, 끝까지 간다 (1)
이도식이 차를 돌려 황급히 되돌아왔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어떻게 된 건가?
이도식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순간, 멈춰진 두 대의 봉고차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저…… 저건?
자신의 조직원을 태운 봉고차가 틀림없었다.
“팀장님, 지금 이도식이 건물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상황판을 주시하던 장 검이 고개를 돌렸다.
“오 형사님, 이도식이 지금, 도착했습니다. 그가 올라갈 거예요. 정신 바짝 차리십시오.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됩니다.”
나는 장 검에게 고개를 끄덕여 알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곤 즉시 오 형사에게 무전을 쳤다.
“네. 검사님! 이쪽은 이미 상황 끝입니다.”
수십 명의 조직원들이 검거된 채, 무릎을 꿇고 있었고 그 주변을 경찰 요원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이미 모든 상황은 끝나 있었다. 중앙에 김선출이 수갑을 찬 채, 침통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띠리리링.
그때, 이도식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김선출의 전화였다.
“야 이 새꺄? 왜 전화는 꺼놓고 지랄이야? 너 지금 거기 어디야?”
이도식이 전화를 받지 마자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네… 형님! 이쪽으로 올라오십시오. 이미 우리가 접수했습니다.”
오 형사가 김선출의 입에 전화기를 대주며 인상을 썼다.
“그래? 잘했… 근데, 네 목소리가 왜 그래?”
“아…… 아닙니다. 형님, 근데, 오늘 소풍은 비가 와서 안 될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아요.”
“어… 그래. 알았다 수고했어. 올라갈게.”
그 순간, 그의 말에서 무언가를 감지했는지 이도식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무슨 소풍? 그리고… 뭐? 지금 해가 쨍쨍한데 비가 와? 이 새끼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지금, 이…… 도식이한테 사인을 보낸 거야.
이런, 시X!
“야… 김형사 입구 봉쇄하고 박형사는 퇴로를 차단해!”
오 형사가 황급히 휴대전화 전원을 누르며 대기하고 있던 경찰들에게 무전을 보냈다.
부릉. 부릉.
황급히 차에 올라탄 이도식이 시동을 걸고 후진기어를 놓더니 액셀러레이터를 있는 힘껏 밟았다.
“팀장님, 지금 이도식이 도주합니다.”
여우 같은 놈, 우리 작전을 알아차렸구나!
“지금 확인하고 있습니다. 오 형사님! 입구 쪽하고 퇴로를 막아주세요. 빨리요! 서둘러주세요.”
“네. 검사님! 이미 지시해뒀습니다. 쥐새끼 같은 놈, 이번엔 절대 못 빠져나갈 겁니다.”
이놈아! 김 검사님 덕분에 그동안 켜켜이 묵혀둔 한을 오늘에야 푸는구나.
오 형사가 이를 바드득 갈았다.
.
오 형사의 신속한 조치로 건물 입구는 김 형사를 중심으로 한 경찰들로 완전히 차단되었고 반대쪽 퇴로도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삐뽀, 삐뽀.
4대의 경찰차가 입구를 완전히 막고 있었다.
끼이익!
쾅쾅!
“시X,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도식이 눈을 크게 뜨며 당혹함을 숨지기 못했다. 입구에 진을 치고 있는 병력을 확인한 그가 급브레이크를 밟고 주먹으로 핸들을 내리쳤다.
“이도식이! 이제 그만 차에서 내려 자수해라.”
김형사가 손 마이크를 꺼내 말했다.
내… 내가 김정환, 그 개새끼한테 당한 건가?
이도식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끼이익.
이도식이 황급히 기어를 후진에 놓고 핸들을 돌려 반대로 도주하려 했다.
삐뽀, 삐뽀.
하지만, 반대편 퇴로 역시, 박 형사와 오 형사가 지키고 있었다.
“야… 이도식! 어딜 가려고? 소풍을 왔으면 보물찾기도 좀 하고, 말뚝박기도 좀 하고 그래야지. 이렇게 그냥 가면 쓰나?”
오 형사가 차 문을 열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오 형사! 진… 짜 함정이었어!”
이도식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도식아, 얼른 내려라. 어울리는 차를 타! 이런 차가 너한테 가당키나 하냐? 네 전용차는 이거잖아. 안 그래?”
탕탕, 오 형사가 경찰차 보닛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
사태를 파악한 이도식이 양손으로 얼굴을 거칠게 문질렀다.
“야… 잘 들어! 길다. 이름 이도식, 폭행, 횡령, 그리고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4조…….”
오 형사가 이도식에게 다가가 영장을 펼쳐들어 읽기 시작했다.
띠리리링.
그 순간, 오 형사의 전화가 울렸다.
“야, 도식아 잠깐만, 전화 좀 받고!”
오 형사가 휴대전화를 들어 올리며 여유를 보였다.
“오 형사님, 이천 쪽도 상황 정리된 것 같습니다.”
“정말입니까. 검사님! 정말 잘 됐군요.”
오 형사가 전화를 끊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하아, 뭐가 이렇게 많아? 길다. 힘들어서 못 읽겠고 아무튼, 여기다 살인교사까지 추가야 새꺄! 연행해!”
오 형사가 영장을 둘둘 말더니 턱짓으로 이 도식을 가리키며 박 형사에게 지시했다.
“오 형사, 이거 다 김… 김정환 짓이냐?”
“글쎄….”
오 형사가 딴청을 피우며 목덜미를 긁적거렸다.
“너희들 자신 있어? 이거 입증하지 못할 텐데….”
“별 거지 같은 소릴 다 듣겠네. 이거 법원서 정식으로 발부받은 영장이거든? 너나 잘하세요. 괜한 오지랖 피우지 마시고요. 쥐새끼가 고양이 생각해주긴. 쯧쯧쯧.”
오 형사가 둘둘 만 영장으로 이도식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특검 상황실>.
“됐어요. 선배님 아니 팀장님! 드디어 이도식을 검거했습니다.”
장 검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와와!
상황실에 모인 모든 요원들이 손을 위로 올리며 환호했다.
“그래. 장 검 수고 많았어.”
툭툭, 나는 장 검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검사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진짜, 검사님 말대로 이도식이 단계별로 착착 올가미에 걸리듯이 걸려드네요. 진짜 대박!”
공 수사관이 혀를 내둘렀다.
“수사관님도 수고 많으셨어요.”
“저야… 뭘요.”
헤헤, 공 수사관이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머쓱해했다.
휴우, 일단, 한고비는 넘긴 건가?
나는 지금의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윤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장님, 저 김정환입니다.”
“그래. 김 검사! 작전은 어떻게 됐어?”
“지금 막, 이도식 검거했습니다.”
“그래? 음… 수고 많았네.”
“자세한 보고는 지청에 들어가 드리겠습니다.”
“그래.”
틱,
전화를 끊은 윤 부장이 담배를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입에 물며 불을 붙였다.
담배 끊기가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김정환, 이 친구… 참!
허허허, 윤 부장이 연기를 내뿜으며 허탈한 듯 쓴웃음을 내뱉었다.
.
“검사님, 이길상이 시내 XX 사우나에 있다는 정보입니다.”
이길상의 행적을 추적한 우리 측 정보원으로부터 첩보가 입수됐다.
이도식을 검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직 우리에겐 늙은 여우 이길상이 남아있었다. 아직까진 절반의 성공이었다. 나는 내친김에 이길상까지 검거했어야 했다.
인근 사우나에 이길상이 있다는 정보를 확인한 나는 오 형사와 함께 2개 조로 나눠 이길상 검거에 나섰다.
“검사님, 위험할 수 있습니다. 검사님은 밖에서 대기하시죠.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오 형사가 사우나 안으로 들어가려던 나를 극구 만류했다.
“아닙니다. 이길상 정도의 거물급이면 검사가 직접 나서는 성의는 보여줘야죠. 오 형사님은 만일에 사태에 대비해 이쪽에서 대기해주세요.”
“그럼, 이거라도 가지고 들어가십시오.”
오 형사가 자신의 권총을 꺼내 내밀었다.
“아니요, 저 이런 거 사용할 줄도 모릅니다. 그냥 들어가겠습니다.”
나는 손을 흔들며 사양했다.
“그래도 가지고 들어가시는 게…….”
오 형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습니다. 아무튼,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30분 내로 나오시지 않으면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네. 그전에 이길상 데리고 나오겠습니다.”
“박 형사! 검사님 잘 모셔! 이길상이 검사님 털끝이라도 건드리면 곤죽을 만들어도 괜찮아. 내가 책임질게. 만약에 검사님이 조금이라도 다치시면 그땐, 네가 곤죽이 되니까 알아서 해!”
“네!”
박 형사가 큰 소리로 답했다.
“오 형사님, 진짜 왜 그러십니까?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나는 오 형사의 팔을 잡아당겼다.
“아닙니다. 제 평생 형사 생활에 검사님 같은 분은 첨입니다. 존경합니다. 검사님!”
오 형사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아…… 정말 민망하게 왜 이러세요? 박 형사님 얼른 들어갑시다.”
나는 붉어진 얼굴로 연신 손사래를 쳤다.
“네, 검사님!”
잠시 후, 박 형사와 나는 건물 2층 사우나 안으로 올라갔지만, 일반 손님은 전혀 없었고 가끔 물 떨어지는 소리만 들릴 뿐,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고요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탈의실을 지나 사우나 입구로 접어들 무렵, 탕 안에서 이길상의 목소리가 천정에 울려 윙윙거렸다.
이길상이 안에 있나 보군!
나는 박 형사와 함께 사우나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예상대로 이길상은 사우나 탕 안에 있었고 두 명의 비곗덩어리 둘이 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비켜!”
“…….”
박 형사가 두 명의 조직원을 몸으로 밀치자 그들이 힘으로 버티며 물러서지 않았다.
“너희들, 뒈지고 싶냐? 안 비켜!”
박 형사가 눈을 부라렸다.
“…….”
박 형사가 목소리를 높여 윽박질렀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덜컹!
“뭔 일인데, 이렇게 소란스러워?”
이길상이 사우나 문을 열었다. 160cm도 되지 않을 것 같은 키에 깡마른 몸매, 온몸에 셀 수 없는 칼자국이 옅은 불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그가 야광처럼 빛이 나는 안광을 내뿜으며 나지막이 읊조리듯 말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엄청난 포스였다.
“순천지청 검사, 김정환입니다.”
“검사? 검사님이 이곳엔 웬일이신가? 사우나 하시려는가?”
이길상이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당신을 살인교사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에 의거 체포합니다. 여기 영장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영장을 내밀었다.
“뭐야? 지금?”
그 순간, 두 명의 비곗덩어리가 발끈하며 몸을 움찔거렸다.
“너희들은 나가 있어!”
“그래도….”
조직원들이 머뭇거렸다.
“죽고 싶어? 어디 검사님한테 눈을 희번덕거려? 당장 나가!”
이길상이 눈을 치켜뜨며 대로 했다.
“넵. 회장님.”
그의 카랑카랑한 한 마디에 기가 죽은 조직원들이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성함이 뭐라고 했지요?”
“김정환 검사입니다.”
“아… 그런가요? 이보쇼. 검사 양반, 조금만 더 기다려 주면 안 되겠소? 나 아직 볼일이 안 끝났는데….”
이길상이 사우나 안에 있는 모래시계를 가리켰다.
이런 상황에서도 저토록 태연할 수 있는 건가? 도대체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와는 건가?
“네. 좋습니다. 하지만, 오래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고맙소.”
“제가 여기 있을 테니 박 형사님도 밖에서 대기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허허허, 화통한 사람이야.”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사우나 안으로 들어간 이길상이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아이고,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검사 양반! 몸뚱이가 예전만 같지 않아서 몸이 쉬 풀리지 않는구먼.”
이길상이 수건으로 흥건히 젖은 몸을 닦으며 사우나 밖으로 나왔다.
“이제, 가시죠.”
“땀범벅으로 해 가지고 갈 순 없잖소? 샤워할 시간은 있겠지?”
“네. 그러시죠.”
“우리 검사님이 품이 제법 크시고만. 하아, 경찰서라… 이게 몇 년 만이야? 감개가 무량하구먼.”
쏴아, 그가 나신을 드러내며 샤워기 버튼을 눌렀다.
그 이후, 이길상과 그의 조직원은 별다른 저항이 없었고 그도 순순히 따라나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크로마이트 작전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킹 메이킹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두 번째, 미션도 훌륭히 성공하셨습니다.]
[포인트 10 지급, 합계 : 30]
[누적된 포인트는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사용 가능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끝이 난 건가? 하지만, 이 끝 모를 불안감은 뭐지?
아무튼, 킹 메이킹 시스템도 미션 달성을 축하해 주었다.
며칠 후,
<순천지청, 김정환 검사실>.
결국, 이길상과 이도식은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게 되었다. 이번 그의 구속은 순천 및 전라도 일대에서는 엄청난 이슈였고 세간의 이목이 검찰에 쏠려 있었다. 나와 장 검은 그들을 구속 수사하기 위해 모든 자료를 취합하느라 분주했다.
“이번엔 철저하게 준비해서 반드시 이길상과 이도식을 구속해야 해.”
“네. 선배님. 이 정도 자료면 충분히 영장을 받아낼 수 있을 거예요.”
장 검이 두툼한 기소장을 넘겨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 검사님! 큰일 났습니다.”
그 순간, 공 수사관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뭡니까? 왜 그러세요?”
“검사님, 지금 로비로 좀 나와보시죠. 빨리요!”
공수 사관이 다급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뭔데 그래요?”
장 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헉, 이…… 이게 다 뭐야?”
장 검과 함께 지청 로비로 달려간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김정환 검사의 대검 입성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지청 로비에 수많은 화환이 널려져 있었다. 각각의 화환에는 길상파 조직원들의 이름이 박혀있었다.
“선배님! 이게 다 뭐죠?”
놀란 건 장 검도 마찬가지였다.
“공 수사관님 이게 다 뭡니까?”
“글쎄요. 아침에 순천 경찰서에 다녀왔더니 이렇게 지천으로 널려있네요?”
공 수사관이 손톱으로 볼을 긁어내렸다.
길상파 짓이 틀림없어! 지금 수사를 멈추거나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위해를 가하겠다는 무언의 경고!
“저거 어떡하죠?”
“일단, 전부 치워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푸르르르, 공 수사관이 입술을 떨며 소리를 냈다.
“선배님, 혹시?”
“장 검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게 맞을 거야. 길상파 짓이 틀림없어.”
띠리리링.
그때, 지청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김 검사, 지금 내 방으로 당장 와!”
“지청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오라면 오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긴히 할 말이 있으니까 올라와.”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