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41화] 强 對 强, 길상파와의 전면전 (6)
<순천시 외곽, XX 빌딩>.
결국, 이도식과 조상현의 만남이 성사됐고 우리는 그를 맞을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 본격적인 작전이 시작된 셈이었다.
“김치수 씨, 제 말 잘 들리십니까?”
나는 리시버의 성능을 테스트했다.
“네. 검사님, 잘 들립니다.”
“절대로 먼저 나서시면 안 됩니다. 침착하게 대응하셔야 합니다.”
“네, 검사님, 걱정하지 마세요.”
김치수는 한때, 길상파의 중간 보스로 활동하다 권력 싸움의 희생양으로 쫓겨났으며 이도식과는 깊은 악연이 있는 인물이었다. 특본이 발족하면서 간신히 설득해 우리 팀에 합류한 사람이었다. 그 외, 박상필, 심한철 등 천수파 출신으로 길상파와 악연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우리는 가상의 신(新) 천수파 수뇌부를 조직했고 외부에서 조달한 10여 명의 사복경찰을 조직원을 구성해 곳곳에 배치했다. 또한, 만일에 사태에 대비해 건물 맞은편엔 저격수를 배치치, 건물 외곽에 추가 병력까지 확보해두었다.
“김 형사,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쓸데없이 먼저 건드리면 안 돼!”
오 형사가 리시버를 통해 김 형사에게 당부했다.
“네. 알겠습니다.”
어느덧, 건물 주변을 중심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특본 상황실>.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 입구에 검은색 세단이 멈춰 섰고 천천히 문이 열렸다. 드디어 이도식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배님, 지금 막, 이도식이 도착했습니다.”
모니터를 지켜보던 장 검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
“그래? 조직원들과 같이 왔나?”
“아뇨. 화면에는 김선출만 보입니다.”
“단둘이?”
“네. 현재로선 그렇습니다.”
“7번, 8번 카메라 확인해 봐주세요.”
7번 카메라는 건물 앞 사거리, 8번은 건물 뒤편 편의점 주변에 설치된 카메라였다.
“별다른 이상 징후는 보이지 않습니다.”
모니터를 지켜보던 분석요원이 말했다.
“오 형사님 그쪽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나는 건물 맞은편 옥상에 있는 오 형사를 호출했다.
“아직 특별한 건 없습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이 도식과 김선출 두 사람뿐인 것 같습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나는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아무튼, 다들 긴장의 끈을 놓으시면 안 됩니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요.”
“네. 검사님!”
“한 검사, 이도식이 움직였어. 그쪽 상황은 좀 어때?”
정훈은 경기도 이천에 박천수가 있는 요양원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직원, 청소부, 의사 등으로 변장한 우리 쪽 요원들이 박천수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나는 정훈에게 전화를 걸어 박천수 쪽의 상황을 확인해야 했다.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까 절대로 박천수씨 주변을 벗어나면 안 돼!”
“네. 선배님!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습니다.”
박천수 쪽도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없어 보였다.
* * *
<건물 앞, 입구>.
“나 혼자 들어갈 거니까 넌 대기하고 있어.”
“형님,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건 걱정 말고 전화기나 잘 챙겨놔.”
“네. 형님!”
이도식이 매의 눈으로 주변을 살펴보더니 천천히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그가 계단을 통해 만나기로 한 장소로 올라갔다. 아무래도 엘리베이터는 위험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생각대로 치밀한 인간이었다.
<조상현 사무실>.
똑똑똑.
이도식이 문을 열을 두드리자 김치수가 문을 열어주었다.
“햐, 이게 누구야. 치수? 김치수? 너 내가 아는 김치수가 맞냐?”
이도식이 김치수를 보더니 어이없다는 듯이 탄식을 터뜨렸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손이나 올려.”
“어… 그래. 올리라면 올려야지. 그나저나 어디 가서 밥은 빌어먹고 사나 걱정했는데 여기 붙어먹고 있었구나?”
입구에 두 놈, 그리고 옆 사무실에 네 놈, 그리고 이곳에 두 놈… 두세 명 잠복하고 있다고 해도 그래 봐야 채 20명은 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우리 쪽 애들로 충분해. 길게 갈 것도 없다. 오늘 끝장을 보자.
이도식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주변을 날카롭게 살폈다.
이도식의 몸을 수색한 김치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상현에게 안전하다는 사인을 보냈다.
“오랜만이구나. 짱돌! 앉아라. 이놈, 출세했구나. 고급 차도 타고 다니고. 검정 세단이 멋지더군.”
짱돌은 한때, 이도식의 말단 조직원 시절 별명이었다. 조상현이 초반부터 기선을 잡으려는 듯, 그의 별명을 부르며 하대했다.
“짱돌이라… 뭐지, 이 야릇한 기분은?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말인데… 아아, 맞다. 달건이 시절 내 별명이었지. 아무튼, 그걸 다 기억해주시고 영광입니다. 형님! 아… 그리고 차야 뭐. 얼마 안 합니다. 나이를 먹으니까 예전만 못하고 그냥 걷기 힘들어 하나 샀어요.”
털썩, 이도식이 표정을 바꿔 손바닥으로 이마를 몇 번 두드리더니 소파에 몸을 내던졌다.
“말하는 본새가 건방진 게 많이 컸구나. 짱돌!”
조상현이 의수를 이용해 담배 한 개를 들어 올려 입에 물었다.
“내가 어릴 적부터 키는 좀 컸어요. 그나저나, 그거 이제 몸에 잘 맞나 봐요? 능숙하시네?”
이도식이 턱짓으로 조상현의 의수를 가리켰다.
“네놈이 준 선물이라 내가 애지중지하고 있지. 그건 그렇고 그동안 주인 땅에서 쌍놈이 소작을 부쳐 먹으면서 배부르고 등 따시게 살았으면 이젠 돌려줘야지! 그게 머슴이 주인에게 지켜야 할 도리 아닌가?”
“머슴? 아… 길상 유통? 그거 말하는 겁니까? 난, 또 뭐라고… 그것 때문에 이렇게 먼 길을 왕림하셨습니까? 까짓것 뭐 가져가세요. 그거 뭐 구멍가게가 얼마나 나간다고.”
이도식이 양복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뭐? 너, 지금 무슨 수작이야?”
“왜요? 우리 길상 유통이 탐이 나서 이러는 거 아니에요? 똥 냄새 맡은 개새끼마냥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셨잖아요. 그래서 불우이웃 돕는다는 심정으로 주겠다는데 왜들 이래. 모양 빠지게?”
“뭐… 야 새꺄?”
김치수가 몸을 움찔거렸다.
“치수야, 그냥 좀, 얌전히 있지 않을래. 어디다 이빨을 드러내? 그 이빨 다 뽑아줄까? 나 이도식이야. 이도식!”
이도식이 살짝 고개를 돌려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섬찟하기까지 했다.
“치수! 가만있어.”
조상현이 의수를 들어 올렸다.
“그래서, 지금 길상 유통을 대가 없이 순순히 우리한테 넘기겠다는 소린가?”
“그게 형님이 원하시던 거 아니에요? 아… 아, 맞다. 그러면 그건 또 너무 상도에 어긋나나? 하긴, 천하에 조상현 씨가 공짜를 좋아할 리는 없고, 어떡할까요? 어떻게, 그 대가로 선배님 모가지라도 내놓으실라우?”
이도식이 고개를 몇 번 돌려보더니 조상현을 향해 눈을 치켜떴다.
“하하하, 이놈 봐라. 마냥, 예전과 다른 이 시절의 짱돌인지 알았더니 간땡이도 많이 부었구나.”
조상현이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던졌다. 듬성듬성 난 머리카락 사이로 검붉게 변해버린 흉터가 드러났다.
“아… 씨X, 이 양반이 자꾸 짱돌, 짱돌 그러시네? 자꾸 그러시면 듣는 짱돌 졸라 기분이 나빠요. 씨X, 선배님!”
이도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앉아!”
김치수가 이도식을 향해 소리쳤다.
“네가 앉으라면 앉아야 하는 레벨이냐? 내가?”
이도식이 눈썹을 치켜떴다.
“이 새끼가!”
박상필이 발끈하며 나섰다.
“아무튼, 조상현 선배님, 일주일 내에 이곳에서 뜨십시오. 이게 한때, 존경했던 대선배를 향한 저의 마지막 예우입니다.”
이도식이 조상현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래? 내가 그렇게 못하겠다면?”
조상현도 지지 않고 그를 응시했다.
“그래요? 뭐, 그럼 할 수 없고요. 아무튼, 전 이미 사망선고는 해드렸습니다! 여생을 정리하며 편안하게 사시려면 내 말을 듣던가… 내가 노잣돈은 넉넉히 챙겨줄 테니까요. 아니면….”
“아니면?”
조상현이 되물었다.
“그냥, 여기서 뒈지시던가요. 조상현 이 시X새꺄!”
이도식은 지금의 상황에선 절대적으로 자신이 유리한 입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악을 썼다.
“이런, 개새끼가….”
“김치수 씨, 침착하세요. 지금 움직이면 안 됩니다.”
김치수가 흥분한 것을 확인한 나는 그에게 급히 무전을 보냈다.
“아, 김치수! 경거망동하지 마. 좋아, 일단 자네 뜻은 충분히 알았으니 오늘은 일단 돌아가 봐. 나중에 다시 연락할 테니.”
조상현이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연락을 하든 말든, 그건 당신 자유고, 그냥 일주일 안에 이곳에서 꺼져 주시면 됩니다.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갑니다.”
이도식이 조상현을 향해 고개를 까딱거리며 기분 나쁜 미소를 흘렸다.
“아, 선배님! 글고, 쟤네들 눈에 힘 좀 빼라고 하세요. 저러다가 눈알 부러지겠어요.”
쯧쯧쯧, 김도식이 손가락으로 김치수를 가리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문을 나선 이도식이 사방을 경계하며 계단으로 내려가 천천히 차 문을 열었다.
틱.
치지직.
이도식이 운전석에 앉아 글로브박스를 열고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선출아, 아무래도 오늘 소풍 가야 쓰것다.”
그가 전화기를 꺼내 들어 김선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알겠습니다. 형님, 지금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후우, 이도식이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아 넘기더니 차 유리를 열고 연기를 뿜어냈다.
“검사님! 지금 이도식이 차량에 올라탔습니다. 어디론가 전화하는 것 같긴 한데 특별한 징후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 형사가 나에게 무전을 보내왔다.
흠… 불안하군. 오늘 분명 거사를 치를 텐데… 가만히 있을 이도식이 아니다. 오늘 반드시 움직일 거야.
어느새, 입고 있던 와이셔츠가 흠뻑 젖어있었다.
<잠시 후, 시내 도로>.
끼이익.
이도식이 하얗게 핏기가 사라진 얼굴을 하며 대로변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출세했구나. 고급차도 타고 다니고. 검정 세단이 멋지더군.”
조상현이 했던 말을 떠올린 이도식은 심장이 멋은 듯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았다.
차! 내… 가 검정 세단을 타고 온 걸 어떻게 알았지? 분명, 조상현이 있던 사무실에서는 입구가 보이지 않았을 텐데?
기어를 잡고 있던 이도식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시X, 함정이다! 선출이… 선출이를 막아야 한다.
이도식이 황급히 전화기를 들어 김선출에게 전화를 했다.
뚜. 뚜. 뚜. 뚜.
“지금은 고객님의 전화기가…….”
전화를 걸었지만 김선출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뭐야, 이 병신 새끼! 이건 함정이야. 반드시 막아야 한다.
툭툭,
이도식이 기어를 후진에 놓더니 차를 돌려 황급히 차머리를 돌렸다.
빵빵빵!
“뭐야? 이 미친 새꺄?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여기서 유턴을 하면 어떡해!”
이도식이 차를 돌리는 바람에 화들짝 놀란 차량에서 수많은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