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40화] 强 對 强, 길상파와의 전면전 (5)
서울에서 특본으로 돌아온 나는 본격적인 크로마이트 작전을 시작해야 했다.
<특본 긴급회의>.
나는 장 검, 정훈, 공 수사관 그리고 오 형사에게 박천수를 만나 알게 된 놀라운 진실을 털어놓았다.
“말도 안 돼!”
모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박… 박천수가 치매가 아니라고요?”
특히, 오 형사는 더욱더 경악했다.
“네… 이길상으로부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지금까지 연기했던 모양입니다.”
“와, 권불십년이라더니 천하의 박천수가 어이가 없군요.”
장 검도 무척이나 놀란 모습이었다.
잠시 후,
“그럼 지금부터 작전명, 크로마이트에 관한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회의실 중앙에 스크린이 내려왔고 나는 장시간 동안 특본 요원들에게 박천수의 활용방안에 관하여 브리핑했다.
“일단, 박천수 쪽은 한 검사가 철저하게 마킹을 해줘. 긴장의 끈을 놔서는 안 돼. 이번에는 반드시 이도식이 분명 움직일 거야.”
“이도식이오? 여태까지 그가 전면에 나선 적은 한 번도 없잖아요?”
정훈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 이번엔 분명 그가 직접 움직일 거야. 지금까진 몸을 사리면서 실속을 다졌다면 이번엔 힘을 보여줘야 할 타이밍이거든. 사실, 주먹계 출신 임원들은 얌전하게 펜대만 굴리는 이도식이 못마땅할 거야. 최근, 이도식의 입지가 급격히 좁아진 것만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어. 조폭의 생리는 역시 주먹이야. 힘으로 윽박지르지 않으면 튕겨 나가기 마련이지. 이번 기회에 자신이 주먹으로서 건재하다는 것을 과시하려 할 거야.”
“그렇군요.”
“한 검사가 우리 쪽 병력을 데리고 이천에 올라가서 박천수를 철저하게 보호해야 해. 반드시 이도식이 살수를 보낼 거야. 박천수를 그냥 둘리가 없지.”
“네. 팀장님.”
정훈이 입을 굳게 다물며 제법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오 형사님! 이천 경찰서 공조는 어떻게 됐습니까?”
“네. 말씀하신 데로 조치해뒀습니다.”
“그리고, 오 형사님과 저는 이쪽에서 본격적인 작전을 진행토록 할 겁니다.”
“네. 그런데 이도식과 맞상대를 하려면 그만한 거물급이 나서줘야 할 텐데 적당한 사람이 있을까요?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바지로 내세울 사람이 없는데 말이죠.”
오 형사가 눈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
“조상현! 그 정도 레벨이면 이도식의 카운터 파트너로 적당한 인물이 아닐까요?”
오 형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조상현이오? 설마, 과거 천수파 2인자 조상현은 아니겠죠?”
그가 놀란 눈을 껌뻑거렸다.
“네. 맞습니다. 그 조상현!”
“네? 믿을 수가 없군요. 그…… 가 살아 있었나요? 제가 알기론 길상파에게 제거된 거로 아는데?”
“네. 다들 그렇게 알고 있죠. 자세한 설명은 지금 드릴 순 없고 제가 직접 만나고 왔으니 확실히 조상현이 맞습니다. 이번 작전에 우리를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천수파 2인자라면? 선배님, 그 정도면 이도식과 한번 해볼 만하겠는데요?”
장 검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관심을 보였다.
“네. 장 검사님 말대로 충분히 해볼 만하죠. 조상현이라면 과거에 이도식이 똘마니로 있을 때 쳐다보지도 못한 존재였으니 그가 나타나면 바짝 긴장할 게 틀림없습니다.”
“물론, 그도 그렇지만, 이참에 그를 꺾어 조직 내에서 자신에 대한 불신을 잠식시키고 후계자 자리를 공고히 하려 하겠죠.”
장 검이 오 형사의 말을 받아 부연 설명했다.
“이도식 입장에선 길상 유통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세를 과시할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에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죠. 위기 라기보단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할 겁니다. 반드시 우리 쪽 미끼를 덥석 물 거예요.”
나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골고루 시선을 나누어주었다.
“그나저나, 김 검사님, 진짜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조폭보다 더 조폭의 생리를 잘 아십니까? 진짜 존경합니다. 혹시, 예전에 조폭이셨던 건 아니죠?”
오 형사가 입을 벌리며 눈을 껌벅거렸다.
“조폭은 무슨, 아니에요. 뭐… 그냥 공부 좀 했습니다.”
“그런 것도 공부합니까? 역시, 머리 좋으신 분은 뭐든 다 잘하시는군요. 난 공부라면 질색이라….”
오 형사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검사님, 그럼 전… 전 뭐 합니까?”
한동안 잠잠하던 공 수사관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어디 보자. 수사관님은 딱히 할 일이 별로 없는데….”
나는 서류를 들척이면 딴청을 피웠다.
“네? 그게 무슨 소립니까?”
공 수사관이 섭섭한 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수사관님은 장 검과 함께 우리 쪽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주세요. 작전이 진행되면 길상 유통 압수수색도 들어가야 하고 법적으로 대응도 해야 하니까요. 이쪽에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수사관님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나는 공 수사관을 향해 엄지를 내밀며 장 검의 얼굴을 바라봤다. 장 검이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런가요? 그럼 그럼, 그렇죠! 암요. 우리 검사님이 저 같은 인재를 그냥 썩일 리가 없죠. 캬, 컨트롤 타워! 이거 무진장 중요한 건데, 내가 잘 해내려나?”
공 수사관의 얼굴이 급격히 반색하며 환해졌다.
역시, 단순한 사람이었다.
“자자.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만만치 않은 상대니 정신들 바짝 차립시다. 아마, 지금쯤 죽은 제갈량이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을 거예요!”
짝짝짝, 나는 어느 때보다 손바닥을 강하게 마주치며 독려했다.
“네, 선배님! 이거 벌써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는데요?”
정훈이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만 아니라 여기 모인 모든 사람의 눈이 활활 타오르는 듯했다.
* * *
<길상파, 이길상 회장실>.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한 이도식이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이길상 회장을 급히 찾았다.
“이상무, 어서 와.”
“네. 회장님.”
이도식이 허리를 숙여 정중히 인사했다.
“회장님! 지금,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합니다.”
이도식이 앉자마자 상기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허허허, 사람도! 이 사람아, 난리는 무슨, 뭔 하늘이라도 무너졌는가, 뭐가 그리 급해? 우선 우리 숨이나 좀 돌리세. 김 비서야, 여기 차 좀 내 온나!”
다급해 보이는 이도식에 반해 이길상의 표정은 여유로워 보였다.
“자자…… 드세나. 이 차가 중국에서 직접 가져온 건데 향이 참 좋아.”
“네.”
이길상이 찻잔을 들어 올려 코를 갖다 대며 향을 음미했다.
“그래, 무슨 일인데 우리 이상무 얼굴에 이렇게 근심이 가득한가? 말해보시게.”
한참 동안, 말없이 차를 음미하던 이길상이 드디어 입술을 뗐다.
“네. 지금 과거 천수파 잔당이 세를 규합해 움직이기 시작한 듯합니다. 우리 쪽 유통망을 노린 것 같아요. 그 중심에 조상현이 있다는 정보입니다. 조상현이라면……?”
“조상현이라? 그것참,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이름이구먼. 그 친군 참 명도 길어. 여태 살아 있었던 겐가?”
허허허, 이길상이 고개를 들어 턱수염을 매만졌다.
“회장님, 지금 그렇게 맘 놓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지금 광주 쪽은 급속히 이탈하는 업소들이 늘고 있어요. 순천, 여수 쪽 분위기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대책이 시급합니다.”
이도식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흐음, 가지고 싶다면 주면 되지 뭔 걱정인가? 까짓것 그게 뭐 얼마나 중한 거라고.”
드르륵, 이길상이 몇 번의 헛기침과 함께 서랍에서 편지하나를 꺼내 이도식에게 넘겨주었다. 그가 깊숙이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이게 뭡니까?”
“읽어보시게.”
[이길상 보아라! 그동안 남의 땅에 20년 동안 농사를 지었으면 이제 주인한테 돌려주는 것이 도리 아니겠나. 이제 주인이 나타났으니 조용히 물러나길 바람세. 더 피를 보고 싶진 않구먼. 칼치야! -박천수-]
이 도식이 편지지를 펼치자 박천수의 자필 편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편지를 읽어내려가는 이도식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칼치! 이건….
칼치는 이길상이 천수파 말단 조직원일 당시 부르던 별명이었다. 이길상이 조직을 접수한 이후, 그 어떤 이도 감히 그 별명을 입에 담은 사람은 없었다.
“박… 천… 수! 이 분은 치매에 걸렸잖습니까?”
마저 편지를 읽고 있던 이도식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어쩌겠나? 이 분이 내놓으라면 내놔야지. 일찌감치 저승으로 편하게 보내드렸어야 했는데, 다, 내 불찰이야. 이 양반이 노망이 들어도 단단히 든 모양이야. 똥, 오줌을 구분 못 하니 말이야.”
껄껄껄, 이길상이 목젖이 보일 정도로 크게 웃었다.
“…….”
이 도식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내가 부덕해서 그래.”
힐끗 이도식을 쳐다보더니 이길상이 어이없다는 듯이 주먹을 말아 쥐며 가볍게 이마를 두드렸다.
“회장님, 진짜 그대로 넘기실 생각입니까?”
“흠…… 그럼 어쩌겠나? 이 바닥에도 계보라는 게 있는데 나 같은 족보도 없는 늙은이가 무슨 힘이 있겠어? 달라면 줘야지.”
이길상이 이도식의 눈치를 보며 혀를 찼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길상 유통을 어떻게 키워놨는데…… 송구스럽지만, 이번만큼은 회장님의 뜻에 따를 수 없습니다.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이도식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에이, 그게 무슨 큰일 날 소린가? 앞으로 길상 그룹을 이끌어갈 사람 손에 피를 묻혀서야 쓰나? 안 돼! 안 될 말일세.”
이길상이 연신 손사래를 치며 만류했다.
“아닙니다. 조직 내에서도 저를 향해 불만을 지닌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번 기회에 제가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도식이 어금니를 악다물었다.
“흠…… 그래? 그렇게 생각하나?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제대로 달렸구먼. 자네가 조직을 이렇게 깊이 생각하는 줄은 미처 몰랐네. 그럼, 내가 이상무를 이번에 한번 믿어 봐도 될까?”
이길상이 식어버린 차를 훌쩍거리며 눈을 치켜떴다.
능구렁이 같은 영감!
“네.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제가 깔끔하게 처리해 놓겠습니다.”
“그래그래, 이번 참에 이상무가 앞으로 길상 그룹을 이끌어가는 데 부족함이 없다는 걸 주주들한테 보여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든든하구먼!”
껄껄껄, 이제야 이길상의 얼굴이 밝아지더니 덥석 이도식의 손을 잡았다.
“네. 믿어주십시오. 회장님!”
이도식이 고개를 숙이며 의지를 내보였다.
<이도식 사무실>.
“야, 김선출이! 이리 와봐.”
여우 같은 늙은이! 결국, 내 입에서 먼저 박천수를 치겠다는 소리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어. 좋아! 차라리 잘 됐다. 이번 기회에 내가 길상 그룹의 차기 주인임을 각인시켜 주겠어!
이도식이 거칠게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양복 상의를 책상 위에 내던졌다.
“네. 형님!”
“조상현한테 전화 넣어!”
“뭐… 라고 할까요?”
“일단, 만나자고 해.”
“전쟁입니까?”
김선출이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전쟁? 지금 장난해?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거야. 일단, 죽일 때 죽이더라도 사망선고는 해 줘야 할 거 아냐!”
“아……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쓸만한 애들 몇 놈 좀 수배해 봐.”
“어떤?”
김선출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뭐가 어떤이야? 무슨 말인지 몰라?”
이도식이 날카로운 시선을 김선출에게 보냈다.
“네? 아…… 네. 벌교 개백정들 말씀인가요?”
“…….”
이도식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형님!”
김선출이 폴더폰을 접듯 허리를 굽혔다.
* * *
<특본 상황실>.
“팀장님! 드디어 이도식 쪽에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현장에 나가 있던 오 형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후, 드디어 미끼를 문 건가?
“오 형사님! 준비는 철저하게 돼 있는 거죠?”
“물론입니다.”
그 순간,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