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39화] 强 對 强, 길상파와의 전면전 (4)
[킹 메이킹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여지없이 묵직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첫 번째, 미션을 달성하셨기에 포인트 10을 적립합니다.]
음… 첫 번째 미션 성공이라. 이렇게 되면 길상파의 허를 찌른 것은 나름 성공적이었다는 얘기가 되는 건가?
[두 번째 미션, 겉을 보지 말고 속을 읽어라.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내면을 읽으면 답이 보일 것이다. 달성 시, 포인트 10 적립.]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킹 메이킹 시스템이 두 번째 미션을 부과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후… 점점 어려워지는군!
나는 고개를 의자 뒤로 젖혀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아무튼, 나는 박천수를 만나기 위해 상경해야 했다.
<김정환 팀장실>.
“장 검, 나 서울에 올라가 봐야 할 것 같으니까, 여기는 당분간 장 검이 맡아줘.”
나는 당분간 특본을 맡기기 위해 장 검을 호출했다.
“드디어, 박천수를 만나시려고요?”
“일단, 그래야 하지 않겠어?”
“그럼,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구상하신 건 아니시군요?”
“음…… 그래. 박천수를 최대한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없어.”
나는 코끝을 매만졌다.
“박천수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데, 뾰족한 수가 있을까요?”
“글쎄. 일단 그를 만나보면 알겠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박천수라는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이길상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라는 거야.”
“맞아요. 선배님 말대로 죽은 제갈량이 사마의를 쫓아냈듯이요. 이미 은퇴한 박천수가 이길상을 잡을 수도 있는 거겠죠. 전 선배님이 반드시 답을 가져오시리라 믿어요. 파이팅!”
장 검이 가볍게 주먹을 쥐며 빙그레 웃었다. 항상 꽃처럼 피어나는 그녀의 보조개는 청량감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래, 다녀올게!”
툭툭, 나도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화답했다.
* * *
<경기도 이천시, XX 노인 요양원>.
박천수가 요양하고 있다는 서울의 요양원을 찾아갔지만, 박천수는 이미 퇴원하고 다른 요양원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결국, 나는 수소문 끝에 그가 경기도 이천시에 있는 모 요양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치매 환자를 위한 전문 요양원이었다.
박천수가 치매에 걸린 건 맞나 보군.
“안녕하세요? 순천지청 김정환 검사입니다. 박천수라는 환자를 찾아왔는데요?”
나는 사무실 직원에게 신분증을 내밀었다.
“박천수 씨라…… 아! 조폭 할아버지! 그나저나 검사님이 그 할아버지를 무슨 일로 찾으시는지?”
직원이 신분증을 돌려주며 말했다.
“조폭 할아버지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아… 그게, 자기가 왕년에 한 가닥 하는 조폭 두목이었다고 하면서 다른 할아버지들을 부하 대하듯이 해서 그렇게 불러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심성이 착하신 분인데 무슨 일 때문입니까?”
직원이 볼펜을 책상에 두드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 치매에 걸린 건가?
“아… 별다른 건 아니고요. 개인적으로 볼 일이 있어서요. 조카인데 외삼촌을 못 뵌 지 오래돼서 병문안 차 왔습니다.”
나는 적당히 둘러댔다.
“아, 순천지청이라고 그러셨죠? 조폭 할아버지 고향도 순천이라던데, 와, 검사 조카도 있고 조폭 할아버지 대단하시네. 이쪽으로 오세요. 제가 안내해 드리죠.”
“네. 감사합니다.”
직원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요양원 앞마당이었다. 환자들 운동시간이었는지 간병인들과 가벼운 운동을 하고 있었다.
“어디 보자. 어디 계시지?”
직원이 마당을 둘러보며 박천수를 찾고 있었다.
“할아버지 약 드셔야죠!”
“싫어, 싫어. 나 약 안 먹을 거야!”
그 순간, 간호사와 숨바꼭질을 하듯 도망치는 한 남자! 치매 환자 치곤 언뜻언뜻 보이는 눈빛이 살아 있었다.
게다가, 군살 없는 팔과 다리! 계속 운동한 몸매였다. 그는 결코 일반적인 치매 환자와는 확연히 달랐다. 한눈에 봐도 그는 박천수가 틀림없었다.
어쩌면, 박천수는 치매 환자가 아닐 수도 있다. 치매 환자가 저렇게까지 몸을 단련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는 더욱더 유심히 박천수의 행동을 관찰했다.
헉, 이럴 수가!
간신히 도망치는 박천수를 붙잡은 간병인이 그에게 약을 내밀었고 박천수가 그 약을 받아먹는 시늉을 하더니 간병인이 한눈을 파는 사이에 약을 뱉어 버렸다.
그 순간, 그는 나와 눈이 마주쳤고 박천수가 나를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게다가, 산발한 머리에 음식물 찌꺼기로 지저분해진 다른 환자들의 외모와 달리 박천수는 단정한 외모와 옷차림이었다. 점점 의심의 깊이는 깊어져 갔다.
“할아버지, 조카분이 순천에서 찾아왔어요! 검사 조카도 두고 정말 대단하세요.”
때마침, 직원이 자세를 낮춰 박천수의 손을 잡아주며 나를 그에게 소개해주었다.
“어? 조카가 뭐야? 먹을 거, 맛있는 거 줘!”
박천수가 들키지 않으려는 듯 연기를 했지만 나는 순간 당황해 흔들리는 그의 눈망울을 놓치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가슴에 차고 있던 검찰 배지에 고정되었다.
지금, 박천수는 내가 검사가 맞는지 확인했어! 치매 환자로서 그게 가능한 것인가?
“알았어요. 알았어! 나중에 사줄 테니까 고정하세요. 그럼, 할아버지! 조카분과 좋은 시간 보내세요!”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이 버튼을 누르세요.”
직원이 내 손에 무선 알람 장치를 쥐어 쥐여주고는 발길을 돌렸다.
“외삼촌, 저 왔어요. 정환이에요.”
“검사? 그게 뭐야? 먹는 거야?”
어눌한 말투로 연기를 했지만, 그러면서도 슬그머니 테이블 위에 있는 나무젓가락을 들어 테이블 아래로 내리고는 두 동강을 내 날카롭게 만들었다. 치매 환자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능숙한 솜씨였다. 분명, 그는 나를 검사로 가장한 길상파 조직원으로 판단한 것이 틀림없었다. 박천수가 몸을 살짝 비틀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박천수는 치매에 걸린 것이 절대 아니다!
“외삼촌! 날씨가 무척이나 덥네요?”
나는 양복 상의를 벗어 의자에 걸쳐 놓고는 와이셔츠를 둘둘 말아 올렸다. 나는 그에게 맨손을 내보이며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시켜줘야 했다.
띠리리링.
때마침, 운 좋게도 공 수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일부러 박천수가 전화 내용을 들을 수 있도록 스피커를 켜두었다.
“검사님! 지금 어디세요?”
“음… 지금 경기도 이천이에요.”
“거긴 왜 가셨대?”
“볼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박….”
툭, 더 이상의 통화내용은 불필요했기에 나는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넌… 누구야!”
또렷한 발음이었다.
박천수가 손을 흔들어 가까이 오라는 신호를 하더니 내 귀에 대고 물었다. 내가 길상파 조직원이 아닌 것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그가 손에 쥐고 있던 나무젓가락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순천지청 김정환 검사입니다. 여쭈어볼 게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머리를 숙여 최대한 예의를 표했다.
“당신, 내가 치매 환자가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아낸 건가?”
박천수가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좀 전에 약을 버리시는 것과 제 검사 배지를 유심히 살펴보시는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음… 제법 눈썰미가 있는 친구군! 그나저나 어쩌나, 난 자네하고 할 얘기가 전혀 없는데? 그만 돌아가시게…….”
“야, 김가야. 나 목말 태워줘!”
박천수가 몸을 돌리더니 우스꽝스러운 제스처를 취하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길상을 잡고 싶습니다. 그건 어르신도 같은 생각 아닙니까?”
“이길상? 허허, 재밌는 친구군.”
박천수가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반드시, 이길상을 감옥에 보내고 싶습니다. 더불어 어르신의 원한도 풀어드리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어르신!”
“흠… 이쯤 되면 이미 내 뒷조사도 다 했나 보군. 후, 담배가 당기는군. 담배 있나?”
“아뇨. 피우지 않습니다.”
“그래? 음…… 좋아. 그럼 날 데리고 밖에 나가서 담배 한 갑 사줄 수 있겠나? 여긴 담배를 팔지 않아서 말이야.”
“네. 얼마든지요.”
<사무실>.
“저, 외삼촌을 모시고 나가서 맛있는 걸 좀 사드리려고 하는데 외출 신청을 좀 하려고요.”
나는 박천수가 시키는 대로 사무실에 외박 신청을 했다.
“좋습니다. 원래는 안 되는 건데 검사님이시니까 믿고 보내드리겠습니다. 내일 12시까지는 꼭 모시고 오셔야 합니다.”
“네.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후, 검사라는 타이틀만으로도 확인도 하지 않고 무사통과란 말인가? 검사는 그런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분명, 이 사회가 안고 있는 커다란 병폐였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나는 박천수를 밖으로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 * *
“자네 나한테 소주 한잔 사줄 수 있겠나?”
“네. 얼마든지 사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근처 선술집으로 자리를 옮겼고 시작된 대화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진심을 담은 나의 설득은 빛을 보기 시작했다.
“자네. 내가 왜 미친 척을 하고 살았는지 아나?”
“…….”
나는 말 없이 그의 잔에 술을 채웠다.
“내가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내 식솔들도 어떻게 됐을지 장담할 수 없었어. 이길상은 자네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잔인한 놈이야. 마음 같아서는 놈을 찢어 죽여도 시원찮지만, 수족들도 다 잘린 마당에 이 몸뚱이 가지고 뭘 하겠나?”
박천수가 답답한 듯 담배 한 모금을 빨아 허공에 연기를 흩뿌렸다.
“제가 선생님의 가족들을 반드시 지켜드리겠습니다.”
“흐음, 그래 좋아! 그럼 계획이라도 들어보자고 어떻게 늙은 여우를 사냥할지!”
박천수가 내 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나는 박천수에게 길상파를 소탕할 모든 계획을 설명했다.
“음… 그러니까 내가 이길상한테 길상 유통의 주류 유통권을 넘기라는 편지 한 통만 보내면 된다는 건가?”
“네. 그렇게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네만 그 정도로 해결될 수 있겠나?”
박천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어르신이 건재하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커다란 위협이자 압박이니까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나저나 그 편지 하나로 인해 어르신이 위험에 처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나는 박천수의 확답을 받아내야 했다.
“자네가 우리 가족을 책임진다고 했지 않았나? 난 살 만큼 살았어. 썩어가는 몸뚱이에 뭔 아쉬운 게 있겠나?”
한때, 전라도 전역을 호령했던 맹수의 당당함은 이미 사라진 초라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저희가 끝까지 어르신과 어르신의 가족분들을 지켜드리겠습니다.”
“허허, 말만 들어도 든든하구먼. 자 내 잔 한잔 받게.”
“네. 어르신!”
“캬, 오늘따라 술이 달구먼 달아! 그나저나 내가 연락처를 하나 줄 테니 이 친구에게 연락해보게. 아무튼, 도움이 될걸세.”
박천수가 메모지에 연락처를 적어 나에게 주었다.
조상현!
메모지엔 연락처와 함께 조상현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 사람이 누굽니까?”
“만나보면 알 걸세. 내가 보냈다고 하면 아마 자넬 도와줄 거야. 오늘따라 달이 참 밝구먼…….”
박천수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경기도 양평, XX 개 사육장>.
박천수가 소개해준 조상현의 정체는 이길상이 반란을 일으킬 당시, 끝까지 박천수를 보필하던 그의 심복이었다. 천수파가 이길상에게 수술 당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천수파를 이끌어올 박천수의 후계자였다. 그 역시 이길상에 대한 악연이 남달랐다.
“어서 오세요. 나, 조상현이올시다.”
이미 연락을 받았는지 조상현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맞았다.
“네. 김정환입니다.”
“앉으쇼.”
“네.”
낡은 소파에 앉아 모자를 벗는 조상현, 머리 한가운데 생긴 흉터, 칼이나 도끼 같은 날카로운 흉기에 공격을 당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흉터 주변으로 머리카락이 듬성듬성했다. 게다가, 의수까지…… 한눈에 봐도 길상파에 의해 고초를 겪은 듯 보였다.
나는 그에게 길상파를 와해시킬 계획에 관해서 설명했다.
“그러니까, 길상 유통에 맞설만한 가상의 경쟁업체를 만들자는 거 아닙니까? 그 업체의 바지사장이 필요한 거고. 그래서 나를 찾아온 것이 맞습니까, 검사님?”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꼭지가 돌아간 이길상이 우리를 치는 타이밍을 보자는 거고?”
“네. 제 계획은 그렇습니다.”
“그럼, 내가 적격이지. 이길상이나 이도식은 어설픈 놈이 건드릴 상대가 아니지. 나 정도는 나서줘야 그림이 그려지지 않겠어요? 검사 양반?”
생각보다 훨씬 호탕한 성격의 조상현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뭘요?”
조상현이 의수를 돌려 빼내며 말했다.
“위험하실 수 있습니다.”
“큰형님이 보내서 온 거 아닙니까? 그거면 된 거지. 무슨 말이 더 필요해? 아…… 그리고 나도 이길상한테 진 빚은 갚아야 하기도 해서 말이에요.”
조상현이 잘린 팔을 들어 올렸다.
“알겠습니다. 다만, 당부드리지만 모든 것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진행될 겁니다. 개인적인 원한이나 복수라면 지금이라도….”
“하하하, 누가 검사 양반 아니랄까 봐? 알았어요. 알았어. 뭐 해요?”
“네?”
“일어나세요. 가야지. 자… 그럼, 늙은 여우를 사냥해 보러 가볼까요?”
끄응, 조상현이 의수로 책상을 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나저나, 검사 양반, 이 작전 작전명이 뭐유?”
조상현이 몸을 돌려 말했다.
“크로마이트 작전입니다.”
크로마이트는 인천상륙작전의 작전명이었다.
“그게 뭔데?”
“그냥 광석 같은 겁니다.”
“광석이라…… 허허, 돌멩이란 말인가? 그거 좋구먼. 다윗도 돌멩이 하나로 골리앗을 쓰러뜨렸지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