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38화] 强 對 强, 길상파와의 전면전 (3)
나는 장 검과 오 형사에게 내가 구상한 작전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까 선배님 말씀은 길상파가 자신들의 선제공격이 먹혔다고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뒤통수를 치자는 거죠?”
장 검이 검지를 내밀며 말했다.
“그렇지. 지금 길상파는 자신들의 인해전술이 먹였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사실, 특본이 발족도 못 하고 지지부진해지고 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겠지. 이럴 때, 우리는 길상 유통을 노려야 해.”
“…….”
장 검과 오 형사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긴장했다.
“오 형사님이 말씀했듯이 길상 유통은 철옹성이야. 길상 그룹 내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사업체란 거지. 아마, 그들은 우리가 길상 유통을 타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를 거야.”
“그렇겠죠. 길상 유통만큼은 애지중지 키워왔으니까요.”
장 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순천, 여수, 광주까지 주요 유흥가에 경쟁자를 등장시켜야 해. 물론, 실체가 없는 업체일 테지만. 길상 유통보다 저렴한 가격에 주류를 공급하기 시작했다는 소문을 퍼뜨려야 해. 그러면 그 소문이 이길상, 이도식 귀에도 들어가겠지.”
“그렇군요. 전라남도 일대의 유흥가는 길상 유통이 꽉 잡고 있으니 발끈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자기 영역을 침범했으니…….”
장 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발끈이 문제가 아니죠. 그게 사실이라면 길상파 입장에선 가만둘 리가 없죠. 자기들 밥상에 숟가락 올리는 놈들이 나타났는데 그놈들이 가만있으면 조폭도 아니죠. 아마 묵사발을 만들려고 할 겁니다. 전쟁도 불사하겠죠.”
오 형사가 턱을 매만지며 거들었다.
“바로 그 점을 노리자는 겁니다.”
“검사님! 그거 좋은 생각이긴 한데, 사실, 이 지역은 길상파가 이미 평정을 해서 실제로 그와 대적할 조직은 씨가 말랐어요. 그래서 길상파에 도전할 조직도 없거니와 목숨을 내놓고 덤빌 배짱이 있는 놈도 없고요. 아무리 소문이 무성해도 어설픈 놈들이 설친다면 길상파 입장에서는 콧방귀도 뀌지 않을 텐데요. 아마 신경도 안 쓸 거예요. 그나저나 뭐… 예전에 천수파 정도라면 반응을 할까?”
오 형사가 볼을 부풀리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천수파요? 그게 뭐죠?”
장 검이 궁금한 듯 물었다.
“박천수! 과거 길상파가 이 지역을 접수하기 전에 점령하고 있던 터줏대감이었던 조직이야. 박천수의 이름을 따서 천수파라고 불렀어. 80~90년대엔 그 세력이 대단했었지. 그런데, 어느 날, 외지에서 이길상이 들어왔고 천수파 말단 조직원이었던 그가 지금의 길상파를 만들었던 거야.”
“사실, 천수파는 지금의 길상파와는 완전히 궤를 달리했어요. 그들은 나름대로 낭만이 있었죠. 이길상처럼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두르진 않았습니다. 절대 민간인들은 건들지 않았거든요. 물론, 그 덕에 흉악한 이길상이 잔꾀를 부려 조직을 접수했지만요. 나름대로 박천수는 협객이란 소리를 들었죠.”
오 형사가 좀 더 자세히 천수파에 관해 부연했다.
“그럼, 오 형사님! 박천수와 조직은 지금 어떻게 됐나요?"
“뭘, 어떻게 돼요. 이길상한테 완전히 수술 당해 박천수 쪽 수족들은 대부분 제거됐고 박천수만 간신히 목숨만 건진 채, 거기가 어디더라 아무튼 서울의 모 요양원에 있나 봐요. 박천수 가족들까지도 큰 화를 입고 뿔뿔이 흩어졌으니 돌봐줄 사람도 아마 없을 거예요. 그마저도, 오늘, 낼 한다는 소문을 얼핏 들은 거 같은데요? 치매에 걸렸다나 어쨌다나…….”
오 형사가 코끝을 찡그리며 말했다.
“음… 그렇게 수술 당한 조직이라면 부활은 힘들겠군요.”
“당연하죠. 조직원들도 하나도 남지 않은 마당에 언감생심 누가 지금에 길상파에 도전한답디까?”
“아뇨. 전 오 형사님과 생각이 달라요. 전 그래서 박천수를 활용할 생각입니다. 사실, 박천수가 이길상을 후계자로 지목을 했었다면 결코, 천수파는 해체되지 않았겠죠. 대부분의 궂은일은 이길상이 도맡아 처리했는데 결국, 박천수는 후계자로 그를 선택하지 않았죠. 이에 불만을 품은 이길상이 결국 반란을 일으켰고 지금의 길상파를 탄생시킨 거니까요. 정통성을 가지지 못한 점은 이길상의 최대의 아킬레스건이에요. 자신이 적자가 되지 못했다는 점이 그로서는 아픈 부분이죠.”
“음,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네요.”
장 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길상이 유독 이도식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도 제2의 이길상이 탄생하지 못하도록 애초에 못을 박는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게다가, 이길상은 모두에게 신망받던 박천수에 대한 지독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어요. 박천수는 이길상으로서는 동경의 대상이자 막연한 두려움을 안겨주는 존재죠. 상왕에게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던 이방원처럼요. 만약에 그런 박천수를 이용할 수만 있다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겁니다.”
“아… 그래서, 선배님이 죽은 제갈량 고사를 말씀하셨던 거군요?”
장 검이 엄지와 검지를 마주쳐 소리를 냈다.
“그런데, 검사님! 그게 말이 안 되는 게, 지금 치매에 걸려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박천수를 무슨 수로 복귀시킨다는 겁니까?”
오 형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복귀시킨다고 그랬던가요? 그건, 제게 맡겨주세요. 저한테 생각이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판을 한번 벌여 볼까요?”
후후후, 나는 장 검과 오 형사를 번갈아 쳐다보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길상파, 이도식 사무실>.
한편, 길상파는 자신의 인해전술이 먹혀들어 간 것에 대해 상당히 고무돼있었다.
“형님, 진짜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지금, 경찰서는 아수라장입니다. 아마도, 김정환 그 새끼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를 거예요. 그 인간 낯짝 한번 보고 싶네요.”
흐흐흐, 김선출이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일단, 놈들이 지칠 때까지 우리 쪽 애들 계속 투입해! 이렇게 한 일주일만 지나면 그쪽에서도 반응이 올 거야.”
이도식이 다리를 꼰 채, 이마를 긁적거렸다.
“반응이오? 그게 무슨 소리 신지…….”
“원래, 나랏돈 먹고사는 인간들은 다 똑같아. 기껏 신경 써서 특본을 만들어놨는데 지금처럼 이렇게 수사가 지지부진하면서 성과가 없으면 제풀에 지치기 마련이지. 아마도, 슬슬 성과 운운하면서 불안해할 거야. 그때, 회장님의 인맥을 동원에 검찰 쪽에 약을 좀 치면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겠지."
“아… 그렇군요. 역시, 형님 대단하십니다. 저 같은 놈은 생각도 못 하는걸… 와… 진짜 최곱니다. 최고!”
김선출이 엄지를 내밀며 감탄했다.
“하지만, 결코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돼. 김정환 이 인간, 왠지 느낌이 안 좋아. 만만하게 봤다간 큰코다친다. 아무튼, 애들 입단속 잘 시키고 끝까지 방심하지 마.”
이도식이 무심히 턱을 쓸어내렸다.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입단속 단단히 시키겠습니다.”
역시, 이도식은 이길상이 후계자로 내세울 만한 인물이었다.
* * *
<특본, 김정환 팀장실>.
우선, 헛소문을 퍼뜨려줄 나팔수를 확보해야 했다. 나는 공 수사관을 내 방으로 불러들였다.
“수사관님, 수사관님이 지난번에 소개해준 광주 닭전머리 이동팔이란 사람이 이쪽 유흥업계에선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까?”
나는 지난번 김진웅 사건 때, 공 수사관의 소개를 만났던 이동팔을 나팔수로 쓸 요량이었다.
“동팔이오? 음…… 이 바닥에선 제법 잔뼈가 굵은 사람이죠. 워낙 마당발이라 광주는 물론이고 순천, 여수 쪽도 꽉 잡고 있습죠. 이쪽저쪽에 연줄이 거미줄처럼 연결돼서 발이 넓어요. 게다가 입담도 죽이죠. 한 마디로 빅마우스예요. 근데, 동팔이는 왜요?”
공 수사관이 궁금한 듯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 사람을 통해서, 기존에 길상 유통보다 저렴하게 주류를 공급하는 새로운 유통업체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나는 공 수사관에게 내 계획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오호… 그렇군요.”
공 수사관이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보였다.
“가능하시겠어요?”
“아마 가능할 겁니다. 사실, 그놈 죽을뻔한 거 내가 여러 번 구해줬거든요. 내 말이라면 아마, 죽으라면 죽는시늉도 할 겁니다. 게다가, 그놈도 길상파하곤 악연이 있습죠. 한때, 그놈들한테 털린 적이 있거든요.”
공 수사관이 가슴을 내밀며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네네. 그거 잘 됐군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그럼, 전 수사관님만 믿습니다. 부탁해요!”
나는 공 수사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네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검사님!”
공 수사관이 한껏 고무된 표정으로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말했다.
얼마 후, 예상했던 것보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지기 시작했다.
<광주 시내, 모 유흥업소>.
“김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요즘 장사는 좀 어때요?”
길상 유통의 김 과장이 수금을 위해 업소를 찾아왔다.
“휴, 아주 죽지 못해 이러고 있잖아. 요즘, 경기도 안 좋지, 손님은 날이 갈수록 줄지. 남는 게 하나도 없어요! 없어!”
벌컥벌컥, 김 사장이 냉수를 들이켜며 신세 한탄을 했다.
“에이, 무슨 엄살을 그렇게 떠세요. 돈을 긁어모은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김 과장, 그게 무슨 소리야. 입에 겨우 풀칠하는구먼. 음…… 술값에서 좀 남겨 먹으면 모를까?”
김 사장이 슬슬 김 과장의 눈치를 살폈다.
“에이, 사장님, 왜 그러세요? 우리처럼 싸게 양주 공급하는 업체가 어디 있다고…….”
“에이, 무슨 소리야. 아니라는 소문이 있던데?”
“네? 아니라요? ”
“요즘, 길상 유통에서 주는 단가보다 20%는 싸게 양주를 공급해준다는 업체가 나왔다던데? 김 과장은 몰랐어?”
“네? 그…… 게 무슨 소리예요?"
김 과장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몰랐구나? 이쪽 바닥에선 소문이 자자해. 요즘 슬슬, 그쪽이랑 계약하는 업소들이 늘고 있다던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어요? 그… 게 어딥니까?”
김 과장이 당황해 얼굴이 벌게졌다.
“나도 잘은 몰라. 아무튼, 나도 그쪽 영업담당자를 한번 만나봐야 하나. 지금 같은 불경기에 20%면 그게 어디야?”
김 사장이 수건으로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김동팔을 나팔수로 이용한 나의 전략은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실체가 없는 소문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이도식 사무실>.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이 도식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형님, 크… 큰일 났습니다.”
김선출이 헐레벌떡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호들갑이야.”
“그… 게, 너무 어이없는 일이라서요.”
김선출이 벌게진 얼굴을 말을 잇지 못했다.
“뭔데 그렇게 말을 더듬어? 빨리 말해봐! 뜸 들이지 말고.”
“그게, 우리 유통망을 치고 들어오는 놈들이 있다는 소문인데요?”
“뭐야? 그게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누가 감히 우리 구역에 발을 들여놔?”
이도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아직은 저도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서 잘은 모르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선출이 고개를 떨궜다.
“야, 김선출이! 너, 일 똑바로 안 해? 당장 소문의 근원이 어딘지 알아와. 당장!”
“네…… 형님!”
“누가 감히 우리 길상파 영역에 발을 들여놔!”
쥐고 있던 이도식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 * *
<특본, 김정환 팀장실>.
띠리리링.
공 수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검사님! 검사님이 예상대로 이쪽 지역에 소문이 좌악 퍼졌어요! 아마 길상 유통에도 소문이 들어갔을 거예요.”
공 수사관의 상기된 목소리였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수사관님! 자세한 건 특본에 들어오셔서 얘기하시죠.”
“네네.”
흠… 그럼 이젠, 죽은 제갈량을 만나러 가야 할 차례인가?